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
제387장 견융족의 침공
새끼 여우는 배를 살살 만져서 단약병을 뱉어냈다. 병 안은 모두 성단으로 가득했다. 새끼 여우는 햇볕을 쬐며 나른한 표정으로 구하기 힘든 귀한 성단을 사탕이라도 되는 마냥 하나씩 씹어 삼켰다. 새끼 여우가 누리는 작은 사치였다.
만약 지금 이 모습을 천제현에게 들켰다가는 갖고 있는 것들을 당장 다 뺏기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는가.
새끼 여우는 성단 한 병을 다 먹고도 겨우 요기나 간신히 채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더 이상 먹지 않고 여기서 멈출 생각이었다. 주인이 꽤 오랫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지금이야 쌓아둔 식량이 많지만, 나중에 배를 곯을 상황을 대비해 아껴둬야 했다.
새끼 여우는 뭔가를 떠올린 듯 동그란 물건 하나를 토해냈다. 두 발로 잡아 자세히 살펴보는데, 아무리 봐도 극상품의 양지백옥 구술인 듯 했다. 매끄럽고 반들반들 한 그 안에서 신비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새끼 여우가 옥구슬을 이리 저리 돌려보고 있을 때였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생긴 엄청난 위압은 일반 생명체였다면 정신이 산산조각 날 정도였다.
그것은 고대 신의 눈동자였다.
새끼 여우가 중주 시련탑에서 부서질 위험도 감수하고 배에 밀어 넣은 물건이었다. 최근 몇 달간 새끼 여우가 흡수한 힘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이 구술을 제련하는 데 쓰였다.
이 눈동자는 처음에는 새끼 여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크기였는데, 지금은 새끼 여우의 삼분의 일 정도, 사람 눈동자의 약 2배 크기가 되었다.
새끼 여우는 이 눈동자 때문에 그 많은 힘을 소진했다. 만약 그 능력을 자신의 성장에다가 쏟았다면, 벌써 주인을 순식간에 해치울 만한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 물건이 쓸 만해야 할 텐데!
새끼 여우가 눈알을 높이 들고 훅 입김을 불자, 눈동자는 마치 고대 마술에라도 걸린 듯이 순식간에 몇 십 장은 되는 높이로 쏘아 올려졌다.
새끼 여우는 눈을 감고 신식과 눈동자를 연결시켰다. 흐트러져 있던 고대 신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그 풍모를 회복하고, 동공의 초점을 모았다.
새끼 여우의 신식이 눈동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러자 초음파 나팔을 거치면 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철성 요새의 전체적인 상황이 몇만 배 커진 화면으로 새끼 여우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신의 시각’으로 ‘삼차원 시각’이라고도 불린다. 다시 말해 신식으로 관찰하는 것이라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제 철성 요새의 복잡한 전체 구조가 새끼 여우의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모든 밀실과 창고, 병사 등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요새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밀실에 있는 비밀무기, 창고에 쌓인 맛난 음식들, 모든 병사와 비밀 보초병의 배치, 저 구석에 있는 거미까지도 새끼 여우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새끼 여우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 눈동자는 과연 쓸모 있는 물건이군. 이제 이것만 있으면 먹을 걸 못 찾을 일은 없겠어.
새끼 여우는 이제 신의 눈동자의 거리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눈동자를 북방에 조준한 후 신식을 뿜어내자 순식간에 수백 리의 거리를 넘어 대초원의 한 지점에 도달했다.
새끼 여우는 신의 눈동자의 특징을 발견했다. 이 눈동자는 탐조등 같아서 몇백, 몇천 리까지 갈 수 있지만, 시야 반경은 빛을 비추는 곳으로 한정된다. 다시 말해서 빛을 비추는 범위 외에는 모두 시야의 사각지대라는 뜻이다.
이동해가며 비춰서 그 시야 범위를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또 멀리 이동할수록 볼 수 있는 시야반경은 좁아지고 화면도 모호해졌다.
몇백 리 밖의 초원을 보고 있는 지금, 시야 반경이나 선명도 모두 방금 철성 요새처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신식 강도와 상관있는 듯 보였다.
새끼 여우의 신식은 아직 약했다. 만약 신식 강도만 충분히 끌어올린다면, 만 리 밖에 있는 사물이라 해도 새끼 여우가 충분히 자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쓸모 있는 물건이군! 아주 좋아!
새끼 여우는 신의 눈동자 효과에 아주 만족해하며 시야를 옮겨 초원을 구경했다. 대초원을 돌아다니는 새와 금수들을 모두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새끼 여우는 잠깐 노는 사이에 아주 피곤해졌다. 아마도 신식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이리라. 이제 신의 눈동자를 집어넣으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끼 여우가 벌떡 일어났다.
어라, 이게 뭐지!
새끼 여우의 시야에 갑자기 거대한 무리가 나타났다. 새까만 물결이 밀려드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거대한 코뿔소와 코끼리가 미친 듯이 내달리고,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무질서한 진형이었지만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큰일이다!
새끼 여우는 눈동자를 집어넣고 훌쩍 뛰어올라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번개같이 순간이동을 한 새끼 여우는 천제현 곁에 나타나 발로 그 옷을 잡아당기고는, 손발을 움직이며 방금 본 장면을 묘사했다.
공화련은 천제현 곁에 있었다. 새끼 여우가 이렇게 다급한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천제현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불확실하게 답했다.
“아주 거대한 규모의 군단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군요.”
“견융군인거야?”
“그런 것 같아요!”
“제대로 본 게 확실해?”
천제현은 새끼 여우를 보며 다시금 확인했다.
“적군의 규모는 어떻게 돼?”
새끼 여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인 후, 발을 들어 있는 힘을 다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아주 방대한 규모임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남쪽을 가리키며 빨리 떠나자는 표시를 했다.
공화련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천제현, 어떻게 생각해?”
“이 녀석, 평소에는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천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도 사실인 것 같아요!”
공화련은 놀라움과 긴장에 휩싸였다.
‘이건 말도 안 돼!’
견융족은 이미 40만 대군을 끌고 창주를 공격했다.
이 40만 군단은 견융 몇몇 부족에게는 이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대규모 군단인데, 거기서 또 군대를 동원해 왕역을 공격하는 게 말이 되는가.
왕역의 방어력은 창주의 몇 배에 달하고, 이곳 변경 지역은 견융군에게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설마 견융이 통일을 이루었나?’
열 몇 개나 되는 대부족들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해도, 이 높은 성벽을 뛰어넘기는 어렵다. 군사 40만 명이 창주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많은 군대를 동원해 왕역을 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왕역을 공격한다면, 왜 창주를 공격해서 병력을 분산시키는가. 차라리 한 곳에 공격을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전쟁을 잘 모르는 천제현과 공화련이지만, 그래도 기본 상식은 있었다. 5대 전선 요새의 군사는 총 60만 명 정도, 모두 남하국 최정예 군사다. 견융족이 위협을 가하려면, 최소한 그 이상 규모의 정예군을 몰고 와야 한다.
정세가 불안정하고 비축해둔 양식도 없는 견융족에게 백만 대군 집결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견융이 기습 공격을 하러 달려오고 있음은 사실이다. 반드시 남하왕과 동방전에게 알려 전선 요새의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한다.
천제현은 바로 남하왕을 찾아갔다.
“뭐라!”
남하왕은 방금 5대 요새를 두루 살피고 동방전의 지휘실로 돌아와 차를 마시던 참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남하왕의 손에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견융이 감히 왕역을 기습해?”
남하왕은 불같이 화내며 말했다.
“좋다, 죽으러 오는구나. 그렇다면 남하국 요새 수비군의 위력을 보여주지! 숙부, 즉각 전투 준비 하십시오!”
동방전은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사실 동방전은 이미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 최근 며칠간 전선 초소에서 전해져야 할 초원 상황 보고가 요새로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안군이 초원으로 보낸 정찰병도 살아 돌아온 이가 없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일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철성 요새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요새 병사 전체가 모였다. 수만 명의 궁수들이 사격을 위한 자리를 잡고 노포를 끌어와 준비를 마쳤다. 전선 요새는 적의 공격에 늘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비상사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새끼 여우가 우연히 견융족의 대규모 군단을 발견한 덕분에 최소 두 시간 정도의 준비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방어 시설을 배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장은 위험합니다. 폐하의 안전을 위해 바로 그리핀 기사들의 보호를 받아 왕성으로 돌아가시지요!”
“현재 전선 군단에서 짐이 온 것을 모르는 자는 없소. 적군이 눈앞에 있을 때 짐이 겁을 내며 돌아간다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겠소? 이 남하왕의 체면이 어찌 되겠소!”
남하왕은 절대 나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짐이 직접 지휘에 나서서 전선 요새의 병사들과 함께 견융을 무찌르겠소!”
동방전은 말리고 싶었지만, 남하왕의 모습을 보니 왕의 존엄이 느껴졌다.
남하왕은 어쨌든 진령 강자로, 그전투력은 천 명의 기병을 능가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은 충분하다. 그리핀 기사단의 보호도 받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적군의 공격을 앞둔 지금 떠난다면, 요새에 머무르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됐다! 지금은 전쟁이 급선무다!’
동방전은 바로 병사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철성 요새가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전고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땅을 흔들며 들려왔다. 거대한 먹구름 사이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처럼, 사람들을 압박하는 소리였다. 초원을 뒤덮을 정도의 대규모 군단이었다. 몇 십 리에 걸쳐 이어지는 견융족 군단 규모는 최소 70~80만 명은 되어 보였다.
동방전마저 놀랄 만한 규모였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전선 요새를 뒤덮었다.
‘창주에 40만 명을 파병하고도, 왕역에 80만 명의 군단을 보내다니!’
두 군단을 합하면 120만 명이다. 120만 명의 대군이면 전선 요새에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렇다면 견융족은 왜 40만 군사를 창주로 보냈을까.
이유는 하나뿐이다. 견융족은 80만 명으로도 충분히 왕역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공격 목표는 변경이 아닌, 바로 왕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