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
제364장 천제현 대 왕자
사실 성광불멸체가 바로 그런 종류의 무공이었다.
그러나 성광불멸체의 반탄력에는 한계가 있고, 무공 수준이 올라야 반탄력도 올라간다. 공서련의 ‘거울 정령’과 특수 장비를 통한 힘 증폭 효과가 없을 경우 남궁혜가 낼 수 있는 반탄력은 동방호연에 절대 미치지 못했다.
즉, 남궁혜는 망치로 자신의 몸을 내리친 셈이었다.
반탄 강도가 8할이나 되는, 무시무시한 방어무공이었다.
정(精)으로 동(動)을 제압하듯, 상대의 공격을 반격으로 바꿔 버린 동방호연은 단번에 남궁혜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동방호연도 멀쩡한 건 아니었다.
남궁혜의 엄청난 힘에 무장 정령이 형태화된 방패가 산산조각 났고, 그중 일부가 그의 몸 위로 날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었다.
‘강한 여자군.’
이 정도라면 천성하와도 족히 겨뤄 볼 만할 것이다. 가문에서 제대로 키워 주기만 한다면 동방호연의 호적수로 크지 못하리란 법도 없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동방호연은 사냥감이라도 본 양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투 내내 끊임없이 남궁혜를 평가했다. 그녀는 앞날이 기대되는 상대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강해지면 좋으련만.’
그때, 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등에서 얼음처럼 투명하고 싸늘한 보검을 뽑아 들고 여인들 사이를 걸어 나왔다.
천제현이었다.
그는 동방호연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잠깐 휴식할 시간을 드릴까요?”
동방호연은 대꾸했다.
“이 정도 대결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시간이 아깝구나!”
공화련은 황급히 잔뜩 약이 오른 남궁혜를 막아섰다. 동방호연의 성격은 좀 짜증나는 데가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솔직한 편이었다. 남궁혜와 몇 초 겨뤘다고 큰 영향을 받았을 리도 없었다.
동방호연의 진짜 실력은 혼성 9성에 달해 있었다. 그가 전력으로 상대한다면 남궁혜와 천제현 모두 한두 초 안에 쓰러질 것이다.
마력을 낮췄다고 해도 전투력은 그대로였다. 그 엄청난 마력은 천제현과 남궁혜가 상대할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번엔 소인이 왕자님과 한번 놀아 드리죠!”
천제현이 목과 양팔을 풀며 말했다.
“왕성에 온 이후로는 누군가와 겨뤄 본 적이 없습니다. 보름 넘게 가만히 있었더니 그렇잖아도 몸이 쑤시던 참입니다!”
“세 초 안에 쓰러져서 흥이나 깨지 마라.”
“물론이죠!”
천제현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검법을 시전해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글거리는 검광 몇 줄기만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동방호연을 향해 덮쳐 갔다.
“좋은 검법이구나!”
동방호연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상대의 검법은 파괴력만 강할 뿐 아니라 그가 미처 준비도 하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기습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속도와 폭발력뿐만 아니라 지속성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폭풍우 같은 공세로 순식간에 상대의 방어를 파괴하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동방호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일종의 본능 같은 반사 신경이 형성된 그다.
그는 순식간에 정령의 힘을 극대화시켜 온몸을 뒤덮었다. 정령은 즉시 견고한 갑옷 형태로 변해 그의 몸을 단단히 방어했다.
챙! 챙!
천제현이 연속으로 두 번 검을 휘두르자 검의 잔영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동방호연을 덮고 있는 갑옷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갑옷을 뚫고 그에게 타격을 준다는 건 턱도 없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오만 방자하더니,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군.’
동방호연의 방어력은 천제현이 이 시대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강력했다. 금강체 수준의 성광불멸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 방어력이라면 방어력 빼곤 아무 것도 없는 술사라 해도 충분히 같은 급의 고수들 사이에서 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으리라.
“겨우 이 정도인 것이냐!”
동방호연의 정령이 다시 한 번 강력한 힘으로 일렁였다. 이윽고 그 힘이 그의 두 손에 가서 응집되더니 화려한 칼로 변했다. 순수하게 마력만으로 형성된 그 칼날은 자수정처럼 투명했으며 화염으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동방호연은 심안을 열어 천제현의 위치를 파악한 후 그 이글거리는 검을 휘둘렀다.
보라색 칼이 아래에서 위로 공기를 가르며 올라가자 날카로운 바람이 일었다. 검기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회오리바람처럼 사방팔방에서 천제현을 향해 덮쳐왔다.
천제현은 동방호연의 신식에 움직임이 다 드러난 상태였으므로 어디로 숨든 공격을 피할 수 없는 처지였다.
공화련 자매와 남궁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의 일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 가는 대로 휘둘러서 나온 힘일 뿐. 그런데도 엄청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급의 천재들은 감히 명함을 못 내밀 실력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그 날카로운 공격 앞에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피할 수도, 방어할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는 즉시 신마검 정령을 소환해 유명검에 정령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유명검의 힘이 일시에 열 배 가까이 폭증하며 검기가 하늘을 뚫고 솟아올랐다.
유명검은 곧 유명화의 힘을 응축해 노염참을 시전했다.
-쾅!
동방호염의 검기가 일검에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정령이 변해서 만들어진 자수정 칼도 굉음과 함께 부러졌다.
동방호연은 급히 뒤로 몇 장 물러났다.
그 과정에서 조각난 검기들이 천제현의 몸을 덮쳤으나 그 정도쯤은 방어력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동방호연은 천제현의 검법이 이 정도로 심오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천성하를 쓰러뜨린 게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동방호연이 착각한 게 있었다.
바로 천제현과 천성하는 같은 단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대결에서 이겼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자신보다 높은 등급의 상대를 쓰러뜨린 천제현이다. 만약 천성하와 천제현의 마력이 같은 단계였다면 천성하가 감히 천제현과 겨룰 수나 있었을까?
동방호연은 이것을 몰랐기에 지금과 같은 대결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는 동등한 단계의 천제현을 쓰러뜨린다면 천성하에게 이긴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자님, 이렇게 빨리 포기하시는 건가요?”
천제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직 보여드릴 초식이 많습니다만!”
동방호연은 정령이 변해서 만들어진 갑옷 위에 새겨진 깊은 검흔을 보았다. 그 검흔 안쪽에서 청백색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정령 갑옷이 회복은 고사하고 조금씩 그 화염에 잠식되고 있었다.
동방가문의 무장 정령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힘의 총량은 불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어에 치중한다면 공격력이 약해지고, 공격에 치중한다면 방어력이 약해지게 된다.
정령으로 갑옷만 만들 경우 동방호연의 방어력은 성광불멸체를 뛰어넘지만, 칼까지 만들면 방어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동방 가문 정령의 장점이자 한계였다.
동방호연은 속으로 몹시 놀라고 있었다.
동방 가문의 정령이 지닌 특징은 비밀이랄 것도 없었고,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그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만약 천제현이 방금 전 일격에 더 많은 힘을 쏟아 부었더라면 그의 방어는 단번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자신 있으면 뭐든 시전해 봐라!”
동방호연은 공격 상태를 풀고 다시 한 번 정으로 동을 제압하려는 태세를 취했다.
“어떻게 내 방어를 뚫을지 보고 싶군!”
“그러시다면 보여 드리는 게 인지상정!”
유명검에서 백귀가 우는 듯한 처량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머리털이 곤두서며 공황에 빠졌고, 환각까지 보았다.
바로 유명검 제3초, 유명귀참이었다.
이 초식은 기령의 힘을 폭발시켜 육체와 정신에 모두 타격을 주는, 최강의 일초였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 이 초식에도 결점이 하나 있었는데, 일단 유명귀참을 사용하면 기령의 힘을 100% 사용하게 되어 한동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즉, 일격에 상대를 제압하지 못할 경우 이후의 싸움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아예 사용하지 않든가, 단번에 제압하든가 둘 중 하나.
그들을 지켜보던 공화련은 그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일격에 승부를 내려는 거야!”
동방호연은 천제현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령의 힘을 전부 모아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또 저 수법이네!”
방금 전 같은 수법에 당한 남궁혜였다.
“큰일인데? 대장의 공격력이 강할수록 반탄력도 세질 거라고. 정으로 동을 제압하려는 거야. 대장의 수법으로 대장을 공격하는 거지!”
그러나 그것을 모를 천제현이 아니었다.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천제현은 상대의 의도를 알면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힘을 폭발시켰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동방호연도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는 전례 없던 기대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와라! 네 회심의 일격을 보여 봐라!”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이윽고 천제현의 온몸에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그는 유성처럼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유명귀참!”
유명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그 엄청난 힘에 의해 공기까지 일그러졌다.
검은색 검광이 무서운 기세로 방패를 할퀴었다.
콰과광!
어마어마한 힘이 방패에 맞고 튕겨 나와 천제현을 덮쳤다. 그러나 강한 힘을 받아낸 방패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공포스러운 힘이 방패를 뚫고 동방호연의 몸에 떨어졌다. 그는 줄 끊어진 연처럼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가 한참 먼 곳에 떨어졌다.
정말 벽창호 같은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럴 때까지 마력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타격을 몸으로 받아내다니.
그러나 유명귀참의 힘 중 반 이상이 반사되었으니 천제현의 검이 방패와 부딪히는 순간 그의 몸도 산산조각 났으리라.
“헉!”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입가의 피를 닦는 동방호연의 얼굴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천제현이라는 놈, 머리가 어떻게 된 작자 아닐까? 이 대결이 뭐라고 동귀어진의 수법을 쓴단 말인가.’
그러나 갈기갈기 찢긴 천제현의 육신을 볼 거라 생각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가 있던 자리가 핏방울 하나 없이 깨끗했던 것이다.
거대한 화염만이 이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화염은 다시 한데 뭉쳐 흉악한 화염 악마의 형체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기령, 유명이었다.
천제현은 유명염화검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그 힘을 계속 끌어올려 따로 기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시전하는 유명귀참은 원래의 것과 성질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유명염화검법은 마지막 힘까지 쏟아 붓고 나면 한동안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천제현은 유명검의 기령을 소환해 그 기령이 직접 유명검을 잡고 유명귀참을 시전하게 한 것이다.
즉, 되돌아온 힘을 받은 건 악마, 유명이었다. 화염 악마는 원소로 이루어진 몸이라 자신의 힘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 엄청난 힘이 유명에게는 아무 피해를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다시 흡수되었다.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이지…….”
동방호연은 넋을 놓고 있었다.
“아직 놀라긴 이르십니다!”
천제현은 두 손을 휘둘러 수인을 취하며 외쳤다.
“유명, 염마변을 써라!”
“명을 따르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