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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18화 (414/729)

# 418

제418장 송곳니 왕의 예감

남하왕성에 대융국의 깃발이 꽂혔다.

왕성이 함락되고 저항하는 이들은 죽음을 당했다. 혼란은 며칠간 이어졌다. 700~800만의 인구 중 4분의 1이 전란 중에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백성들은 적군에게 항복했다. 대융군의 약탈은 며칠 밤낮 동안 이어졌다. 왕씨 가문이 백 년 넘게 축적한 부와 자원들도 모두 송곳니 왕의 전리품이 되었다.

흉악한 악마랑 기병들은 순식간에 왕역과 창주의 성 수십 개를 함락했고, 4천만 남하국 백성들은 대융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편, 왕천룡은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왕역을 점령한 송곳니 왕이 그를 남하국의 새로운 왕으로 임명한 것이다. 인간인 왕천룡을 이용해 남하국을 통치하는 게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 땅에서 수많은 세월을 살면서 북방의 마수령들을 증오해 온 인간들이다. 인간족 백성들이 마수령의 통치를 달갑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속국의 왕이면 어떻단 말이냐? 제후의 신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왕천룡의 다음 목표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남하국의 남은 영토를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를 불편하게 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천제현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천제현이 살아 있는 한,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첩자가 가져온 소식에 따르면 현재 천제현은 중주로 도망쳐 동방건을 왕위에 앉히고 대하국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왕천룡은 잡고 있던 유리잔을 산산조각 냈다. 그는 최근 이화후에서 군으로 봉해진 남궁령과 함께 왕궁에 들어갔다.

송곳니 왕은 마침 장응국의 사자를 만나고 있었다. 장응국 사자는 온몸을 새까만 천으로 두른 채 날카로운 두 눈만 드러내고 있었는데, 위풍당당한 송곳니 왕조차 그 자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응국 사자는 인사치레로 말문을 뗐다.

“대융국을 세우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빨리 남하국을 함락하다니! 대왕께서 경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크게 치하하실 겁니다. 마마, 남벌을 거듭하여 장응국이 혼란의 숲까지 판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우리가 힘을 모으면 장응국의 세력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니, 향후 백 년 안에 황제의 칭호를 얻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송곳니 왕은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장응국의 지원군은 도착했나?”

“마마께서는 십만 공군의 지원을 요청하셨지만, 현재 장응국은 각지의 전란으로 여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남하왕성이 함락되었으니 남은 오합지졸들을 처리하는 데 십만 지원군까지야 필요하겠습니까? 독응 기병대는 장응국 최고의 정예병은 아니지만, 역시 소중한 공군 병력입니다. 하여, 최대 2만까지만 지원해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이니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송곳니 왕은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남하국이 풍전등화의 상황이라고는 하나 남북의 지형 차이가 몹시 크다. 내 악마랑 기병들은 그 험준한 땅을 넘을 수 없어. 이번 전쟁은 가능한 빨리 최대 규모의 공군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단 말이다!”

“마마, 너무 신중하신 게 아닐런지요?”

장응국 사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악마랑 기병을 출전시키기 여의치 않다고는 하나, 마마의 손에는 견융초원에서 온 수십만 병력과 1만의 독응수 기병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저희가 지원하는 2만 명의 독응수 기병을 더하면 남하국의 성 몇 개쯤이 문제겠습니까?”

송곳니 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속전속결을 원하는 마마의 심정은 이해가 되나, 대국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궤멸 직전의 남하국을 함락하는 데 그렇게 많은 전력이 필요하진 않을 듯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장응국 사자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초조해하실 것 없습니다. 대왕께서 3개월의 시간을 주셨으니 인간들이 아무리 용 써 봤자 시간은 충분합니다.”

말을 마친 장응국 사자는 즉시 왕궁을 떠났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왕천룡과 남궁령을 훑었다. 그 눈에는 조롱의 빛이 담겨 있었다.

‘저 천박한 인간들이 장응국의 상대라고? 저 송곳니 왕도 참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군. 독응 기병 십만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사실 대국 간의 전쟁에도 10만 단위의 공군을 동용하진 않는다. 그런데 송곳니왕은 소국 하나를 치면서, 그것도 다 망해가는 소국 하나 평정하면서 10만 병력을 요청한 것이다.

그나마 송곳니왕이 견융족을 통일하고 두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공을 세웠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2만 병력도 지원 받지 못했을 것이다.

송곳니 왕은 침착하게 물었다.

“시킨 일은 어떻게 됐느냐?”

남궁령은 급히 공수하며 말했다.

“남하국 수비군들이 사용하는 그 특이한 무기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왕궁 근처의 한 비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작된 장비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송곳니 왕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역시 대량 생산된 무기였어! 이 소국이 그 정도의 무기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제작 설계도나 생산 인력은 찾았느냐? 그리고 남하국 인간들이 천 리 밖에서도 통신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물건을 발명했다고 들었다. 그 기술은 어떻게 되었느냐?”

“왕이시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남궁령은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신기술들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전부 기적상회가 독점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성안에 있는 관련 설비들은 전부 파괴된 상태이고, 성밖의 비밀공장도 엉망이 되어 건질 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습니다.”

“쓸모없는 놈!”

송곳니 왕이 뺨을 후려치자 남궁령이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그는 감히 반항도 못하고 허리를 굽신거렸다.

“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예를 차린 왕천룡이 입을 열었다.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천제현 일행은 현재 중주로 도망가 있다 합니다. 그놈만 잡으면 모든 것이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송곳니 왕은 왕성까지 오는 길에 본 놀라운 위력의 마력기관총과 마력총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진귀한 보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조사해 보니 대량 생산되는 무기라지 않는가.

그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무기만 손에 넣으면 장응국에서의 세력을 몇 배는 키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황제로 불리는 것도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상인들과 군함 약탈을 통해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 두었습니다.”

왕천룡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을 이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중주만 함락되면 남하국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남하국의 2억 백성들은 대융국의 자손이 되어 영원히 마마를 위해 밭을 매고 철을 녹일 것입니다!”

그러나 송곳니 왕은 주저하고 있었다.

현재 그의 지위는 무예 실력만으로 손에 넣은 게 아니었다. 송곳니 왕은 뛰어난 지휘관이기도 했다. 그는 두 번의 대승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정국을 분석하고 있었다.

남하국의 남은 병력으로는 견융의 군단 하나조차 막아내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장응국의 병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는 두 개의 변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형적 변수, 두 번째는 돌발적 변수였다.

대융국이 남벌을 계속하려면 반드시 사주호를 지나야 한다. 그러나 견융족들은 원체 물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이 약탈한 선박이나 창고에 남아 있던 군함들은 남하국의 정규 수군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것들이었다. 만약 사주호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대융군은 궁지에 몰릴 게 뻔했다.

이 밖에, 그 엄청난 위력의 무기가 잔뜩 비축되어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무기가 수상 전투에 사용된다면 엄청난 살상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점도 대비를 해야만 했다.

왕천룡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병력 규모나 실력이나 할 것 없이 아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알겠다!”

송곳니 왕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즉시 명을 내려라. 악마랑 기병들은 남아서 이곳을 지키고 나머지 부대는 출정을 준비한다!”

“존명!”

왕천룡이 얼굴에 화색을 띠며 물었다.

“그럼 전략은 어떻게 할까요?”

송곳니 왕은 이미 전술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60만 대융군을 이끌고 남하국의 배에 올라라. 단, 병력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말고 10만씩 나눠 다섯 척에 태우도록 해라. 배 다섯 척이 서로 다른 항로를 통해 중주의 각지로 입항한다.”

“그 말씀은…….”

“남하국의 병력은 아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승산이 있다면 수상전뿐이지. 허나 그들은 수적 열세에 처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병력을 분산해서 상대를 압박한다. 우리 부대 한두 개가 공격을 당한다 해도 나머지는 무사히 중주성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왕천룡의 눈이 빛났다.

“대군을 분산하여 중주성에 도착하는 것이 첫 번째 전략이다. 강공책이지.”

송곳니 왕은 계속 말했다.

“나는 독응 기병 3만과 각 부족장들을 이끌고 창주를 출발하여 중주 북방 산맥을 통해 공중에서 중주성을 기습하겠다!”

엄청난 병력 차에 육지와 공중을 아우른 공격, 이러한 공격을 중주성이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남하국은 두 번의 전투에서 모두 처참한 패배를 했다. 수많은 전장을 겪은 송곳니 왕의 전략은 완벽할 것이다.

왕천룡이 보기에 중주성이 빠져나갈 방도는 없었다.

중주 현지의 병력은 20~30만 정도로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대융국의 병력과 정면으로 붙어서는 거의 승산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대융국 군대가 중주성에 발만 들여 놓는다면 그 즉시 무너지리라.

또한 대융국 군사들이 아무리 물에 약하고 배도 낡았다고 해도, 병력을 다섯으로 분산해서 공격할 예정이니 적들이 전력을 다해도 한두 군단밖에는 막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 부대는 계획대로 중주성을 포위하면 그만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완벽한 전략인데 송곳니 왕이 친히 공군을 이끌고 북방에서 중주를 공습하겠다지 않는가.

무안군의 용병술이 그 아무리 신통해도 60만 병력을 막아내려면 남은 병사들을 전부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에는 병력이 전혀 남지 않게 될 것이고, 그때 공중 부대 3만 명이 공습하면 수월하게 중주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중주성이 함락되면 사주호에서 승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중주의 함락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치밀하고 교활한 전략을 생각해 내다니!’

왕천룡과 남궁령은 자신감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동방건의 군사적 재능이 송곳니 왕에 뒤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지휘관의 수준이 동일한 상황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유일한 조건은 병력 아니던가.

송곳니 왕은 왕궁을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번 전투가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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