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제351장 적혈수존의 부활(2)
“도망치려고? 꿈 깨시지!”
수존이 노발대발하며 선혈성배를 높이 치켜들었다. 바다를 휩쓰는 파도처럼 엄청난 마력이 다시 한 번 솟구쳤다.
신전 외벽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세 사람도 마력에 의해 밖으로 밀려났다.
“이 늙은 괴물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끝까지 붙어보자!”
왕도가 휘파람을 길게 불자 쌍익독룡이 발톱에 적혈령을 쥐고 날아와 선혈 결계를 깼다. 쌍익독룡이 돌풍처럼 빠르게 꼬리로 수존을 공격했다.
“감히!”
수존의 정령이 손을 뻗어 쌍익독룡의 꼬리를 움켜잡았다. 크게 놀란 쌍익독룡이 입에서 맹독화염을 뿜어냈다. 그러나 맹독화염은 수존의 몸을 둘러싼 정령에 막혀 아무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수존이 고함을 지르자 쌍익독룡이 땅에 세게 처박혔다. 이내 선혈성배에서 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와 해골의 다른 한쪽 팔에 모여들더니 긴 창으로 변해 쌍익독룡을 향해 날아갔다.
“안 돼!”
왕도가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선혈 창이 쌍익독룡의 몸을 뚫고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쌍익독룡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독이 상처를 따라 온몸으로 퍼지자 쌍익독룡의 피부가 조금씩 붉게 변하며 물러지더니 피고름이 되어 녹아내렸다.
수존이 다시 한 번 힘을 폭발시켰다.
해골 손에 들린 창이 커다란 활과 화살로 바뀌면서 도망치려는 좌연에게 날아갔다. 이미 금이 간데다 다시 한 번 거센 공격을 받자 견디지 못한 유화교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좌연은 화살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화교에서 빠져나왔다. 적혈수존의 실력은 평범한 혼성 9성 정점의 강자를 초월했다. 거기에 불멸 혼기인 선혈성배까지 가지고 있으니 혼성 경지의 강자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애당초 남하국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던 낙라가 그들을 도울 리 있겠는가? 낙라는 즉시 쌍도를 거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달려갔다.
그걸 지켜보던 수존이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강력한 비기가 펼쳐지면서 폭발한 마력이 순식간에 낙라를 쫓아갔다.
낙라가 신전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강력한 힘이 방어 마력을 부수고 그의 몸을 덮쳤다. 낙라는 피를 토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그를 밀어내는 힘을 이용하여 단숨에 적혈신전을 빠져나갔다.
왕도는 쌍익마룡의 온몸이 피고름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이를 악물고 부적을 땅에 내리쳤다.
곧 부적이 꽂힌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두껍고 단단한 진흙 보호벽이 솟아올랐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하지만 수존이 거대한 검을 날리자 진흙 보호벽이 바로 허물어졌다. 이내 수존은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추격하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비틀거리며 허공에서 추락할 뻔했다.
‘빌어먹을! 마력을 너무 많이 썼군!’
적혈수존은 막 깨어난 탓에 허약한 상태라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선혈성배를 지니고 있어서 힘이 매우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상대방은 그가 멈칫한 몇 초 동안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
왕도와 좌연이 허겁지겁 줄행랑을 쳤다.
서심은 어두운 얼굴로 초조해했다. 이번에 적혈신전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그녀의 책임이었다. 서심은 그자가 첩자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놈이 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정신계약서를 찢었는데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지?’
“날 찾는 거야?”
서심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리자 그녀의 안색이 급변했다. 곧바로 수많은 빛의 탄환이 그녀의 몸으로 날아들었다.
“비열한 놈! 죽여 버리겠다!”
마력 권총에 의해 여러 군데 상처를 입자 서심의 방어 마력은 한 차례 더 빛을 잃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공격하려는 순간 서슬 퍼런 한기가 왼쪽 몸을 엄습하더니 뒤통수에 기습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퍽!
박살난 서심의 머리통은 무수한 얼음조각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천마교의 당주는 결국 그렇게 한을 품고 죽었다.
“으악!”
수존은 세 사람의 행방을 찾아냈지만 마력이 고갈된 탓에 추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눈앞에서 서심이 살해당했지만 그는 그저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서심노자의 뒤에서 심빙우와 남궁혜가 걸어 나왔다. 둘 다 곧장이라도 전투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세상을 떨게 만드는 천마교가 너희 같이 어린 것들에게 당할 줄은 몰랐다.”
적혈수존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정말 고작 너희 몇 명으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꿈 깨라!”
“말이 너무 많군. 이길 자신도 없이 널 풀어줬을 것 같아?”
천제현이 여우에게 눈짓을 보내자 여우가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우의 호흡에 선혈성배 안의 들끓는 힘이 끌려나오더니 곧바로 여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뭐야?”
수존의 안색이 급변했다.
“저건 대체 무슨 영수기에 성배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냐!”
“놀라기엔 아직 일러! 여우야, 네 힘을 보여줘!”
이번에 새끼 여우는 나무 인형 하나를 토했다. 이번이 지옥 화염을 소환하는 마지막 기회라 여우의 까만 눈동자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녹색 빛이 하늘을 향해 퍼져나가더니, 적혈수존 앞에 엄청난 크기의 화염거인이 나타났다.
적혈수존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자를 풀어놓았으니 반드시 처치해야 한다. 이는 천제현의 원칙이다.
처치하지 못한다면 적혈수존은 남하국의 재앙이 될 게 분명하다. 남하국의 수많은 백성이 피해를 입을뿐더러 기적상회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미리 싹을 자르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환이 남는 법이다.
“처치해!”
천제현이 명령을 내렸다.
여우가 몸을 날려 지옥 화염의 머리에 올라섰다. 지옥 화염은 여우의 명령에 따라 적혈수존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천제현이 자신만만해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혈수존의 실력은 지옥 화염보다 조금 더 강했다. 그러나 여우가 옆에서 돕는다면 적혈수존의 마공을 약하게 만들고 적혈수존이 선혈성배를 통해 힘을 회복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적혈수존은 매우 허약한 상태였다.
그를 일거에 소멸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심빙우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양측이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적혈수존이 갑자기 공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녀는 천제현과 남궁혜를 보호해야 했다.
물론 심빙우도 적혈수존의 적수가 못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을 실력은 있었다. 심빙우는 성광불멸체를 연마한데다 실력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지옥 화염이 수존을 향해 불타는 거대한 주먹을 세차게 날렸다.
수존이 왜소한 몸으로 허공으로 뛰어오르자 선혈해골이 그를 완전히 감쌌다. 해골 역시 주먹을 치켜들고 지옥 화염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
-콰앙!
굉음이 울렸다.
지옥화염이 방출한 심연의 녹색 화염과 선혈해골이 방출한 선혈의 힘이 동시에 서로를 타격하자 물과 불이 만난 듯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존이 방출한 선혈의 힘은 부식성이 강하여 혼성술사를 상대할 때 매우 유리했다.
그러나 지옥 화염은 원소 생명체로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다.
수존의 힘은 지옥 화염에게 아주 제한적인 피해밖에 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심연의 화염은 선혈의 힘을 증발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옥 화염은 힘으로 적혈수존을 제압할 수 있다.
양측이 모두 뒷걸음질 쳤다.
여우가 다시 지옥 화염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적혈수존도 질세라 힘을 응집시켜 만든 거대한 창을 지옥 화염에게 무서운 속도로 날렸다. 지옥 화염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오른 주먹을 해골의 몸을 향해 날렸다. 이때 여우가 힘차게 일어나 배를 내밀고 숨을 들이마셨다. 선혈해골이 손에 든 창으로 지옥 화염을 찌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강력한 외부의 힘에 의해 창이 박살 났다.
뿐만 아니라 적혈수존의 마공도 순식간에 3할이나 줄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야야?’
듣도 보도 못한 영수의 능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여우는 그야말로 마공의 천적이었다.
여우는 어떤 마공도 가볍게 깨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별다른 수를 쓰지 않고 근본적으로 거칠게 상대의 힘을 빼앗았다.
적혈수존이 마력을 회수하고자 했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지옥 화염이 강력한 힘을 주먹에 모아 적혈수존의 몸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선혈해골의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면서 거센 힘이 적혈수존을 엄습했다. 수존은 온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피를 토하더니 10장 밖으로 날아갔다.
남궁혜가 감탄하며 여우를 칭찬했다.
“여우야, 잘했어! 저놈을 끝장내버려!”
여우가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흔들며 재빨리 지옥 화염을 조종했다. 지옥 화염이 거대한 오른발로 바닥에 쓰러진 적혈수존을 밟았다. 적혈수존이 곧장 두 손으로 막았으나 산처럼 덮치는 엄청난 힘에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이 괴물은 너무 강하다. 계속 싸우면 불리하겠어!’
지옥 화염의 힘에 밀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적혈수존은 선혈성배를 들고 마력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우가 그걸 가만히 놔두겠는가?
모든 힘을 빨아들여주지!
여우가 세차게 숨을 들이마셨다.
선혈성배의 힘이 모두 여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우는 입맛을 몇 번 다시면서 맛을 음미하는 듯했다!
적혈수존은 미칠 듯이 분노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놈들이 그를 궁지로 몰았다.
과거의 힘만 되찾았어도 이런 놈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죽어라!”
적혈수존이 손을 흔들어 피의 화살 네다섯 개를 날렸다. 이번은 지옥 화염이 아닌 천제현을 향한 공격이었다. 이런 공격에 진즉 대비하고 있던 심빙우가 동시에 세 겹의 수정얼음벽을 만들었다.
화살이 얼음벽을 하나하나씩 깨뜨리고, 천제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위력이 대폭 줄어든 탓에 심빙우의 공격 한 방에 모두 박살 났다.
적혈수존은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지옥 화염과 마공을 제압하는 여우를 상대하느라 강력한 힘을 모으기 힘들었다.
그러나 심빙우는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췄다.
공격은 다급하고 방어는 완벽하니 이런 기습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적혈수존의 힘이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계속 싸우다가는 여기서 발목을 잡힐 지경이었다. 그는 지옥 화염과 맞서기를 포기하고 몸을 돌려 결계 밖으로 돌진했다.
‘도망치려고?’
천마교 10대 전승 중 하나인 적혈 전승 수존이 남하국 같은 소국의 보잘것없는 놈들에게 당해 꽁무니를 뺐다는 사실을 천마교 교주가 알게 된다면 분노로 피를 토할 것이다.
그러나 적혈수존이 도망치게 둘 천제현인가? 그가 도망친다면 호랑이가 산으로 들어가는 격이 아닌가.
그 순간 여우의 몸이 순식간에 회색 안개로 변하더니 수존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