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제404장 왕성 전투
“듣자 하니, 대장군께서…….”
신풍후가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공화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몇몇 군후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실 신풍후, 금전후, 사방후를 비롯해 다른 군후들 모두 동방전을 대장군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그들은 과거 동방전 수하로 일한 적이 있으며, 그의 됨됨이를 흠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대들보가 무너졌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청목후가 물었다.
“전략은 어떻게 되오?”
공화련은 마력 총기류와 마력폭탄을 공수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 뿐 병법이나 전략에는 무지했다. 물론 그녀가 조달한 두 가지 무기는 왕성 수비군의 전투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나, 왕성의 명운이 어디로 치달을지 공화련으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견융족 군대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뿐이니 구체적인 방어 병력 배치는 이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다.
무안군이 부재한 상황에서 염양군의 군대 서열이 제일 높아 그가 방어 병력을 배치했다.
“지금부터 왕성 전체는 군정을 실시토록 하겠소. 모든 식량을 공동 분배하고 성안의 백성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바깥출입을 자제시키시오. 용병단도 전원 전투에 투입시키고. 청목후, 신풍후는 남쪽 지역의 방어 병력을 맡고, 금전후, 평서후는 동쪽 수비를 맡으시오. 사방후와 원동후는 서쪽을 책임져 주길 바라오. 나와 문성군은 북쪽에서 적의 침입을 막도록 하겠소. 병력 배치는 이렇게…….”
남하국 왕성에서 병력 배치로 분주할 무렵 대융국도 신속하게 군을 정비한 후 진군에 박차를 가했다.
송곳니 왕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엄청난 기동력을 자랑하는 무안군 기병부대 20만, 창운후 기병부대 20만이 창주평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일제히 왕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왕성에 도착하면 대융국의 부대는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이번 전투는 속도전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이유로 송곳니 왕은 무안군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왕성을 함락해야 했다. 남하 왕성을 함락하면 남하국은 전세를 뒤바꿀 힘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마침내, 견융대군이 남하 왕성 북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세등등한 모습의 견융대군의 규모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들의 위용에 왕성 주둔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군기가 마치 파도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가운데 어림잡아 최소 7~80만 명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는 전방 방위선을 공격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바로 이 점이 이상했다. 어떻게 전투를 하면 할수록 군의 규모가 커지는 것인가.
전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견융족이 대승을 거두었지만, 최소 2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저 군대는 줄기는커녕 더 많아지지 않았는가.
염양군과 문성군은 금방 그 이유를 알아냈다. 견융대군 깃발 가운데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온 적들이 보였다. 두 제후가 일전에 보고 받은 바로는 저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송곳니 왕은 아직 완전히 견융족 전체를 장악하지 못했다. 일부 전통 깊은 부족들은 송곳니 왕이 전선을 공격할 때, 전투를 관망할 뿐 직접 나서지 않았다. 이는 송곳니 왕이 그들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이들은 송곳니 왕이 남하국 전방의 방위선을 무너뜨리면 그와 합세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그를 떠나기로 했다.
결과는 송곳니 왕의 승리였다.
전통 깊은 부족들은 송곳니 왕의 실력을 보고 그에게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송곳니 왕이 이끄는 대군 중에는 공중 부대도 있었다.
2만 명 안팎의 부대 전원이 모두 독응수를 타고 다니는 독응기사단이었다. 이들은 왕성을 지키는 그리핀 기사단에 맞서기 위한 부대였다.
더 놀라운 것은 독응 공군부대, 악마랑 기병부대 등 두 군대의 탈것, 병사, 장비들이 모두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뛰어난 사육 능력, 제조 능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견융족의 사육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통일된 격식을 갖춘 우수한 탈것이 이토록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장비 제조 기술도 상당히 조악한 편인데, 어떻게 이런 군대를 구축할 수 있단 말인가.
송곳니 왕은 삼두마랑을 탄 채 왕성 쪽으로 혼자 걸어 나왔다.
“저기 걸어오는 사람이 이번에 즉위한 송곳니 왕이 맞소?”
염양군은 송곳니 왕이 내뿜는 압도적인 힘을 느끼고는 그의 마력이 자신보다 높을 것이라 여겼다. 아마도 무안군조차 그의 적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명소졸이었군.”
송곳니 왕을 따라 대융국의 부대가 다가왔다. 여기에는 진령급 마력을 지닌 전통 깊은 부족의 족장들도 서너 명이 있었다. 이밖에 남하국 반역자 왕천룡의 모습도 보였다. 송곳니 왕은 남하 왕성 함락에 사활을 건 게 분명했다.
양측의 실력 차이가 이토록 현저하니 남하국의 함락이 불 보듯 뻔했다. 이때 송곳니 왕이 무표정한 얼굴에 잔뜩 가라앉은 모습으로 물었다.
“마림은 너희 두 사람이 죽였느냐?”
‘마림이 누구지?’
염양군과 문성군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죽였어요!”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성루에서 들려왔다.
공화련은 평소에 입던 흰색 도포가 아닌 은백색의 보갑을 입고 있어 늠름한 장군의 기개가 느껴졌다.
고천추가 깜짝 놀라 물었다.
“공 회장이 정말 그 사람을 죽였소!”
염양군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시오? 그 사람이 대단한 인물이오?”
“물론입니다!”
고천추가 분개하며 말했다.
“마림은 지옥의 노래 부족 부족장에다 진령급 술사로 반역자 왕천룡과 연합하여 남하왕을 죽인 장본인입니다!”
“진령급 술사?”
이는 좌중을 대경실색케 했다.
‘공화련이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견융족의 진령급 술사를 직접 죽였다고?’
이 얘긴 즉슨, 그녀가 적장의 수급을 벤 것만으로도 그 공이 인정되어 군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어쨌든 지난 몇 년 동안 남하국은 견융족의 진령급 고수를 쓰러뜨린 일이 없었다. 견융족에게서 진령급 고수가 나타나도 내전과 내란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에 견융부대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림이 연약한 여인의 손에 죽었다고?’
송곳니 왕의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두 눈은 분노로 번뜩였다.
‘지옥의 노래 부족 부족장인 명염도 마림이 일개 혼성급 여인의 손에 죽었다고?’ 이는 좌중을 뒤흔들기 충분한 폭탄급 발언으로 견융 부족들 사이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 용사를 모욕하는 건가!”
송곳니 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무슨 힘으로 그를 죽였다는 건가?!”
“이 저장용 주머니를 모르진 않겠죠?”
공화련이 설명 대신 저장용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꽁꽁 사맨 흑색 장도를 꺼내 송곳니 왕에게 보였다. 그 장도는 상급 불멸 혼기라, 혼기의 인정을 받지 않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저장용 주머니는 몰라도 이 장도를 모르진 않겠죠!”
“명염도?”
“마림이 정말 저 인간 여자의 손에 죽었단 말인가?”
견융초원 족장들은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으며 표정이 하나같이 괴이하게 변해갔다.
마림의 죽음을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다들 경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송곳니 왕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림은 그의 동생이자 그의 가장 믿음직한 부하였다. 마림이 전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전사했다면 용사의 명예로운 죽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마림이 연약한 인간 여자의 손에 죽었다니, 이는 마림에게 치욕이자 지옥의 노래 부족에 대한 모욕이었다.
송곳니 왕은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금뇌신당을 거칠게 들어 올려 강렬한 번개를 날렸다.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구름을 통과하여 엄청난 위력으로 공화련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이토록 강력한 공격을 가하다니, 송곳니 왕의 압도적인 힘은 남하국 전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하지만 문성군이 냉소를 짓더니 소매춤에서 금필을 꺼내 유연한 동작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번개의 불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속박 당했고, 금필로 두드리니 그 힘이 그대로 반사되었다.
빛다발이 송곳니 왕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갔으나 송곳니 왕이 철추로 이 모든 힘을 흡수하였다.
송곳니 왕이 담담히 물었다.
“네놈이 남하국 문성군인가?”
“그렇다!”
“견융족이 수년 간 동란에 빠진 건 모두 네놈의 권모술수 때문이렷다! 남하국이 오늘까지 무사한 데에는 네놈의 공이 크겠군.”
“안타깝게도 최근 동향을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군. 그렇지 않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터. 난 견융초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결코 이렇게 많은 군대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네놈 역시 이름 없는 장수일 리는 없다. 너희는 도대체 어디서 온 놈들이냐?”
염양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과 무슨 말을 더 하겠소? 짐승 같은 견융족 놈들이 쳐들어왔으니 남하국의 힘을 보여줍시다!”
“염양군, 문성군! 지금 여기서 투항하는 게 좋을 거다.”
이번에는 송곳니 왕이 아닌 왕천룡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태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고서도, 대융국만 상대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틀렸다! 완전히 잘못 짚었어! 네놈들은 지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군 그래. 이번 전투에서 너희는 반드시 진다!”
남하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송곳니 왕 정체를 의심했다. 지옥의 노래 부족은 생겨난 지 10년 밖에 안 된 신흥 부족이라 다른 견융 부족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세워진 부족이 이토록 잘 훈련된 군대를 갖추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악마랑 기병 10만, 독응부대 2만 명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지옥의 노래 부족은 일개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 즉, 그들이 정체불명의 외부 세력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왕천룡이 이토록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지옥의 노래 부족은 장응국(葬??)의 귀족이다!”
왕천룡이 크게 소리쳤다.
“대융국은 장응전국의 제후국이 되었다! 현재 대융국은 장응국의 세력에 흡수되었는데, 네놈들이 감히 전국에 맞설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