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3
제383장 승전보
천제현은 운천학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모든 과정이 별다른 잡음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 이 광경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사람들이 잇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남하왕은 몹시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좋아! 정말 대단해! 이 발명은 남하국에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천 학사, 그대야말로 국사라 할 수 있네! 여봐라, 천 학사에게 황금 백만 냥을 내리겠다. 그리고 학사의 호칭을 대학사로 올리겠다!”
남하국은 소국이라 한 사람만 대학사로 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누가 그런 사소한 것에 트집을 잡겠는가? 그간 천제현의 공헌과 발명을 감안하면 대학사는 물론이고 국사, 대국사로 봉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남하국의 대학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백 살 노인 고천추이었고 한 명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천제현이다.
나라에서 이 소식을 발표하자 사람들은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누구 하나 남하왕이 규칙을 어겼다고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천제현은 고천추처럼 오랜 시간 동안 명성을 쌍아오진 않았지만 그가 설립한 기적상회를 비롯하여 이룩한 모든 것들은 대학사의 호칭을 받기에 충분했다.
천제현이 세상에 크게 이름을 떨칠 때 누군가가 음지에서 조용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날 밤.
이화후의 저택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화후의 아들 남궁검이 중상을 입은 후 이화후는 줄곧 자택을 떠나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염양군과 남하왕이 수차례 위로를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원한은 조금도 풀리지 않은 듯했다.
남하왕과 염양군도 이를 어쩌지 못했다.
이화후의 처소에는 촛불 몇 개가 어슴푸레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는 붉은색 수도복 차림으로 방석 위에 앉아 있었다. 앞쪽에는 병풍이 둘러져 있어서 모습이 선명히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쉰 목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영무후,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오?”
손님은 바로 왕천룡이었다.
고의든 아니든 영무후라는 소리에 왕천룡의 눈에서 분노가 일었다. 영예롭기 그지없는 호칭이 이제 씻지 못할 치욕이 되었다.
왕천룡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제 마음을 다 아시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이화후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대학사 천제현 때문이오?”
왕천룡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화후가 싸늘하게 웃었다.
“왜 속 시원히 말을 못 하시오?”
“이화후께서 도와주신다면 천제현은 걱정할 게 못 됩니다.”
“돌아가시오.”
이화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염양군께서 다시는 천제현을 건드리지 말라고 남궁 가문에 명하셨소. 염양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소.”
왕천룡이 차갑게 웃었다.
“이화후께서 이 일을 그냥 덮으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드님은 불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작위를 계승할 수 없게 되었지요. 제후의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겠지요. 그리고 군에 오르실 희망을 품고 계시지는 않겠지요. 염양군께서 건재하시고 이화후께서 진령 경지를 돌파하기에는 아직 멀었으니까요. 십 년, 혹은 이십 년이 지나면 남궁혜의 실력이 이화후 마마를 능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궁 가문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훅!
살기가 폭발했다.
어둑어둑하던 기름등이 순식간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화후의 목소리가 거칠게 변했다.
“내가 화를 내기 전에 돌아가시오!”
왕천룡은 이화후의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이화후의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
“정말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오? 아니면 뜨거운 맛을 봐야 돌아가겠소?”
“알겠습니다. 돌아가지요. 허나 가기 전에 재미있는 소식을 알려드리죠. 이번에 견융초원에서 들었는데 여러 사람이 이 소식을 반길 것 같군요.”
“무슨 말을 하려는 게요?”
왕천룡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10년 전 견융초원을 호령하던 제후가 있었죠. 출중한 능력으로 매번 승전을 거두며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요. 어느 날 이 제후는 잘못된 정보로 엉뚱한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적에게 행적이 노출되어 온종일 혈전을 벌이다 전멸했죠.”
주위의 촛불이 더욱 심하게 흔들리면서 처소의 분위기가 갈수록 무거워졌다.
왕천룡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행적을 적에게 알린 자는 동일한 사람의 소행이었지요. 남하후의 친동생은 자신의 큰형을 질투한 나머지 남궁 가문의 가장 우수한 후계자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말을 누가 믿을 것 같소?”
“그와 견융족이 내통한 비밀 서찰이 제 손에 있다면요?”
촛불이 공중으로 뜨더니 작은 검의 형상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병풍을 뚫고 왕천룡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왕천룡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왕천룡 주위에 교룡이 나타나 화염을 뿜는 작은 검을 한입에 집어삼킨 것이다.
처소 안이 캄캄해졌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왕천룡의 목소리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절 죽여서 입을 막으시려고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군요. 그러나 제 실력은 이화후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요행히 살아남아 도망이라도 친다면 이화후께서는 염양군과 남하왕을 어떻게 상대하실 겁니까?”
어두컴컴한 처소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화후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제현을 어떻게 상대할 작정인지 말해 보시오.”
왕천룡이 웃음을 보였다.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번 목표는 천제현 하나가 아닙니다.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확!
어둠 속에서 무수한 불꽃이 터졌다. 불꽃이 모두 촛대에 떨어지면서 처소가 다시 환해졌다.
***
공화련이 차를 마시는 천제현의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전영경을 들고 보고했다.
“중주에서 보낸 영상이야 최신 연구 성과에 관한 건데 볼래?”
“그래요?”
천제현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볼 테니 바로 틀어주세요!”
공화련이 전영경을 가동시켰다. 화면에 나타난 곳은 중주성 밖의 실험장이었다. 운문의 학자 몇 명이 머리통만한 크기의 수정 구슬을 발사대 위에 올렸다. 수정구슬 표면에는 주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수정구슬 안의 빛을 띠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천제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액체는 제련을 거친 원유였다.
운천학이 시작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운문 학자들이 수정구슬 마력진을 가동시키자 순간 수정구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안정적이던 액체가 격렬하게 끓어오르면서 대량의 빛과 열을 방출했다. 발사대가 빠르게 가동되면서 수정구슬이 날아갔다.
쾅!
수정구슬이 30여장 밖에 떨어지면서 가공할 마력을 방출했다. 학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수정 구슬을 발사한 발사대마저도 충격을 받고 파괴되었다.
실험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공화련이 전영경을 덮었다.
“운문에서 몇 달 동안 고생했네. 마력전지를 사용한 성능 좋은 폭탄을 마력무기 생산에 활용한다면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거야.”
천제현이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삐죽였다.
“저게 무슨 발명이에요? 고성능 반응진을 촉매로 비활성 수정의 눈물을 활성 시키고, 수정의 눈물의 불안정성을 이용하여 폭발 효과를 내는 거잖아요.”
이런 폭탄에는 확실한 결점이 있다.
폭탄의 폭발력과 방향을 통제할 수 없다. 수정구슬이 터지는 순간 불안정한 원유가 분출되어 사방으로 튀면서 폭발한다. 따라서 폭발 지점을 고정시킬 수 없다. 그리고 폭탄이 제때 발사되지 않거나 발사 과정에서 격추되면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천제현이 공화련에게 말했다.
“제가 몇 가지 적어드릴 테니 중주에 전달해주세요.”
기적상회에 정보전송 통로를 구축한 후 업무가 훨씬 수월해졌다. 두 곳의 운문연구소는 학술교류를 통해 연구원의 성과를 빠르게 공유하여 인력과 물자를 크게 절약했다.
천제현이 작성한 의견서를 가지고 자리를 뜨려던 공화련이 갑자기 뭔가를 생각해냈다.
“맞다. 남하왕이 의뢰한 <대하국의 봉화> 1편을 거의 다 완성했어. 영화관에서 상영하려고 준비 중이야. 이번에 왕성 영화관이 여섯 곳으로 늘었고 중주성도 이번 달 말까지 영화관이 열 곳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야.”
“그럼 곧바로 홍보하고 상영하세요. 남하왕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공화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업무를 처리하려고 할 때였다.
공서련이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거 알아? 정말 좋은 소식이 들어왔어!”
공화련은 동생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무슨 소식인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
공서련이 천제현에게 달려들어 그의 손에 든 잔을 빼앗아 단숨에 비운 후 흥분하여 말했다.
“창주에서 승전보가 날아왔어!”
공화련과 천제현은 모두 크게 놀랐다.
“네? 뭐라고요?”
“무안군이 이겼다니까!”
‘그게 무슨…… 무안군이 출정한지 일주일도 안 지났다고!’
공서련이 설명했다.
“왕궁에서 전해 온 소식이니 틀림없을 거야. 무안군은 정말 너무 대단해. 창주에 도착하자마자 견융 기병에게 단단히 쓴맛을 보여주다니!”
천제현은 고천추를 불러 더 자세한 상황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천추는 남하국의 국사이니 자신보다 왕궁 내부의 소식에 밝았다. 그런데 고천추가 도착하기도 전에 남하왕이 먼저 사자를 보냈다.
사자는 기적상회에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다.
사자는 공서련보다 훨씬 정확하게 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무안군이 기병을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 창주에 도착했을 때 견융 기병은 이미 공격을 개시하여 단숨에 성 세 곳을 함락시켜 사기가 충만했다. 창주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상황은 무척 위태로웠다.
하지만 무안군은 한눈에 견융 기병의 허점을 꿰뚫어봤다.
견융족의 기강은 헤이해진 상태였다. 성을 함락시킬 때마다 즉시 방화와 약탈을 일삼느라 일부 군대의 행동이 느려졌다. 이들은 성 세 곳을 함락시키면서 그 많던 대군이 조금씩 분산되어 행렬의 처음과 끝 간격이 백 리나 벌어졌다.
무안군은 먼저 질풍기병단을 셋으로 나눴다. 첫 번째 부대인 기병 5만 명은 지원군인 척하고 견융 기병의 주력군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5만 명으로는 적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첫 번째 부대는 곧바로 불리한 상황에 빠져 퇴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견융 기병은 남하국의 정예병들이 순순히 퇴각하게 두지 않았다.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에 견융족의 전방부대 20만 명은 곧바로 추격을 벌였다. 후방의 20만 명이 전방부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견융족 군대는 전방과 후방으로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이때 무안군의 두 번째 부대인 기병 10만 명이 견융족 군대의 벌어진 틈을 치고 들어왔다. 마지막 세 번째 부대인 기병 5만 명은 견융족의 뒤로 돌아들어가서 견융 기병이 전진할 때 배후를 기습하여 단숨에 보급을 끊었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