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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70화 (366/729)

# 370

제370장 제후가 되겠는가

무안군은 갑옷 대신 간소한 훈련복 차림이었지만 그 존재감만은 여전했다. 마치 날이 선 보검 혹은 산 정상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 매 같았다.

무안군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덕분에 천제현은 지금껏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마력 무기 설계도를 동방 가문에 넘긴 직후, 무안군과 국왕은 즉각 자체 인력을 꾸려 무기 생산 연구에 돌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안군은 곧 천제현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설계도에는 마력 탄창 부분이 빠져 있었다.

남하 유일의 마력 탄창 생산지는 바로 중주였다.

다시 말해 왕성에서 마력무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기적상회에서 탄창을 사들이지 않는 이상에야 신식군대 조직은 물 건너간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안 국왕은 불같이 역정을 내며 힘으로라도 탄창 제조기술을 받아내려 했다.

그런 왕을 막은 게 무안군이었다. 무안군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천제현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천제현이 등에 업은 세력이 어디 한둘이던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무안군은 마력 탄창의 원료가 수정의 눈물이라는 사실 역시 알았다.

남하국의 수정의 눈물 매장량은 대부분이 중주에 몰려 있었다.

기적상회 설립 초기에 건설된 전지 공장은 생산체계의 틀이 완전히 잡힌 상태였고, 광산이란 광산은 거의 모조리 이들의 손에 장악된 뒤였다.

이제 와서 자체적으로 마력 탄창을 생산하려면 탄창 설계도만이 아니라 마력전지 설계도까지 필요했다. 어디 그뿐이랴, 기적상회의 손에서 광산을 빼앗아 와야 했다.

그건 천제현에게 명줄을 내놓으라는 거나 마찬가지 요구였다.

광산에서 채굴되는 자원은 기적상회의 모든 상품에 쓰이는 동력원이 아니던가.

게다가 무기별로 탄창도 제각각이거늘 왕성에는 개발 능력이 없었다. 괜히 천제현을 건드렸다가 협력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 버릴 공산도 컸다.

“동방 가문 실험실이 두 달간의 연구 끝에 마력권총 탄창의 용량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냈네.”

무안군이 설계도 한 장을 꺼내 천제현 앞에 펼쳐놨다. 극도로 복잡한 마력진이었다.

“탄창 마력이 고갈되면 그때부터는 소지자가 자신의 마력을 주입해 마력탄을 발사하는 방식일세!”

고천추가 놀라서는 되물었다.

“이걸 자체적으로 설계했단 말입니까?”

상경 신분인 고천추가 동방 가문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기적상회에도, 고천추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런 대규모 설계 작업을 마치다니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설계도가 완벽했다면 절 부르지도 않았겠지요!”

천제현이 눈을 흘겼다.

“인력과 자금은 잔뜩 들이부었는데 연구 진척은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도움을 청한 거 아닙니까!”

무안군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동방 가문은 기적상회보다 완성도 높은 무기를 보유할 욕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몰랐던 사실이 있으니, 현존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쯤이야 천제현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도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도안을 뜯어보던 고천추가 말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로군요. 부분 부분은 완벽해 보이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해요.”

천제현이 도안을 쓱 훑어봤다.

“여기 몇 가지 핵심 주문에 오류가 있는 탓에 진법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이렇게 만들면 무기가 몹시 불안정해져요. 시험 발사 때마다 총신이 파열됐을 겁니다.”

무심하게 붓을 들어 몇 군데를 고친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이거면 될 겁니다. 가져가서 시험해 보세요.”

‘이토록 쉽게?’

동방 가문 연구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안군이 마력 권총을 직접 시험해 본 결과, 총알이 정말 문제없이 발사됐다. 이로써 마력 무기는 한 단계 더 발전을 이뤄냈다. 마력 탄창 없이도 사용자의 마력으로 총을 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용자의 마력에 따라 총알의 위력 역시 달라진다.

무안군은 갑갑한 심정이었다. 동방 가문이 초빙해온 인력은 전부 이름 좀 날린다는 진법사들이었다.

심지어 거금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 빼내온 인재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몇 날 며칠을 머리 싸매고 매달리고도 풀지 못한 문제를 천제현은 단번에 해결해내다니,

‘누가 나서느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것인가?’

마력무기 개발에 있어 천제현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벌써 마력권총 오백 자루가 만들어졌고 생산속도는 계속 빨라지는 추이야. 지금은 하루에 이, 삼백 자루까지 생산이 가능하다네.”

무안군이 천제현에게 공장 현황을 소개했다.

“하지만 마력 기관총은 이제 막 연구개발에 돌입한 단계네.”

“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오히려 늦었지!”

무안군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루 생산량이 마력 권총 천 자루 이상, 마력 기관총 삼백 자루 이상에 도달하는 그날, 난 북벌에 나설 생각이네!”

‘뭐? 무안군이 견융초원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놀라 자빠질 만한 소식이 아닌가.

“견융족이 내란을 치르던 이십 년은 우리 남하국에겐 힘을 기를 기회였네. 당장에라도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군대가 백 만일세. 거기에 이 마력무기가 더해진다면 견융족쯤이야 뭐가 무섭겠나?”

무안군이 문득 말을 멈추고 천제현을 응시했다.

“큰 공을 세울 기회네. 흥미 있나?”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전쟁에 대해선 아는 게 없습니다만.”

“자네를 부지휘관으로 쓰지. 아무것도 할 필요 없네. 마력무기를 만들어준 공로만으로도 왕성에 돌아오면 제후급 대접을 받을 걸세!”

무안군이 천제현을 보며 덧붙였다.

“아직 새파랗게 젊으니 앞으로 군 작위도 노려볼 수 있겠지. 지금 자네한테 엄청난 기회를 주는 거야!”

천제현이 대답을 어물쩍 넘겼다.

“아니요, 전쟁에도 관심 없고 작위라면 더 관심 밖입니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이 그저 무안군을 따라 전장만 한 바퀴 돌아보고 오면 제후 자리를 준다는데. 제후에 오르면 별도의 영지도 따라올 테니 세력을 굳히는 데 막대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견융족은 자기들 싸움에 바빠서 인간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 시기에 기습한다면 씨족 몇 개쯤은 단번에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싸움이었다.

그야말로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무안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해득실을 잘 따져보길 바라네. 아무 때나 오는 기회가 아니야. 작위를 받으면 지금과는 지위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세. 그때는 국왕도 함부로 못 할 테고 기적상회도 더 든든한 배후를 얻는 거란 말일세!”

남하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는 제후 자리.

천성하가 그렇게나 주목을 받으며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후’로 봉해질 자질을 갖춘 덕택이었다. 그가 작위를 받기만 하면 추종자들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게 뻔한 일, 그러니 너도나도 앞다퉈 달라붙을 수밖에.

‘후’에 봉해지고 나면 영지를 하사받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세수와 천연자원은 왕성에 상납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모조리 본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작위만 받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누워서 들어오는 돈이나 세고 있어도 되는 것이다.

물론 남하국의 작위 세습제도에는 제후의 태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으려면 반드시 나라에서 정한 무공 실력, 명망, 공적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작위는 다시 왕국에 회수됐다.

바꿔 얘기하자면 가문이 특별히 기울지 않는 한 작위 역시 대대손손 계승이 가능했다.

제후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실리 또한 톡톡히 챙길 수 있는 자리였기에 집안 전체가 벼락출세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천제현처럼 젊은 나이에 ‘후’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은 남하국 역사를 통틀어도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이런 제안에 콧방귀조차 안 뀌다니?’

천제현이 영원히 이 작은 나라에 안주할 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무안군도 잘 알았다.

그에게 작위는 되려 속박이 될 것이다. 돈과 자원? 천하의 기적상회가 그걸 아쉬워하겠는가? 그렇다고 과시욕이 있는 자도 아니니 더욱이 귀찮은 일에 얽히려 들 리가 없었다.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지만 싫다는 걸 강요해 봤자 역효과만 날 게 뻔했다. 지금으로서는 혹시라도 천제현의 생각이 바뀌기를 잠자코 기다려보는 게 최선이었다.

“이 일은 우선 차치하고.”

무안군이 화제를 바꿨다.

“요즘 행보가 너무 눈에 띄는 것 같던데, 괜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인 천제현이 자포자기한 투로 말했다.

“솔직히 눈에 띄나 안 띄나 다를 게 뭐겠습니까? 세상살이,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죠.”

기적상회와 천제현은 그간 수많은 이들의 기득권을 위협해왔다.

필연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는 갈등, 천제현이 무마하려 한다고 무마될 일도 아니거늘 이 마당에 몸은 사려서 뭐하겠는가?

“알긴 아는군.”

무안군이 내놓은 답변은 애매했다.

“어쨌든 이 점은 기억하게. 염양군과 문성군은 자네를 쉽게 건드리지 못해.”

“어째서요?”

“그 둘은 중주의 가주들과는 다르네. 무슨 말인지는 차차 알게 될 테니 구구절절 설명은 않겠네. 지금 경계해야 할 상대는 염양군과 문성군이 아니라 왕씨 집안이야.”

“네? 왕씨 집안이요?”

무안군의 근엄한 표정만 아니었다면 농담인 줄 알았을 것이다.

최근 왕씨 집안은 옆에서 보기에도 불쌍할 지경으로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반격은 무슨, 애초에 그럴 힘이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게 아닌가?

이때,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무안군이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오늘 연회를 조심하게.”

순간 선홍색 그리핀 한 마리가 창공에서부터 급강하해 내려왔다. 그리핀의 등에 훌쩍 올라탄 무안군은 아까 남긴 말을 끝으로 먼저 왕성을 향해 출발했다.

“영 평소 같지 않군. 아마도 뭔가 슬쩍 일러주려는 의도 같네.”

천제현이 옆에 있던 고천추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뭔지 눈치챘습니까?”

고천추가 심각한 투로 대꾸했다.

“경고인 것 같습니다. 연회에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나 봅니다.”

“어휴, 지금 장난해요?”

천제현이 짜증스러운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그 정도도 못 알아들을 바보로 보입니까? 좀 새로운 걸 말해 보라고요!”

“어음…….”

고천추가 어쩔 줄 모르며 식은땀을 훔쳤다.

“연구소에만 틀어박혀 있느라 조정 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오늘 연회에 나타날 거라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무안군이 조심하라는 게 아마 그들인 것 같군요.”

“그게 누군데요?”

“우선은 일품군후(一品軍候) 이화후가 있습니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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