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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86화 (382/729)

# 386

제386장 노장의 걱정(2)

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는 것은 동방전의 가장 큰 염원이다. 견융초원에서 전사하는 것만큼 남하국 노장군에게 어울리는 죽음은 없을 것이다.

그 좋은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동방전은 어째서 기뻐하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전투를 향한 갈망이 몸 안에서 가득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통달한 노장군이 추구하는 것은 명예가 아니었다.

그는 무안군보다 강한 것도 아니요, 무안군만큼 용병술이 신통하지도 않지만,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선에서 견융과 대치해 왔다. 남하국 그 누구보다도 이 신비한 초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견융초원은 늘 짙은 안개에 덮여 있어 그 능력을 제대로 파악한 자는 한 명도 없다. 게다가 남하국이 강해졌다 해도 여전히 소국에 불과하다.

과거 대하국 역시 멸망하지 않았던가.

‘남하국이 정말 역습에 나설 준비가 되었을까?’

고천추도 세상을 겪을 만큼 겪은 노련한 자다. 동방전의 침묵 앞에 자연스레 그 내면의 갈등을 알아챈 고천추가 웃으며 말했다.

“기적상회는 관련 기밀 사항이 많아, 일부 공개되지 않은 일들도 있습니다. 때가 되면 폐하께서 자연스레 알려주실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간단히 이번 출행의 목적을 알려드리지요!”

이 기밀은 물론 마력 무기였다.

남하국이 미리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지만, 비장의 카드인만큼 공개할 수는 없었다. 남하왕도 허락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고천추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소개를 시작했다.

“기적상회는 전선에 위치한 전장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마련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통신 기술로써…….”

고천추가 설명을 마쳤다.

설명을 다 들은 동방전은 놀라움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세상에, 정말 이런 신기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기적상회가 정말 이런 기술을 만들어낸다면, 이 통신 기술은 전선의 작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투의 실패확률은 크게 낮아지고, 전쟁터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다.

동방전은 이 세상에 병법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소위 병법이라는 것은 사실 시간차와 정보의 차를 활용해 적군의 변화를 추측하는 전쟁 예술이었다.

만약 전장의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각 정찰기지와 이동 정찰병이 언제든지 전선 요새에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전선 요새는 정보를 바로 왕성에 보낼 수 있으니, 엄청난 속도의 정보망이 구축되는 셈이다.

그러면 실수할 확률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무리 무능한 장수라 해도 전체를 제어할 수 있다.

전선의 병사들을 위해 통조림을 안겨준 기적상회가 이번에는 귀하기 이를 데 없는 통신 설비를 가져온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할지 모른다.

병사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동방전에게 천제현은 그야말로 위대한 인물이었다.

천제현이 웃으며 말했다.

“장군님, 이제는 저희가 들어갈 수 있겠지요? 우리가 1초라도 늦게 들어가면 설비 구축 시간도 그만큼 늦어진답니다!”

동방전은 천제현에게 탄복한 나머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청했다.

“노병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들어오시지요!”

철성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앞뒤로 문 2개만 있는 폐쇄적 구조였다. 철성 요새의 좌우 양쪽은 통로였다. 성벽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고, 이중 구조의 중앙에는 긴 통로가 끼어 있었는데, 이 통로는 기병들만 통과할 수 있었다. 이 통로를 통해 5개 요새가 연결되어 군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여러 방향에서 오는 견융 기병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5대 요새.

천리 장성.

60만 명에 이르는 정예 군단이 전투로 하나가 되었다.

남하국은 수십 년에 걸쳐 모든 힘을 동원해 이토록 거대한 공정을 완성했다. 천제현은 철성 안에 들어가 둘러볼 새도 없이, 바로 고천추와 몇몇 사람들에게 자음탑, 자영탑, 초음파 전송탑 이 세 가지 장비 설치를 준비시켰다.

천제현은 또 전용 무선국과 음향 나팔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이제는 결정적인 순간에 봉화 같은 원시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동방전이 전문 통신병만 세워두면, 바로 무선 방송을 통해 다른 지역 부대에게 더 구체적인 명령을 전달할 수 있다. 심지어 외부 초소와 순찰대에게도 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어, 휴대용 자음기만 갖고 있으면 출정 나간 군대도 기지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신통한 용도를 알게 된 동방전은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

“이 기간 동안 필요한 게 있으면 노병에게 부탁하시오. 혼신의 힘을 다해 지원하겠소.”

또 동방전은 천제현에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영표도 주었다.

밤이 다가오자, 기적상회는 공사를 시작했다.

남하왕은 홀로 전망대에 앉아 번쩍이는 눈빛으로 북방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땅 위로 어두움이 깔리자, 마치 끝없는 바다가 펼쳐진 듯했다. 천만 년 동안 쉬지도 않고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설을 노래하는 노래 같았다.

남하왕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자신은 뛰어난 왕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대한 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능과 모략이 뛰어난 1대 남하왕과 나라를 잘 다스리고 문무를 겸비해온 역대 선왕들 중 누구도 지금의 자신처럼 이곳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선 적은 없었다.

‘무수한 선조들의 꿈이 이제 짐의 손에서 실현되는구나! 짐이 평범하다 해도, 역사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남하왕의 마음이 점점 떨려왔다. 남하국이 다시 대하국이 된다면, 이 얼마나 위대한 과업인가? 동방호의 위대한 이름이 자자손손 대대로 시인들의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질 것이다. 적어도 대륙 가운데 이곳에서 만큼은 전설이 될 수 있다.

이때,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남하왕은 한껏 들뜬 환상에서 깨어나자 짜증이 났다. 하지만 뒤돌아 상대를 확인한 순간, 그 감정은 사라지고 미소가 지어졌다.

“숙부, 이렇게 늦은 시각에 찾아오시다니, 무슨 일입니까?”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우람한 동방전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노병이 폐하께 충고를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남하왕은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무슨 일이시기에 이리 은밀하게 찾아오셨습니까?”

동방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왕천룡이라는 자를 중용하시면 안 됩니다!”

“뭐라구요?”

남하왕은 너무 놀라 말을 이었다.

“왕장군은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자고, 무안군도 그에게 포상을 내렸소. 이미 영무후로 봉한 자이건만, 숙부는 어째서 그를 중용해서는 안 된다 하시는지?”

동방전의 탄식이 이어졌다.

“무안군은 전쟁에는 능할지 몰라도 인재를 고르는 데는 약합니다. 또 무안군은 총 사령관이니 왕천룡 같이 젊은 장수를 자주 접하지 못했을 겁니다. 노병은 다릅니다. 비록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할 지라도, 10년의 세월이면 충분히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하왕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왕천룡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장수요. 진중한 성격에 겸손하고, 공적을 탐하지도 않소. 훌륭한 장수가 될 재목이지 않소?.

동방전이 답했다.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는 둘 중 하나입니다. 노병처럼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라면 더 큰 야심과 포부를 마음속에 감춘 것이지요. 노병이 보기에 왕천룡은 후자에 속합니다. 이렇게 속을 감추는 자가 전방부대의 대장군이 되면 혹여…….”

남하왕은 손을 내저으며 동방전의 말을 끊었다.

“숙부의 말에 증거라도 있습니까?”

“증거는 없습니다.”

“그럼 숙부는 나중에 누가 전방부대 대장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남하국의 젊은 자들 중에는 전방부대 대장군이 될 만한 인재가 없다는 사실이 제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천제현과 기적상회의 기술이 있으니, 전방부대 대장군은 아주 재능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남하왕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설마 평범한 인물에게 장성 군단 전체를 맡기라는 뜻인가? 이 노장군이 설마 진짜 노망이 난 건가!’

동방전은 남하왕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알아차리고 강조했다.

“노병은 재능이 있는 자를 시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천룡이 정말 크게 쓰일만한 자라면 바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자는…….”

남하왕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좋소, 좋소. 숙부는 공연한 걱정이십니다. 왕장군은 진중한 성정에, 공로가 있다고 나서거나 교만한 자도 아니오. 숙부와는 좀 다르기는 하나 역시 훌륭한 장수지요. 남하국의 인재 임용에 짐이 어찌 손 놓고 가만있을 수 있겠소? 전방부대 대장군에 대해서는 숙부의 노익장을 믿고 있기에, 앞으로 10년도 끄떡없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동방전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멈추었다.

남하왕도 대화를 끊으며 마무리했다.

“좀 피곤한 것 같군요. 숙부도 빨리 자리에 드시지요. 내일부터 짐은 요새를 순찰하고 병사들을 격려하며 사기를 진작시킬 것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 그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지요.”

말을 마친 남하왕은 홀로 자리를 떴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남하왕은 변방을 시찰할 예정이었다.

전선 요새에 주둔한 장성 군단은 총 60만 명으로, 그중 기병은 10만 명 정도였다. 전선 요새에 주둔하는 군대라면 모두 남하국의 정예 부대였다.

남하왕이 순시에 나서자 병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남하왕도 기분이 들떠 돈이며 술과 고기를 마음껏 나누어주어 병사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드높였다. 다 이제 곧 시작될 북벌 전쟁을 위한 사전 준비였다.

그 사이 천제현과 공화련은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자음탑과 자영탑, 그리고 초음파 신호 전송탑을 다 완성하기까지는 약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왕성과 아주 먼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세 탑이 다 구축되면 신호는 순식간에 전달될 것이다.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너무 무료해진 새끼 여우는 홀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미끄러지듯이 철성의 가장 높은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간 새끼 여우는 뾰족한 탑에 자리를 잡았다. 몸을 핥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아주 따분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에게는 너무 재미없는 곳이었다. 맛있는 것도, 재미있는 놀 거리도 없다. 게다가 주인이 언제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으로 배를 가득 채워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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