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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01화 (397/729)

# 401

제401장 무사히 왕성으로

급작스럽게 현실세계로 돌아온 마림이 처절한 절규와 함께 쿵, 바닥에 쓰러졌다. 마림의 사지가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켰다. 심한 충격으로 인해 곧바로 의식을 회복하진 못하는 듯했다.

‘놈의 정신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데 실패했다!’

마림은 천제현보다 강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마력상의 우위와 비범한 의지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천제현은 마림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신식 공격 도입부에 있었던 마림의 저항은 천제현에게서 상당한 힘을 앗아갔다. 그 때문에 전반적인 공격을 제대로 시전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공격이 미완성 상태에서 중단되기에 이른 것이다. 마림의 정신은 아직 철저히 붕괴하기 전이었다.

‘큰일이다!’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공화련은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신력으로 만들어진 세계와 물질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천제현의 정신력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마림은 하루를 꼬박 고문당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고작 몇 초가 지났을 뿐이었다. 때문에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간의 과정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화련의 눈에 비친 광경은 간단했다. 천제현이 마림을 한 번 노려보자 마림이 중상을 입었다. 마림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고, 천제현도 갑자기 탈진한 사람처럼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쓰러져서 꼼짝 못 하던 천제현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여우야, 지금이야! 놈을 처치해!”

새끼 여우는 두 눈에서 비취색 빛을 뿜어내며 있는 힘을 다해 뇌응수의 정신을 제어 중이었다. 푸른빛으로 변한 뇌응수의 부리에 미세한 번개가 응집된 게 보였다.

뇌응수 역시 전력을 다해 새끼 여우에게 저항하고 있는 듯했다.

새끼 여우가 한 번 높게 울자 뇌응수가 몸을 움찔했다. 새끼 여우의 신식이 뇌응수의 머릿속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새끼 여우의 손에 들어온 뇌응수가 여우를 따라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비…… 빌어먹을!”

마림은 사지가 부들부들 떨려 검조차 들어 올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몸이…… 으아아!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어!”

천제현은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심적 외상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평생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흔했다. 마림은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반면 천제현은 무리하게 힘을 소모한 탓에 일말의 저항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네놈들…… 모조리…… 모조리 죽여주마!”

마림이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시야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더니 시뻘겋게 핏발 선 눈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미쳐 날뛰는 야수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그가 팔을 뻗어 땅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지옥명염(地獄冥炎)!”

불안정하게 떨리는 칼날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사방팔방 방향을 잃고 뻗어 나갔다.

조준 공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방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진령급 마력에 기댄 광역 공격으로 모든 적을 한방에 처치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때 째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하강한 뇌응수가 번개를 쏴 마림을 저만치 날려 버렸다.

마림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놓친 칼이 빙글빙글 돌며 십여 장 밖까지 날아가 꽂혔다.

콰앙!

뇌웅수의 번개 때문에 일말의 제어조차 못한 시커먼 화염의 용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위력은 강대한 탓에 대지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섬뜩한 상흔을 남겼다.

마림이 분노로 포효하며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뇌응수가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었지만 마림은 마수를 맨손으로 막아냈다. 힘에 밀린 마림의 몸 절반이 진흙땅에 처박혔다. 뇌응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날아오르려 했다.

그때 마력을 폭발시킨 마림이 무서운 완력으로 뇌응수의 몸통을 옭아매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뇌응수를 산채로 찢어발길 심산이었다.

새끼 여우가 다급해졌다.

뇌응수가 죽어 버리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새끼 여우 자체의 전투력은 강하지 않았다. 쓸 수 있는 술법도 소환과 조종뿐, 그마저도 마수에게만 통하지 마림을 상대로는 무용지물이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천제현의 유명검을 뽑아 든 공화련이 빠른 속도로 마림을 향해 돌진했다. 마림이 뇌응수를 마구 내리치는 사이 그의 등을 노린 공격이었다.

까앙!

공화련은 1장 가량을 튕겨 나가떨어졌다. 손목 관절이 나갔는지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져왔다.

‘안 되겠어! 상대가 너무 강해!’

온전한 정신이 못 됨에도 여전히 공화련이 덤빌 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새끼 여우의 눈에 천제현의 곁에 떨어져 있는 탄창이 포착됐다. 주워서 부러뜨려 보니 혈음강침이 든 탄창이었다. 강침을 모조리 끄집어내 꿀꺽 삼킨 새끼 여우가 공화련을 향해 앞발을 흔들었다.

이를 본 공화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새끼 여우의 주둥이를 통해 발사된 혈음침은 십여 개에 달했다. 빽빽이 새겨진 술법 주문 덕택에 혈음침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갔다.

제정신이 아닌 마림이 이런 공격을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호신마력조차 발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혈음침 전부가 정확히 마림에게 명중했다. 그중 두 개가 눈동자에 꽂혔다.

“으아악!”

마림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두르자 초원 한가운데 갈고리로 낸 듯한 깊은 자국 다섯 줄기가 선명히 새겨졌다.

진령급 고수의 공격, 적중했다면 즉사가 분명했을 파괴력이었지만 지금 마림의 정신으로는 공화련을 정확히 조준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공화련도 몸만 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천제현의 유명검을 감아쥔 그녀가 마림을 똑바로 응시했다.

‘기회는 한 번,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 순간 유명검의 표면이 밝게 빛났다. 옅은 청백색 화염이 검신을 에워쌌다.

공화련이 화들짝 놀랐다. 유명검이 주인도 아닌 자신에게 힘을 빌려주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유명검과 일반 불멸 혼기의 차이점이었다. 일반적인 불멸 혼기의 기령은 사고력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데 반해 유명검에 깃든 기령에게는 온전히 독립된 의식이 있었다. 공화련이 검을 집어 들었을 때도 저항 여부를 판단하는 건 유명의 몫이었다.

천제현이 중상을 입고 혼절한 상황. 주인의 목숨을 지키려면 공화련이 저 마수령을 처치해야만 했다.

유명검이 저항은커녕 스스로 마력을 발산해 공격의 위력을 높여주기로 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가진 마력을 전부 끌어낸 공화련이 앞쪽을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칼날이 청백색 궤적을 남기며 마림의 목을 내리쳤다.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견융족 절정고수 마림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전투에 자질이라고는 전무하다시피 한 공화련의 손에 죽은 것이다!

공화련 자신 역시 진령급 고수의 목을 베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해봤다.

새끼 여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목숨은 건진 것이다.

그때, 마림의 몸에서 주머니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 주머니 안에서 희미한 공간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공간장비 같았다.

그 저장용 주머니의 용량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간장비는 귀한 물건이었다.

주머니 안을 확인하기 전, 공화련은 마림의 흑색 장검부터 챙겨 천제현의 곁으로 갔다. 가슴에 귀를 대보니 느리고 약하게나마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했다.

부상 정도가 어떤지 자세히 알 길은 없었으나 낙관적인 상황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천제현을 등에 업은 공화련이 이를 악물고 왕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제는 그녀를 업어줬던 천제현이 오늘은 반대로 그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가.

하지만 공화련의 고된 여정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수십 리 떨어진 남하국 경계초소를 발견한 것이다. 천제현의 신분을 확인한 초소 대장이 마수차를 끌고 와 두 사람을 직접 왕성까지 데려다줬다.

***

왕성은 일대 혼란 상황이었다.

대학자 고천추가 운좋게도 무사히 도망쳐 천제현 일행보다 하루 먼저 최전방이 함락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고 돌아온 참이었다. 왕성에 도착했을 당시 고천추 역시 부상이 심각한 모습이었다. 이를 본 눈이 너무 많았기에 정보를 감추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고작 하루 사이에 전방으로부터 수천에 달하는 부상병들이 도망쳐왔다. 이들이 가져온 소식은 왕성 주민들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기에 충분했다.

송곳니 왕의 기습으로 전방 방어선이 이미 와해됐고, 전장을 순시하러 떠났던 국왕은 왕천룡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전해진 두 개의 비보.

왕성의 그 누구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왕성의 주민들이 가진 마지막 희망, 무안군은 현재 원정 중이었다.

무안군이 있는 창주 전장은 진작부터 교착 국면이었다. 소식을 듣는다 해도 무안군에게는 왕성을 도우러 올 겨를이 없을 것이다. 왕성 수비군 40만과 그리핀 기사 2천, 그들이 과연 대융국 군대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왕은 승하 직전 무안군 동방건을 왕위 계승자로 세웠다. 하지만 국왕 역시 남하국이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까지 몰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하루 만에 방어선을 무너뜨린 견융족 군대가 남하 왕성을 목표로 접근 중이었다. 며칠 내로 대대적인 전투가 발발할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자리도, 군부 수뇌의 자리도, 모두 비어 있었다. 나라 전체가 공황상태였다. 남하국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 기적상회의 공화련이 천제현을 데리고 돌아왔다.

공화련은 남하 왕성 전체에 이름이 난 인물이었다. 심지어 남하국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국왕의 전장 순시에 동행한 천제현과 공화련이었기에 최전방이 견융족에게 함락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두 그 두 사람도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공화련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죽지 않고 돌아오긴 했지만 공화련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본래 순백색이었을 옷은 진흙과 핏자국투성이였고, 머리는 온통 산발에 초췌한 얼굴빛은 그녀가 얼마나 쇠약해졌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절뚝거리며 걷는 모양새로 보아 다리까지 다친 듯했다.

천제현은 더 심각해 보였다. 의식이 없는 건 물론이요 생명 징후마저 미약했다.

“언니, 천제현!”

공서련과 남궁혜를 비롯, 종일 가슴을 졸이던 몇몇이 두 사람의 귀환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마중을 나왔다.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잖아!”

공서련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언니 공화련을 껴안았다.

“둘 다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란 말이야. 둘 중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나도 못 산다고!”

공화련이 동생의 등을 두드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널 못 보는 줄 알았어. 천제현이 목숨 걸고 도와준 덕분에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는데, 막상 천제현은 지금 상태가…….”

공서련의 몸이 순간 바짝 긴장했다. 피투성이가 된 천제현을 본 순간, 공서련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저렇게 만들었어? 어딜 얼마나 다쳤길래…….”

“나도 잘은 모르겠어.”

천제현은 누가 저렇게 만든 게 아니라 자기 몸을 자기가 너무 혹사시킨 탓에 저런 몰골이 된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다친 건지는 공화련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점점 더 미약해지는 생명력에서 심각성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서서 뭐 하고 있어?”

남궁혜가 얼른 달려와 천제현을 자기 어깨에 둘러멨다.

“서련아, 가서 연구소 사람들 좀 불러와! 천제현 상태 좀 봐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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