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
제382장 통신의 혁신
이번 전쟁은 남하국에 몹시 중요했다. 수십 년 만에 터진 대전이자 격전이지만 시기가 매우 좋았다. 이 전쟁은 남하왕과 삼군이 야심을 드러낼 절호의 기회였다.
1대 남하왕은 웅대한 포부를 지닌 인재로 초원에 수도를 정하고 견융을 바라보았다. 그 후 후대 남하왕들의 꿈은 바로 대하국의 영토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있어도 국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제 백 년에 한 번 올법한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견융족은 다년간의 내전으로 몹시 약했다. 반면에 남하국은 수십 년 동안 병사를 길렀다. 병력이 충분하고 쓸 만한 장수가 넘쳤다. 게다가 기재 천제현까지 나타나 역사를 바꿀 만한 마력무기를 만들어냈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남하국은 판을 뒤집어 버릴 수 있다.
천제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하왕이 갔으니 우리도 돌아가요!”
공화련이 걱정된다는 듯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무안군이 사령관으로 직접 출정했지만 이번에 침입한 견융족은 만만치 않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먹고 쳐들어오는 것이니 요 몇 년 동안의 약탈부대와는 완전히 다르겠지. 양측의 전력이 막상막하야. 남하국이 수비에 유리하고 군량 보급이 편리하긴 하지만 견융족은 몹시 거칠고 고수도 남하국보다 훨씬 많잖아. 힘든 전쟁이 될 것 같아.”
“우린 전쟁에 관해 다 문외한이잖아요. 무안군을 믿을 수밖에 없죠.”
천제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해도 최악의 결과는 사육장을 잃고 남하국 정예 기병 주력군이 타격을 입어, 당분간 북벌을 추진할 힘을 잃는 정도일 것이다.
왕성이 함락될 가능성은 없다.
남하왕은 바보가 아니다. 치밀하게 방어를 준비했기 때문에 견융족이 치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견융족이 갑자기 내전을 멈추고 하나로 뭉친다고 해도 왕성을 공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왕성은 기동력 있는 공격 부대 하나를 잃을 뿐 다른 부대는 건재하다. 삼군과 남하군에 방금 개발을 마친 마력무기까지 있으니 왕성을 별문제 없이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안군의 패배를 걱정하기보다는 천제현의 뒷배인 무안군이 왕성을 떠나니 누군가가 그를 노리지 않을까 조심하고 대비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기적상회 본부에 돌아와 보니 아주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풍채향과 운요가 왕성에 온다는 것이다.
천제현은 들뜬 마음으로 모두를 데리고 두 사람을 마중하러 나갔다.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두 사람은 많이 야위었지만 혈색은 아주 좋았다.
풍채향은 여전히 구름처럼 온화했고 운요는 번개처럼 거칠었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정체되지는 않았다.
천제현과 남궁혜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서련과 공화련과 마찬가지로 혼성 5성 정점에 올라 있었다.
“채향 언니, 운요 언니, 이제야 돌아왔군요!”
공서련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두 사람을 껴안았다.
“그동안 왕성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제가 상세히 이야기해 줄게요!”
“그게 급한 건 아니죠.”
천제현이 공서련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맡긴 일들은 다 해결했어?”
운요와 풍채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채향이 웃으며 대답했다.
“임무를 다 완수했어요. 우리는 남부의 일곱 주와 군을 다 돌았어요. 일곱 주와 군의 대도시 최소 다섯 곳에서 신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이번에 북쪽으로 올라온 이유는 북부의 창주와 왕성에 신호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예요.”
“아주 훌륭해!”
모두 놀라워하며 기뻐했다.
기적상회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 결국 기본적인 정보망 구축을 완료했다.
이제 중주 방송국의 신호가 남부의 일곱 주와 각 마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기적상회의 통신기도 다른 주에서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기적상회에게 있어서 이정표적인 일이며, 대륙의 유구한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왕성에 초음파 주파수 전송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적상회는 왕성연구소의 모든 인원을 동원했다.
당일 천제현과 공화련은 고위 간부인 남궁혜, 공서련, 이밖에 고천추, 조보 등 핵심 연구원 십여 명과 함께 크지 않은 실험실에 모였다.
고천추가 기대에 부풀어 손을 비볐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조보를 포함한 학자들은 모두 들뜬 기분이었다. 이 의미 있는 실험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학자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는 없다. 제국의 유명한 학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천제현이 시간을 살펴봤다.
“시간이 다 되었네요. 실험을 시작하시죠.”
공화련이 새로운 라디오 앞으로 걸어가서 직접 라디오를 켰다. 전원이 켜진 라디오에서는 잡음이 좀 흘러나오더니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왕성방송국에서 방송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주파수를 바꾸겠어요!”
공화련이 아주 익숙한 주파수로 채널을 돌렸다. 라디오에서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들렸다. 잡음 사이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분명하지 않았다. 신호 접속이 순조롭지 않은 게 분명했다. 공화련이 인내심을 가지고 주파수를 계속 조정했다.
갑자기 잡음이 사라졌다.
또렷하고 듣기 좋은 여자 음성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중주 오후 뉴스입니다. 저는 중주방송국 아나운서 소영아입니다. 오늘의 뉴스는…….”
모두 넋을 잃었다. 다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방송국 아나운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듯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하하하.”
“진짜 성공했어!”
“중주 쪽 신호에 접속할 수 있어. 중주에서 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늙은 학자들이 체면도 잊고 몹시 흥분했다. 공서련과 남궁혜도 기뻐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항상 침착한 모습을 잃지 않던 공화련마저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다.
기적상회를 설립한지 반년이 되었다. 그동안 기념비적인 발명품을 수없이 선보였지만 진정한 의미를 지닌 발걸음을 이제 막 내딛게 되었다.
이것으로 기적상회는 대륙의 첫 번째 정보망 구축에 성공했다. 중주성과 왕성은 수만 리나 떨어져 있지만 방송국을 통해 직접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중주에서 보낸 음성을 머나먼 왕성에서도 안정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와 주를 연결하는 방송국이 완공되면서 전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한 정보화 시스템의 밑바탕이 그려졌다.
대륙에서는 백만 년 동안 원시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교류해왔다. 이 순간 과거의 케케묵은 방식은 완전히 깨졌다. 온 세상이 기적상회로 인해 정보화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화련이 물었다.
“이 소식을 바로 발표해야 하나?”
“당연하죠!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안 알린다는 게 말이 되나요?”
천제현이 탁자를 치며 말했다.
“현지 방송국과 모든 채널을 동원하여 이 소식을 알리자고요!”
“그래!”
“고객에게 무료로 다른 주의 방송국을 개통시켜줍시다. 왕성의 모든 사람이 중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요! 물론 중주 사람들도 왕성 방송국에서 보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천제현은 이 소식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기적상회에서 최신 성과를 발표하자 예상대로 왕성 전체가 시끌벅적해졌다. 기적상회의 라디오와 자음기 판매량이 급증하여 하루 만에 물건이 떨어졌다.
남하왕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방송국은 왕국의 통치를 공고히 하는데 엄청난 의의를 지닌다.
그래서 남하왕이 친히 기적상회로 찾아왔다. 그는 기적상회와 국왕을 대변하는 공영 방송국 설립에 대해 논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남하왕은 기적상회에 도착하여 놀랄만한 소식을 하나 더 듣게 되었다.
기적상회에서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통신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기적상회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신기술을 연구해왔다. 이 사실은 기적상회 내부, 특히 운문에서는 별다른 비밀이 아니었지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순간 남하왕은 기적상회의 능력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실시간 통신기의 출현은 더욱 큰 의미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일이다. 이 발명품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기적상회는 순식간에 대륙 최고의 상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
“천 학사, 그대는 정말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군.”
남하왕이 아주 탐이 난다는 눈빛으로 천제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천제현이 지닌 지혜의 1/100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남하왕족은 영원히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최고의 천재가 남하국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남하왕은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힘이 가장 중요했다. 남하왕이 왕좌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전부 동방 가문의 막강한 실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급격히 성장하여 동방 가문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다면 남하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죽여야 하는가?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버려둬야 하는가? 내버려두면 통제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남하왕은 줄곧 천제현을 경계해왔다. 그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왕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하왕은 그를 껄끄러운 존재라고 여겼다. 세상의 모든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자신을 뛰어넘는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천제현에게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 주변 인물을 모두 인질로 잡았다고 해도 그의 후대에 야심을 가진 자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이 있는가.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남하왕은 눈앞의 성과를 몹시 보고 싶어 했다. 그는 기적적인 순간을 직접 보고자 친히 기적상회에 온 것이다.
기적상회에서 실험 장소를 본부의 작은 광장으로 정했다. 기적상회의 직원 및 연구원 수백 명, 그리고 남하왕, 염양군, 문성군이 모두 실험 장소로 모였다. 기적상회는 전영경으로 현장의 상황을 왕성 각 지역에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시작하자!”
천제현이 직접 통신기 앞으로 걸어가서 통신기에 번호를 입력했다. 통신기에서 안내음성이 한바탕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안내음성을 들으며 마음을 졸였다.
‘성공할까? 정말 실시간 통신이 이루어질까?’
‘수만 리 떨어진 거리인데…… 게다가 사이에는 거대한 사주호와 높은 산맥들이 있잖아!’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통신기의 안내음성이 사라졌다.
통신기의 확성기를 통해 약한 잡음이 들리다가 노쇠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기는 중주의 운문입니다. 나는 운천학인데 당신은…….”
천제현이 가볍게 웃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천회장인가? 놀랍군. 왕성에 이렇게 빨리 통신 기반을 구축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