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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66화 (362/729)

# 366

제366장 남하왕의 요청

사실 천제현도 거의 힘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멀쩡한 척하며 염마변 상태에서 벗어나 미소를 지으며 동방호연을 바라봤다.

“왕자님, 어떠신지요?”

“내가 졌다!”

동방호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해 하지 말거라. 내 반드시 너를 이길 터이니.”

그러자 천제현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때, 문 밖에서 왕의 행차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국왕 폐하 납시오!”

공화련 자매와 심빙우, 기적상회 사람들, 그리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모두 깜짝 놀라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예를 차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이윽고 왕포를 입은 남자 한 명이 사람들 사이를 뚫고 어두운 얼굴로 기적상회로 들어왔다.

중상을 입은 동방호연을 본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여기엔 왜 온 것이냐? 내 말이 우스운 게냐?”

동방호연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전부 소자의 불찰입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 대결은 소자가 먼저 제시한 것이며, 소자가 졌습니다. 아바마마, 천제현을 나무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서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엇 하는 게냐!”

남하왕은 매서운 눈초리로 주변에 눈짓을 했다. 하인들이 다친 동방호연을 부축해 데리고 나가자, 그는 다시 천제현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천제현 학사는 과연 대단하군. 오랜 시간 동안 호연을 이긴 젊은이는 본 적이 없는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 천제현에게 놀라고 있었다.

학식에 있어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걸로도 모자라 전투적인 자질도 끝을 알기 어려울 정도라니.

‘이런 자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무시무시한 인물이 되리라!’

천제현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폐하, 과찬이십니다. 왕자 마마께서 져주신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왕자에게 중상을 입혔단 말이냐?”

“왕자 마마께서는 실력이 심후하신 데다 성정까지 불과 같으시니 두려움에 중간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한 순간 실수로 왕자 마마께 상처를 내었으나 이는 전부 사고에 불과합니다!”

천제현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으니 소인,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며 용서를 청하고자 합니다.”

사실 남하왕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일로 천제현을 벌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그는 정말 천제현에게 도움을 구할 일이 있어 온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분을 참아야 했다.

“알겠네. 그럼 기적상회의 술은 뭐가 다른지 맛이나 볼까?”

남하왕은 자신이 천제현을 한참 얕잡아 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가 남하국을 위해 일한다면 장차 국가의 동량이 될 것이다. 반대로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첫째, 천제현이 더 성장하기 전에 밟아 버리는 것.

둘째, 천제현의 세력이 더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사실 남하왕의 성격으로는 첫 번째 선택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절대적인 통치를 원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국가의 미래가 될 인재라도 미연에 잘라내 향후 자신의 세력에 위험이 될 요소를 제거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천제현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적상회는 이미 꽤 큰 세력을 형성한 상태였다. 백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성 9성 정점의 심빙우 같은 고수들이 그를 돕고 있었다.

그뿐인가? 상어해적단처럼 거대한 세력이 그를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왕성에는 무안군과 대학자가, 지방에는 신풍후와 금전후 등이 그를 돕고 있었으므로 자칫 그를 잘못 건드리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현재 남하국에 천제현과 같은 인재가 몹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남하왕은 지금 비밀리에 연구 개발 중인 마력무기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력무기가 군대에 보급되면 남하국은 언제고 견융족에 반격할 수 있을 것이며, 남하왕 또한 역대 국왕들이 이루지 못한 대업을 이뤄 동방 가문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러한 각종 가능성을 따져 봤을 때, 천제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니, 건드리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든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남하왕은 뛰어난 임금은 아닐지 몰라도 수십 년간 왕좌를 지킨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싫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의 중요성은 더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대국을 살펴야 하는 법이니까.

천제현은 짐짓 속죄하는 척하며 술을 올렸다.

“젊은 혈기에 서로 무공을 겨룬 일을 짐이 마음에 둘 리 없지 않겠는가?”

남하왕은 방금 일어난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경쟁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지. 짐은 오히려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바이네. 천제현 학사는 이 나라의 동량 아닌가. 성격은 좀 직설적인 데가 있지만, 인품은 믿을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짐은 자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네. 이 정도 작은 일을 마음에 쌓아둘 리 없지!”

공화련 자매는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한 말이 진심이든 연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했으니 나중에 이번 일을 꼬투리 삼아 천제현에게 벌을 주지는 못하리라.

“좋은 술이로다! 좋은 술이야!”

밀주를 맛본 남하왕은 찬사를 늘어놓았다.

“천 학사는 머리만 좋은 줄 알았더니 술 담그는 솜씨도 일품이구먼. 왕자가 철이 안 들어 늘 걱정이었는데 자네 같은 인재가 있으니 한시름 놓아도 되겠어.”

그 말에 천제현이 웃으며 말했다.

“왕자 마마의 뛰어난 자질은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음? 그리 생각하는가?”

남하왕은 술잔을 내려놓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천제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자네는 호연에 대해 어찌 평가하는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격의 질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몇 초 생각하지도 않고 즉시 대답했다.

“왕자 마마께서는 충분히 이 나라의 기둥이 되실 분입니다!”

남하왕은 그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인 즉, 호연이 무안군의 뒤를 잇는 건 괜찮아도 남하왕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뜻인가?”

그건 사실이었다.

동방호연의 성격은 무안군에 더욱 가까웠다.

“됐다. 이 얘긴 여기서 그만하기로 하지.”

남하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천제현의 평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짐은 기적상회의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드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과 함께 영화를 한 편 만들었으면 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전부 국고에서 지원하겠네. 제작비도 섭섭하지 않게 챙겨 주기로 하지. 영화 개봉으로 인한 수익은 동방 가문과 기적상회가 균등하게 나누고. 어떤가?”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기적상회 일원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하왕이 모든 제작비를 대고, 상영 수익도 절반만 가져가겠다고?’

‘좋은 건 다 기적상회에게 주겠다는 의미잖아.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러나 천제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그렇다면 폐하의 요구사항은 무엇인지요?”

“요구는 하나뿐일세. 주인공의 모습과 줄거리 모두 동방 가문에서 제시하는 거지. 기적상회는 제작과 영화 배급만 맡아 주면 되네.”

‘그거였군!’

남하왕은 기적상회의 영화를 본 후 그것이 가져오는 영향력에 대해 느낀 바가 컸다. 그래서 이 틈을 타 왕실 홍보영화를 제작함으로써 가문과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주문 제작형 영화는 처음부터 기적상회의 계산 안에 있었다. 다만 그 첫 번째 투자자가 남하왕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

어떤 면에서는 남하왕의 비범한 통찰력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고 그 영역에서 첫 번째 개척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게…… 이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서 단순한 흥미 위주의 작품을 제작하려고 합니다만.”

“걱정할 게 뭐 있겠나? 기적상회가 할 수 있는 건 짐도 할 수 있네. 영화에 기적상회 사람들이 출연하는 것도 허락해 주지.”

“폐하께서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 건지요?”

“그야 물론 왕국의 부흥, 그리고 견융족과 맞서 싸운 동방 가문의 용맹한 과거 이야기 아니겠나? 건국 시기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예술 가공 형태로 바꾼 대작을 제작하고 싶네. 짐은 10부작 이야기로 만들어 동방 가문의 눈부신 모습을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기고 싶네만.”

‘장편 영화로 만들고 싶다 이거군.’

이렇게 엄청난 계획을 오직 홍보를 위해서 쓰겠다니, 동방 가문의 야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천제현은 의견을 구할 의도로 옆에 있는 공화련에게 눈짓을 했다. 상회 관리에 있어서는 공화련이 천제현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받아들일지 말지도 그녀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생각이었다.

공화련은 천제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남하왕을 보며 말했다.

“왕실과 함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니, 기적상회의 무한한 영광입니다.”

“잘됐군!”

남하왕은 시원하게 말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대하국의 봉화>로 하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역사 대작이 나왔으면 하네. 수천 년, 수만 년 후에도 동방 가문의 자손들이 그것을 보며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말이야!”

이렇게 둘의 협력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그럼 이 일은 그렇게 정해진 걸로 알겠네.”

남하왕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이제 짐은 그 모자란 아들놈을 보러 가봐야겠군. 그럼 이만!”

“폐하, 살펴 가십시오!”

기적상회 사람들은 공수하며 남하왕을 배웅했다.

남하왕이 떠난 후, 공서련과 남궁혜 등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들이 본 사람이 정말 왕성쌍교로 불리는 동방호연이란 말인가?

그리고 방금 그 사람이 정말 남하국에서 지고무상한 지위를 갖고 있는 남하왕이란 말인가?

공서련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어째서 소문과 다른 거지? 그 왕자, 무슨 나무토막 같던데. 국왕도 소문처럼 제멋대로는 아니고. 오히려 다가가기 쉬운 부류잖아?”

남궁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화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하국은 소국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 나라에서 왕이 됐다는 건 남들보다 뛰어난 데가 있다는 소리야. 삼군조차 남하왕한테는 꼼짝을 못하잖아? 남하왕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한 인물은 아닐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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