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63화 (359/729)

# 363

제363장 왕자, 동방호연(2)

천제현은 나무토막 같이 무뚝뚝한 왕자를 천천히 살펴봤다.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고, 천제현을 보잘 것 없는 상대로 여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사실 동방호연은 오래전부터 중주의 천성하에 대해 듣고 있었으며, 천성하가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기재라고 생각했다. 다만 동방호연이 그보다 4~5살 더 많았고 가문의 힘도 더 강력했기 때문에 더 빨리, 더 강한 실력을 지닐 수 있었을 뿐이다.

동방호연은 나중에 천성하가 왕성에 온다면 충분히 중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때 많은 자원을 들여 집중적으로 양성하면 자신에게 맞먹는 실력을 지니게 되리라는 계산을 하곤 했다.

그것은 동방호연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왕씨 가문의 왕천룡을 제외하면 같은 나이대에서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상대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천성하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놈에게 졌다지 않는가.

간절히 대결 상대를 원하던 동방호연에게 그것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천제현은 동방호연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는 인간이었다.

‘그 뛰어난 천부적 자질을 가지고 상회나 만들고 돈이나 벌다니. 조금만 노력하면 눈부신 술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거늘, 속세에 찌들어 돈 냄새나 풍기는 상인이 되겠다는 건가.’

“그런데 왕자 마마.”

천제현이 의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왕자 마마와 저는 그 어떤 원한관계도 없는데 어째서 저를 이렇게 곤란하게 하시는 겁니까?”

“널 곤란하게 한 적 없다. 그저 알려주고 싶을 뿐. 진정한 술사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으며, 시류를 틈타 돈에 연연하는 생활도 하지 않는다. 그런 속물적인 것들은 전부 내려놓고 그대의 재능과 젊은 시절을 잘 이용하도록 하라.”

“보아하니 왕자 마마께서는 백성들의 실상을 조금도 모르시는 것 같군요!”

천제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방 가문에서 왕자 마마께 얼마나 많은 보약이며 영단들을 공급했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자원을 들여 왕자 마마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했을까요?”

동방호연은 표정의 변화 없이 되물었다.

“그건 왜 묻는 거지?”

“세상 모든 사람이 왕자 마마처럼 왕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이며 자원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진답니까? 무공을 구할 때는 또 어떻고요? 동방 가문에서 왕자 마마께 아낌 없이 지원한 것들이 마마께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시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수많은 선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지 아십니까? 온실 속 화초는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봤자 꽃병에 꽂힐 뿐입니다. 그런 왕자님이 무슨 자격으로 황야의 바위를 뚫고 자라난 야생화를 비웃는단 말씀입니까?”

동방호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온실 속 화초라니, 여태까지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방호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천제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 드린 적 없으나, 왕자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옆에 있던 공화련의 눈썹이 활처럼 위로 치솟았다.

‘큰일이다. 저 왕자는 꽤 단순한 성격 같은데 저렇게 도발하니 곧 폭발하겠구나.’

“그래, 그렇단 말이지. 동방 가문의 명예는 그 누구도 흠집을 낼 수 없거늘.”

동방호연의 눈빛에 분노가 스쳤다.

“네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곳은 기적상회 본사입니다!”

공화련이 급히 끼어들었다.

“설마 이곳에서 마마보다 약한 자에게 싸움을 거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아니, 난 그저 공정한 대결을 하고 싶을 뿐이다.”

동방호연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을 너와 같은 단계로 낮춰 싸우겠다. 바위를 뚫고 자라난 황야의 야생화는 어떤지 궁금하구나! 물론 싸우지 않아도 좋다. 겁쟁이를 괴롭힐 생각은 없으니까!”

“누가 감히 우리 대장한테 싸움을 거는 거야?”

천제현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한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개의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공서련과 남궁혜였다. 남궁혜는 제 몸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큰 망치를 들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우리 대장한테 도전하는 건 상관없지만, 그전에 먼저 저를 쓰러뜨려야 할 겁니다!”

“네가 남궁혜구나.”

동방호연은 천제현을 찾아온 당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곧 대결을 할 거란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꽤 실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남궁혜는 천제현을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다.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이 몸의 실력부터 보시죠!”

남궁혜가 펄쩍 뛰어올라 앞으로 나왔다. 앞으로 나온 그녀가 발을 구르자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제 망치 맛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엄청난 폭발력과 속도다!’

일부러 마력을 낮춘 동방호연은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곧 그의 몸에서 보라색 힘이 솟구쳐 오르더니 그의 두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선공은 남궁혜였다. 그녀의 망치가 남궁호연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동방호연의 손에 모인 보라색 힘도 망치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력로 만들어진 그 망치는 놀랍게도 남궁혜의 망치를 막아냈다. 거대한 힘에 주위의 땅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망치 두 개가 다시 한 번 부딪히자 엄청난 굉음이 울렸고, 지면이 붕괴되면서 두 사람은 동시에 뒷걸음질을 쳤다.

남궁혜의 피해가 조금 더 컸으나 금강체 단계에 오른 금강불멸체 덕분에 그 정도의 충격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동방호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왕성에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남궁혜가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마력을 낮추고 있긴 했지만, 같은 단계에서 자신을 상대할 적수는 없다고 자신했는데.

아니, 단계를 뛰어넘는 대결이라 할지라도 항상 승산이 있었던 그다. 반면 남궁혜는 남궁 가문에서 지위가 몹시 낮은 편이었고, 분천공 수련 정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동방 가문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호기결(浩氣訣) 또한 입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동방호연과 실력이 비등한 것이었다.

동방호연의 공격력이 조금 더 강한 것 같았지만, 남궁혜는 특별한 호체 무공을 익힌 듯 둘 모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힘이군.”

동방호연이 차갑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야!”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남궁혜는 거대한 망치를 들어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방호연도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보라색 망치는 다시 장창으로 변했고, 그걸 움켜쥔 동방호연은 남궁혜 주변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교활하고 악랄한 독사가 불시에 달려들어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는 듯했다.

“자신 있다면 숨지 마라!”

불길이 이글거리던 남궁혜의 거대한 망치에서 이번엔 황금색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 화염은 여태까지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가 망치를 휘두르자 황금색 화염이 금빛 봉황으로 변했다.

“제 낙봉격(落鳳擊)을 받으시죠!”

남궁혜가 전력을 다해 힘을 쓰자 금빛 봉황이 유성처럼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봉(神鳳)의 화염으로, 대열반심경의 절초였다.

동방호연은 순간적으로 그 금빛 화염의 살상력을 깨닫고 장창으로 지면을 때리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백작조양(百雀朝陽)!”

지면에 떨어진 금빛 봉황은 수백 마리의 금빛 새로 갈라져 동방호연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호기동래(浩氣動來)!”

동방호연 역시 장창을 날렸다. 그의 손을 떠난 장창은 허공에서 보라색 구름으로 변해 일거에 금빛 새들을 막았다.

그때, 보라색 구름을 뚫고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두 손으로 거대한 망치를 높이 치켜든 남궁혜였다.

그녀의 거대한 망치로 불새들이 달려들면서 거대한 화염을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남궁혜의 망치가 금빛 화염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왕자님을 박살 내지 못할 것 같나요?”

남궁혜가 출수하려고 할 때였다. 뭔가 발견한 천제현이 급히 소리쳤다.

“멈춰요!”

그 순간 동방호연의 온몸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차츰 그의 몸을 뒤덮더니 갑옷으로 변했다.

눈 깜짝할 새에 중무장한 철갑병처럼 변했고, 왼손에는 방패를,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이것이 동방 가문의 정령이구나!’

변신이 가능한 정령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장비로 변할 수 있다.

거대한 망치가 동방호연의 방패 위에 떨어지자 거대한 방패가 산산조각 나며 어마어마한 반발력으로 남궁혜를 덮쳤다.

남궁혜는 그 엄청난 힘에 의해 허공으로 튕겨졌고 동방호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던져 남궁혜를 맞췄다.

“안 돼!”

공화련과 공서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두 사람은 달려들어 남궁혜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남궁혜의 온몸이 금빛 화염에 휩싸이며 한 마리 봉황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가 떨어진 곳 주변이 모두 불타올랐지만 남궁혜는 불길 한가운데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칼에 찔린 배 안쪽에서 황금빛 불씨가 타오르며 놀랍게도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동방호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이지?”

그때 남궁혜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제가 방심했군요! 다시 갑니다!”

그러다가 남궁혜가 한 차례 휘청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력을 너무 많이 소진한 것이다.

대열반경은 전투와 치유에 모두 사용 가능한 무공이지만, 마력 소모량이 크다는 게 문제였다.

“그만. 남궁 아가씨, 거기까지 해요.”

천제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해 드리죠.”

동방 가문의 무장 정령은 매우 특이하고 희귀한 변신 정령으로, 특정 형체 없이 주인이 원하는 방어구나 무기로 변하는 게 가능했다.

이 말은 동방 가문의 전사라면 어떤 형태의 전투든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즉, 무공 위력의 증가폭은 단일 무기 술사보다 높지 않아도 창법, 검법, 도법을 막론하고 유연성 있는 무공 시전이 가능했으므로 변화무쌍한 무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특징이었다.

동방호연은 남궁혜의 회심의 일격을 보는 순간 즉시 방어상태에 돌입했다. 고명한 방어 기술을 익힌 그는 방어 과정에서 반탄층을 만들 수 있었고, 강제로 힘을 상대에게 돌려보냈다.

일반적으로 반탄 효과가 있는 방어 무공은 모두 고급 무공에 속한다.

술사의 방어력이 가장 약해질 때는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할 때이다. 공격을 막으면서 상대의 공격력 일부를 반사할 수 있다면 생각도 못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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