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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56화 (352/729)

# 356

제356장 왕궁에서의 격론

‘이것이 왕의 위엄인가!’

한 나라의 왕이라면 응당 위협적인 능력을 갖기 마련이다. 남하왕이 본래 실력이 비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범한 마력을 가진 사람도 몇 십 년간 왕좌를 지키고 있으면 왕의 위엄은 충분히 기르고도 남는다.

그러나 왕이 뭐 별거인가? 일개 소국의 왕은 물론, 대륙을 다스리는 제국의 대제에게서도 깍듯한 귀빈 대접을 받았던 천제현이다.

비록 3만년 후이긴 하나, 솔직히 이 정도 수준은 왕의 신발 시중 들 자격도 없던 자들이다.

천제현은 왕의 위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럴 때 남하왕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남하왕에게 미움을 사면 다들 기분만 상할 뿐, 좋은 점 하나 없을 테니 말이다. 천제현은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올렸다.

“소인 죽을죄를 지었으니. 벌하여 주시옵소서!”

“중주에서 일으킨 소동에 대해서는 너를 위해 해명하는 상소를 읽어 보았다. 또 뇌주와 청주에서는 공도 세웠으니 문제 삼지 않겠다.”

남하왕은 노기 가득한 얼굴로 천제현을 노려봤다.

“그런데 네놈은 교지를 받고도 늑장을 부리며 일부러 왕성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는 과인의 교지를 가벼이 여긴 것이다! 왕성에 이른 후에도 가장 먼저 과인을 보러오지 않았으니, 이는 과인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게다가 네놈은 왕씨 가문 공자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이는 왕성의 법도를 우습게 여긴 것이지! 이것이 죽을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흠흠!”

고천추가 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폐하, 이 일은 필시 오해가 있는듯합니다. 천제현의 설명을 우선 들어보심이 어떠십니까.”

“설명은 무슨!”

염양군이 발끈해서 나섰다.

“폐하께서 문제 삼지 않으신다면 내가 물을 것이다. 네놈이 선동해서 우리 가문의 후손이 가문과 척을 지고 가문의 고참 장로가 불구가 될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이것부터 해명해 보거라!”

‘저 늙은이가!’

천제현은 염양군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 일은 남궁혜와는 무관합니다. 다 제가 한 일입니다. 남궁적의 탐욕스러운 야망 때문이지요. 손도 안대고 코풀 요량으로, 자신은 투자하지 않으면서 공으로 기적상회를 차지하려 했으니 참으로 황당무계한 일이 아닙니까.”

“헛소리 마라!”

염양군이 일어서자 타는 것 같이 뜨거운 기운이 궁전 안에 가득 퍼졌다.

“남궁적은 아주 후한 조건을 제시하였건만, 어디서 공으로 차지하려 했다는 게냐!”

“후한 조건이요? 하하하!”

천제현은 더 이상 겸손한 척 하지 않았다. 가슴을 쭉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염양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기적상회가 남궁 가문보다 훨씬 가치가 높습니다. 염양군에게 묻고 싶군요. 저에게 남궁 가문을 주시면 10년 후에 기적상회 지부장으로 임명해 드리겠다고 제안하면 수락하시겠습니까!”

“무엄하다!”

염양군이 두 주먹을 쥐자 하늘로 불꽃이 치솟았다. 그 불꽃은 범이 산 아래로 질주하듯 그대로 천제현에게 향했다.

“여러분, 보십시오!”

천제현이 바로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매하신 염양군이나 비천한 소인이나 모두 같은 반응입니다.”

염양군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네놈을 공격하지 못할 것 같으냐?”

“이곳은 왕궁이요!”

무안군이 냉정하게 말했다.

“염양군은 규례도 모르시는 게요?”

염양군은 이를 악 물고 답했다.

“어쨌든 남궁 가문의 사람이니 우리 남궁 가문에서 알아서 하겠다. 남궁혜를 내놓아라!”

“제가 싫다면요?”

“네놈이…….”

문성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가문의 일은 폐하께서도 관여하지 않으신다. 어찌 이리도 제멋대로냐!”

“가문의 일이라면 당연히 저도 관여하지 않지요. 하지만 남궁혜는 상회와 계약을 맺은 우리 상회 직원입니다!”

천제현은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다.

“이렇게 하시죠. 보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남궁 가문에서 위약금을 주셔야겠습니다. 금화 몇 천억 냥이면 됩니다!”

‘금화 몇 천억 냥의 위약금?’

염양군은 기겁했다.

남하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됐네. 오늘은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야. 남궁 가문의 일은 개별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게! 이곳은 왕궁일세!”

염양군은 이를 악물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고천추는 손에 땀을 쥐었다.

‘일부러 염양군을 자극하다니, 저놈은 정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녀석이다.’

염양군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가 났지만, 무안군과 대학자가 천제현을 보호하고 있는 이상, 화를 내도 소용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잠시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남하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천제현은 계속해서 해명했다.

“시간이 지체된 부분은 어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교지에서는 그저 최대한 빨리 왕성에 오라고 하셨지 정확한 시간을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왕성에 오는 길에 골치 아픈 일을 만나는 바람에 이리 늦어졌습니다.”

조정 대신 중 한 명이 일어섰다.

“말은 번지르르 하구나. 만약 다들 너처럼 변명을 한다면, 남하국의 법규는 유명무실하지 않겠느냐?”

“맞는 말이오.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상세히 말해 보아라. 교지를 거역하고 시간을 지체할 만큼 큰일이었는지 다들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만약 아니었다면 폐하를 업신여긴 것이다!”

자색 갑옷을 입은 장군이 일어나 말했다.

“그리고, 네놈이 왕연을 때린 일에 관해서는 우리 왕씨 가문과도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다!”

천제현은 상대방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왕연 같은 놈을 때린 일은 우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지체된 이유에 관한 유일한 증인은 바로 장군이 아니십니까!”

“뭐라고?!”

자색 갑옷을 입은 자는 다름 아닌 적혈신전에서 만난 왕도였다.

“소인이 중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군요…….”

천제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소인은 교지를 받은 후 한시도 쉬지 않고 왕성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창주 변경을 지나 왕성 쪽으로 넘어가는 중에 참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주 변경 수십 개 마을이 학살을 당하여, 수많은 백성이 무고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천제현은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애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인은 일개 평민이니 이런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잔혹한 살인사건을 보고 어찌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소인은 수행원들과 함께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국 진상을 밝혔지요. 알고 보니 마교술사들의 짓이었습니다. 그놈들을 다 처리한 후, 일이 다 해결된 줄 알고 계속 왕성을 향해 가던 중에, 그놈들 소지품에서 엄청난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천마교의 잔당이었고, 천마교가 남긴 비밀 총단에 가서 천마수존을 부활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에 남하왕과 삼군의 안색이 변했다.

왕도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천제현은 위험을 무릅쓰고 천마교 당주 곁에 잠복해 신전까지 들어간 일과, 이후에 발생한 모든 일들을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였는데, 물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많은 부분을 수정하기는 했다.

“왕도 장군,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천제현은 왕도를 노려보며 냉정하게 물었다.

“적혈신전이 세상에 나온 것을 알고도, 극악무도한 적혈수존이 부활한 것을 알고도 왜 폐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제가 대신 답해 드리지요!”

천제현은 신랄한 말을 퍼부었다.

“당신은 남하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사리사욕을 위해 대의와 책임감을 저 버린 겁니다! 천마교가 마을을 피로 물들인 것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적혈신전의 보물을 차지하려 했지요. 나라에 닥칠 위험을 생각하기는커녕 이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려 하다니. 천지가 분노할 음흉한 속셈입니다. 게다가, 감히 견융 부족과 손을 잡다니요? 설마 대하국의 왕족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다 잊었단 말입니까? 조상을 저 버리는 것은 배반입니다! 이 조정에서 죽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왕도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중상모략이다!”

“중상모략? 백성을 구하지 않는 것은 천하의 부덕이요, 왕을 기만한 것은 나라에 대한 불충이요, 견융 부족과 손을 잡은 것은 조상에 대한 불효요, 재앙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것은 불의요!”

천제현은 사람들 앞에서 왕도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부덕하고, 불충하고, 불효하고, 불의한 놈, 네놈과 같이 조정에 서 있는 것이 부끄럽다!”

“이런, 이런 망할 놈의 자식!”

적혈신전의 보물을 가져가고, 자신이 아끼던 탈것을 죽인 것도 바로 천제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왕도가 공격도 하기 전에 천제현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천제현의 얼굴에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 찌질한 놈, 감히 나와 말싸움을 붙으려 해?’

천제현과 말싸움으로 겨루고자 한다면, 여러 나라를 다니며 경험을 많이 쌓은 고천추가 아닌 이상 조정에서 그를 상대할 적수는 없었다.

게다가 고천추는 다름 아닌 천제현 편이다. 그래서 천제현이 상대를 뒷목잡고 넘어갈 정도로 쏘아대도, 단박에 반박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당신, 염양군!”

천제현은 고개를 돌려 분노한 얼굴로 염양군을 가리켰다.

“정말 나이가 들면서 사리분별이 어려워지신 듯싶습니다. 데리고 계신 상경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큰 화를 몰고 올 뻔하지 않았습니까! 소인이 운이 좋아 적혈수존 악당을 죽였기에 망정이지, 그 힘이 회복되었다면 삼군이라도 적수가 못되었을 것입니다. 밖으로 견융초원의 세력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안으로 천마교의 세력이 더해졌다면, 당신이야말로 남하국의 대역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남하왕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것이 사실인가? 염양군, 왕도, 해명해 보게!”

염양군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소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옵니다. 좌연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남하왕은 코웃음을 치며 불만을 확연히 드러냈다.

왕도는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분노하며 반박에 나섰다.

“폐하, 억울합니다! 소인이 사심을 가졌다면 죽어 마땅합니다. 허나 적혈수존은 저놈이 풀어준 것입니다.”

남하왕이 천제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놈이 수존을 풀어준 것은 어찌 설명하겠느냐?”

“적혈수존을 풀어준 것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지요!”

천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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