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
제354장 공화련의 생일 잔치
세 사람은 연회장 가운데로 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왕씨 가문의 왕연 공자께서 심해 진주 열 상자와 천년금잠사 백 필, 순룡 마수차 한 대를…… 화련 아가씨의 생일 선물로 준비하셨습니다!”
연회장이 들끓었다.
‘손 한 번 크다! 평범한 생일에 불과한데 이렇게 값비싼 선물을 보낼 필요까지 있어?’
공화련 역시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게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서둘러 얼굴을 피고 예의바르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왕연은 호방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나이는 많아야 열여덟 정도로 공화련보다도 어려 보였다. 수행원들의 기세로 보니 세도가 출신임이 분명했다.
“공화련 부회장의 생신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일을 선포하려고 왔습니다. 오늘 이 일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겹경사로군요.”
왕씨 가문은 왕성에서 대단한 실력을 지닌 세도가였다.
왕씨 가문은 왕성의 세도가이며 왕성에서의 지위는 삼대가문 바로 다음이었다.
공화련은 왕씨 가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실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총명한 사람이다. 왕씨 가문은 종종 강압적으로 횡포를 부렸다. 값비싼 선물 뒤에는 분명 난처한 요구가 있을 게 뻔했다.
“연회가 끝난 후 말씀하시는 게 어떨까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아야 합니다.”
왕연이 고개를 저으며 공화련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않았다.
“우리 가문에서 서련 아가씨를 제 처로 들이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연회장이 시끌벅적해졌다.
공화련 자매는 어안이 벙벙했다.
“공자님,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축하드립니다!”
사람들이 잇달아 일어나 축하를 보냈다.
왕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좋은 일이 겹쳤습니다. 공 회장님, 이 자리에서 아예 혼인 날짜를 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왕연은 청혼을 하러 온 것이었다.
공서련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쪽 가문에서 동의한 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이건 너무 무례하잖아요!”
“공서련, 날 믿어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이미 난 마음을 빼앗겼어요. 남녀의 혼인은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야지요. 공 회장님, 이렇게 좋은 혼사를 거절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걱정 말아요. 당신은 왕씨 집안에 나 왕연의 본부인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왕연이 침착하게 공화련을 바라봤다.
“그쪽과 우리 집안이 하나가 되면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게 분명해요. 삼대 가문에서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
“공자님은 농담을 참 잘 하시는군요!”
공화련이 어두운 얼굴로 불만을 표했다.
“동생의 일생이 걸린 혼사를 경솔하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서련이가 좋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혼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동이죠!”
“뭐라고요? 내가 공서련 낭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설마 공서련 낭자를 왕족에게 시집보내려는 생각인가요?”
“거울이나 좀 보고 말해요.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당신에게 시집가느니 차라리 거지에게 시집가겠어요!”
공서련이 사납게 한마디 쏘아붙이더니 다시 급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놀랄 거예요. 당신은 그 사람과 비교도 안 돼요!”
공화련이 의아한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며 곧바로 잘라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혼인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끄러웠다. 분노가 일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왕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성의를 보이며 청혼을 하러 온 나를 이따위로 대접하다니! 왕씨 가문의 힘을 알고 이러는 거요? 왕씨 가문에 밉보이면 왕성에 발붙일 생각은 접어야 할 겁니다!”
공화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선물을 도로 가져가세요. 기적상회는 다른 사람 눈치 볼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공 회장, 너무 그렇게 칼 같이 자르지 마십시오. 당신도 언젠가는 우리 왕씨 가문 사람이 될 겁니다. 동생 먼저 보내고 난 후 우리 모두 가족이 될 텐데 좋은 말로 하시죠.”
공화련의 안색이 급변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공 회장에게 흑심을 품고 여기에 온 놈들에게 경고할 겸 솔직히 말씀드리죠.”
왕연이 마치 선포하듯이 목청을 높여 큰소리로 외쳤다.
“공 회장은 내 큰형님이 점찍은 여자다. 이번 생애는 우리 형님의 여자이니 포기해. 언감생심 넘봤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잘 생각하라고.”
사실 연회장에는 공화련을 흠모하는 우수한 청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왕연의 선포를 듣는 순간 청년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왕씨 가문 사람이 점찍었다면 공화련은 이제…… 아쉽다!’
“네놈은 뭔데 이렇게 까불어!”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왕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왕연의 늠름한 얼굴 반쪽이 찌그러진 채로 맞은편 벽으로 날아갔다.
“큰일 났다!”
“왕씨 가문 공자가 맞았어!”
“큰 소동이 벌어지겠네!”
연회장의 하객들이 우왕좌왕하며 공연히 화가 미칠까봐 모두 자진하여 자리를 빠져나갔다.
공화련 자매는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주먹을 날린 사람을 쳐다봤다. 공서련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너…… 너, 그래도 오긴 왔네!”
천제현이 그녀를 향해 웃었다.
“잠시 후에 회포를 풀죠!”
말을 마치고 나서 천제현이 곧장 왕연에게 다가갔다.
깜짝 놀란 왕연이 얼굴을 감싸 쥐더니 피를 토하며 물었다.
“감히 날 때렸어!”
스르렁!
천제현이 유명검을 뽑았다.
“널 때린 게 뭐 어때서? 오늘 네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그래야 네놈이 나 천제현의 무서움을 알게 될 테니까!”
얼음처럼 차가운 검과 천제현이 숨김없이 내뿜는 살기를 보자 왕연은 천제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공화련이 황급히 말렸다.
“천제현, 그만하면 됐어!”
‘천제현? 이 자가 천제현이라고?’
천제현은 왕성에 와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왕성에서는 그를 다 알고 있었다. 천제현은 사방후와 남주군단마저도 포로로 잡은 녀석으로 남하국 유사 이래 가장 건방진 천재 소년이었다.
천제현이 너무 건방지게 구는 바람에 왕성의 많은 사람이 그에게 반감을 가졌다. 왕씨 가문 공자도 천제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난 사방후도 때렸어.”
천제현이 실실 웃으며 왕연을 바라봤다.
“네가 사방후보다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천제현!”
공화련이 천제현 곁으로 달려왔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참아!”
천제현은 공화련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공화련이 신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공화련 역시 천제현의 성격을 잘 안다. 왕연이 평범한 사람이면 방금 자신과 동생에게 무례를 범한 것만으로도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알겠어요!”
천제현이 검을 거뒀다.
“저놈을 베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놈을 흠씬 패줘야겠어요! 남궁혜 아가씨, 부탁해요!”
“알겠어!”
남궁혜가 손가락 마디를 딱딱 꺾더니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왕연을 끌고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악!”
“으악!”
“살려줘!”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처참한 비명 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공화련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천제현은 역시 골칫덩어리였다. 왕성에 오자마자 사고를 쳤다. 상대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바로 이렇게 손을 쓰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았다.
공화련의 생일 축하 연회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서 계속할 수 없었다. 공화련은 하객을 배웅한 후에야 천제현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에는 원망의 빛이 살짝 비쳤다.
“오자마자 이렇게 큰 사고를 치면 어떡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큰아가씨를 위해서 이런 거잖아요!”
천제현의 태도는 몹시 강경했다.
“저런 애송이가 아가씨들을 괴롭혔잖아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전 못 참아요! 남하왕의 아들이라고 해도 똑같이했을 거예요!”
공화련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천제현의 성격이다. 주변 사람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성격을 탓할 수는 없었다.
천제현은 공화련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곧장 물었다.
“왜요? 저 왕씨 놈의 배경이 삼대 가문보다 더 대단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하국의 삼대 가문은 최고의 권력을 지닌 세력이다.
천제현은 소식이 빠르진 않지만 삼대 가문보다 더 대단한 배경을 지닌 인물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왕씨 가문은 물론 삼대 가문에 비교가 안 되지. 그러나 왕씨 가문의 위치는 특별해.”
공화련이 말을 잠시 끊고 천제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하왕족에 대해서 들어봤어?”
“대하왕족?”
천제현의 모습을 보아하니 들어본 적이 없는 듯했다.
“대하왕족은 대하국 시기의 왕족을 일컫는 말이야. 대융국의 송곳니 왕이 대하왕성을 공격하면서 왕족을 모조리 죽였지. 대하왕족의 적계와 주요 방계는 모두 죽임을 당했어. 그래서 지금의 동방 가문이 새로운 왕족이 된 거야.”
천제현은 답답했다.
“그게 왕씨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관계가 있어.”
공화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대하왕족이 정말 몰살당한 건 아니야. 왕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방계들은 죽지 않았지. 동방 가문을 필두로 한 세 가문이 견융을 몰아내고 다시 왕성을 되찾자 대하왕족의 후예들이 속속들이 돌아왔어. 이 방계들은 왕위 계승 자격이 없는 데다 세력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어. 1대 남하왕은 그들을 포용하고 전 왕족을 기렸지.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손을 쓴 거야. 남하왕은 이 사람들에게 원래 성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왕‘씨 성을 하사했어. 이제 이해가 되지?”
‘이게 왕씨 가문의 내력이야? 옛 왕족의 후예라니!’
허나 옛 왕족의 후예라는 게 뭐 대수인가. 이 세상은 정통인지 아닌지를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직계도 아니었다. 어떤 가문이 왕족이 되려면 압도적인 세력을 지녀야 한다.
세력으로 보면 남궁 가문과 상관 가문은 동방 가문과 가까스로 붙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왕씨 가문은 한참 자격 미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하왕이 이들을 받아준 것이다.
공화련이 설명했다.
“1대 남하왕부터 시작해서 왕씨 가문은 지금까지 계속 계승되어 왔어. 지금까지 두 명의 제후를 배출한 까닭에 가문의 세력이 빠르게 커졌지. 그리고 이제 곧 세 번째 제후가 나오게 될 거야.”
“곧? 무슨 뜻이죠?”
“아직 정식으로 작위를 받지 않았지만 실력과 전공으로 봤을 때 작위를 받는 건 시간문제야. 그자는 바로 왕씨 가문의 첫째 공자 왕천룡이야. 이제 막 서른이 되었는데 벌써 혼성 9성의 마력을 지녔어. 남하팔후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지.”
그렇다면 확실히 대단했다. 왕천룡은 천성하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