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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85화 (381/729)

# 385

제385장 노장의 걱정

이 위대한 북방 장벽은 초대 남하왕의 명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백만 명에 달하는 백성을 징용해 건축을 이어가다가 삼대 남하왕에 이르러서 경우 완성되었다. 이 장벽 건축에 너무 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소모되는 바람에, 남하국은 오랫동안 극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그 여할을 톡톡히 해낸 덕에 아주 효과적인 방어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이를 보는 공화련은 얼이 빠질 정도였다.

“정말 대단하다. 이게 바로 남하국의 손으로 이루어낸 기적인가?”

남하국 북방에 지어진 이 장성은 오랫동안 음유시인들의 노래로 전해 내려왔다. 그저 노래로만 들어온 이 위대한 전설의 기적을 직접 목도하게 되다니, 공화련은 남하국에 사는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핀 기사가 교지를 들고 먼저 요새로 들어갔다.

왕의 수레가 웅장한 요새의 문 앞에 멈추자 중후하고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라!”

쿵쿵쿵쿵쿵쿵쿵쿵…….

몇십 개의 검은 강철 쇠사슬이 당겨지고, 거대한 금속 현수교가 천천히 내려왔다. 깊고 넓은 방어참호에 현수교가 내려오자, 빈틈 하나 보이지 않던 철문이 열리고, 몇백 명의 기병들이 뛰어나왔다. 검은 갑옷을 입은 기병들은 모두 손에 1장 정도의 긴 창을 들고, 빠르게 두 줄로 왕의 수레 주변을 둘러쌌다.

이때 흰 수염이 가득한 검은 갑옷의 노장이 정렬한 병사들을 이끌고 요새 밖으로 나와 왕을 맞이했다.

“노병 동방전,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검은 갑옷의 노장과 더불어 기병, 보병, 성루에 보이는 궁수들까지 모든 군사의 투구와 갑옷에는 동방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동방 가문의 자제들이었다.

남하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에 파견된 이 노장도 동방 가문에서 아주 높은 지위의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노병이라 칭하는 그 겸손한 태도는 참으로 괄목할 만했다.

공화련이 존경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분이 바로 동방전 대장군이신가?”

천제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유명한가요?”

공화련이 답했다.

“전방 부대의 대장군이신 동방전은 50년 내내 전선에서 싸우셨어. 신풍후, 금전후도 모두 이 대장군 아래 있었어. 동방전도 혼성 9성의 정점에 도달한 강자고, 어떤 제후보다도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지.”

“그런데 왜 제후로 봉해지지 않았나요?”

“그게 바로 이 대장군이 존경받는 이유야.”

공화련의 탄복이 이어졌다.

“대장군은 동방 가문이 충분히 영예를 누렸다고 생각했어. 남하왕도 있고, 남하 제일군인 무안군도 나왔으니, 가문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고 확고해 졌는데 또 제후가 나올 필요는 없다는 거지. 차라리 제후 자리를 양보해서, 남하국 사내들이 전쟁터에 나와 공을 세우는 것을 독려하고자 한 거야. 봉토가 없는 것도 다른 데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전선 작전에 집중하기 위해서야.”

사실이었다.

동방전은 전방부대 사령관으로, 보직으로는 무안군보다 아래이나 누구보다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높은 지위에 올라 편안한 삶을 누리지 않았다. 게다가 평생 혼자 살면서 자식도 없이 일생을 남하국을 위해 헌신했다. 모든 것이 남하국 변경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 참으로 귀감이 되는 군인이었다.

무안군은 동방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일편단심으로 남하에 충성하고 나라만을 걱정하며, 천하에 용맹스럽고 그 지략은 당할 자가 없으니, 하늘이 내린 최고의 장수라, 견융이 변경 지역을 침범할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무안군이 장수에게 내린 최고의 평이었다.

동방전은 과연 그렇게 평할 만한 인물이었다. 사실 동방전은 무안군과 남하왕의 숙부로, 무안군보다 항렬도 높았다.

군으로 봉해지기 전, 무안군은 약 10년 동안 전선에서 전투 경험을 쌓았다. 당시 동방전으로부터 전법을 배웠으니, 동방전은 무안군에게는 반쯤은 스승인 셈이다. 다만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이후 동방건이 무안군으로 봉해지면서 군대에서의 지위가 동방전보다 높아졌다. 허나 동방전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 불평 없이, 무안군의 명령에 복종하며 무안군을 훌륭하게 보좌했다.

“노장군, 어서 일어나시오!”

남하왕이 직접 동방군을 일으켜 세웠다. 그 말에는 민망함이 가득했다.

“수년간 전선 요새를 지켜온 장군의 공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소. 그러면서도 고관의 자리를 받지 않으시니 짐이 왕위를 계승한 이후 장군을 볼 면목이 없었건만, 노장군의 큰절을 내 어찌 받겠소이까?”

동방전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폐하, 왕과 장수는 구분해야 마땅한 법, 노병이 어찌 예의를 차리지 않겠습니까?”

남하왕도 숙부의 쇠고집에는 화제를 돌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남하왕은 몸을 돌려 함께 온 자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전룡군의 왕천룡 장군, 대학자 고천추요. 장군께서 익히 아시는 인물들이오.”

왕천룡과 고천추가 공수로 인사했다.

동방전은 고천추를 보고는 인사를 했으나, 왕천룡에게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 기이한 모습을 놓칠 천제현과 공화련이 아니었다. 천제현의 눈에도 이상한 풍경이었다. 동방전과 고천추는 몇 번 만나지 못했을 테지만, 왕천룡은 다르지 않은가.

왕천룡은 전방부대 부사령관이요, 전룡 군단의 장군이다. 동방전이 물러나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가 바로 왕천룡이다. 그런데 동방전은 어째서 왕천룡을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것일까.

‘설마 둘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는 걸까?’

동방전의 눈이 천제현 무리에게로 향했다. 짙은 백색 눈썹이 바로 찌푸려졌다.

“이 두 사람은 누구신지? 소인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전선 요새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오, 관계자가 아니라면 절대 허락할 수 없소!”

노장군의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남하왕이 순시라는 명목으로 전선을 시찰하는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남하왕은 매년 한 번씩 전선을 둘러보러 왔다. 이는 전선의 방어 상황을 감독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병들을 격려해 온 나라가 이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작용도 했다.

‘그렇지만 남하왕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요새는 중요한 곳이다,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전선 요새의 시설 배치와 각종 방어 공사는 모두 국가 기밀인데, 어찌 함부로 사람을 들인단 말인가?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우르르 데리고 오다니, 그것도 특히 저 앞의 두 사람!’

말도 안 되게 어린 천제현은 둘째 치고, 동방전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 것은 여인의 존재였다.

심지어 절세미인이 아닌가.

전선 요새의 병사들은 수년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서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절세미인이 나타나면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심각하게는 사기를 떨어뜨려 병사들의 신념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는 동방전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군, 오해시오.”

남하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소개하리다. 여기 있는 천제현과 공화련은 기적상회의 총회장이자 창시자라오. 장군도 기적상회는 잘 알지 않소?”

동방전은 희끗한 수염이 흔들렸다.

“기적상회 창시자라고요?”

노장군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 바뀌었을다. 이상한 일이다. 설마 기적상회라는 이름이 변경에서도 먹힌단 말인가? 천제현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명한 줄은 몰랐다.

동방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 후 두 사람에게 공손히 절했다.

과분한 인사에 공화련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하국의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이 어째서 이렇게 큰 절을 하는 것일까?

“과거에는 병사들이 싸우러 나가면 다 많은 식량을 갖고 다녀야 해서 번거롭기도 하고, 오랫동안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지요. 허기는 채워져도 술사들에게 필요한 힘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전투력도 하락했지요.”

동방전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는 통조림 몇 개만 들고 나서면, 병사들이 수일 동안 작전에 나설 수 있습니다. 기적상회의 통조림이 전선 기지에 들어오면서 군대 전투력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넘어서, 군대를 위해서도 참으로 유익한 발명품입니다!”

‘그랬었구나! 태도가 이렇게 바뀐 이유가 있었구나!’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뒤로 하고, 노병의 융통성 없음을 용서하시지요.”

노장군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관계자가 아닌 이상,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군기가 그러합니다!”

남하왕은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장군이 아니라 숙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숙부, 짐이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할 사람입니까? 저 먼 곳에서 이 두 사람을 데려왔다면 당연히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요. 대학자의 설명을 들어 보세요.”

동방전은 멈칫했다.

‘정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동방전은 고천추를 몇 번 만나본 적은 없지만, 대학자를 아주 흠모해왔다. 대학자 역시 나라를 대표하는 인재로서, 남하국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인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고천추는 고집 센 노장군을 마주칠 거라곤 생각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무안군이 창주에 간 일은 장군도 들으셨겠지요.”

“소식을 들었지요. 견융족 놈들이 무안군의 용병술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요? 열흘도 되지 않아 무안군이 승리 소식을 안고 돌아올 겁니다!”

“폐하도 그리 생각하십니다!”

고천추는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무안군이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는 날이 바로 폐하가 견융족을 정벌하는 북벌의 날이 될 겁니다!”

“뭐라고요? 견융족 정벌!”

동방전의 거친 흑색 얼굴이 동물 피라도 뒤집어쓴 마냥 보라색으로 변했다.

“정말입니까? 이제 때가 된 겁니까? 견융 초원은 내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일단 외부 공격이 들어가면 오히려 뭉치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 북벌에 나서는 건 시기상조 아닐까요?”

남하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군사력이나 국력만으로 본다면 견융 정벌에 나서는 것은 확실히 시기상조요. 하지만 남하국에는 기적상회라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동방전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하왕이 30년 전에 초원을 공격하자고 했다면, 동방전은 분명 말리고 나섰을 것이다. 초원을 정복하기에는 국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하국은 점점 강해지고 있고, 무안군도 계속해서 북벌을 도모하고 있다.

이번 남하왕의 견융 공격은 사실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다. 다만 10년 후가 될지, 아니면 20년 후가 될지, 구체적인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남하국에서 잔뼈가 가장 굵은 노장군은 지금까지 그 저력을 남김없이 펼쳐왔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장군이 평생 한으로 여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전선 요새에 있으면서, 지난 50년 동안 견융초원을 바라만 본 채 대군을 이끌고 직접 공격에 나서지 못한 일이다. 이제 노장군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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