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
제359장 영화
공서련은 종이와 붓을 가져와 뭔가를 기록하는 것 같더니, 천제현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제현, 너 빨리 나한테 고마워해!”
“고마워하라고요?”
“너 이제 내 덕분에 유명해질 거야!”
천제현이 놀라며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유명하지 않나요? 장난치지 마세요!”
공화련이 말했다.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줘.”
공서련이 흥분해서 말했다.
“내가 언니와 함께 새로운 기술을 발명했어. 환영석을 발견했는데, 이 환영석으로 환영을 만들어서 장영경 안에 저장을 하면, 움직이는 화면이 만들어져.”
“그게 어때서요?”
“바보, 이건 엄청난 사업 기회라고.”
공서련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가르치려 드는 어른처럼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대륙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해. 놀 거리가 없단 말이야. 장영경과 환영 기술을 결합하면, 여러 가지 전설을 각색해서 제대로 된 영상으로 만들 수 있어. 생동감 없이 늘어지는 이야기책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을 거야. 내가 다 생각을 해 놨지. 본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은 <적혈전쟁>이야.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고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너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할 거야!”
천제현은 마시던 물을 뿜을 뻔 했다.
‘이 두 자매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지?’
천제현이 살던 시대는 이미 가상 정신 기술이 잘 발달되어서, 실제 영화 관람은 별 인기가 없었다. 천제현도 이 부분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공화련 자매가 생각해 낸 것이다.
기적 통조림과 마찬가지였다.
기술이 아니라 번뜩임이 부족했던 것이다.
공서련은 기대하는 표정으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좋아!”
천제현은 머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왕성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제 영향력을 확대할 차례예요. 기적상회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공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요청사항 있니?”
“첫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해요. 이익이나 비용은 생각하지 말고요,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요. 아, 요청할 게 하나 있네요. 제가 잘생기게 나와야 해요. 알겠죠?”
공서련은 눈총을 주며 말했다.
“이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 언니는 사업 천재라고. 비용이 얼마가 들든 간에 수익은 두 배,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벌게 될 거야.”
천제현은 반신반의했다.
‘이런 작품은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 원금만 회수되어도 다행인 걸, 정말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공서련은 품고 있던 책을 천제현에게 건넸다.
“자, 이건 남궁혜 언니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만든 대본이야. 대략적으로 써봤으니 괜찮은 지 한번 봐줘!”
구출, 모험, 그리고 전투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이 계집애에게 이런 예술적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천제현이 의견을 냈다.
“제 생각에는, 사랑 이야기가 좀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사랑? 어떻게?”
“여자 주인공을 만들면 되죠. 서련 아가씨를 여자 주인공으로 하는 거예요. 신분은 공주로 설정하는 게 좋겠어요. 악마에게 잡혀가서 마지막에 제가 아가씨를 구하는 거죠.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마무리하구요.”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공주와 마왕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아직 먹힐 이야기리라.
공서련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나. 다른 사람이 보면 창피하지 않겠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건 예술이라고요! 예술이 창피합니까?”
천제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싫으면 큰 아가씨를 여자 주인공으로 삼아도 좋아요. 아니면 남궁혜 아가씨도 괜찮구요.”
공화련은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궁혜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상관없어!”
“안 돼요! 우리 언니는 상회를 이끌고 있으니 신중하고 단정한 인상을 줘야 해요. 또 강하고 용맹스러운 남궁혜 언니가 어떻게 이런 연약한 공주를 연기할 수 있겠어요?”
공서련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예술을 위해서 희생해야겠네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이 아가씨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이가 있을까?
천제현의 머리에 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궁 가문과 왕씨 가문이 얼마나 방자하게 굴었지? 이번 기회에 천제현님이 본때를 보여주지!’
천제현이 공서련에게 말했다.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악역을 더 강하게 그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 시간 가량 논의가 계속됐다.
제작비용도 결정되었다.
공서련은 사람들과 함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실 이런 영상작품을 만드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전체 제작과정에 사람뿐 아니라 환영석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환영석은 남하국에서도 희귀한 재료였다.
이 광석의 생산지는 남하국에서 세 군데 정도 밖에 없었고, 매년 생산량도 적었기 때문에 아주 비쌌다. 작품 제작 이후에는 비용 회수가 어려울 수 있었다. 어쩌면 장기간 비용 회수가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기적상회는 왕성에서 현금 금화 6억 냥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단 금화 2억 냥 정도를 서련 아가씨에게 투자해서 제작을 시작한 뒤에 돈 문제는 신경 쓰지 말자.’
그 돈이면 시장에 나온 환영석을 충분히 다 사들일 수 있다.
공서련은 100여 명이 넘는 제작단을 꾸려 제작 계획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공화련은 기적상회의 힘을 발휘해 방송국, 매체, 온갖 경로를 통해 미친 듯이 홍보를 했다.
곳곳에 영화 광고 전단이 붙었다.
이런 일들은 왕성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연극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영화는 난생 처음 접해 보는 것이었다.
공화련은 왕성의 대극장 몇 개를 사들인 후, 극장에 대형 전영경 화면을 만들었다. 공서련의 제작단이 작품을 완성하면, 모두 이것들을 통해 상영될 계획이다.
소식은 왕성 전체에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평민 백성부터 왕궁 귀족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가 없었다. 차를 마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이 화제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영화’는 왕성 최신 유행어로 등극했다.
천제현은 왕성에 온 첫날부터 온 성을 뒤흔들어 놨다. 왕씨 가문 도련님을 흠씬 두들겨 팬 후에는 염양군과 부딪쳤고, 나중에는 대학자들 무리와 함께 거리에서 남궁 가문 사람들을 쫒아내기까지 했다.
왕성에 큰 소동을 일으킨 후, 천제현은 별일 없이 평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기적상회에 딴지를 거는 자도 없었다. 영화관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들썩하게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천제현의 능력이 엄청나구나!’
왕씨 가문과 염양군에게 미움을 사고도, 별 영향도 받지 않고 평소처럼 지내다니.
사실 천제현이라고 매일 도처에 미움을 사러 다니는 건 아니었다. 첫날에만 남들의 이목을 끌었을 뿐, 그 후 대부분의 나날들은 집에 틀어박혀 수련에 힘썼다.
적혈신전에서 한 번에 최고급 단약 수백 개를 먹어 아직도 완전히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거대한 마력이 흡수 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체내에 쌓여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이 시대는 단약을 만드는 기술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에 단약 정제 과정에서 유해한 원소가 나올 수 있었다. 천제현은 부작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단약 몇 가지를 만들어 중화를 하려 했다.
수백 알의 단약은 천제현의 마력을 증진시키기에 충분했다.
천제현의 조롱박에는 아직 천여 개의 단약이 남아 있었다. 한두 달 안에 천제현을 진혼급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새끼 여우의 작은 뱃가죽 안에는 적어도 단약 만 개는 들어 있다. 만약 그걸 사용할 수 있다면, 공화련 자매와 남궁혜, 풍채향, 운요, 운소 등 모든 핵심 구성원들의 마력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사실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천마교의 10대 전승 중 하나인 적월의 부활을 위해 사용한 자원이다. 부족할 리 있겠는가.
대단한 위세를 떨쳤던 전국, 그중 일개 분파라 해도 그 전성기 정식 교도 수는 자그마치 50만 명이 넘었다. 게다가 이삼십 명의 분타주들 모두 남하팔국 제후들에 비견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전성기의 적혈은 지금 남하국의 국력보다 훨씬 강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강한 세력이 남긴 부활을 위한 자원이 진혼급 강자 몇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어떻게 재기를 꿈꿀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새끼 여우한테 단약을 뺏어내느냐이다.
사람보다 영리한 저 새끼 여우를 속이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구두쇠처럼 아주 인색한 저놈에게 말이다.
천제현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자, 결국에는 여우에게 이자를 주기로 했다. 그제야 새끼 여우는 마지못해 일부를 주인에게 ‘빌려’ 주었다.
천제현으로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했다.
‘제기랄, 네놈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감히 주인에게 고리대금으로 빌려주는 짓을 하다니. 정말 몹쓸 애완동물 같으니!’
애완동물이야말로 주인의 개인 재산이 아닌가.
‘빌려? 빌리기는 개뿔! 저놈 뱃속에 아직 자원이 많이 남아 있어서 별 말을 못하고 있을 뿐, 그러지만 않았다면 아주 혼쭐을 내줬을 것이다!’
이렇게 천제현은 왕성에서 보름동안 편안하게 지냈다.
하루 종일 두문불출하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련에 집중했다.
천제현의 마력 증진 속도는 현저히 빨라졌다. 천제현은 보름 만에 두 번의 돌파를 이루어 이제는 혼성 6성 경지에 이르렀다.
남궁혜도 순조롭게 혼성 6성을 돌파했다.
공화련과 공서련은 속도가 느리긴 해도 혼성 5성 정점에 이르는 고수가 되었다.
선혈성배를 차지한 후 강시 제조 속도가 매우 빨라진 것은 천제현으로서도 뜻밖이었다. 신혈강시 18구는 끊임없이 신혈을 소화해 더 강해졌다. 이제는 천제현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어 혼성 7성 정점에 이르렀다.
즉 기적상회에 18명의 진혼급 경호원이 생겼다는 의미다.
천제현은 신령의 강력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혈 한 두 방울만 넣고 희석해서 강시를 제조했는데도 신혈강시가 18구가 만들어졌다. 신혈강시 제조 후 지금까지 들어간 신혈은 겨우 몇 방울 뿐, 그런데도 그 효과는 아주 놀라웠다.
물론 이게 다 선혈성배를 얻은 덕분이다.
선혈성배가 만들어낸 진혈을 계속 강시에게 부어주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강시가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혈성배의 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강시에게 무한정으로 진혈을 줄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 강시 제조 후 선혈성배의 진혈은 바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