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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89화 (385/729)

# 389

제389장 배신

남하군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내부 통로에서 전체 군대를 이동시키기 때문에, 밖에 있는 견융족은 절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하필 이때, 수많은 화살 공격을 받아 상처가 가득한 거조가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하강했다. 이게 하필 성벽 위쪽을 박는 바람에, 딱딱한 발로 철망에 틈새를 벌려 놓았다. 결국에는 화살비를 맞고 죽으면서도 돌파구를 하나 열어놓은 것이다.

“우어어어!”

수백 명의 견융 용사들이 날개를 타고 철성 통로 내부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큰일 났다. 견융이 들어왔다!”

“죽여라, 저들을 막아라, 어서 막아!”

남하국 사병 수천 명이 통로에 들어가 좌우 양쪽에서 협공에 나섰다. 하지만 견융 쪽 결사대 병사들은 모두 정예 군사로, 죽을 걸 알면서도 상상 이상의 매서운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남하국 군사들 쪽에 갑절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뿌우우우우우!

견웅 군단에서 진격의 호각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칠흑같이 검은 대규모 군단이 철성 요새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성을 삼킬 듯한 검은 물결은 성을 완전히 조각내려는 것 같았다. 견융의 공수부대가 이미 엄청난 화력을 머금은 이상, 지금이 바로 견융 군단이 진격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정말 무서운 기세였다.

‘천지가 흔들리고, 요새도 함께 떨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싸우고 죽이는 소리, 이것이 바로 나라 간에 벌어지는 전쟁인가?’

공화련이 어디서 이런 참혹한 전쟁을 보았겠는가. 그녀는 너무 겁이 나서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 개인의 힘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천제현이 그녀를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이길 거예요!”

“제길! 빌어먹을 견융족!”

남하왕은 견융족의 공수부대가 요새 곳곳을 침투하고 있음을 발견하자 바로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곁에 있는 그리핀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서 뭘 하는 게냐! 견융족의 공수부대를 막지 않고!”

그리핀 기사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는…….”

남하왕은 무서운 기세로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보호가 필요하단 말이냐? 남하 장수들이 모두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게 보이지 않는 게야? 영예로운 왕궁기사들이 외면하고 있을 것이냐?”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리핀 기사단의 대장이 손짓했다.

“가자, 견융을 해치우러!”

그리핀에 올라탄 그리핀 기사단 몇 백 명이 철성 요새 통로로부터 튀어 나갔다. 왕궁기사는 모두 현혼 단계 강자로 수는 많지 않지만 강력한 실력자들이다. 이들이 전투에 투입된 이상, 남하국 군단이 느끼는 압박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남하왕은 천제현, 공화련, 고천추 세 사람에게로 갔다.

“두 학사와 공화련 소저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오.”

고천추가 얼굴을 찡그린 채 답했다.

“폐하, 다들 조금도 물러섬 없이 싸우러 나섰는데, 소인이 어찌 두려움으로 뒤로 물러나겠습니까?”

“명령이오!”

남하왕이 위엄 있게 말했다.

“학자들에게는 학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고, 학자의 피를 전쟁터에서 흘리게 할 수는 없소. 어서 가시오!”

남하왕은 이미 결정을 내린 후였다.

그는 직접 전투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대규모 전쟁에 진령 강자 하나가 나서봤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하왕 실력 정도면 견융족에게 위협은 될 수 있다. 국왕이 직접 전투에 나섰으니 군사들의 사기도 올라갈 터였다.

고천추는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때, 신식에서 뭔가를 감지한 천제현이 바로 소리를 질렀다.

“창밖을 조심하세요!”

쿵!

강철로 만들어진 창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깨지고, 화살이 비처럼 안쪽으로 쏟아졌다. 그 뒤로 수십 개의 민첩한 형상들이 따라 들어왔다.

견융족이 기습 공격을 가하는 순간, 천제현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 검을 빼들고 날아오는 화살과 표창들을 쳐냈다. 그리고 호리병에서 검을 하나 빼내 공화련에게 넘겼다.

“상황에 따라 스스로를 보호하셔야 합니다.”

검을 받아든 공화련은 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때, 남하왕은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짐을 죽이려 들어?”

곧 남하왕에게서 거대한 마력 한 줄기가 솟구쳐 나오더니 거대 방패로 변했다. 쏟아지던 무기들은 방패에 닿자마자 부서졌다. 정령 소환 시 발생하는 강력한 위압에 견융족 정예 기병들은 혼비백산해 꽁지를 내뺐다.

남하왕이 그렇게 자신만만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국과 대국을 막론하고 진령 강자는 최고의 강자다. 일반 병사 정도는 위협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그리핀 기사단이 곁을 지키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남하왕은 자신의 힘만으로 충분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몇십 개의 민첩한 인영이 탄궁이 쏘아지듯 깨진 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은 다 정령을 가진 혼성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남하왕의 기운은 이들 마저 떨게 만들었다.

이 견융족 무리는 이토록 엄청난 강자를 만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해 놀라고 말았다.

그렇지만 전쟁터에서 두려움과 주저함은 치명적이다. 적 앞에서는 용맹한 자가 승리하는 법,

이들은 전혀 망설임 없이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무기를 빼들고 최강자인 남하왕을 포위해 공격에 나섰다.

그때.

“쥐새끼 같은 놈들!”

고천추가 견융족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강력한 장력 공격은 견융족 정예 군사들의 갑옷을 뚫고 뼈까지 부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대로 철창 밖으로 날아가 떨어진 견융족 정예 군사들의 살이 땅에 나뒹굴었다.

그제야 견융족 무리는 남하왕 외에도 만만치 않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남하왕을 포위한 무리 중 일부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빠르게 천제현 일행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천제현 일행은 차분히 대응했다.

천제현은 날아오는 칼끝으로 공격을 막아내었고, 그 사이에 공화련은 검을 들어 과감하게 견융족의 명치를 찔렀다. 검이 뚫고 들어가는 순간, 흉갑과 내장이 모두 터져 피가 솟구쳐 올랐다. 선혈을 그대로 뒤집어쓴 공화련은 구역질이 났다.

“큰아가씨, 멋진데요!”

천제현은 평소 온화하고 단정한 공화련이 이렇게 과감하고 인정사정없이 검을 휘둘러 적을 처치할 줄 몰랐다.

공화련이 전쟁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천서 정령은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강력한 전사로는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얗게 질린 공화련은 흰옷을 물들인 피를 닦아냈다. 하지만 닦아낼수록 더 번져나가자 그냥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적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마당에 나하고 농담할 때야? 어서 손을 써야지!”

천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우리 차례까지 오지도 않을 거예요.”

공화련은 천제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남하왕의 왕포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에 남하왕의 정령이 순간 수십 개의 창으로 변해 적을 향해 쏘아졌다. 견융족 정예 군사 눈에는 그저 한줄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 강력한 힘은 그대로 견융족의 몸을 파괴시켰다.

공화련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몇십 명이나 되는 혼성 고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남하왕의 힘인가?’

“진령 강자인가? 후퇴다!”

살아남은 몇몇 견융 정예 병사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대부분 혼성 2~3성은 되는 허혼 술사들이다. 우두머리라 해봤자 겨우 현혼 술사에 불과했다. 소국과의 전쟁에 나서기에는 괜찮은 실력이나, 진령 강자와 감히 맞붙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남은 자들이 몇 걸음 떼지도 못했을 때였다.

복도 방향에서 누군가가 기다란 창을 들고 번개처럼 튀어나와 공격을 가했다. 견융족 정예 군사들은 방향을 돌릴 새도 없이 그대로 그 긴 창에 몸이 찢겨 죽임을 당했다!

“소인의 호위가 늦었습니다, 폐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왕천룡이 들고 있는 긴 창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고, 갑옷은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적군을 죽이며 달려온 것이다. 왕천룡 뒤에는 남하국 고위급 장군 네다섯 명이 서 있었다. 중장갑을 한 이들의 갑옷과 투구에는 모두 전룡 군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남하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장군, 마침 잘 왔소. 짐을 따라 전쟁에 나서 함께 견융을 무찌릅시다!”

“안 될 말씀입니다!”

왕천룡이 무릎을 꿇으며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 지금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강자들이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남하국을 생각하셔서 우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지요!”

남하왕은 불만을 가득 드러냈다.

“자네…….”

아직 입 밖으로 말이 다 나오지도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왕천룡이 창을 움켜쥐었다. 눈빛 깊숙한 곳에서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스치듯 지나가는 그 순간을 천제현이 민감하게 포착했다.

천제현은 순간 안색이 변해 바로 큰 소리로 외쳤다.

“기습입니다!”

찰나에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왕천룡이 갑자기 그 동안 쌓아왔던 온 힘을 다해 오른발로 강철 바닥을 구르더니, 오른손에 든 긴 창으로 날카로운 빛을 쏘아냈다. 창끝은 남하왕의 머리로 향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왕천룡의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은 일격이었다. 진령 강자의 방어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전광석화 같은 순간이었다.

천제현의 경고가 있었지만, 남하왕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 충분한 힘을 모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창을 움켜쥘 수는 있었다.

어쨌든 남하왕은 강한 실력자다. 그런 남하왕이 창을 움켜쥐자 왕천룡이 다시 힘을 모아 창을 밀어도 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왕천룡의 예상대로였다.

왕이 창을 잡아낸 순간, 왕천룡은 과감하게 손에 든 긴 창을 버리고 몸을 구부려 표범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오른쪽 팔 보호대에서 검푸른 비수를 꺼내 남하왕을 그대로 찔러 버렸다.

남하왕은 가슴 쪽에 고통을 느꼈다. 비수가 몸을 뚫고 들어오자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분노한 남하왕이 왼손으로 그를 쳐내자, 그 강력한 힘에 왕천룡은 그대로 벽 쪽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벽 전체가 움푹하게 패일 정도였다.

고천추가 소리쳤다.

“왕천룡, 이 역적 놈이!”

남하왕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올라왔다. 가슴에서 뽑아낸 검푸른 비수에는 맹독이 묻어 있었다. 몸 안으로 독이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중요한 순간에 몸을 비튼 덕분에 칼날이 심장 급소를 빗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 기습 한방에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남하왕은 검은 피를 토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네가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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