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
제393장 반란 진압(2)
갑자기 들이닥친 혈응수의 공격에 전룡군단 기사 수십 명은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새에 목숨을 잃었다.
놀람과 분노로 얼굴이 시뻘개진 왕도가 외쳤다.
“혈응영?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지룡군단은 왕씨 가문의 가장 중요한 부대로, 총 병력이 2천여 명에 달했다. 방금 전의 전투로 이미 큰 피해를 입었는데, 갑자기 혈응영이 나타나 순식간에 수십 명의 기사들을 베었으니 그가 분노하지 않을 리 없었다.
“혈응영 따위가 뭐라고! 왕씨 가문의 지룡기사들이 네놈들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그러나 왕도의 욕지거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가장 앞에 있던 노장군이 거대한 검을 들고 그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동방전?”
왕도는 황급히 창을 들어 방어 태세를 갖추려고 했다. 그러나.
“죽어라!”
동방전의 일검에 창이 두 동강 났다.
동방전은 수십 년간 전장을 누비며 무수히 많은 적을 벤 백전노장이었다. 그 적들 중에는 진령급의 고수도 있었다. 남하 8후보다도 뛰어난 무공을 지닌 그는 혼성 9성에 불과한 왕도가 상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동방전을 알아본 왕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소장, 무능하여 저들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사령관님, 전방 요새를 지켜 주십시오. 우리 남하국과 견융족은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땅 한 조각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강처럼 흐르는 핏물 위로 쓰러졌다.
마지막 힘으로 힘겹게 버티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것이다.
부릅뜬 동방전의 두 눈에 노기가 서렸다. 군영에 이 정직하고 충의 넘치는 무장이 없었더라면 전룡요새는 진작에 함락됐으리라.
전룡요새가 함락되면 전선요새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었다.
“편히 눈을 감으시게!”
동방전은 망토를 끌어내려 왕렬의 시신에 덮어주며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내 맹세하겠네. 전방의 장수들과 생사를 함께할 것이며, 전선 방어선과 운명을 같이하겠네!”
말을 마친 그는 넝마가 된 왕도의 시신을 걷어차 허공에 띄운 뒤, 팔을 휘둘러 왕렬의 장창을 던졌다.
그 창은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가 과녁에 꽂히는 화살처럼 흉갑을 뚫고 왕도의 시체에 꽂혔다. 왕도의 시체는 창에 관통된 채 그대로 벽에 가서 꽂혔다.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한 시체가 갈기갈기 찢기며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것이 역도의 결말이다!”
동방전이 땅에 꽂은 대검을 뽑아 마력을 주입하자 검광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 예리하고 날카로운 기운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 100세가 넘은 백발의 노장군이 성난 사자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남하국과 전 인류를 위해 역도를 베고 견융을 소탕하겠다. 이 숨이 붙어 있는 한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역도를 베고 견융을 소탕하자!”
“역도를 베고 견융을 소탕하자!”
수십 명의 왕궁 그리핀 기사와 500명에 달하는 혈응영 고수들, 그리고 전룡요새의 수만 잔병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노장군의 기세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전선 방어선과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그 모습을 본 천제현과 공화련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가씨, 우리도 가요.”
“넌 부상이 너무 심해. 싸우면 안 돼!”
공화련은 천제현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천제현이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기절했으리라.
천제현이 사용한 그 힘은 엄청난 만큼 부작용도 컸다. 이 상황에서 다시 싸우다 부상을 입는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얼음장처럼 투명한 검을 뽑으며 말했다.
“아가씨,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전 이제 남하국의 제후라고요. 남하왕이 자기 마음대로 봉한 직함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된 거 저도 할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공화련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천제현은 이제 진국군(鎭國君)이 되었는데.
진국, 어지러운 나라를 평정한다는 의미다. 무안군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는 이름 아닌가.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천제현이 이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싶어 할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의무를 등지고 도망가는 겁쟁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동방전과 고천추 같은 백 세 노인들까지 앞뒤 안 가리고 전투에 임하는 상황에서 그가 몸을 사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 같이 가!”
“하하, 진작 그랬어야죠. 통쾌하게 한 번 싸워 보자고요!”
동방전의 일격에 목숨을 잃은 왕도를 본 지룡기병들은 신속히 후퇴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요새의 병력과 겨루는 게 아니라 요새에 길을 터 견융대군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동방전이 쳐들어 왔다는 건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동방전이 역적들을 놓아줄 리 없었다. 이제 반군들의 유일한 살길은 내부에서 전룡요새를 함락시키는 것뿐이었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놈들은 앞뒤 안 가리고 강행돌파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놈들에게 틈을 내주지 마라!”
“포위공격이다!”
전투경험이 풍부한 동방전은 엉망이 된 전룡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수만 명의 병력을 정비한 후, 일부는 성루로 보내 수비를 맡게 하고 일부는 자신이 이끌고 반란을 평정하러 갔다.
왕씨 가문의 전룡기사단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주둔병들이 목숨을 내놓고 요새 입구를 지키는 통에 당장 승부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 동방전까지 나타나 뒤를 치고 있지 않은가.
“저 빌어먹을 동방 늙은이가!”
“전룡군단이 겁 먹을 거라고 생각했나? 싸우자!”
부장들이 명령을 내리자 지룡기병들은 말머리를 돌려 반격했다. 정교한 검은 갑옷을 입고 손에 1장 길이의 특제 장창을 든 기사들이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투실투실 살이 오른 지룡들이 흉포한 본성을 드러내며 맹렬한 힘을 발산했고, 지룡 특제 갑옷 위에 박힌 가시와 예리한 칼날들이 사신의 낫이 되어 전장을 휘저었다.
원래 기병은 전투에서 보병보다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한다.
그러니 중갑옷으로 무장한 지룡기병은 어떻겠는가?
지룡기병들은 대부분이 혼성 1~2성의 실력을 갖고 있었으며, 혼성 3성의 실력자도 적지 않았다. 비록 분대장들이 전부 현혼급 고수이기는 하지만 전체 전투력은 동방 가문의 혈응영에 뒤지지 않았으며, 왕궁 그리핀 기사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지룡들은 입으로 이글거리는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놈들은 고온의 화염을 뿜을 수 있는데 진짜 용이 내뿜는 화염에는 비할 수 없지만, 강철조차 순식간에 녹일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한다. 혼성 술사조차도 그들의 화염 앞에서 살아남을 거라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전장은 넓지 않으니 지룡들이 화염을 내뿜을 경우 동방전 측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동방전은 즉시 소리쳤다.
“혈응영을 엄호해라!”
저공비행하는 혈응기사들의 민첩한 움직임은 육중하고 둔한 지룡기병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이점이었다. 혈응기사들은 거구의 지룡들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그 위에 탄 기사들에게 기습을 가하는 전략을 펼쳤다.
혈응이 한 번 전장을 훑고 지나가자 순식간에 지룡기사들 여럿이 나가떨어졌고, 조종하는 기사를 잃은 지룡들은 즉시 혼란에 빠졌다.
동방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지룡들을 가차 없이 베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룡기병 백 명이 죽었다. 왕씨 가문의 부장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천제현과 공화련은 육탄전을 벌일 기력이 없어 그리핀을 탄 채 혈응영과 함께 공중 공격에 가담했다. 공화련은 마력기관총을 들고 30장 밖에서 미친 듯이 총알을 쏘아댔다.
일반적으로 마력기관총은 발사속도가 빠른 대신 위력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공화련이 들고 있는 기관총은 천제현이 특별히 탄약 하나하나를 강화시켜 만든 것으로, 마력권총보다도 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혼성 4성 이하의 술사라면 총알 한 방에 호신마력이 관통되고, 혼성 4성의 술사 역시 두 발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공화련이 총을 한 번 쏠 때마다 최소 4~5명의 지룡기사들이 쓰러졌고, 그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천제현이 그리핀을 조종해 예리한 발톱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십여 명의 기사들을 처리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질 게 분명해!”
왕씨 가문의 부장들은 현재 유일한 해결법이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그들은 동방전이 공격을 하든 말든 미친 듯이 요새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게 놔둘 동방전이 아니었다.
지룡기병 진형으로 돌격해 들어간 이 백발노장은 단숨에 20명의 적을 베고 마지막에는 혼성 9성의 부장까지 죽였다. 그 역시 7, 8군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벼랑 끝에 몰린 야수처럼 싸울수록 용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적들은 그 광기에 기가 죽었다.
“저 늙은이가 우리와 동귀어진하겠다는 건가?”
자신의 몸이야 어찌되든 한 번이라도 더 적을 베겠다는 기세로 공격하는 동방전의 광기 앞에서 지룡기사단은 끝 모를 공포를 느꼈다. 그들의 기세와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혈응영의 도움 하에 모든 지룡기사단의 숙청이 끝났다.
하지만 동방전은 쉬지 않고 잠입해 들어온 견융족 고수들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고전 끝에 전룡요새를 지켜냈지만, 내란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몹시 위태로운 상태였다. 전쟁이 시작된 지 두 시간 만에 요새 안팎은 핏물이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사상자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요새를 지켜라! 견융족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동방전은 온몸에 십여 군데의 상처가 난 채로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듬성듬성 이가 빠진 대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듯한 모습이었다.
동방 가문의 핵심 전력인 혈응영의 장수들도 500명 중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방전은 죽어 나간 장수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전선요새만 지켜낸다면 그 정도 대가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전선요새만 지키면 남하국은 반격할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지금 상태로라면 승리도 요원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견융족 진영에서 퇴각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견융대군은 십만 구가 넘는 동료들의 시체를 뒤로 하고 썰물처럼 퇴각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넘게 악전고투를 치르던 남하국의 장수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포효했다.
“결국 공격을 포기하고 퇴각하는구나!”
“견융군단이 퇴각한다!”
“견융군단이 드디어 도망가고 있어!”
“남하국의 승리다! 남하국 만세! 사령관님 만세!”
견융군은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퇴각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진 후 전군이 허겁지겁 철수하느라 깃발이 꺾인 채 갑옷과 투구도 내버리고 도망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대로라면 두 번째 공격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바로 이때, 동방전이 미리 배치해 둔 기병부대가 출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