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
제374장 봉황의 후예
남궁 일가 사람들은 모두 돌처럼 굳어졌다. 믿기 힘든 충격에 남하왕, 무안군, 문성군 등도 이때만큼은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남궁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비술이 아닌 무공이었다니!’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비술은 무공을 기초로 시전하는 일종의 술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력한 비술일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지만, 마력과 무공에 따른 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어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지면, 예전에 썼던 좋은 비술은 그저 하나의 기술로 축적될 따름이다.
그러나 무공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주로 수련하는 무공은 술사의 바탕이 되어 무공이 강해질수록 마력도 높아지고, 마력이 높아지면 무공도 강해진다.
따라서 무공의 향상은 마력의 향상을 이끄는 동시에 무공이 정체기에 빠지면, 마력도 더는 높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술사가 성장하는 데 무공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공 자체가 강할수록 발전가능성도 높아지기에 모든 술사는 무공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무공은 술사와 평생을 함께하면서, 마력이 심오해질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계륵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다.
고작 혼성 6성인 남궁혜의 파괴력이 이 정도라면, 혼성 9성, 혹은 진령급 실력자라면 그 파괴력을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더 기가 막힌 것은 남궁혜가 방금 입문 단계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고작 입문 단계의 대열반경이 입신 경지에 오른 남궁 가문 분천공을 단번에 꺾어 버렸다.
‘이것이 사람의 무공이 맞기는 한 건가? 신마에 필적할 만큼 가공한 무공이다!’
사실 대열반경은 대륙의 강성 제국 가운데 최고의 무공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 황족의 절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천제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열반경은 천제현이 후세에서 가져온 몇 안 되는 고급 무공 중 하나였다.
천제현의 마신구변보다 약간 낮은 급이긴 했으나 족히 한 시대를 호령할 수 있는 절세신공이었다.
이러한 무공은 수련하기도 힘들뿐더러 하루아침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도 없었다.
천제현이 남궁혜에게 대열반경을 전수할 때에도 그녀가 단번에 익힐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남궁혜가 최소 진령급 경지에 도달해야 기본적인 단계를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고, 무엇보다도 수련 시 필요한 재료들이 많아 현재 기적상회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부족했다.
얼마 전 동방호연이 도전했을 때만 해도 남궁혜는 아예 모르는 수준이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습득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니고 뭐겠는가.
남궁혜의 마력은 혼성 6성에 불과하여 외부적인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것도 터득할 수 없다. 소성 단계조차 오르지 않은 채 대열반경의 힘을 일부나마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천제현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불 속성 신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어 무공 수련이 수월해졌나? 불가능해! 기껏해야 일반 불 속성 무공에만 효과가 있을 텐데!’
대열반경에서 신급 정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게다가 남궁혜의 봉황 정령은 신급 정령이기는 하지만 그 힘이 강한 편이 아니어서 신급 정령 중 하급에 속했다.
아무리 무공과 완전한 합을 이루었다고 해도 이토록 빨리 배울 수는 없었다.
‘남궁혜 가문의 혈통과 관계가 있나?’
남궁 가문은 스스로 봉황의 후예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조상 가운데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사람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 후손에게 이 같은 잠재력이 있는 거고?’
남궁혜가 운 좋게도 그 잠재력을 폭발시켜 대열반경의 힘을 각성한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궁혜의 잠재력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나구나!’
어떤 이유에서든 남궁혜가 순조롭게 입문 단계에 진입했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대열반경의 위력으로 봤을 때, 남궁혜가 이 무공을 수련하게 되면 천하의 어떤 불도 그녀를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남궁혜는 혼성 경지에 있으므로 웬만한 화염에 면역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남궁검이 방출한 힘은 남궁혜의 머리카락조차 해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궁혜의 힘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열반경을 대성 경지까지 수련하면 남궁혜는 모든 화염에 면역을 갖게 되어 아무리 뜨겁고 강한 힘이라도 남궁혜를 태울 수 없을 것이다.
남궁혜가 천운을 타 입신 경지까지 수련할 경우, 미약한 힘만 있으면 언제든 소생할 수 있는 봉황의 몸이 된다. 그리고 오늘 남궁혜가 그 편린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궁 가문 사람들이 놀란 이유였으며, 천제현이 남궁혜를 중용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천제현은 남궁혜에게 무공을 전수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녀를 이 같은 인물로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앞으로 그녀는 이 무공을 토대로 대륙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궁혜는 남궁검을 가볍게 쓰러뜨리고 단시간에 체력까지 회복했다.
“우리 가문의 3세대 중에서 가장 대단한 인물로 여겨지는 자가 고작 이 정도라니! 성광불멸체, 대열반경 보다 더 대단한 무공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제가 밖에서 수련하는 걸 막는 거죠?”
남궁 가문 사람들은 순식간에 공기 빠진 풍선처럼 기가 죽어 버렸다.
남궁 가문이 고대부터 간직해온 절학이 남궁혜가 펼친 무공에 비하니 한낱 쓰레기에 불과했다.
염양군의 눈빛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가 사뭇 진중한 태도로 물었다.
“정말 대열반경의 입문 단계밖에 수련하지 않았느냐?”
“대인, 무공을 얻어낼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천제현이 염양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물론 이 무공을 대인께 드릴 수도 있지만, 이 대열반경을 수련하려면 기본적으로 봉황 정령을 소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사실상 남궁 가문에서 이 무공을 얻는다 한들 남궁 아가씨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게다가 이토록 강한 무공이 소국이나 일개 가문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것 역시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천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궁혜가 대열반경을 시전했을 때 무공의 힘과 봉황의 힘이 하나가 되었다.
이를 본 염양군도 신급 정령 소환자 중 봉황을 소환할 수 있는 자가 수련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남궁혜는 하늘이 내려준 실력자였으니 천제현이 그녀를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염양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남궁 가문은 남궁혜라는 절세의 천재 하나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이 이 절세의 천재를 천지음양에 능통한 희대의 기재에게로 이끈 것이다.
이 자의 손에서 그녀는 더욱 찬란히 빛나 염양군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봉황 가문의 궁극적인 힘이 그녀를 통해 소생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편, 염양군과 생각이 다른 이화후는 분노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대인, 가문의 3세대 인물 중에서 가장 출중한 인재를 잃었는데 설마 이 울분을 참으려는 건 아니시지요?”
“시끄럽다! 진건 진거지! 남궁 가문 사람은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해!”
염양군이 엄한 목소리로 책망하긴 했으나 그 역시 속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모습이 잠깐 사이에 폭삭 늙어 버린 것 같았다. 어쨌든 남궁검은 그가 가장 아끼던 손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남궁혜를 보며 말했다.
“네가 입으로 뱉은 말을 잊지 말거라!”
남궁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영원히 봉황의 후예예요!”
이화후는 염양군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궁혜가 전도유망한 실력자임을 알고 더는 이 대단한 천재를 억압할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흥!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화후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남궁검을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
‘남궁 어르신이 늙긴 늙었군.’
문성군은 염양군의 표정을 살피며 속으로 길게 탄식했다. 곧이어 그의 눈빛이 천제현에게 박혔다.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워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저 녀석은 뭔 비밀이 이리도 많은가?’
남하왕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그가 집권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천제현, 남궁혜, 기적상회 등 통제 불가능한 요소가 너무 많아 남하왕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남궁혜의 실력이 눈에 띄게 발전했군!”
남하왕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복잡한 상황일수록 냉철하게 살펴야 하므로 지금 당장은 태연한 척해야 했다.
“이런 기재를 썩힐 수야 없지! 남궁혜를 왕궁기사단의 명예 기사로 임명하고, 혼기 10개, 성단 10개, 보약 10상자를 하사하노라.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남하국을 빛내는 데 앞장서다오!”
“폐하, 영명하십니다!”
사람들이 잇따라 그를 칭송했다.
‘공짜 선물을 안 받으면 나만 손해지!’
남궁혜는 재빠르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공서련은 망토를 벗어 남궁혜에게 걸쳐주었다. 방금 일전을 끝낸 남궁혜 몸에는 최상급 혼기 방어구가 모두 불타 없어졌고, 그 바람에 그녀의 은밀한 부위가 거의 노출될 지경이었다.
“남궁 언니, 정말 멋져요!”
공서련이 선망의 대상이 앞에 있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제현 그놈보다 훨씬 더 대단해요!”
“에헴!”
천제현이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뭐라는 거예요!”
공서련이 혀를 삐쭉 내밀었다.
“내 말이 맞잖아!”
지금의 천제현은 남궁혜를 제압할 정도로 강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일이 대충 마무리되고 다들 한숨 돌리던 그때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비행마수의 그림자가 저공 상태에서 스쳐지나가더니 돌연 흩어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온 것인가?”
남하왕은 눈빛을 번뜩이더니 즉시 손을 흔들었다.
“맞을 준비를 하여라!”
양쪽 의장대가 연주를 시작했고 북치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육중한 망치로 땅을 치는 것처럼 간담을 서늘케 하는 힘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커먼 그림자 부대를 응시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기병부대였다. 그러나 그들이 타고 있는 것은 일반 전투마도, 천리마도 아니었다.
그들이 타고 온 것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마수로 전신이 새까만 비늘로 뒤덮여 마치 철갑을 두른 것 같았다.
공서련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건 지룡이 아닌가요? 그런데 엄청 많네요!”
천제현과 공화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