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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55화 (351/729)

# 355

제355장 화가 난 공서련

“10년 전 남궁 가문의 열염군이 전멸하자 왕천룡이 전룡군을 이끌고 전선에 대신 뛰어들었어. 10년 동안 단련된 전룡군단은 이미 남하국 최고의 군단 중 하나야.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 그래서 사람들은 왕천룡이 제후의 작위를 받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뭐라고요? 전룡군단이라니!”

천제현은 뭔가를 떠올리더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급히 물었다.

“익룡상장군 왕도와 그는 어떤 관계죠?”

“왕도라는 사람을 알아?”

천제현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왕도는 전룡군단의 부장이자 왕천룡의 숙부야.”

‘그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이면 또 같은 가문 사람과 원한을 쌓게 되었구나.’

천제현이 이번에 왕연을 때리지 않았다고 해도 기적상회와 왕씨 가문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왕도의 전투 마수를 간접적으로 죽게 만들었다. 천제현이 적혈성배를 훔친 일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왕도가 이렇게 큰 손해를 입고도 가만히 있겠는가?

‘됐다, 됐어. 왕씨 가문의 세력이 강한 게 뭐 어떻다고? 왕씨 가문의 첫째 공자가 역사상 가장 젊은 제후가 되는 게 뭐 대수야?’

천제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제가 만든 적은 한둘이 아니에요. 하나 더 늘어봤자 티도 안 나죠. 복수를 하고 싶으면 먼저 줄을 서라고 하세요.”

여기까지 말한 천제현이 말투를 확 바꿨다.

“그나저나 남하국에서 가장 젊은 제후가 될 사람이 큰아가씨를 좋아한다는데 관심 없으세요?”

공화련이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런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화 낼 거야.”

‘뭐야,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좋은 말로 하지 왜 화를 내!’

천제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서련 아가씨는 어디 갔어요? 평소에는 제 곁에서 떨어지질 않았잖아요. 제가 왕성에 왔는데 어째서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이건 서련 아가씨 성격과 어울리지 않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다 네 탓이야!”

“아니, 그게 또 왜 제 탓이에요? 전 서련 아가씨 안 건드렸다고요!”

“중주성에서 서련이에게 뭐라고 약속했어?”

“제가 뭐라고 했나요?”

“못됐어. 정말 잊은 거야? 교지를 받게 되면 바로 온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국왕이 교지를 내리자 서련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아? 매일 사람을 보내 네 소식을 알아봤다고. 널 마중하러 직접 멀리까지 나가기도 했어. 그런데 너는 보름이나 꾸물대며 오지 않았지.”

공화련이 그를 째려봤다.

“서련이가 화를 안 낼 수 있겠어?”

천제현이 머리를 탁 쳤다. 정말 잊고 있었다.

“오는 도중에 돌발 상황이 있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공화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서련이를 보고도 아무 해명 없었잖아. 서련이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 아이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예민하단 말이야. 아마 네가 자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속상해 할 거라고!”

“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바로 가서 서련 아가씨한테 사과하면 되죠?”

천제현이 몸을 돌렸다.

“지금 바로 갈게요. 큰아가씨, 이따가 봐요!”

공화련은 급히 달려 나가는 천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저녀석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평소에는 거만하고 폭력적인데다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면서도, 토라진 여자아이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군. 정말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군.’

천제현이 선물 한 무더기를 가지고 공서련의 방에 찾아갔다.

“작은 아가씨? 작은 아가씨, 계세요?”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서련 아가씨, 대답 좀 하세요. 안에 계신 거 다 알아요. 대답 안 하시면 그냥 들어갈 겁니다.”

방에서 가벼운 콧방귀소리가 들렸다.

‘거절이 아니라면 승낙한 거지.’

천제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서련은 책상 앞에 앉아서 책에 푹 빠져 있느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지금 책 읽고 공부하는 중이야. 방해하지 마!”

‘이 계집애 정말 화가 났구나.’

천제현이 히죽거리며 공서련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책 보세요? 제가 모르는 게 없잖아요. 물어보세요. 다 가르쳐드릴게요.”

“누가 네 도움이 필요하대?”

공서련이 작은 얼굴을 돌렸다.

“혼자 공부할 거야.”

‘이이고, 이 고집쟁이!’

천제현은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화났어요?”

“알면서 뭘 물어봐!”

“저와 남궁혜 아가씨, 심빙우 누님은 길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어요. 그래서 시간이 좀 지체된 거예요.”

천제현은 화가 잔뜩 난 여자아이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선물을 가져왔어요. 사죄의 의미라고 생각해주세요.”

공서련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좀 폈지만 체면 때문에 여전히 토라진 척했다.

“아무거나 가져와서 날 달랠 생각 하지 마. 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아가씨를 위해서 최상품 혼기 몇 개를 준비했어요. 단약도 열 병 있고요. 그리고…….”

천제현이 선물 목록을 줄줄이 나열했다.

공서련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보물이 나왔을까?’

천제현이 재빠르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마 모르실 거예요. 아가씨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려고 마두와 하루 종일 싸우다가 결국 부상을 입고 사흘 밤낮을 기절한 채 있었어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요!”

“뭐?”

공서련이 곧장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야? 거짓말 하지 마!”

“절 그렇게 못 믿으세요?”

천제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아서 다시 덧날 모양이었다.

“됐어요. 남궁혜 아가씨에게 물어보시면 알게 되겠죠. 전 정말로 사흘 동안 기절했다고요. 이번 생애에는 못 일어나는 줄 알았어요.”

“믿어, 믿는다고! 다친 곳이 어디야?”

공서련이 급히 다가와서 천제현의 몸을 어루만졌다.

“심각한 거야? 너 왜 이렇게 바보 같니. 상회에는 돈도 있고 힘도 있잖아. 왜 굳이 모험을 하러 간 거야!”

천제현이 짐짓 충성스러운 척했다.

“다 두 자매분을 위한 게 아니겠어요? 기적상회에 돈이 많지만 현금을 단시간 내에 융통할 수 없으니 모험을 한 거죠. 가서 대량의 단약과 장비를 구해 아가씨들의 실력을 높이려고 했어요. 우린 적이 많고 왕성은 위험한 곳이잖아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천제현은 다시 몹시 고통스러운 척했다.

“구사일생으로 도착해서 아가씨들을 괴롭히는 나쁜 놈을 혼내줬는데 어떤 아가씨가 시간에 맞춰 왕성에 안 왔다고 화를 내시네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아니…… 그게.”

공서련은 온통 얼굴을 붉히고 자신을 탓하며 촉촉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속상해하지 마. 내가 사과할게!”

“됐어요. 아리따운 아가씨의 잘못이니 한 번쯤은 넘어가죠.”

천제현이 공서련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다음번엔 그러지 마세요!”

공서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도 앞으로 우리 때문에 모험하지 마.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난 어떻게 살라는 거야?”

공서련은 말을 마치자 조금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세요. 다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거죠!”

천제현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오늘 연회장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대체 누구예요? 큰소리로 말해 보세요!”

공서련의 얼굴이 삽시간에 사과처럼 빨개졌다.

“알아서 뭐하게?”

“당연히 알아야지요!”

천제현이 거칠고 난폭한 모습을 보였다.

“감히 제 작은 아가씨를 빼앗아가다니 친구들을 불러 놈을 아주 박살 내야겠어요!”

공서련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자식,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하다니!’

공서련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 앞으로 다가와서 외쳤다.

“회장님, 교지가 내려왔습니다. 입궁하여 전하를 알현하라는 명령입니다!”

‘망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하다니!’

천제현이 짜증스럽게 손을 저었다.

“알겠어. 바로 갈게.”

“왕을 만나는 게 위험하지는 않을까?”

공서련은 몹시 걱정스러웠다. 왕성에 온 지 한 달 반이 되도록 남하왕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남하왕이 몹시 난폭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넌 시간을 지체했을 뿐만 아니라 왕씨 가문의 공자까지 다치게 만들었잖아.”

“대학자와 무안군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천제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남하왕이 뭐 대수예요? 만나보고 올 테니 책이나 보고 계세요. 모르는 부분은 기억해뒀다가 물어보세요.”

천제현은 공서련의 방을 빠져나와 웃음을 터트렸다.

‘이 계집애는 정말 바보 같지만, 정말 귀여워. 뭐라고 해도 다 믿어!’

천제현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곧바로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화로운 마수차에 올라 보란 듯이 왕궁으로 향했다.

***

남하 왕궁.

그곳에 고위급 인물 수십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홉 층계로 이루어진 드높은 옥 계단의 최상단에는 남하국 최고 권력자인 국왕이 앉아 있었다.

그 아래 일곱 번째 층계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세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바로 남하삼군의 자리였다. 좌측은 문성군, 우측은 염양군, 가운데는 무안군으로, 이미 자리에 와 있었다.

“학사 천제현이 왔습니다!”

굵은 목소리가 궁전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자리에 있는 거물들의 눈길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흰 옷을 입은 소년이 등장했다.

소년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성큼성큼 웅대한 궁전 안으로 들어왔다. 상상보다 더 어린 소년이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 자연스러운 표정, 편안한 움직임, 긴장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중주의 천제현인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안군은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문성군은 살짝 찡그리기만 할뿐 표정에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허나 그 눈빛 깊숙한 곳의 흔들림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염양군의 반응이 가장 컸다. 그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천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염양군은 삼군 중에서 가장 생각이 없는 인물이었다.

천제현은 이런 인물이 어떻게 군 작위를 받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왕과 삼군 외에는 남하국의 중신들이었다.

태사 고천추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다 명문 가문의 지도자들이었다. 적어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적대적인 눈빛으로 천제현을 쏘아댔다. 남하국에 천제현을 위협하는 세력은 과연 적지 않았다.

“무엄하다, 천제현!”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드높은 곳에서부터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마치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곧이어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압박이 천제현을 향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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