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
제350장 적혈수존의 부활
대전 1층에서 격렬한 소리가 들렸다.
폭발적인 힘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고, 단약병과 서적이 일시에 땅바닥에 쏟아졌다.
천제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가 깊이 심호흡하고는 선혈성배를 잡고 높이 들어 올리자 선홍색 불빛이 폭발해 대전 전체를 비추었다. 바닥에서 복잡한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주변으로 무수히 교차되더니 커다란 마력진을 형성했다.
적혈대전이 흔들렸고 마력진은 마치 피를 주입한 것처럼 온통 새빨갛게 변해갔다. 곧이어 붉은색 번개가 번쩍이면서 석관 하나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대의 광활한 힘이 짓누르는 것처럼 중압감과 함께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이윽고 이 거대한 힘이 모든 공간을 뒤흔들었다.
천제현은 벽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선혈성배는 그의 손을 벗어나 석관 쪽으로 날아가 그 위에서 멈춰 섰다. 성배가 점차 기울어지면서 걸쭉하고 붉은 액체가 석관에 쏟아졌다.
이 붉은 액체는 순식간에 석관 전체로 퍼져나갔고 틈 사이사이로 모조리 다 스며들었다.
‘맙소사! 선혈성배가 수존의 힘을 회복시켰다!’
이때 적혈신전이 다시금 요동쳤다.
“소인 천마교 제자, 수존의 재림을 경하드리옵니다!”
천제현은 재빠르게 석관을 향해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렇게 급히 수존 대인을 깨운 것은 현재 모든 분타주가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주만 살아남아 수존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 고수의 포위 공격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적혈파의 대가 곧 끊길 것 같습니다!”
“뭐라는 거냐?”
석관에서 목소리가 전해졌다.
이 목소리는 남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날카롭고 괴기스러웠다. 언뜻 들으면 아이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음산함을 더 가중시켰다.
“수존 대인, 적혈 보물을 노리는 도둑놈들이 신전 밖에 있습니다!”
쾅!
선홍색 석관이 굉음을 내며 갈라지더니 붉은색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던 천재현의 눈동자에 경악의 빛이 흘러 넘쳤다.
수존은 고작 3척 정도 되는 키에 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신의 피부는 핏빛에 가까운 붉은 색이었고 손톱은 날카로운 단도처럼 길었다.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요괴의 모습이었다.
생김새가 이상하면 필시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 수존은 생긴 게 저리 요상하니 분명 실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천마교 10대 분파 중 하나인 천마교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다니!”
아이의 모습을 한 적혈수존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도검보다도 더 예리한 포효 소리에 바닥이 쩍 갈라질 정도였다. 천제현의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뛰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적혈수존이 공중에 떠다니는 선혈성배를 잡고는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허공을 가르며 밖으로 나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막 깨어난 적혈수존의 마력이 혼성 9성 정점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으니. 천제현도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회복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겠지.’
사실 이는 순전히 선혈성배 덕분이다. 다행인 것은 천제현이 적혈수존이 회복에 전념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그의 능력이 다 회복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좋아! 이제 모든 건 운에 달렸구나!”
천제현이 아까 전에 얻은 망토로 몸을 덮고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왕도, 좌연, 견융족의 두 고수, 그리고 적혈 당주 서심이 동시에 적혈신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모두들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곳에 있어야 할 수많은 단약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빈병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적혈파의 보물은?’
다섯 고수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보물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대전에서 발생한 폭발로 견융족 낙라와 왕도, 좌연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위기감이 그들을 덮쳐왔다.
더 말해 무엇하랴. 적혈수존이 깨어난 것이다.
“적혈노괴가 깨어났다!”
“빌어먹을! 적혈의 보물들이 다 미끼였단 말인가?”
다들 분통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보물을 찾으러 왔는데 진짜 보물은 보지도 못하고 적혈수존과 같은 괴물과 싸워야 하다니.
서심은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수존께서 깨어나셨다. 네놈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
서심 역시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우선 이 침입자들부터 없애는 게 급선무였다.
“적혈노괴는 남하와 견융의 공공의 적이오.”
왕도가 견융족 낙라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의 은원은 잠시 내려놓고 저 노괴부터 함께 상대합시다!”
“알겠소이다!”
낙라 역시 이에 동의했다.
수존이 부활하자 남하국 고수들과 견족은 잠시 동맹을 맺었다.
“우선 저 늙은 놈을 처치하자!”
왕도와 좌연, 낙라는 함께 공격을 펼쳤다.
적혈당 당주 서심은 혼자서 셋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서심노자를 완전히 끝장내지 못했다.
그때, 대전 안에 갑자기 피바람이 몰아치면서 사람들 머리 위로 붉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몰려왔다. 피처럼 붉은 힘이 붉은 구름처럼 응집되면서 가는 바늘로 변해 폭우처럼 세 사람 위로 쏟아졌다.
“가소롭다!”
좌연이 유화교(流火轎)를 꺼내 맞섰다. 강력한 힘을 지닌 바늘이 유화교에 떨어지자마자 전부 튕겨져 나가거나 부러졌다. 그러나 유화교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은 듯 했다.
왕도와 낙라가 이를 보고 급히 유화교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오랫동안 전투를 치르느라 둘의 마력은 절반가량 소모되었다. 적혈당 수존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아껴야만 했다.
곧 수많은 붉은 구름이 뭉치면서 힘이 수십 배 강하게 응집되더니 마침내 주먹 모양으로 바뀌어 유화교를 강하게 내리쳤다.
오래된 보물인 유화교는 마치 유성이 내리치는 듯한 공격을 받았다. 그 공격으로 신전 바깥쪽 궁전 외벽이 반쯤 무너져 불그스레한 하늘이 드러났다.
“제기랄!”
좌연은 유화교 몇 곳에 금이 간 것을 느꼈다. 남궁 가문에서 좌연에게 보물인 유화교를 넘긴 이후, 유화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파괴된 적이 없었다. 그런 유화교가 적혈당 수존의 일격에 이렇게 심하게 파손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존의 세 척에 달하는 거대한 몸이 허공에 응축된 피구름 안을 떠돌았다. 핏빛 구름은 뒤편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다가 거대한 암홍색 해골로 변했다.
낙라가 곧장 정령급 무기 다섯 개를 꺼냈다.
다섯 개의 영체가 늑대 병사 손에 들린 장검으로 합체되어 낙라의 몸 밖으로 뛰쳐나와 수존을 향해 날아갔다. 수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검은 수존을 에워싼 해골에 막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시뻘건 화염이 장검에 퍼지며 정령급 무기 다섯이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낙라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거대한 암홍색 해골은 적혈수존의 정령인 듯 보였다. 일격으로 유화교를 금가게 한데다 최고의 방어 무공에 버금갈 정도의 방어력이었다.
공수를 겸비한데다 선혈성배까지 가지고 있으니 중상을 입어도 바로 회복되고 아무리 써도 마력이 닳지 않았다. 적혈수존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적혈수존은 이제 막 깨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져서 결국 혼성술사가 감히 이길 수 없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불리해진다.
흥분한 서심이 외쳤다.
“수존을 뵙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깨끗이 털린 적혈신전을 훑어보는 수존의 두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
서심이 멈칫했다.
그녀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맞아, 대체 누가 적혈신전을 이 꼴로 만들었지?’
이 신전은 오랫동안 수백 장 깊이의 맹독 늪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신전이 열리기 전까지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신전으로 들어왔다.
‘설마…….’
신전에 먼저 들어온 이는 냉봉과 견족 강자들뿐이었다.
수존이 깨어났다는 것은 견족 강자들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럼 냉봉은 분명 신전 안에 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유력한 범인이 가장 보잘것없는 냉봉이라니.
낙라가 흔적을 보며 가늠해 보았다.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야.”
“빌어먹을!”
왕도가 이를 갈았다.
“우리가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때 몰래 들어가 몽땅 털어가다니! 용서할 수 없다!”
서심은 더욱 굳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냉봉, 네놈이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어서 튀어나와!”
신전 안팎에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적혈수존은 깜짝 놀랐다.
‘설마 적혈신전 털어간 놈이 방금 나를 깨운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놈은 분명 신전 안에 있다!’
적혈수존이 곧바로 심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놀랍게도 놈은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망토!”
“그림자 망토야!”
“놈이 그림자 망토를 훔쳐갔군. 이 모든 게 역시 그놈 짓이었어!”
수존이 노발대발했다. 이번에 최소 남하국 금화 수백 억 냥과 상품 혼기, 최상품 혼기, 성약, 성단, 최상품 재료를 몽땅 털렸다. 모두 무척 값나가는 귀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천마교를 부흥시킬 밑천이었다.
“서심!”
수존이 따귀를 날리자 서심이 곧바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이미 크게 다친 데다 다시 부상을 입었지만 그녀는 수존에게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네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아라!”
서심이 피를 토하며 처참한 몰골로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놈을 찾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 서심은 두루마리를 꺼냈다.
“놈이 나타나지 않으면 네놈의 정신을 박살 내겠다!”
적혈신전 안은 여전히 아무 기척 없이 고요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서심은 눈을 질끈 감고 마력을 분출하여 정신계약서를 단숨에 찢어 버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심은 놀라서 다시 한 번 굳어 버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그녀는 계약서 두루마리로 냉봉이 근처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냉봉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림자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본 왕도와 좌연, 낙라는 몹시 낙담했다.
왕도가 냉정하게 말했다.
“적혈신전의 보물이 털렸으니 목숨을 걸 가치가 없어. 철수하는 게 좋겠어!”
“그렇게 하세!”
좌연은 유화교 때문에 마음이 쓰렸다. 이번 보물찾기 여정은 손해가 막심했다.
적혈신전 안에 여전히 많은 무공과 재료가 있지만 진귀한 것들은 이미 다 털린 상태다. 값이 나가는 게 있긴 하지만 적혈수존과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물건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