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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52화 (348/729)

# 352

제352장 허망한 최후

적혈수존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여우의 능력을 너무 얕봤었다. 적혈수존은 여우에게 다른 능력이 또 있을까봐 급히 속도를 줄였다. 이때 뒤따라온 지옥 화염이 그의 배후에서 주먹을 날렸다.

수존이 다시 한 번 허공으로 날아갔다.

여우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수존의 선혈성배를 움켜쥐었다. 여우가 선혈성배를 움켜쥐자 기괴한 고대의 주문이 성배를 가득 에워쌌다. 이 순간 적혈수존은 성배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님을 감지했다.

“죽어라!”

수존이 여우를 공격했다.

펑!

하지만 여우는 회색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수존은 여우가 쥐고 있던 성배도 함께 사라진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적혈수존은 눈앞에서 손에 쥐고 있던 가장 중요한 성물을 여우에게 빼앗긴 것이다.

적혈수존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피를 토했다. 그는 선홍색 머리칼을 나부끼며 온몸의 구멍에서 화염을 일으켰다.

천제현이 놀라서 외쳤다.

“정혈을 태우고 있어. 놈이 동귀어진을 할 생각이야. 조심해!”

적혈수존은 금지된 무공인 분소정혈로 폭발적인 힘을 얻으려고 했다.

이런 무공은 부작용이 너무 커서 전투가 끝나면 마력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면 이런 무공을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마력이 크게 줄어들지언정 이놈들을 없애야 한다!’

적혈수존은 천제현 일행을 이토록 증오했다.

여우는 소낙비를 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옥 화염을 후퇴시켰다. 지옥 화염은 여우의 조종대로 심연의 화염을 대량 방출하며 물러나기 시작했고, 여우는 수존이 응집시킨 힘을 온힘을 다해 흡수했다.

이상하다.

저놈 힘이 왜 이렇게 강하지?

여우가 연거푸 온힘을 다했지만 수존의 몸에서 힘이 계속 솟구쳤다.

수존이 포효하며 다시 한 번 정령을 소환하자 시뻘건 빛이 순식간에 주위에 퍼졌다.

이번에 소환한 선혈해골은 이전 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선혈해골은 몸에 시뻘건 피를 두르고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쥐고 있었다. 이전보다 힘이 몇 배는 강해 보였다.

천제현은 몹시 놀랐다.

이 기운은 분명 혼성 경지를 넘어서 술사의 세 번째 경지인 진령(眞靈)에 이른 것이었다. 새로운 경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경지인 혼성과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좀 있다지만 경지를 초월한 진령과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전무하다.

여우가 힘을 다해 수존의 힘을 여러 번 들이마셨다.

선혈해골의 몸을 감싼 피가 순식간에 상당히 얇아지고 도끼도 크기가 꽤 작아졌다. 그러나 적혈수존은 이미 여우 앞으로 돌진하여 거대한 도끼를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여우가 황급히 지옥 화염을 조종하여 공격을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도끼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지옥 화염은 내리치는 도끼에 어깨를 맞고 그 자리에서 왼팔이 잘렸다.

여우는 그 틈을 타서 전력을 다해 다시 한 번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혈해골의 몸을 감싼 피의 갑옷이 순식간에 박살 나고 도끼도 서슬 퍼런 빛을 잃었다.

그러나 적혈수존은 이미 지옥 화염을 향해 반달 모양을 그리며 가로로 도끼를 휘둘렀다. 지옥 화염은 그 자리에서 두 동강 났다.

지옥 화염이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여우는 어쩔 수 없이 지옥 화염을 폭발시켰다.

찰나의 순간에 지옥 화염의 온몸이 폭발하며 모든 힘이 단숨에 방출됐다. 녹색 화염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적혈신전의 결계를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에 적혈신전이 심하게 흔들렸다.

천제현 일행도 충격에 밀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여우가 폭발 현장에서 헐레벌떡 빠져나왔다. 그 아름답고 윤기 흐르던 하얀 털이 모두 상해 있었다.

여우는 수존의 힘을 낮게 봤고 마존 역시 여우의 능력을 가벼이 여겼다.

그래도 이번 지옥 화염의 폭발은 수존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남궁혜가 급히 물었다.

“죽었나요?”

심빙우가 심안을 열고 살펴보니 불길 속에 핏빛 윤곽이 감지되었다. 그녀는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안 죽었어!”

적혈수존은 이글거리는 녹색 화염에 휩싸인 채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선혈해골 정령은 거의 다 녹아 있었지만, 이미 지옥 화염을 물리친 상태였다.

남궁혜가 크게 놀라 외쳤다.

“끝장이야.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지? 우리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그렇지 않아요!”

천제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적혈수존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여우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정령이 삽시간에 완전히 박살 났다. 심빙우가 화살처럼 빠르게 몸을 날려 양손을 열십(十)자 모양으로 모아 마력을 날렸다. 마력이 지나간 자리는 푸른 서리로 뒤덮여 꽁꽁 얼어 버렸다.

퍽!

장력이 적혈수존을 강타하는 순간 얼음 마력이 얼음결정으로 응결되며 거대한 얼음송곳으로 변해 적혈수존의 가슴을 관통했다. 적혈수존은 그대로 밀려나며 적혈신전 기둥에 꽂혀 버렸다.

남궁혜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네. 힘이 다 빠진 상태였잖아.”

“넌 몇 백 년 전에 죽었어야 했어.”

천제현이 수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길 유언이라도 있어?”

“네놈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어린놈들에게 패배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적혈수존은 한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죽더라도 네놈들과 함께 죽을 것이다!”

적혈수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전이 흔들거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기랄!”

천제현은 발밑에서 거대한 인력을 느꼈다. 그 인력은 순식간에 수십 배 증가했다.

“적혈신전이 다시 늪에 가라앉고 있어요. 어서 빠져나가야 해요!”

적혈수존이 기분 나쁘게 웃기 시작했다.

“빠져나간다고? 아무도 못 나간다. 모두 함께 죽는 거야!”

적혈신전 중앙에서 강력한 마력진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 힘 때문에 거대한 인력이 생성되어 신당이 가운데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존이 신전을 붕괴하게 만든 것이다.

빠른 속도로 신전 곳곳에 금이 가더니 군데군데 무너지기 시작했다. 땅이 빠르게 갈라지면서 바닥에서 늪의 진흙이 수없이 튀어 올랐다.

이건 단순한 침몰이 아니었다. 완전한 파멸이었다.

붉은 늪까지 힘에 의해 일렁였다. 폭발적인 인력에 의해 적혈신전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잔해마저도 수십, 수백 장 깊이의 암흑의 지대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적혈신전은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적혈신전에 숨겨진 보물들 역시 영원히 땅속에 묻히게 되겠지!’

남궁혜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신전에서 방출된 인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세 사람은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는 금속처럼 발을 떼기 힘들었다. 심빙우조차도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쿵쿵쿵!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신전 결계가 자글자글 갈라지며 거대한 결계가 수축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결계 안의 모든 사물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양쪽의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자 세 사람은 적혈신전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하하하! 죽어라. 나와 함께 가자꾸나!”

적혈수존은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몸을 말아 아득한 늪을 향해 날렸다.

“제기랄!”

남궁혜가 욕을 퍼부었다.

“저 괴물이 우리를 저승길에 같이 데리고 가려고 하네!”

그러나 모든 게 너무 늦어 버렸다. 적혈신전은 무서운 속도로 붕괴되고 있어서 세 사람은 도망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게 될 게 뻔했다.

여우는 순간이동으로 도망쳤지만 아무도 데리고 나올 수 없었다. 여우 역시 급한 마음에 펄쩍펄쩍 뛰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정말 여기서 죽는 것인가?’

남궁혜와 심빙우는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돌아보지 말고 계속 전진해요!”

이 위험천만한 순간에 천제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서 가요!”

“내가 빠져나가기 싫어서 여기 있는 줄 알아?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적혈신전 절반이 완전히 무너졌다. 짙은 보랏빛의 늪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늪의 진흙이 소용돌이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하자 신전의 파편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방법이 없다.

천제현이 손바닥을 모았다.

신비롭고 거대한 힘이 몸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천제현은 느긋하고 여유 넘치던 표정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그는 중생을 굽어보는 위대한 군왕의 기운을 풍겼다. 두 눈이 하나는 은색으로, 다른 하나는 흰색으로 변했고, 일곱 개의 동공이 그 안에서 원을 그리며 돌다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신비롭고 괴이한 일곱 개의 빛을 발했다.

천제현이 왼쪽의 은색 눈을 감고 오른쪽 흰 눈만 떴다. 하얀 눈동자가 점점 빛을 뿜어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러자 가라앉던 신전이 그대로 멈추면서 모든 압력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남궁혜와 심빙우는 놀라서 자리에 굳어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이야?

“가요!”

천제현은 눈에서 한줄기 피를 흘리며 이를 악물고 뛰어올랐다. 세 사람이 함께 결계를 돌파했다.

땅에 낙하하자 천제현의 두 눈은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천제현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었다.

남궁혜가 급히 그를 부축했다.

“야, 너 왜 이래?”

“그의 힘은 무척 강하지만 제약도 크지.”

심빙우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탈진한 것뿐이야.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자!”

“예!”

남궁혜가 천제현을 업고, 세 사람은 빠르게 늪을 빠져나갔다.

여우는 줄곧 세 사람 뒤를 따랐다. 얼마 가지 않아 여우는 바닥에 드러누운 거대한 마수를 발견했다. 마수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죽어 있었다. 붉은 늪의 최상급 마수인 용석수였다.

바삐 도망치던 여우는 걸음을 멈추고 입에서 영혼 나무 인형을 토했다. 여우는 영혼 나무 인형을 쥐고 용석수의 시체를 향해 몇 번 흔들었다. 곧 시체에서 자색의 기운이 빠져나와 전부 나무 인형으로 흡수되었다.

나무인형이 작은 용석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우가 흡족해하며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무 인형을 삼켰다. 그리고 순간이동을 몇 번 사용하여 세 사람 뒤를 따라 붉은 늪을 벗어났다.

남궁혜와 심빙우는 천제현이 무슨 힘으로 신전의 붕괴를 막았는지 알지 못했다. 천제현이 사용한 방법은 그녀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천제현이 방출한 힘 때문에 주변 공간이 잠시 굳어 버렸다. 공간이 굳어져서 붕괴가 멈춘 까닭에 세 사람은 겨우 살아나올 수 있었다.

공간을 제어하는 일은 신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천제현은 많은 힘을 소모했다. 혼성 경지의 실력으로는 이런 강력한 힘을 방출하고 견뎌낼 수 없기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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