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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91화 (387/729)

# 391

제391장 남하왕의 죽음

“뻔뻔한 놈!”

마림의 눈에 분노의 빛이 스쳤다.

“항복하지 않을 거라면 공격이나 할 것이지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먼저 네 주변 사람들부터 죽여주겠다. 그때도 지금처럼 허세를 부릴 수 있나 보자!”

마림의 요도에 검은 화염이 맴돌자 공화련은 공포스러운 살기가 주변을 뒤덮는 걸 느꼈다.

‘큰일이다. 저놈이 나를 죽여 천제현의 이성을 잃게 만들려고 하는구나!’

마림이 공화련에게 바로 손을 쓴다면 그녀로서는 피할 방도가 없었다.

“글쎄, 너희가 그럴 주제나 될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제현의 몸에서 공포스러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기운은 고대의 마신처럼 순식간에 대지를 뒤덮었다.

갑작스러운 기운에 마림과 왕천룡, 다른 견융 고수들은 물론이요, 남하왕까지 그 엄청난 힘에 입을 쩍 벌렸다.

천제현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의 거만하고 냉소적인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그건 만인지상의 제왕이자 중생들을 내려다보는 신의 얼굴이었다.

‘구안마신정령이여! 깨어나라!’

천제현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강력한 위압감이 요새를 뒤덮자 성을 공격하던 견융족 전체가 그 기운을 느꼈다. 탈것들은 겁을 먹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힘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마림은 이렇게 약한 인간의 몸에 신령과도 같이 무서운 힘이 깃들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천제현에게서 나온 그 위압감을 느끼는 순간 모든 공격을 멈추고 방어 상태에 돌입했다.

‘환술인가? 아니, 아니다. 이 힘은 살아 움직이는 실체다!’

“허상일 뿐이다!”

“죽여라!”

명령을 받은 다섯 견융 고수들은 일제히 정령을 소환해 공격을 시작했다.

혼성 9성 정점의 고수 다섯 명을 앞에 둔 천제현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눈동자를 자세히 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색깔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눈동자가 왼쪽은 은색, 오른쪽은 흰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일곱 개의 동공이 꽃송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네까짓 것들이 감히 날 죽이겠다고?”

천제현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천신과 같은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견융 고수 다섯 명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정신파동이었다. 너무나 엄청난 그 힘에 정령들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응축됐던 힘이 일거에 흩어져 버렸다.

“영혼참!”

보라색 동공에서 빛이 번쩍이자 흐릿한 형체를 띤 구안마신(九眼魔神)이 보라색 낫을 들어 올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다섯 견융 고수의 몸을 베었다.

칼날이 스친 후에도 그들의 몸에는 외상 하나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적들은 채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이 하나 둘씩 땅에 쓰러졌다.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죽은 것이다.

왕천룡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눈 깜빡할 새에 혼성 9성 정점의 고수 다섯을 죽였다고? 그건 진령 고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저게 뭐란 말이냐!’

공격을 마친 천제현의 온몸에 선혈이 물들었다. 그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엄청난 힘이 안에서부터 그의 육체를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마림이 외쳤다.

“힘은 강할지 몰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구나! 지금 저놈의 몸은 무너지고 있다. 이미 버틸 수 없는 상태야. 공격해라!”

그러나 왕천룡은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몸이 무너지고 있다고 해도 그 거대한 힘은 여전히 천제현의 안에 있었다. 신과 같이 거부할 수 없는 저 위압감 앞에서는 그 아무리 용감한 용사라도 물러서리라. 마림조차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쓰레기 같은 놈, 너 따위와 놀아 줄 시간 따위 없다!”

천제현의 하얀 눈동자에서 빛이 번쩍이자 엄청난 힘이 주위로 뻗어나가며 남하왕과 고천추, 공화련의 몸을 감쌌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순간, 네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힘도 사라졌다.

마림과 왕천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이동인가?”

왕천룡은 갑자기 사라진 천제현에게 공포의 전율을 느꼈다.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니!”

몸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사라지고서야 마림은 서서히 이성을 회복했다.

‘저런 힘을 가지고도 도망을 갔다고?’

마림은 이내 천제현이 한계에 달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그 무시무시한 힘을 버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힘은 너무나 강력했으니까. 진령급 고수조차도 두려워할 정도로.

하지만 천제현의 약한 마력으로 그 엄청난 힘을 조종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몸은 빠르게 고갈되리라. 그리고 그 부작용은 빠른 시일 내에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폐인이 될 게 분명했다.

‘그놈의 육신에 그렇게 강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니! 쫓자,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마림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가까운 곳에 있다. 멀지 않아. 쫓아라!”

천제현 일행의 기운은 가까운 곳에서 느껴졌다. 공간이동을 시도했다면 왜 더 멀리 가지 않았단 말인가. 답은 하나뿐이었다. 힘이 부족했다는 것.

그의 생각처럼 현재 천제현과 남하왕, 고천추, 공화련은 백여 장 떨어진 복도에 있었다.

새끼 여우는 화가 난 듯 몇 번 끽끽거렸다. 영혼나무인형을 갖고 오지 못한 것이다. 용석수로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혼나무인형을 포기한 셈이었다.

“천제현!”

천제현을 부축한 공화련은 자신의 손바닥을 물들인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천제현의 몸에는 외상이 없었다. 그 피는 거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혈관들이 터지면서 생긴 것이었다.

“전…… 안 죽어요.”

극도로 허약해진 천제현은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혈제 몇 알로 상태를 안정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일행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새끼 여우는 나무인형을 잃어버려 잔뜩 화가 난 상태였고, 고천추와 남하왕은 부상을 당했다. 특히 남하왕의 상태는 매우 심각해 보였다. 그는 곧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고천추는 황급히 남하왕을 부축했다.

“폐하!”

“제가 보기에…….”

공화련의 팔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일으킨 천제현은 신식으로 남하왕의 상태를 관찰한 후 얼굴빛을 흐렸다. 그는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일이 귀찮게 됐군요. 극독에 중독되셨습니다. 독 기운이 이미 오장육부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천추가 물었다.

“해독법이 있겠습니까?”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법이야…… 당연히 있지요! 문제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갖고 있는 재료도, 해독제를 조제할 시간도 없지 않습니까.”

“천제현, 사실대로 고하라!”

남하왕이 복잡한 시선으로 천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짐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

천제현은 잠깐 망설였다. 현재 남하왕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바로 해독을 하지 않는다면 진령의 마력으로 지탱을 할지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길어야…… 한두 시간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 돌처럼 얼어붙었다.

그때.

콰광!

봉쇄된 통로에 큰 구멍이 생겼다.

‘큰일이다. 이렇게 빨리 뒤쫓아오다니!’

“짐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 같군. 허나 남하국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남하왕은 주먹을 쥐며 말했다.

“짐이 시간을 벌겠다. 너희는 동방전 장군을 찾아가 전룡군의 반역에 대비하도록 하라. 외부의 견융대군은 천제현의 기운에 놀라 동요하고 있으니 바로 공격하진 못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선봉대가 주둔하고 있는 요새만 점령당하지 않는다면 남하국은 무사할 것이다. 반면, 요새가 함락되면 모두 끝장이다.

고천추가 노기 어린 말투로 외쳤다.

“폐하,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남하왕은 고천추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이 나라를 생각하시오!”

고천추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힘으로 마림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천제현 또한 몹시 쇠약해진 상태니 지금 시간을 끌 수 있는 건 남하왕뿐이었다.

“천제현, 짐은 그대의 재능을 몹시 질투했다. 그래서 그대를 편파적으로 대했지. 오늘에서야 그대의 진정한 힘을 보고 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노라. 그대의 실력이라면 훗날 반드시 대륙에 널리 이름을 떨칠 것이며, 뭇 제왕들도 그대에게 머리를 숙일 것이다. 소국에 불과한 남하국 따위는 그대에게 아무 것도 아니지. 그대는 죽어선 안 된다. 그대가 죽는다면 이 세상의 크나큰 손실이다!”

남하왕은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죽을 때가 가까워오니 말도 부드러워졌다.

“이 영패를 받거라.”

남하왕은 자신의 영패를 천제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국사, 그대가 증인이 되어 짐의 마지막 유지를 전해 주시오.”

고천추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외쳤다.

“폐하!”

남하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짐이 무능하여 선조들을 뵐 낯이 없도다. 이제 남하국이 위기에 빠졌으니 짐의 육신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국가에는 하루라도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되는 법! 동방호연은 그릇이 작아 조국을 구해낼 능력이 안 된다. 그러니 무안군, 동방건에게 남하왕 자리에 앉아 견융족에 대항하라 명하는 바이다! 또한, 천제현을 진국군(鎭國君)에 봉하고 3군의 우두머리로 삼겠노라. 동방 가문의 자손 중 감히 이 뜻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천벌을 받으리라!”

천제현이 공수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 남하왕이 그의 손을 잡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동방 가문이 능력이 없어 대업을 짊어질 자격이 없다 생각되거든 그대는 왕을 폐하고 스스로 남하왕이 되도록 하라!”

그 말의 무게는 엄청났다.

“국사, 잘 들으셨소?”

고천추는 꿇어 엎드려 고두하며 말했다.

“소신, 왕명을 받들겠나이다!”

천제현과 공화련도 남하왕에게 예를 올렸다. 남하왕의 성정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감탄스럽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제현은 작위에 오를 생각이 꿈에도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남하왕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때, 날카로운 살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남하왕은 주저 않고 맹렬하게 동방 가문의 비술을 시전했다. 생명력을 불태워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키는 무공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나머지 셋을 잡아 밖으로 던졌다. 남하왕은 그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소리쳤다.

“남하의 강산을 부탁하네! 반드시 짐의 복수를 해주게!”

왕은 죽음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법이다. 그런 자가 세 사람 앞에 무릎을 꿇다니, 이보다 비장하고 애통한 일이 또 있을까.

통로가 닫히는 순간, 뒤쪽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마림 일행이 달려들었다. 남하왕은 천천히 몸을 돌려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넌 도망가지 않는 건가?”

“도망이라고? 짐은 남하국의 군왕이다. 죽어도 명예롭게 죽을 것이야!”

몇 초간 침묵하던 마림은 옆에 있던 왕천룡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러나 끼어들지 마라. 남하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겠다!”

그러자 남하왕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와라!”

두 사람이 맹렬하게 부딪히자 진령 경지의 광포한 힘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윽고 10여 분 동안 이어진 전투가 끝났고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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