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
제407장 왕성 전투(4)
성내로 강하한 독응기사들은 남궁 가문의 광염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점차 수세에 몰렸다. 광염군은 남하국 최강의 보병부대로 더할 나위 없이 견고한 갑옷에 혼성 허혼기 술사도 뚫기 힘든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광염군은 남궁 가문의 비법으로 양성한 자들로 다들 기골이 장대하고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모두 연체 9성 정점의 실력으로 거의 혼성 술사에 근접해 있었다.
광염 전사 1만 명은 오른손에는 대검을, 왼손에는 마력권총을 들고 적과 맞서 싸웠다. 견융족 전사는 몇 번이나 포위망을 뚫긴 했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세우지 못한 채 후퇴를 반복하며 점차 수세에 몰렸다.
이와 동시에 그리핀 기사들이 성벽을 지원하니 남하국 수비군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였고, 군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게 되었다.
왕성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어쨌든 가장 위험한 공격은 잘 막아낸 셈이었다.
그리핀 기사단이 다시금 독응기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리핀 기사들은 마력 탄창을 최소 1개씩 남겨 놓고 있었고, 독응기사들은 마력 기관총의 가공할 발사속도와 화력 앞에서 진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리핀 기사단과 격전에서 독응기사단의 사상자는 그리핀 기사보다 최소 3~4배 이상 많았다.
“하하하하!”
염양군이 한 주먹에 견융족 장군을 쓰러뜨렸다. 거의 온몸이 피로 뒤덮였고 붉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패색이 짙어 보이는 대융국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대융국도 별것 아니군. 감히 우리 남하국을 넘보다니, 철저히 밟아놓겠어!”
문성군 역시 고급 장교 열댓 명의 목을 베면서 가장 강력한 대융국의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대융국의 독응기사단은 엄청난 사상자를 낳았고 공중 투하된 정예병도 광염군에 의해 몰살되다시피 하여 현재까지도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대융국의 포위 공격은 참패로 끝나 현재로서는 철군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지금 이 상태에서 대융국이 다시 성을 공격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전투로 남하국의 사기가 높아졌고 무안군도 곧 도착할 것이라 대융국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기적상회의 마력 무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막강한 마력 무기가 있었기에 그리핀 기사단이 열세에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고, 광염군도 견융족의 공수부대 정예병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송곳니 왕을 비롯한 대융국의 최고 고수들도 더는 경거망동하지 못할 테니 방어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든 셈이었다.
“어?”
대융군 장군의 가슴에서 금필을 뽑아낸 문성군이 전장에 쓰러진 대융국 병사들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들의 주력 기병은 어디에 있지?”
이 말에 염양군도 경계하기 시작했다.
견융족 대군의 핵심 부대는 바로 악마랑 기병으로, 그들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가공할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전투가 아무리 격렬해도 송곳니 왕은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수세에 몰려도 악마랑 기병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장을 빠르게 훑어본 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악몽과도 같은 검은 군단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남하국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된 그때 염양군은 송곳니 왕을 주시했다.
저 멀리 서 있는 송곳니 왕의 눈빛에서는 분노나 패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혹독하고 교활하게 변해만 갔다. 마치 때를 기다리는 독사의 눈빛 같았다.
‘설마 저들에게 또 다른 지원군이라도 있는 것인가!’
염양군과 문성군이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왕성 중심에서 연쇄적인 폭발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에는 광기 어린 늑대의 포효성도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포효성에 맞춰 광염군이 제압했다고 생각한 대융군 정예병이 돌연 광폭한 기세를 올리며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광염군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사방의 가옥, 지붕, 모퉁이 쪽에서 마치 홍수가 밀어닥치듯 수천 명의 검은 늑대기병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광염군은 반격할 때를 놓쳐버렸다. 무수히 많은 악마랑 기병이 벌떼처럼 몰려와 광염군 진영을 순식간에 덮쳤다. 군사 수도 점차 많아져 광염군을 능가했다. 그들은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향해 떼를 지어 몰려드는 미친개 같았다. 그 기세에 광염군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견융족 기병이 왕성에 나타나자 모두가 크게 놀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견융족 기병이 어떻게 성안에 난입한 거지?’
이때 수하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보고했다.
“적군이 남궁 가문 방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염양군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흉악하고 잔인한 검은 그림자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민첩한 악마랑 기병들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무고한 백성과 병사를 무참히 살육했다.
5천, 8천, 1만……2만, 3만 명.
염양군이 성내에 배치한 광염 중장갑부대가 순식간에 전멸했다.
악마랑 기병의 규모는 끝없이 계속 늘어만 갔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염양군이 분개하여 소리쳤고,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가문의 비밀 통로가…….”
남하 왕성은 남하국 3대 가문이 세운 것으로, 왕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3대 가문은 모종의 이유로 외부와 통하는 비밀통로를 함께 만들었다. 이는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비밀 통로는 대단히 안전하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는 절대로 문을 열 수 없었다.
남궁 가문에서 이 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혔다. 특히 이런 전시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 권한이 축소되었다. 그렇다면 이 비밀통로는 어떻게 열린 것인가.
바로 그때, 악마랑 기병들에 겹겹이 둘러싸인 남궁 가문의 군대가 걸어 나왔다. 그 군대의 수장은 다름 아닌 염양군의 아들, 이화후였다. 이화후는 본인이 직접 양성한 이화시위대 수천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이화후!”
“이화후, 어째서 대융국 놈들과 같이 있는 것이오?”
“빌어먹을! 설마 이화후 네놈이 적군을 들여보낸 것이냐?”
이화후가 남궁 가문의 비밀 통로를 열어준 것이라면, 이 모든 상황은 단숨에 이해된다.
이화후는 남하팔후의 수장으로 유일하게 1품 군후였다. 그는 막강한 이화전사를 거느렸으니 가문에서 통로 개방 권한을 가질 자격이 충분했다. 비록 가문 내에서 반대는 있었겠지만, 이화후의 지위로 보아 문을 여는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하하하!”
진령급 실력을 가진 견융족 수장이 이화후 곁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이건 몰랐지? 이곳이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염양군의 붉은 머리카락에 검은 빛이 돌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분노가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왈칵!
역정을 참지 못한 염양군이 피를 토했다.
“남궁령! 네 이놈!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이 가문에 먹칠을 하는구나!”
“아버님, 아버님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십니다!”
이화후 남궁령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남하 왕성의 인구는 7~8백만 명에 달합니다. 이토록 번화한 도시가 아버님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멸망하게 생겼어요. 전 그저 백성들을 지키고자 함입니다. 송곳니 왕은 왕성을 내놓으면 백성들은 살려주고 저를 군으로 책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요? 대세는 이미 기울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십니까!”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 그럴싸한 변명만 늘어놓는구나!”
문성군 역시 분기탱천했다. 왕성을 지켜냈다고 생각한 순간 이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네놈은 남하국의 수치다!”
이에 남궁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동방 가문의 남하국은 이제 그 명을 다했습니다. 남궁 가문과 상관 가문도 쓸데없이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옆에 있던 진령급 견융족 수장이 귀찮다는 듯 한마디 쏘아붙였다.
“뭔 말이 그리 많소! 공격하라!”
악마랑 기병이 미친 듯이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하국은 거의 외부에 수비를 배치한 상태라 적들이 내부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막을 방도가 없었다. 성 밖에 있던 송곳니 왕은 성 내부의 변화를 감지하고 차갑게 웃으며 자금뇌신당을 높이 들었다.
“때가 왔다! 성을 함락하라!”
송곳니 왕이 직접 나섰다.
대융국은 송곳니 왕 외에도 진령급 강자가 최소 4명은 더 있었고, 군대의 규모와 전투력 면에서도 남하국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러니 안팎으로 왕성을 공격한다면 남하국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남하국의 두 군은 내가 상대하겠다!”
송곳니 왕은 발을 힘껏 굴러 단숨에 십여 장을 도약해 성벽의 움푹 파인 곳을 밟은 후 다시 한 번 도약하여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루는 이미 불타고 있었고, 장군과 병사들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군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이들이 어찌 송곳니 왕에게 집중 공격을 할 수 있겠는가.
송곳니 왕이 자금뇌신당을 가볍게 휘두르니 그를 향해 달려들던 남하국 전사들이 번개에 맞아 재로 변했다.
염양군이 옆에 있던 공화련에게 말했다.
“먼저 왕궁으로 철수하게!”
심빙우는 공화련을 데리고 전장을 떠났다. 이 전투에 그녀들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송곳니 왕 역시 그녀들을 쫓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현재 왕성에서 자신의 적수가 될 사람은 문성군과 염양군뿐이었기 때문이다. 문성군과 염양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송곳니 왕을 향해 맹공을 펼쳤다.
쾅쾅쾅!
모든 성벽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세 명의 진령급 강자가 교전을 벌이니 그 파괴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성벽이 붕괴하면서 주변은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이때 그림자 2개가 동시에 폐허 쪽으로 튕겨나갔다. 단지 몇 합을 겨루었을 뿐인데, 문성군과 염양군은 곳곳에 부상을 입고 튕겨나간 것이다. 그러나 송곳니 왕은 생채기조차 없이 멀쩡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이것만 봐도 양측의 실력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송곳니 왕이 조소를 날렸다.
“남하 3군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미 대융국의 부대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염양군과 문성군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철수합시다!”
뒤로 내달리는 두 사람을 견융족 족장이 쫓으려 했으나 송곳니 왕이 저지했다. 송곳니 왕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둘을 쫓을 필요는 없다. 우리 임무는 남하 왕성을 함락시키는 것이니까. 창주 기병이 온다고 해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을 것이야. 상대가 어떤 술수를 부려도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네!”
“너희는 병사를 데리고 남하국에 있는 잔당들을 모조리 찾아 섬멸하라! 그들이 더는 저항할 수 없도록 말이야!”
송곳니 왕의 눈빛은 더없이 차갑고 냉혹했다.
“저 몇 놈의 숨이 몇 시간 더 붙어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