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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77화 (373/729)

# 377

제377장 내기를 건 대결

공화련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로 머리가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큰아가씨는 제 개인 재산이 아니니 아가씨를 판돈으로 내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면 기적상회 지분 전부를 대인께 드리지요!”

공화련의 몸이 미묘하게 떨렸다.

천제현은 기적상회의 7할 가까운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기적상회를 거의 다 넘기는 한이 있어도 공화련을 넘길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지금의 기적상회는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사람들의 눈에도 하나같이 핏발이 섰다.

‘이건 천제현이 기적상회를 왕씨 가문에 넘겨주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천제현은 한 마디 덧붙였다.

“제가 이기면, 영무후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시지요!”

“좋소!”

왕천룡도 수락했다.

“두 사람 모두 국가의 기둥인데 어찌 소소한 오해로 치기 어린 싸움을 하려는 것이오?”

무안군이 중재를 위해 나섰다.

“경사스러운 날이 백성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걸 원치 않소이다!”

고천추도 진땀을 쏟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도 무안군 대인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어찌 이리도 제멋대로 이런 도박을 한 답니까? 두 사람 모두 상관없다고 해도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무안군, 대학자, 무엇이 걱정이시오?”

문성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천 학사의 이 같은 결정은 필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게 아니겠소? 이참에 우리도 두루두루 견문을 좀 넓혀 봅시다. 설령 패배하더라도 용사라는 명예는 얻지 않겠소. 이는 세상의 유일무이한 내기가 될 거요. 게다가 서로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정정당당하게 무공을 겨루는 건 우리 남하국다운 풍속이 아니겠소!”

염양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역시 이 상황이 마땅치 않았으나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그게 더 고민이었다.

사실 염양군도 사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이 여기서 패배하게 되면 남궁혜가 다시 가문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남궁 가문은 지난 10년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삼대 중 가장 우수한 남궁검마저도 기량을 회복하기 그른 상황에서 남궁혜가 돌아온다면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완전히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남하왕도 거듭하여 재고 따졌다.

“문성군의 말도 일리는 있소. 간단한 겨루기로 끝내도록 하시오. 고의로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는 불허하겠소. 내기의 조건을 줄이는 것도 좋소. 굳이 극단적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지 않겠소.”

남하왕은 이 두 사람의 기싸움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자못 궁금했다.

왕천룡의 등장으로 왕성 세력이 다시금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향후 천제현도 행동거지에 신중할 것이다. 거기다 왕천룡이 기적상회에 압력을 행사한다면, 왕족이 기적상회를 상대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령 천제현이 기적상회를 내놓는 상황이 온다 해도 왕씨 가문 자체에서 이를 감당할 수도, 독식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하왕은 이 기회에 어부지리를 얻으면 되는 거였다.

참으로 군침 도는 일이 아닌가.

‘천제현이 왕천룡과 일전을 벌인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중주 신풍후마저도 영무후의 적수라고 볼 수 없었다.

영무후는 9대 제후 가운데 최소한 상위 3명 안에 속한 인물이다. 고대 왕족의 강인한 혈통과 무공을 계승한 왕천룡은 동급 천재조차 절절매게 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런데 고작 혼성 6성의 술사가 제아무리 천재여도 이 엄청난 차이를 좁힐 수는 없는 거였다.

천제현이 뭘 믿고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싸움에서 뜻밖의 결과가 빚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남궁혜가 남궁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무공이 기여한 바가 컸다. 그 무공이 불 속성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상대의 공격을 흡수하여 자신이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투에서는 천제현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천제현이든 영무후 왕천룡이든 지금으로선 모두 중요한 인물이었으므로, 남하왕도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경쟁을 허락했을 뿐 서로의 목숨이 오가는 난투전을 허락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무안군도 자리에 있으니 돌발 상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왕궁 결투장.

왕천룡이 암금색 창을 들고 걸어 나왔다. 그가 들고 나온 창은 일반 무기가 아닌 고대 왕족이 남긴 용식창(龍息槍)이었다.

그 창의 재료는 거대한 용이 사는 동굴에서 발굴했다고 전해졌다. 수백 년 묵은 용이 그 숨결을 동굴 암벽에 끊임없이 불어넣어 금속 광석으로 응결시킨 후 자연적으로 제련하여 용식철(龍息鐵)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하왕족은 희귀 3급 반성재료인 용식철을 손에 넣은 후 외국의 장인을 초빙하여 반 불멸 혼기로 주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용식창인 것이다.

이 창은 진정한 불멸 혼기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 혼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위력을 자랑했다.

용식창에 담긴 용의 숨결은 혼성 술사의 호신마력과 불 속성 방어 무공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왕천룡은 3년 전 혼성 9성에 이르렀고, 이때에도 혼성 9성 정점의 견융족 고수를 벤 적이 있었다. 이는 그가 가진 절대적인 실력 외에도 이 창이 기여한 바가 컸다.

이에 반해 천제현은 대체 뭐가 있는가? 용식창을 휘두르기만 하면 어떤 갑옷도 산산조각이 나 버릴 텐데.

천제현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유일한 변수는 무안군이 어느 시점에 나서느냐이다. 무안군은 실력 면에서 남하의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천제현을 죽이는 건 녹록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결투장에서는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므로 천제현을 죽인다 한들 남하왕이 왕천룡을 해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제현은 어째서 나오지 않는 거야?”

“자기가 도전한다고 해놓고, 막상 시간이 되니까 무서운 거 아니겠어?”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천제현이 최상급 혼기 갑옷을 두르고 유명검을 손에 든 채 등장했다. 그의 어깨에는 하얀 여우가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칠흑같이 까만색 옷을 입은 사람 18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왕도가 분개하여 말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결투장에서 외부의 힘이라도 빌리겠다는 거야?”

천제현은 왕도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왕도 장군, 본인도 결투할 때 탈것을 가져오지 않았소?”

왕도는 탈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난 탈것과 20년 넘게 동고동락해왔다. 이미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지. 무공과 진법 모두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어! 군인이 탈것과 함께하는 건 당연한 데 어째서 가져오면 안 된다는 것이냐?”

천제현이 새끼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신수는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자랐소. 이미 영수 계약까지 맺은 상황이라 몸과 정신 모두 서로 통하고 있으니 이 역시 나와 한 몸이라고 할 수 있소.”

퉤!

새끼 여우가 침을 뱉었다.

누가 너랑 몸과 마음이 통한다고!

천제현은 새끼 여우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제가 이 여우를 데리고 출전하는 게 잘못된 것인가요?”

“신수와 맹약을 맺었다면 신수 역시 술사가 부리는 무기의 일부이자 술사의 실력이기도 하지. 신수를 데리고 결투하는 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세.”

남하왕이 천제현 뒤에 있는 흑의인 18명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나 저 사람들까지 동원하는 건 결투 규칙에 어긋나네.”

“폐하, 보십시오!”

천제현이 방울을 흔들자 흑의인 18명이 두루마기를 벗어 던졌다. 장내 사람들이 흑의인의 모습을 보자 그대로 얼어 버리고 말았다.

‘저게 사람인가?’

근육들이 하나같이 솟아올라 굉장히 강인해 보였다. 피부는 온통 칠흑같이 검은 딱딱한 껍질과도 같았으며, 양쪽 눈은 마치 깊디깊은 동굴처럼 푹 파였고 거기에 선홍색 불빛이 미약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가느다란 핏줄은 흡사 문신처럼 몸통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확대경으로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 핏발 중앙으로 혈액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강시 호위대로 자가 의식 없이 완전히 제 통제 하에 있습니다.”

천제현이 방울을 흔들자 강시들이 동시에 한 발짝 성큼 걸어 나왔고 동작은 작은 차이 하나 없이 완전히 똑같았다. 이는 정밀하게 만든 기계와도 같았다.

“이것들도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천제현이 바보도 아닌데, 정말 굴욕을 자처하겠는가.

혼성 6성 실력으로 혼성 9성 정점의 강자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천제현은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바로 주 정령을 소환하는 것.

천제현이 이 세계에 온 후 마주친 소위 강자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특히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은 대부분 주 정령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제현이 어떠한 대가도, 피해도, 결과도 개의치 않고 주 정령을 소환한다면 삼군이 와도 능히 겨룰 만했다.

문제는 이럴 경우 천제현 자신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거였다. 따라서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특수한 힘 없이는 혼성 6성 술사가 혼성 9성 정점의 실력자를 상대하여 이길 확률이 거의 없거나 아예 불가능했다.

따라서 천제현은 새끼 여우나 신혈강시 등 다른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강시였구먼.”

“정말 기괴하게도 만들었네.”

“이 강시들이 도구고 무기라면 전투장에서 사용해도 좋다.”

남하왕과 왕씨 가문 사람 모두 이견이 없었다. 자가 의식도 없는 강시는 일반적으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고, 기관사가 기관수를 대동했다고 이것이 경기장 규칙을 위배했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왕천룡과 왕씨 가문 사람들도 강시의 기운이 약하진 않았으나 왕천룡을 제압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왕씨 가문 사람들도 딱히 반대 의견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천제현이 아무리 꼼수를 부려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댕!

무안군이 직접 심판을 보는 가운데, 결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천룡은 마치 조각상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냉철한 눈빛으로 천제현을 바라보았다.

“천 회장이 공개적으로 나를 도발하다니,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오. 허나 그 실력에 강시까지 합세한다고 해도 그다지 승산이 없을 것 같군.”

천제현은 천연덕스럽게 대응했다.

“대인께서 저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셨다면, 제 주특기가 기적 창출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불가능한 일일수록 제 손에서는 현실이 되지요. 그러니 영무후 대인께서도 최선을 다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기대해 보지.”

왕천룡이 냉소했다.

“천 회장이 먼저 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소. 공격 한번 못 해보고 바로 질 것 같으니 말이오.”

천제현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유명검이 화염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왼손에 어혼방울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사양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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