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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62화 (358/729)

# 362

제362장 왕자, 동방호연

무안군도 담담하게 평가를 내렸다.

“움직이는 영상을 보존하는 기술은 전망이 아주 밝습니다. 오락 분야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소.”

문성군이 애매한 어조로 말했다.

“천제현은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사람들을 세뇌하고 자신을 신격화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적들에게는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 대상은 왕씨 가문과 남궁 가문이었으나 언젠가 저희 세 가문, 심지어 폐하까지 그 대상이 될지 모를 노릇입니다…….”

무안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었소.”

“어쨌든 그럴 능력이 있다는 말이오!”

여기까지 말한 무안군은 갑자기 말을 끊고 염양군을 쳐다봤다.

“염양군의 생각은 어떻소?”

무안군은 염양군이 머리 끝까지 분노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불 같은 성정으로 유명한 그가 이런 일을 보고만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흠…….”

놀랍게도 염양군은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연거푸 찬사를 늘어놓았다.

“훌륭하군, 훌륭해. 정말 재미있구려. 나 역시 좀 빠져든 것 같소이다.”

그 말에 무안군이 눈을 부릅떴다.

“천제현 그놈이 남궁 가문을 모욕한 걸 못 느끼셨습니까?”

“좌연은 남궁 가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없소.”

염양군은 매우 너그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화라는 건 정말 특별한 유흥거리군요. 할 수만 있다면 널리 퍼뜨리고 싶소만.”

“흥! 견융족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우리를 노리고 있건만, 백성들은 한가로이 여가나 즐기게 둔단 말이오?”

문성군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라는 게 유행하면 우리 남하국의 백성들 모두가 거기에 푹 빠져들 거요. 하루 종일 영화만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지. 그게 반복되면 남하국의 국력은 한없이 추락할 것이고. 그런 상태로 어떻게 견융족과 겨룬단 말이오?”

“문성군의 말씀에는 어폐가 있소이다.”

무안군이 끼어들었다.

“영화가 백성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렇게 되면 향락적인 분위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용감한 정신을 가진 충성스러운 백성들을 길러낼 거요.”

“그만들 하시오.”

남하왕이 지겹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소. 영화라는 게 이렇게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으니 그 존재가치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일정한 기준은 정해야 할 거요. 규정을 만들어 현존하는 인물이나 가문을 비방하는 건 금지하겠소.”

문성군은 남하왕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천제현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나?’

천제현의 영향력과 세력이 엄청나게 커질 판인데 꿈쩍도 하지 않다니. 남하왕답지 않았다.

“어쨌든 이 일은 과인이 좀 더 생각해 본 후에 결정할 테니 삼군께서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시오.”

삼군을 돌려보낸 남하왕은 옆에 있는 호위병에게 지시했다.

“호연을 궁에 들라 하라!”

“네?”

호위병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왕자 마마께서는 폐관 중이시온데!”

“폐관? 폐관이라! 그렇게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수련만 하면 바보가 될 것이다. 수련을 한들 어디에 쓴단 말인가? 무안군의 마력이 과인보다 높지만, 최후에 왕좌에 앉은 건 결국 나 아니더냐?”

남하왕은 언짢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왕자를 부르라!”

“네!”

남하왕은 어두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호연은 수련 중에 방해 받는 걸 가장 싫어했지만, 지금은 천제현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왕성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테니!’

***

첫 번째 영화 상영이 끝나자 왕성에 있는 네 곳의 영화관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성 전체가 영화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졌고, 그 열기는 순식간에 왕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원래 인간이란 호기심과 유행에 약한 존재 아니던가.

특히 남하왕이 삼군을 비롯한 십여 명의 고위 관료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는 소문이 돌자 ‘유명인 효과’까지 일었고, 분위기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달아올랐다.

남하왕조차 훌륭하다고 칭찬한 신문물이 별로일 리 없다.

‘삼군들도 직접 가서 감상했다는데 나라고 안 갈 순 없지!’

여기에 기적상회의 방송국에서도 관련 소식을 연이어 보도하자 왕성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화표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 경매 방식으로 판매하는 귀빈석은 한 장에 금화 수십만 냥까지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영화관은 한밤중까지 문을 여는데도 오늘 하루 동안 빈자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날 밤, 기적상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당일 매출표를 손에 받아 든 공서련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매표 수익만 금화 약 600만 냥이야. 영화관 안에서 판매된 부대 수익은 금화 2000만 냥을 넘었고. 하루 영업수익이 최소 2600만냥인 셈이지. 맙소사, 예상치보다 10배 이상 높잖아!”

“남하왕이 10배 가격으로 단체 구매를 했잖아요. 게다가 귀족들이 오면서 소비 촉진 효과를 냈으니 수익이 높아진 것도 당연하지.”

지금 기적상회의 자금 사정은 꽤 넉넉해서 서둘러 자본금을 회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공화련은 이 얼마 안 되는 수익에도 관심을 보였다.

“영화관 개수가 너무 적어. 영화관을 증설할 준비를 해야겠어!”

천제현도 동의했다.

사실 지금 중요한 건 판매수익이 아니었다. 이런 신문물이 널리 확산된 후에 남하국에 가져올 충격과 영향이었다.

“이렇게 해요. 우리, 특별한 기념품을 만드는 거예요!”

천제현은 잠깐 생각한 후 말을 이었다.

“영상판과 자음석판, 축음기, 화면을 모두 합친 전문 영화 관람 기계를 제작하는 거예요.”

눈을 감고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천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은 ‘상영기’로 하죠!”

영상판은 움직이는 영상을 기록하고 화면은 그 영상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천제현은 새로운 기계를 하나 만들 생각이었다. 그 기계는 축음기의 음성 방송 기능에 영상 방송 기능을 더한 설비로, 그 설비가 있으면 영상판과 자음석판을 함께 넣고 영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적혈전쟁>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으니 두세 번씩 관람하고 싶은 귀족들은 너도 나도 영상판을 사려고 하리라.

물론 잇속을 생각하는 상인들이 다른 도시에서 되팔아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기적상회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은 물론, 또 다른 수익원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결정을 내린 일행은 바로 고천추에게 통지해 물건을 제작하도록 했다.

네 가지의 기술 모두 궤도에 오른 상태였으니 그 기술을 집약하기만 하면 된다. 왕성연구소의 실력이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회장님,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군데?”

“모릅니다. 왕명 운운하는 걸 봐선 남하왕의 수하인 것 같습니다.”

“남하왕의 수하라고? 들어오라고 하게!”

최근 천제현은 너무 바빠서 손님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남하왕이 보낸 사람이라니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윽고 검은색 망토를 입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천제현을 본 그는 얼굴을 가린 망토 모자를 끌어내렸다. 그러자 칼날처럼 강인해 보이는 얼굴이 드러났다.

별빛처럼 맑은 눈에 당당한 외모, 고동색 피부에 듬성듬성 난 수염,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복장이었으나 나이는 27, 8세 정도로 아주 젊어 보였다.

“그대가 천제현인가?”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사내는 무표정하게 천제현을 훑어보고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동방호연이라 한다!”

“동방호연?”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천제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성이 동방인 걸로 봐서 동방 가문의 일원일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동방 가문에서 유명한 인물인가?’

천제현은 몰랐겠지만, 이 동방호연은 그냥 유명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하왕, 동방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 향후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왕자였다.

그의 재능은 너무나 뛰어나서 채 30세가 되기 전에 혼성 9성의 실력을 자랑했으며, 이로 인해 왕씨 가문의 첫째 공자와 함께 왕성쌍교(王城雙轎)라 불리고 있었다.

왕성쌍교라는 칭호는 중주 4공자처럼 왕성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동방호연이 직접 천제현을 찾아오다니. 이유가 뭐란 말인가?

동방호연은 동방 가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왕자로, 몹시 뛰어난 인물이었다. 중주의 천성하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뛰어난 재능에, 동방 가문의 강력한 지원까지 더해져 눈부시게 성장한 인재가 바로 그였다.

현재 동방호연은 천성하보다 겨우 몇 살 많을 뿐이었지만 그의 실력은 혼성 9성에 달해 있었다.

그 젊은 나이에 그 엄청난 실력이라니. 7, 80 먹은 유명한 노선배들조차 그를 보면 식은땀을 훔치곤 했다. 게다가 동방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진령 경지에 오르는 것 또한 확실시되고 있었으니, 얼마 안 가 동방 가문을 지탱할 기둥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왕성에 소문난 수련광이기도 했다.

“제가 바로 천제현입니다.”

천제현이 어디 상대의 신분 따위 신경이나 쓰는 인간이던가.

왕자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은 공화련은 천제현이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화를 자초할까 봐 겁이 났다. 그녀는 잽싸게 앞으로 나와 먼저 입을 열었다.

“왕자님이 찾아오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지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실까요?”

“네가 뭔데 내게 말을 거는 거지?”

동방호연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공화련에게 한 마디를 쏘아 붙인 후 매 같은 눈으로 천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군. 천성하가 어째서 이런 놈한테 진 거지?”

당황한 공화련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무례하거나 거만한 자들도 꽤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자는 그들과 완전히 달랐다.

일반적으로 사내들이 공화련을 보는 눈빛에는 대부분 적나라한 정복욕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정말로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나무토막을 보는 듯 완벽하게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동방호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천성하를 제압했다니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 그런데 왜 그 정력을 쓸데없는 곳에 쓰고 있는 거지? 그야말로 재능 낭비 아닌가!”

천제현은 동방호연의 말을 들으며 경악했다.

‘맙소사. 이 세상물정 모르는 말투는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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