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84화 (380/729)

# 384

제384장 전선 요새

20만 명밖에 안 되는 질풍기병은 이렇게 40만의 견융 기병을 제압했다. 견융 기병은 전방과 후방, 보급 부대가 서로 찢어지게 되자 혼란에 빠져 정보조차 제대로 교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견융 기병은 남하국에서 군사를 얼마나 보냈는지, 어디에서 포위를 풀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무안군은 전투를 지휘하는 한편 창주의 창운후에게 창주의 기병 20만을 이끌고 최대한 빨리 전장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도착한 창주의 기병과 왕성 기병은 견융 기병의 전방부대를 협공하여 일거에 적 8만을 죽였다. 이후 나머지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전투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다.

무안군은 역시 백전노장이었다.

전장의 상황은 변화무쌍하다. 기회를 포착하여 바람처럼 전술을 펼치고 군사들을 능수능란하게 부릴 수 있는 장수는 남하국에서 무안군뿐이었다.

남하 기병과 견융 기병은 창주에서 대치 상태에 빠졌다. 견융족은 병사가 아직 30여만 명 남아 있으나 앞뒤로 견제를 받는 바람에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제 남하국이 완전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견융 기병은 개별 전투력이 막강하지만 진법 운용에 몹시 서툰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사실 남하왕은 부탁이 있어서 사자를 파견한 것이었다. 바로 상회 방송국에서 이 소식을 전국에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승전보는 좋은 일이기에 천제현은 흔쾌히 전국에 이 소식을 알렸다.

이번 전쟁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인 듯했다. 남하국 백성들의 자신감이 크게 올라갔다. 남하왕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북벌 준비를 선포하자 남하국 백성들의 사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적상회에서 남하왕이 의뢰한 <대하국의 봉화>를 선보였다.

이것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로 조국을 위해 공을 세우고 희생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예상대로 <대하국의 봉화>는 왕성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에 협찬한 화염장미 상회의 장비는 판매량이 급증했다. 여러 용병단에서 잇달아 그들의 무기를 대량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남하국 백성들은 애국심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남하국의 산천을 지키고자 무기를 들고 병사가 되었다.

모든 게 남하왕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다.

남하국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무안군이 개선하여 돌아오기만 하면 남하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선조들이 원정을 떠났던 그 길을 밟을 것이다.

며칠 동안 창주에서 계속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무안군은 세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적 10여만 명을 섬멸했다. 왕성 기병 측에서 부상을 입거나 죽은 병사는 1만 명에 불과했다. 남하 기병의 물셀 틈 없는 공격과 수비, 그리고 무안군의 전술에 의해 분리된 견융 기병은 이제 전력을 가다듬기가 힘들어졌다.

이 기세로 별다른 문제없이 계속 간다면 10여 일 후에 무안군은 전쟁을 끝내고 적의 4분의 3을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이은 승전보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물론 남하왕이었다.

그날 밤 남하왕이 천제현을 불러다가 물었다.

“무안군의 승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북벌을 시작해야겠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상하군. 난 전쟁에 문외한인데! 이런 걸 왜 내게 묻지?’

천제현이 살포시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소신은 전쟁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삼군이 보좌하니 이번 북벌은 큰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마력 무기를 수천 개 넘게 비축했으니 이 무기로 장수들을 무장시킨다면 남하군단의 전투력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입니다.”

남하왕이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력 무기는 남하국의 기밀이네. 지금 염양군과 문성군조차도 거의 모르는 상황일세. 그러니 왕성의 무기 공장에 대해서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네. 남하국 비장의 무기가 너무 일찍 노출되면 안 되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기적상회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네.”

천제현은 남하왕이 자신을 아무 이유 없이 찾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옵니까?”

“원정을 떠나려면 정보 전달이 무척 중요하지. 짐은 무안군이 돌아오기 전에 전선의 요새에 제대로 된 통신 기초시설을 구축하고 싶네. 그러면 왕성과 중요한 요새끼리 정보를 교류하여 남하군의 기동성과 활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야!”

여기까지 말을 마친 남하왕이 본론을 꺼냈다.

“그러니 기적상회에서 수고해주게. 물론 수고비는 두둑하게 지불하지!”

천제현은 남하왕의 뜻을 알아차렸다.

남하왕은 기적상회를 전선의 요새로 보내 통신기술 설비를 설치하고자 했다. 통신설비가 설치되면 요새의 장수들이 언제든지 왕성에 정보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왕성 역시 전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명령을 내리거나 지원군을 파견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통신 방식을 바꾸면 군사 작전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에서 우물쭈물하면 기회는 곧바로 사라진다.

적과의 교전 상황을 왕성에서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면 전쟁의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천제현이 이런 요청을 거절하겠는가? 남하국과 견융의 전쟁은 국운이 달려 있는 일이다. 남하국이 패배하여 견융이 부흥한다면 앞으로 성장할 터전이 사라지는 꼴이 아닌가. 천제현은 무조건 승낙해야 했다.

남하왕이 몹시 기뻐했다.

“좋네. 짐은 변방을 순찰하며 곧 시작될 북벌을 위해 남하군단의 사기를 고취시킬 생각이네. 이번에는 짐이 자네와 함께 갈 것이다!”

‘남하왕이 직접 간다고? 이건 좋은 기회가 되겠는데!’

남하왕이 이렇게 체면을 살려주니 천제현은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런 단순한 일에 천제현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 운요, 풍채향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남하왕은 더욱 안전을 기하고자 천제현을 지명했다. 전선 통신소 구축 여부는 전쟁 상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게 된 공화련이 천제현에게 말했다.

“전선 요새에 갈 수 있다니, 일반 상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아주 귀한 기회야. 내가 함께 가겠어.”

천제현은 놀라 답했다.

“큰아가씨도 가신다구요?”

공화련의 말이 이어졌다.

“전선 요새는 아주 큰 시장이야. 특히 전쟁이 시작되면 식량, 군수 물자, 기계 등의 수요가 엄청나거든. 기적상회가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기적상회의 사업 확장은 물론 전쟁 준비도 더 빈틈없이 할 수 있지. 어쨌든 남하국에 전쟁이 나면 우리에게도 영향을 많이 주잖아.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앞장서야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럼 큰아가씨도 함께 가는 걸로 해야겠군.’

천제현은 통신소 구축 감독을 담당하고, 공화련은 전선 시장을 시찰하면서 실제 상황에 맞게 요새의 주둔군과 협력을 논하는 것이니 서로 부딪칠 일은 없다.

하지만 기적상회로서는 천제현과 공화련, 두 지도자가 모두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된다.

천제현은 전선 시찰을 위해서 어가를 수행하고, 고천추도 그와 동행한다. 게다가 지금은 무안군도 출정중이다. 그렇다면 왕성에 기적상회를 도울 세력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누군가 등에 칼이라도 꽂으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결국 만일을 대비해 이번에는 심빙우와 18명의 강시 호위는 남겨두기로 했다.

이번 왕의 행차에는 대학자를 비롯해 숨겨진 경호원인 새끼 여우도 함께 가기로 했다. 이 정도면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하국 전선에는 총 5개의 요새가 있었다. 요새마다 막강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 안전하기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천제현은 남하왕의 부탁을 받고 가는 것이다. 한동안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 아무리 쪼잔한 남하왕이라 하더라도 이번에 천제현을 공격할 리 없다.

다음 날 새벽.

혼성 9성의 황금사자 3마리가 수레를 끌고, 그리핀 기사단 200명의 수호를 받으며 어가가 출발했다. 왕천룡은 지룡을 타고 전방에서 군을 이끌며 앞장섰다. 고천추와 천제현 무리는 그 뒤를 따르며 천천히 북쪽으로 향했다.

놀라운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진영이라, 공격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실 감히 남하왕을 암살하려 들 자도 없었다.

이 시대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면, 최고의 실력자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약해빠진 인물은 아니다. 남하왕은 무안군의 실력에 비하면 약할지 모르나, 그래도 진령 강자였다. 함부로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남하국에서 누가 감히 남하왕에게 칼을 꽂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남하왕이 왕천룡을 곁에 둔 것은 천제현으로서도 뜻밖이었다. 천제현은 왕천룡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적상회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남하왕이 그를 왕성에서 데리고 나온 덕에, 왕씨 가문이 천제현이 없는 틈을 타 기적상회의 뒤통수를 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쭉 뻗은 초원길에는 인적이 드물어 가끔 정찰병 초소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장애물 하나 없이 순탄하게 이어진 여정의 끝에 드디어 지평선 너머로 검은 빛 윤곽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이다! 여기가 바로 남하국 북쪽 변경이구나!’

멀리 전선 5대 요새 중 가장 큰 요새가 보였다. 강철요새, 속칭 철성으로 불리는 곳으로, 약 50만 명의 남하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견융초원을 막아내는 남하국의 기둥이었다.

강철같이 굳건하게 홀로 서 있는 이 성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땅에서 솟은 듯, 광활한 초원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남하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철성을 처음 본 순간 그 웅대함에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철성이 황야에 있는 한낱 요새에 불과한가, 그것은 아니었다. 철성의 앞뒤를 단단히 둘러싼 성벽은 성의 양옆에서 만나 동서방향으로 200리 넘게 뻗어 나간다.

성벽 높이는 자그마치 15장, 견고한 암석으로 만들어진데다 표면을 둘러싼 철갑은 햇빛에 번쩍였다. 마치 하늘을 가리는 장벽처럼 느껴져 보는 이마다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거대한 검은 괴물이 좌우로 기다란 팔을 펼쳐 거대한 초원을 품에 안아 버리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산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기세를 보고 기함하지 않을 자가 누구일까.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남하 성벽인 것이다.

성벽의 총 길이는 1,000리로, 전선의 5대 요새를 모두 연결시킨다.

5대 요새마다 주둔군이 있는데, 이화 군단과 전룡 군단이 그에 속했다.

5대 전선 요새와 강력한 방어 체계인 성벽이 있었기에, 견융족의 약탈이 계속 이어져도 왕성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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