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
제357장 천제현과 미친개들
왕도는 천제현과 죽기 살기로 싸울 참이었다.
“적혈수존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가 안단 말이냐, 너처럼 약한 놈이 어떻게 죽여?”
사람들의 마음이 서늘해졌다.
삼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 처음부터 한 쪽 말만 들은 것이 아닌가. 천제현은 적혈수존을 죽였다고 하지만, 적혈수존이 정말 죽었을까? 만약 도망친 것이라면 남하국에게는 큰 우환거리다!’
콰당!
선홍빛 성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것이 적혈수존의 선혈성배요!”
천제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적혈수존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불멸 혼기입니다. 적혈수존이 몇십 년 동안 지니고 다녔지요. 이제 이 물건은 주인이 없습니다. 적혈수존이 여기에 남겨둔 정신을 없앴으니, 확실히 죽은 것이지요!”
현장은 야단법석이 되었다.
천제현이 천마교의 수존까지 없애 버렸다.
이는 남하국을 뒤흔들 소식이다.
“폐하!”
이때, 고천추가 앞으로 나섰다.
“소인이 보기에 천제현은 무죄일 뿐 아니라, 도리어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갑자기 조정 한쪽에 있던 고천추의 문생들이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천제현이 나라를 구했습니다!”
“천제현이 나라를 구했습니다!”
곧이어 고천추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이와 반대로, 왕도는 그 이기심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려 했고, 심지어 적혈신전에서 견융 부족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미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니 반드시 중벌을 내리심이 마땅합니다! 폐하께서 상벌을 확실히 구분하여 내리시지 않으시면 천하 사람들을 어찌 대면하시겠습니까!”
“왕도를 중벌에 처하시옵소서!”
“엄벌을 내리시옵소서!”
그 무리가 또다시 함께 외쳤다.
천제현이 또 다른 일을 고발했다.
“왕씨 가문의 도련님 왕연은 또 어떻습니까. 서련 아가씨를 억지로 차지하려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을 강요하고, 기적상회 부회장인 화련 아가씨에게는 아주 불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왕씨 가문은 공을 세웠다는 명목으로 교만하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왕국의 법규를 무시하는 것은 바로 저들입니다! 소인이 죄가 있다면 응답 그 벌을 받겠습니다만, 저만 벌하시는 것은 참으로 공정치 못한 처사입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남하왕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왕도 역시 연달아 이어지는 공격을 감당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제길, 나야말로 피해자야. 이번 적혈신전에 가서 무엇 하나 건지지 못하고, 탈것조차 다 없어져 버렸는데, 이 강도 같은 놈에게 모욕이나 당하고 있다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남하왕도 원래 천제현에게 본때를 보여주며 기세를 꺾을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그렇다고 천제현에게 상을 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여러 차례 하극상을 보인 그에게 상까지 내리는 것은 왕의 존엄을 해치는 짓이다.
“무안군, 어떻게 생각하시오?”
“천제현은 공도 세웠지만 잘못도 범했습니다. 하지만 공이 과보다 더 많은 편이지요.”
무안군은 여기까지 말한 후 잠시 멈추었다.
“적혈신전에서 얻은 모든 것이 다 그의 소유가 되었으니, 그것을 상으로 삼으시지요.”
“좋소!”
남하왕은 그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천제현은 짜증이 치밀었다.
‘제길, 무안군은 누구 편이야? 그 물건은 원래 내 것인데 상납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나를 제후로 봉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적어도 금화 십, 아니 이십 억 냥은 줘야지!’
“왕도는 사심으로 나라를 망치려 하였으니 10년 간 녹봉을 지급하지 않겠다. 돌아가 죄를 뉘우치도록 하라. 오늘은 여기까지다, 퇴청하라!”
남하왕은 말을 마치자마자 누가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소매를 떨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들 큰 소리로 남하왕을 봉송했다.
‘10년의 녹봉? 이게 무슨 벌인가!’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왕씨 가문이 고작 녹봉 하나에 기대 먹고 살 리 없다. 천제현은 이 결과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할 말도 없었다.
그래봤자 겨우 왕도같은 인물이다. 천제현으로서는 전혀 신경 쓰이는 인물이 아니었다.
왕도는 천제현을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앞으로 왕도를 다닐 때 조심해라.”
“와, 날 협박하시네!”
천제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왕궁에서 과장되게 큰 소리를 냈다.
“이를 어쩌면 좋지? 견용 부족을 위협하던 익룡 상장군이 나처럼 작은 상인을 상대하려 하시다니!”
“무엇이 무섭소?”
뒤에서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제는 용도 사라진 판에, 무슨 익룡 상장이라 하겠소? 끽해야 땅에서 뛰어다니는 어릿광대지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다가왔다. 다름 아닌 고천추였다.
왕도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왕씨 가문과 대학자 간에는 원한이 없었잖소!”
“그것은 과거일 뿐, 지금은 다르다오.”
고천추는 수염을 매만지며 왕도에게 말했다.
“앞으로 왕도를 다닐 때 조심하시오. 거리에서 이 늙은이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늙으니 눈이 나빠져서 말이요. 만에 하나 도둑인줄 알고 공격을 했다가 몸을 망가뜨려 버리면, 남하왕께 말씀드리기도 민망하지 않겠소.”
“두고 보자!”
왕도는 이를 갈며 자리를 떴다.
사내대장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할 줄 안다. 천제현의 말재간으로도 이미 충분히 당했다. 만약 고천추까지 나선다면 화가 나서 오장육부가 다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뵈니 대학자님 얼굴이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대학자라니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고천추는 천제현 앞에서 제자처럼 공손한 태도로 보였다. 남하왕 앞에서도 고천추는 이렇게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소개해 드리지요. 다 제 동료들입니다. 다들 학문을 하는 자들이라 모두 학사 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제현은 주변에 있는 8명의 학자들을 훑어봤다. 모두 나이가 지긋한 연배로 학식이 깊어 보였다. 조정에 올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출신배경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이 분은 학궁 상무장로인 조보입니다!”
남하국 최고 학부인 왕성 학궁에서 학궁을 관리하는 위치까지 올랐다면 평범한 인물은 아닐 터였다. 그 재능은 필시 중주 운천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방금 왕궁에서 이 인물을 위시로 한 노학자들이 천제현을 적잖이 도와주었다.
천제현은 바로 공수를 했다.
“조 장로님을 뵙습니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조보는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천제현에게 공수하면서 읍을 했다. 매우 황송해하는 것 같았다.
“다들 같은 학사로, 지위 역시 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천제현님은 천하가 놀랄 재능을 갖고 계신데, 이 늙은이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재미없을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들이었다.
천제현이 고천추에게 물었다.
“이분들은?”
고천추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친구들은 모두 남하국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지만, 모두 회장님의 재능을 흠모하여 정식으로 기적상회에 가입하고자 합니다.”
조보를 비롯한 노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좋은 일을 천제현이 어찌 마다하겠는가.
“기적상회는 크게 초문과 운문, 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문은 저의 직계 세력과 문객 집단이고, 운문은 기적상회 연구기관입니다.”
천제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선 공봉으로 초문에 들어오신 후, 다시 연구원으로 운문에서 일하심이 어떠신지요?”
“좋소, 좋소!”
“저희야 좋지요!”
“기적상회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이 늙은이들의 복입니다!”
이 노인들은 평소에는 잠잠하지만 한번 잘못 건들면 미친개처럼 날뛰기 때문에 귀족들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다. 이제는 천제현을 중심으로 함께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강력한 힘을 얻은 셈이다.
앞으로 천제현의 심기를 건드리려면, 우선 이 학자들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결과에 고천추는 크게 기뻐했다.
“회장님은 학사에 봉해지셨지만, 그 의식은 아직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한 간소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학궁에 오셔서 향후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시지요.”
“좋습니다!”
천제현은 몇몇 학자들을 따라 왕성 학궁에 입장했다.
대학자가 직접 천제현의 학사 도포를 수여했다. 이제 천제현도 당당한 학사가 되었다.
이는 대륙에서 통용되는 신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하국을 떠나 이족 지역에 가게 되더라도 효력이 있었다.
“모두 기적상회로 오셔서 한잔들 하시지요.”
“좋습니다, 좋아요!”
노인들은 모두 웃으며 왕궁을 떠났다.
하지만 기적상회 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기적상회는 선홍빛의 붉은 갑옷을 한 전사들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였다.
천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큰일 났습니다.”
고천추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 가문의 부대입니다!”
수천 명의 남궁 가문 병사들이 기적상회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몇몇 남궁 가문의 고참 장로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남궁혜, 1분의 시간을 주겠다. 어서 나와서 가문으로 돌아가 판결과 처벌을 받아라. 아니면 바로 공격하겠다!.
“우와아아아아!”
남궁 가문 병사 수천 명이 함성을 질렀다.
남궁 가문은 남하국에서 가장 중요한 장수 가문이다. 최전방에서 견융 부족과 싸우는 정예 군사 대부분이 남궁 가문 출신이다.
위협적인 기세에 기적상회는 감히 대적할 수 없어 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다. 남궁 가문이 뭐라고 소리 지르든 묵묵부답이었다.
“제길!”
천제현이 분노를 터뜨렸다.
“오늘 이 천제현을 아주 끝까지 괴롭히는군. 당장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내일은 아예 군대를 보내 공격하겠는걸.”
고천추와 노인들 무리가 먼저 나섰다.
“뭐하는 짓들인가? 이곳은 왕성일세! 군사를 보내 포위하다니, 국법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제현과 고천추, 그리고 노학자 무리들을 본 남궁 가문 사람들은 문득 겁이 났다.
고천추와 함께 있는 노인들은 왕성에서도 유명한 미친개 무리였다.
이들은 한번 물면 웬만해선 놓지 않는 미친개 같았다.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음에도 그 기세가 천하를 흔들 정도였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그들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하물며 천제현은 미친개들도 물러날 정도로 더욱 미친 투견이 아닌가.
두 달 전 중주에서 사방후를 잡아들여 혼쭐을 내고 능욕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오늘 어떤 미친 짓을 하더라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제현이 우두머리가 되어 이 미친개 무리를 이끈다면, 그야말로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