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
제414장 선약 선물
2급 선약은 아주 진귀해서 부족에서도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모두 다 엘프 장로들에게 귀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비비안으로서는 달리 얻어낼 명목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니 훔칠 수밖에!’
부족에서는 매일 이 약에 공을 들였는데, 해마다 재배하는 데 소모되는 자원이 엄청났다. 사실 엘프 장로들에게는 그다지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진령 경지 이상의 마력을 가지지 않은 엘프 장로가 어디 있겠는가.
‘귀한 물건을 함부로 낭비하느니 차라리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이는 게 낫지! 하지만 어느 장로의 것을 훔치는 게 좋을까?’
엘프 장로들은 모두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마침 삼장로 아비숑과 사이가 가장 좋았고, 그 정원에 선약이 하나 있으니 비비안은 아비숑을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밤이 깊어 고요해졌을 때였다.
비비안은 나무집을 떠나 몰래 아비숑 장로의 약밭으로 들어갔다. 약밭의 경비가 아주 삼엄했다. 가장 밖에는 환진(幻陣)이 깔려 있어 약밭 상황을 전혀 볼 수 없었고, 환진 내부에는 진령 강자도 깨기 힘든 견고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또 여러 개의 경보와 방어 함정이 이어져 있었다. 약밭 안쪽에는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꼭두각시가 순찰을 돌고 있었고, 모든 옥약 주변에는 금제가 깔려 있었다.
이 같이 완벽한 방어체계를 갖춘 약밭에 도둑이 들 가능성은 없었다.
누군가 감히 약밭에 들어가려고 하면 경보가 울릴 테고, 바로 아비숑에게 발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비비안 공주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부적인 공간 속성 보유자였다. 밖에 깔아둔 방어 체계는 공주에게는 다 헛된 것이었다.
푸식!
공간이 마치 천이 갈라지듯 갈라졌다.
공주는 아비숑 장로의 약밭으로 들어갔다. 안개가 자욱한 약밭 내부에는 총 10여 개의 옥약이 있었는데, 모두 다 보기 드문 진귀한 것들이었다.
비비안은 아비숑이 80년 전 한 유적에서 가져다 심은 선약을 발견했다. 장생초였다.
장생초, 이름은 평범할지 몰라도 진정한 선약이었다. 이 약에는 강력한 선천적 생명력이 들어 있어 선천적 결핍이나 후천적 유실을 해결할 수 있고, 수명을 5푼이나 늘려준다고 한다. 그 강력한 효능이면 혼성 경지의 마력을 가진 자가 처한 어려움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잘 됐어! 이것이다!’
공주는 단검을 들고 정교하게 금제를 끊어냈다. 공간을 잘라냈기 때문에 약 전체가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도려 졌다. 선약을 묻어둔 땅에는 뭔가를 만진 흔적조차 전혀 없었다. 약을 땅에서 뽑아낸 게 아니라, 공간상에서 이동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숲 전체에서 비비안만 가능했다. 그래서 아비숑이 쳐둔 금제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비숑 장로, 절 원망하지 마세요. 아바마마는 좋은 인연을 맺으라고 하셨죠. 이 약으로 천제현을 구하면, 좋은 인연을 맺는 거 아니겠어요!”
선약을 손에 넣었다.
비비안은 부족을 떠나 밤새도록 이동했다.
약을 훔친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탄로 날 것이다. 아비숑이 80년을 공들여 재배한 보물 같은 선약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찾으려 들게 분명했다. 공주는 서둘러 약을 천제현에게 전달해야 했다.
공주는 숲을 넘어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 남하국 국경에 들어갔다. 중주 지역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무리 천부적인 공간 능력을 갖고 있는 공주라지만, 밤새도록 길을 달렸으니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천제현은 어디에 살지?”
남하국은 전시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주도 평소처럼 번화한 모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새벽 네 시 정도라 대부분 문이 닫혀 있어, 중주는 아주 적막했다.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도시에 온 공주는 돌로 된 집에 사는 인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건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도시에는 나무 하나 보이지 않았다.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이렇게 높고 큰 돌로 된 집이 빼곡하게 들어찬 곳에서 살면 불편하지 않을까?’
나뭇잎도, 풀밭도 없다. 꽃밭도, 우물도, 나무집도, 곁에 새들도 날아다니지 않는다. 수백 명의 사람이 다닥다닥 엉켜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
‘인간은 정말 기이한 존재구나! 천제현이 사는 곳은 대체 어디일까?’
비비안은 눈을 감고 심등을 켰다. 그녀는 아주 강력한 신식으로 순식간에 도시를 훑어보았다. 공주는 말도 안 되게 약한 인간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세상에 이런 약한 나라가 있단 말이야?’
비비안은 대륙의 세력 등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소국이 최하층 세력인 것도 몰랐다.
‘남하국의 인간들은 이렇게 약했구나, 어쩐지 마수령 왕국에게 괴롭힘을 받더라니!’
공주는 남하국 사람의 실력을 알게 된 후 자신감이 생겼다. 중주성의 누구도 그녀를 위협할 수 없었다. 안심한 공주는 그중 최강자가 누군지 확인한 후,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천제현은 남하국에서 높은 지위를 가졌으니, 이 최강자를 찾아 가는 게 맞을 것이다.
***
남하왕의 임시 저택.
동방건은 밤새도록 군사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동방건이 정신을 집중해 국면을 분석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 안녕!”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자 동방건은 깜짝 놀랐다. 1장 부근에 작고 아담한 형체가 보였다.
동방건은 안색이 변해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붓을 표창처럼 던졌다.
누구든지 이 한밤중에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동방건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으리라.
동방건의 마력은 진령 2성 수준으로, 남하국에서도 높은 마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근처 한 장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상대의 숨소리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그것은 침입한 자가 아주 뛰어난 자객이거나, 마력이 지극히 높은 강자라는 말이었다.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밖의 시위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갑자기 동방건 앞에 나타났다면 절대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공주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두 손가락을 들어 동방건이 던진 붓을 잡아챘다. 동방건은 낮은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마력을 표출했다. 동방 가문의 무장 정령이 긴 창으로 변신해 공주를 향해 맹렬하게 공격했다.
“왜 공격하고 그래!”
비비안이 손을 들어 앞의 공간을 부서뜨리자 긴 창은 부서진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동방건 뒤에서 튀어 나왔다. 결국 동방건 자신을 공격한 셈이 되었다. 동방건은 순간 자신의 공격에 상처를 입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천제현에게 약을 주러 왔어.”
비비안은 손에 나무상자를 든 채 서툰 인간의 말로 답했다.
“천제현 어디 있는 지 알아?”
“약을 주러 왔다고?”
비비안이 나무 상자를 열자 짙은 기운이 가득 차오르더니 순식간에 방 전체를 뒤덮었다. 동방건의 부상도 이 기운에 금방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 약은…….’
이때, 문이 쾅 하고 열리면서 동방 가문 호위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자객을 잡아라!”
“멈춰라!”
동방건은 바로 그들을 저지했다. 만약 이자가 자신을 노리는 거라면, 여기 사람들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자객이 아니다. 기적상회 사람들을 데려와라.”
***
공서련은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걱정하느라 몇날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천제현이 병들어 눕자 공서련은 너무나 무서웠다. 천제현이 버텨 낼 지 알 수 없었다.
최근 대융국 군대가 상선들을 강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배를 타고 남쪽으로 올 생각임이 분명했다.
만약 천제현이 없다면 어떻게 흉악한 대융국에 맞설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공서련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외부 종족이 중주로 약을 보내러 왔다는 소식이었다. 공서련은 몸을 꼬집어보았다. 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자, 그제야 뛸 듯이 기뻐하며 바로 옷을 걸쳐 입고는 서둘러 동방건의 저택으로 향했다.
공화련은 이미 와 있었다.
그녀도 감격에 가득 차 몸을 떨며 두 손으로 투박한 작은 나무 상자를 받고 있었다. 평소 냉정하고 진중한 공화련마저 이렇게 기뻐하다니, 저 나무 상자에는 분명 선약이 들어 있으리라.
“아! 넌 공서련 공주?”
공서련은 자기보다 한두 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검푸른 머리카락 위로 눈부신 화관을 쓰고 있었다. 반짝이는 녹색 나뭇잎으로 짠 옷을 입고 눈처럼 하얀 작은 발을 내놓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외모에 두 귀는 뾰족하고 길게 나 있었다. 이 아이는 찻잔을 들고 자리에 앉아서 비취빛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득 담아 주변 인간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신기한 복장을 한 이 외부 종족은 공서련을 보자마자 두 눈을 반짝였다. 눈처럼 하얀 맨발을 땅에 디디고는 놀라워하며 공서련 곁으로 달려와 위 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았다.
“영화에서보다 더 예쁘다. 나랑 언니들 다 널 좋아해. 여기서 널 만날 줄이야, 너무 좋다!”
공서련은 민망하기도 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서련아, 이분은 나무 엘프족의 비비안 공주야!”
공화련이 동생에게 다가와 말했다.
“천제현에게 선약을 주기 위해 오셨어. 기적상회의 큰 은인이야.”
“엘프 공주?”
공서련은 깜짝 놀랐다. 공서련은 가짜일지 몰라도, 이 사람은 진짜 공주가 아닌가. 공서련은 서둘러 인사했다.
“공주 언니, 아, 아니, 공주 할머니라고 해야죠. 저는 공서련이에요. 천제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는 갑자기 멈칫하더니 화를 냈다.
“할머니라고? 내가 어디 할머니 같아!”
공주의 기분이 나빠지자 동방건은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이 작은 엘프는 아무런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을 가진 자였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공서련은 머리를 긁으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엘프 수명은 인간과 다르다고 해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요.”
엘프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산다. 공주는 인간세계에서 열셋이나 열네 살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60~70세 정도였다. 공서련은 이제 막 열여섯이 되었으니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잘못될 리가 있는가. 하지만 인간이든 엘프든, 누구나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건 싫은 모양이다.
“됐어, 괜찮아!”
공주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는 듯, 조급해하며 물었다.
“천제현은 왜 아직도 안와? 난 그가 보고 싶어!”
“천제현은 부상을 당해 요양 중입니다.”
공화련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이 약을 전해주러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