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
제415장 무공과 선약
공화련은 천제현의 부상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예전 상처에 비해 좀 번거로울 뿐, 천제현을 정마롤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천제현이 며칠 요양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명목상의 이유일 뿐, 실은 이번 기회에 게으름을 좀 피워볼 요량이었다.
운문 연구소의 진행상황도 만족스럽고, 천제현이 다 직접 나서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부하 연구원들을 잘 관리하면 그만이었다. 공화련과 기적상회가 여기저기서 천제현에게 선약을 구해주려 나섰지만, 천제현은 그리 마음 쓰지 않았다. 남하국과 같은 소국에서 어떻게 선약을 찾는단 말인가. 선약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말이다.
2급 선약은 어떤 의미에서는 3급 선약보다 더 희귀했다. 선약은 천지의 오묘하고 거대한 정수를 받아 길러지기 때문에 2급보다 3급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급 약재의 선약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설사 진짜 2급 선약 하나를 찾아낸다 해도 기적상회에게 그것과 교환할 만한 가치의 물건이 있는가.
기적상회의 자원은 대부분 남하국 내에서 나온다. 낮은 등급과 낮은 품질의 자원도 희귀하거니와 사용하는 금화도 남하국 왕국 금화다. 그 금화는 다른 나라에 가면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 마석이 좀 비축되어 있다 해도, 선약 하나를 사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즉, 선약을 구매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천제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엘프 공주가 저 멀리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천제현에게 귀한 선약을 넘겨줄 것이라고.
‘대체 얘는 누구야?’
선약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데, 최상품 성약 백 개에 버금간다.
천제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약을 선물하는 엘프를 바라봤다.
5척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엘프는 나뭇잎으로 짠 옷을 입고 화관을 쓴 채 하얀 맨발을 드러내고 다녔다. 몸매는 어린 아이였지만 얼굴은 사람들을 경탄하게 할 미모였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마도 엄청난 고수로 보였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가득한 순수한 얼굴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엘프의 오랜 전통에 따라 미성년 엘프는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아마도 몰래 도망 나온 것이리라.
“와!”
천제현을 보자마자 공주의 하얀 얼굴에 감격의 홍조가 떠올랐다. 눈을 반짝이면서, 조금은 긴장되었는지 어색하게 말했다.
“정말 널 보게 될 줄은 몰랐어. 난 비비안이야~ 인간은 아니지만 네가 발명한 물건을 사용해 보고 감탄했어. 그래서 네가 상처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족에서 약초를 가져왔어. 이 약이 소용이 있는지 어서 봐줘.”
공주가 약을 가져다 준 배경과 동기를 알게 된 사람들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기적상회가 엘프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엘프족 가운데서도 공주처럼 이렇게 추앙받는 사람이 생길 줄이야
“장생초?”
천제현은 상자를 열고 보자마자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생초는 고서에 기록된 희귀한 약초로, 천제현이 미래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수명을 늘려주는 진귀한 약이었다.
공서련이 긴장한 채 물었다.
“소용이 있어?”
“장생초는 생명 근원의 정수를 내포하고 있어요. 정상인이 사용해도 수명이 늘어나는데, 선천적 생명의 손상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지요!”
장생초는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천제현이 그 자리에서 생으로 먹어도 모든 부상이 회복된다. 하지만 천제현은 그렇게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약초에 문제가 있는 것도 발견했다.
“다만 이 약초에 있는 금제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군요. 제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면 부족에서 훔쳐 온 것이겠죠!”
천제현은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엘프처럼 폐쇄적인 종족이 얼굴도 본 적 없는 외부 종족을 위해 저 먼 곳에서 약을 보내왔을 리 없다. 이번에 약을 준 건 분명 이작은 엘프 개인의 생각일 것이다. 어려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70세가 안 되어 보인다. 허나 이 약초의 흔적을 살펴보니, 후천적으로 한 번 옮겨 심은 후 8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인 적이 없다.
그래서 천제현은 이것이 엘프 부족의 재산이거나 엘프 중에서도 지위 높은 인물의 재산이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이 작은 엘프의 개인 재산은 아닐 것이니, 도둑질 한 것이리라.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엘프는 대단한 실력자다. 공주가 경솔하게 선약을 훔쳐 천제현에게 준다면, 엘프들의 미움을 사게 되지 않을까. 엘프는 본래 세상을 피해 은거하며, 특히나 인간과의 접촉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 작은 엘프가 종족의 규칙을 깨고 중요한 옥약을 훔쳐왔으니, 만약 엘프가 분노해서 쳐들어 온다면, 기적상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 과연 천제현이야. 한번 보자마자 사실을 알아내다니!”
비비안 공주는 하나도 숨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부족에도 선초가 많지 않아. 나도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몰래 하나를 캐왔어. 걱정하지 마, 엘프는 이런 일로 너희를 괴롭히러 오지 않아. 그래봤자 나를 한 8년이나 10년 연금하는 정도일 거야!”
공주는 자신이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생초는 엘프 장로에게 큰 소용이 없다. 그래봤자 아비숑이 아끼는 소장품에 불과했다. 아비숑이 날마다 보관만 하고 있느니 차라리 꺼내서 의미 있는 일에 쓰이는 게 더 낫다.
‘이번 기회에 천제현이 엘프족에게 빚을 지면, 나중에 쓸모 있을지도 모르잖아!’
“8년이나 10년 동안 갇힌다구요?”
너무 심각한 처벌이다. 비비안 공주가 기적상회를 돕기 위해 이런 벌까지 감수하려 들다니, 공화련 자매는 너무 미안해졌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엘프에게 10년은 별거 아냐. 연금이라는 것도 나에겐 소용도 없고.”
비비안 공주는 바로 덧붙였다.
“왜냐면 우리 부족에서는 아직 날 가둘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 약은 벌써 훔쳤으니 돌려주기엔 늦었어. 나중 걱정은 안 해도 돼!”
공서련은 감동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인간은 왜 이렇게 성가시고 번거로운 거야!”
비비안은 기분이 나빠졌다.
“그냥 약 하나 가지고 뭐 그리 대단하다고!”
공주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만약 더 거절했다가는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제현은 그대로 선약을 받아 챙기고는 공화련에게 목록을 하나 써 주고는 빠른 시간 안에 이 재료들을 모아오라고 일렀다. 흔히 볼 수 있는 성약들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공화련은 약 목록을 받아 들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천제현은 비비안을 살펴보며 말했다.
“당신의 정령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비비안이 돌연 마력을 펼쳤다. 그녀의 마력이 나타나는 순간 어떤 색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간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곧 하얀 단검이 비비안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아주 특별한 단검이었다.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면서 강렬한 공간의 힘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그 칼끝이 공간을 두부처럼 잘라냈다.
‘공간의 단검! 이것이 비비안 공주의 정령!’
천제현이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보기 드문 공간 속성의 정령이군요! 강력한 공간 정령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공간 속성 무공은 수련하지 않은 것 같네요?”
비비안이 풀이 죽은 채 말했다.
“공간 속성 무공은 너무 희귀해서, 엘프에서 적합한 수련 방법을 찾지 못했어. 그래서 내 주력 무공은 공간 속성이 아니야.”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애석해했다
공간 속성은 최강 속성 중 하나였다.
만약 적절한 무공과 정령이 어우러지면, 비비안 공주의 잠재력은 놀랍게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 속성은 희귀하고 강력하기 때문에 예부터 수련하기가 힘들어 계승되기도 어려웠다. 공주가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찾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잘됐군요!”
천제현이 웃으며 말하자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천제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약을 주시려고 그 먼 곳에서 오셨는데 기적상회는 마땅히 드릴 것이 없으니 특수한 무공으로 보답을 하고 싶군요!”
비비안 공주는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돼! 설마 천제현 네가 공간 속성 무공을 갖고 있다고?”
“이 무공은 허공둔(虛空遁)이라고 합니다. 공간에 기반을 둔 신법이지요. 당신의 정령인 공간의 단검은 이 무공을 수련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이 무공을 연마하시면, 같은 경지에서 당신의 생명을 위협할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모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천제현이 공간 속성 무공을 갖고 있다는 데 놀랐을 뿐 아니라, 그 무공의 강력한 효과에 경탄했다.
허공둔을 연마하면, 전투력이 얼마나 상승하든 간에, 적어도 같은 경지 내에서 감히 목숨을 위협할 자는 없다니. 그야말로 강력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공이 아닌가.
비비안은 믿기 힘들었다.
“정말 공간 무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천제현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서적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밤새도록 무공을 기록한 후 직접 비비안에게 건네며 정중하게 당부했다.
“무공을 다 익힌 후에는 이 책을 없애 버리세요. 절대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비비안은 그저 순수하게 약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런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비안은 그동안 평생 완벽한 공간 무공을 익히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허공둔이라는 무공을 얻고 나니 갑자기 열정이 끓어올랐다. 그건 단순한 공간 무공이 아니었다. 지극히 높은 경지의 무공인 것이다.
비비안과 엘프에게 있어 이 무공의 가치를 어찌 선약 하나에 비할까.
10개, 아니 100개도 모자란다.
이때, 공화련이 돌아왔다. 천제현이 필요로 한 약재들을 창고에서 찾아내 조건에 맞게 준비해 두었다. 이제는 제련만 하면 된다.
‘좋다! 하늘이 나를 돕는 구나!’
천제현은 그동안 성가셨던 묵은 상처를 이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천제현은 비비안에게 말했다.
“우선 중주에 이틀 정도 묵으시지요. 만약 익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천제현은 문을 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