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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95화 (391/729)

# 395

제395장 뒤집어지는 전황(2)

현재 왕성에서는 이곳에서 발생한 일을 모르고 있다. 이 일을 반드시 왕성에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성이 무슨 수로 이 무시무시한 적들을 막아낸단 말인가?

천제현이 다시 한 번 권했다.

“왕성에는 경험이 풍부한 사령관이 필요합니다. 무안군 마마께서 왕성을 비운 지금, 사령관님 같은 분이 계셔야 합니다!”

“동방 가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재들이 있고, 남궁 가문 역시 그에 뒤지지 않소. 이 늙은이가 없어도 괜찮을 거요!”

동방전은 이미 결심을 한 듯했다.

“이제 그만 얘기하시오. 이 늙은이, 전방에서 50년을 지내며 생사에 집착을 버린 지 오래요. 나의 피와 살은 오래전에 남하장성과 한 몸이 됐소. 남하장성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오!”

천제현은 얼굴빛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고천추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진국군, 공화련 회장님. 노장군님의 뜻을 존중해 줍시다. 남하국에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그랬다.

동방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퇴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길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게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예와 신념, 그리고 맹세를 위해 마지막 1초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고천추는 남은 십여 명의 그리핀 기사를 집결시킨 뒤 그리핀 한 마리를 천제현과 공화련에게 주었다.

“갑시다!”

천제현과 공화련은 동방전에게 예를 올린 후 그리핀에 올라 고천추와 함께 요새를 떠났다. 한시 바삐 전장의 상황을 왕성에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성이 위험하다.

전선요새는 참혹한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남하군단의 사상자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대융국의 마낭기병이 두 번째 맹공을 퍼붓자 순식간에 성문이 무너지며 마랑대군이 물밀 듯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기진맥진한 남하국 변방군단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전선요새군은 여전히 40만이나 되었고, 수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력이 분산된 데다가 병사들 모두 지칠 대로 지쳐 마력 대부분을 소진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전투는 일방적인, 그리고 광기 어린 참살로 이어졌다.

한 명, 또 한 명의 남하국 전사들이 적의 칼 아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핏물은 강이 되어 흘렀다. 그야말로 인간 지옥이었다.

동방전은 재빨리 수만 정예병을 집결시킨 뒤 대융국 기병들에게 마지막 돌격을 가했다. 그들은 열세 속에서도 결사적으로 3천여 명에 달하는 악마랑 기병들을 무찔렀으며, 적과 아군의 사망자 수는 10대 1에 불과했다. 동방전으로서는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상대는 소국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 없는 강력한 군대 아닌가.

동방전의 곁에 있던 3만 정예병들은 모두 전사하고 몇 명의 호위병들만 피를 뒤집어 쓴 채 싸우고 있었다.

“남하국은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다!”

동방전은 수십 군데에 부상을 당했다. 네 곳에 화살이 박혔으며 복부는 창에 찔리기까지 했으나 그 상태로 연속해서 7명의 악마랑 기사들을 벤 후 시체들로 이뤄진 산 위에 섰다.

그의 백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주변에는 전부 마낭기병들이었고, 삼두마랑을 탄 송곳니 왕은 제일 앞에 서 있었다.

동방전은 다시 미친 듯이 웃더니 손에 든 장창을 던졌다. 그의 창은 마낭기병 둘의 몸을 관통했다.

탁!

거대한 손 하나가 그 창을 잡았다.

한 손에 자금당을 들고 삼두마랑을 탄 늑대족이 앞으로 나왔다. 음침하고 잔혹해 보이는 눈동자가 동방전을 노려봤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아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다니, 역시 남하국에서 손에 꼽히는 명장이로다.”

“남하국의 제일 명장은 무안군이시다. 이 늙은이는 아무 것도 아니지.”

동방전은 상대가 누구인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무안군이 두렵지 않았다면 그분을 유인하지도 않았겠지! 왕역에 무안군께서 계셨더라면 이 전투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와서 얘기해 봤자 늦었다. 너희는 졌어. 투항해라!”

송곳니 왕은 차갑게 말했다.

“남하국은 우리 대융국의 속국이 될 것이다. 지금 투항하고 내게 충성을 맹세한다고 해도 넌 여전히 남하국의 명장으로 남겠지!”

동방전은 일찌감치 마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부상이 심해 더는 싸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송곳니 왕의 말에 아랑곳 않고 허리춤에 꽂혀 있던 패검을 뽑았다. 이윽고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동방전은 폐허가 된 요새 위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백발을 휘날리며 거인처럼 북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스로 목을 베어 죽은 것이다.

그리고 전방 요새는 함락되었다.

***

악마랑 기병들은 몇 번을 찔러도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동방전에게 치를 떨고 있었다. 동방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견융의 용사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죽어가면서도 3~4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다니.

“저놈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라!”

기병 한 명이 악마랑을 시켜 동방전의 시체를 찢어놓음으로써 분풀이를 하려고 했다.

“됐다, 멈춰라!”

송곳니 왕이 냉랭한 어조로 외쳤다.

“견융족은 진정한 용사를 존중한다. 용사에게는 용사로서의 대우가 필요한 법이지. 그것이 우리의 적이라도 마찬가지다. 시신을 잘 보존해서 전쟁이 끝나거든 일족 최고의 예우로 남하국의 땅에 장사 지내 주거라.”

“네!”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송곳니 왕의 말을 어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격렬했던 전투가 끝났다. 남하국의 전선군단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붕괴되어 있었고, 수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진영을 버리고 도망갔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참패였다.

견융족은 포로를 남기지 않았다. 60만 명에 달하는 장성군단 중 약 4, 50만의 병사들이 전사했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쳤다. 견융족 대군 또한 20~30만 명의 병사를 잃었으나 대부분이 일반 병사였으며, 악마랑 기병 등 주력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추격대를 조직하여 남하군단의 탈영병들을 잡아 죽여라!”

송곳니 왕은 단 한 명의 적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나머지 병력은 전장을 수습하라. 가능한 빨리 전열을 정리하고 진공을 계속한다.”

남하국에는 지난 며칠간 쉴 새 없이 첩보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하룻밤 새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전선요새가 무너졌으니 왕성에는 더 이상 어떤 장벽도 없는 셈이었다. 무시무시한 적들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왕성을 언제든 바로 칠 수 있었다.

왕성의 20만 기병대는 창주로 갔으니 며칠 안에는 돌아오기 힘들 테고, 50만 병력과 삼대 가문 최고의 정예부대인 그리핀 기사들이 천 명 넘게 있다고는 하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견융대군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송곳니 왕은 병사 수천 명으로 구성된 추격대를 보내 적들을 추격하는 한편, 군단을 정비했다. 이번 전투로 너무 많은 힘을 쓴 관계로 당장은 왕성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충분했다.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남하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안군과 20만 기병이 없을 테니 기습도 염려할 필요 없었다.

짧으면 5일, 길면 10일 안에 왕성에 진군을 시작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무안군과 창주의 40만 기병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별 방법이 없으리라.

“형님!”

마림이 왕천룡과 함께 폐허가 된 전장으로 뛰어 들어와 송곳니 왕의 앞에 쓰러지듯 꿇어앉았다. 그의 갑옷은 여기저기 파괴되어 있었으며 부상도 심각해 보였다.

“마림, 넌 나를 실망시켰다!”

송곳니 왕은 노기등등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부에서 요새를 함락시키라 했는데 넌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지! 너희의 실패로 인해 최소 10만 명의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악마랑 기병들도 3천이 죽었어!”

마림은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죽음에 이른 남하왕이 저와 동귀어진하려고 했습니다. 요행히 목숨은 구했으나 큰 부상을 당해 급히 운기조식을 하느라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송곳니 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유 따윈 듣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건 결과야. 임무에 실패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그 말을 들은 마림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검은색 장도를 꺼내 자신의 왼팔을 내리치려고 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왕천룡은 대경실색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팔을 자르는 벌을 받는단 말인가?’

챙!

그때 송곳니 왕의 철추가 마림의 검을 막았다.

송곳니 왕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너는 남하왕을 죽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번 실수를 기억해 두거라.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네 왼팔을 쓸 곳이 있을 것이다. 팔은 전쟁이 끝난 후에 잘라도 늦지 않다!”

“네!”

“천제현은? 어째서 그놈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 거요?”

왕천룡이 말했다.

“그놈은 혼자 100만 병사도 상대할 놈이오. 이대로 보낸다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오!”

송곳니 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슨 말이지?”

마림이 말을 덧붙였다.

“천제현이라는 인간 소년 이야기입니다. 크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비범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네게 잘못을 속죄할 기회를 주겠다.”

말을 마친 송곳니 왕이 휘파람을 불자 거대하고 푸른 새 한 마리가 상공에 나타났다.

“뇌응수다. 이 마수의 속도는 인간들이 모는 그리핀의 2배에 달하지. 이 놈을 타고 쫓아가서 그놈을 잡아오너라. 절대로 살려 보내선 안 된다.”

“네!”

마림은 왕천룡과 주변 사람들에게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같이 가자!”

마림은 뇌응수에, 다른 사람들은 독응수에 올라 전선요새로 향했다. 천제현 일행을 추격하는 게 목적이었다.

뇌응수는 비행속도가 몹시 빠른 데다, 견융족은 마수를 부리는데 능숙하여 아주 쉽게 적들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적을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마림은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적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도 이미 추격을 눈치챘는지 뿔뿔이 흩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기운이 분산되었군. 우리도 흩어지자!”

마림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천제현을 잡으러 갈 테니 너희는 나머지 놈들을 쫓아라.”

“알겠습니다!”

마림 일행은 몇 무리로 나뉘어 추격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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