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
제349장 어부지리를 취하는 천제현(3)
천제현은 혈음강을 모두 쏟아내 조롱박에 넣은 후 다시금 유용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천마교에 엄청난 부가 축적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혈파는 분파 중 하나일 뿐인 데다 적혈신전 역시 임시 피난처에 불과하므로 이곳에 있는 옮겨진 물건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는 보물만으로도 남하국 전체를 뒤흔들고도 남을 엄청난 양이었다.
이곳에는 마석만 수십 상자에 달했다.
천제현이 대충 훑어보니 마석은 적어도 수백 만 개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품질이 천차만별이었고, 대부분 하품 마석이었다. 게다가 마석이 들어갈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모두 가져갈 수 없었다.
마석은 대륙의 상용 화폐이긴 했으나, 돈으로만 이 귀한 조롱박 공간을 채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끝났어?”
남궁혜가 앞에 나타난 순간 천제현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남궁혜는 금색 비단 조끼를 걸치고 그 위에 혈색 갑옷을 입은 후 마지막에 붉은색 망토를 둘렀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사이에 반지를 꼈고 하얗고 매끄러운 손목에는 팔찌 8개를 찼다. 목에도 5개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데다 등에는 창, 미늘창, 장검을 한데 묶어서 매고 있었다. 심지어 신발도 억지로 세 개나 신고 있었다.
천제현은 너무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뭐래!”
남궁혜가 말을 하자 전신에 휘감긴 장비들이 모두 흔들렸다.
“이 장비들이 얼마나 값비싼 물건인지 알기나 해?”
천제현은 옆에 있는 심빙우를 쳐다보았다. 천성이 차갑고 냉정한 그녀도 이때만큼은 벼락부자라도 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가세요. 너무 욕심내지 마시고요!”
천제현이 당황해하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좋은 것만 가져가세요.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하지 말고요. 우린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제가 두 분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줄 알겠어요!”
“누가 너보고 먹여 살리래?”
“빨리 넣어!”
심빙우, 남궁혜는 무리한 듯 했지만, 그들이 고른 장비는 모두 상품 혼기였다. 이것들은 실력을 배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천제현은 심등을 켠 후 신식을 통해 각종 재료와 장비를 훑어보았다.
“이 망토, 괜찮네요!”
천제현이 후미진 쪽으로 걸어가 평범해 보이는 망토를 들었다.
“이것은 최상품 혼기예요!”
심빙우가 냉담하게 말했다.
“최상품 혼기는 나도 몇 개 챙겼어. 신기할 것도 없다고.”
심빙우도 심안을 열어 훑어본 터라 고품질 장비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똑같은 최상품 혼기라고 해도 비교해 보면 누님이 고른 건 품질이 훨씬 떨어져요!”
심빙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천제현이 그녀를 보며 미소 짓더니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망토를 둘렀다. 그러자 그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흥! 무슨 대단한 기능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냥 몸을 숨기는 거잖아? 심안!”
돌연 심안을 연 심빙우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심안을 통해서도 천제현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뒤에서 손이 튀어나와 심빙우의 어깨에 툭 쳤다. 히죽대는 천제현의 얼굴이 서서히 나타났다.
“어때요? 이 망토는 전투력 면에서 큰 도움은 못 되지만, 신식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으니 꽤 괜찮지 않나요?”
물론 그 망토는 심안을 연 심빙우의 신식을 차단할 수 있지만, 심등을 켤 수 있는 천제현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천제현이 보물을 몇 개 더 챙겼을 무렵 적혈신전 주변에서 굉음이 들렸다. 놈들이 곧 들어올 기세였다.
“3층으로 가요!”
***
적혈신전 3층 입구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무언가 짓누르는 기운이 그들을 덮쳐오는 것 같았다. 아직 들어가진 않았지만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 거대한 문 뒤편에 선혈의 바다가 꿈틀대고 있어 문을 열기만 하면 핏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제현은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
“준비 되셨어요? 문을 엽니다!”
심빙우와 남궁혜는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현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을 힘껏 밀었다. 그러자 선홍색 불빛이 순식간에 주위를 뒤덮었고, 세 사람은 동시에 전신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육중한 문 뒤편에는 온통 피로 뒤덮인 악귀가 전당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남궁혜가 아연실색하여 말했다.
“이런! 매복이다! 어째서 괴물이 이토록 많은 거지?”
남궁혜가 망치를 들고 공격을 시작하려던 찰나, 신식이 남궁혜의 머릿속에 들어왔고, 이때 남궁혜 눈앞에 있던 무수한 악귀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방금 어떻게 된 거야?”
“환각이었어요. 짓궂은 장난을 쳐 놨네요.”
천제현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는 심등 경지의 신식을 시전할 수 있어 환각술을 분별할 수 있었다. 주 정령의 특수한 능력만으로도 천제현은 환각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심등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 천제현이 심빙우와 남궁혜에게 걸린 환각술을 깨뜨려준 것이다.
적혈신전 3층은 앞서 두 개 층과는 다르게 압도적인 면적을 자랑했다. 보석과 자원은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흉악하게 생긴 조각상들만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돌로 된 단이 놓여 있었다.
돌단 위에는 대략 30cm 높이에 달하는 선홍색 물건 하나가 있었다.
이 물건 표면은 여러 개의 핏줄처럼 생긴 선홍빛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고,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강력한 힘의 기운이 느껴졌다.
공기 중에 가득한 피비린내는 아마도 이 물건에서 나오는 냄새일 것이다.
“도감과 완전히 같아.”
남궁혜는 놀란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재미있어 했다.
“이것은 적혈 성물인 선혈성배가 틀림없어!”
세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천제현이 찾고 있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저 선혈성배였다. 이 선혈성배는 적혈파의 가장 중요한 성물로서 각종 기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남궁혜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최소한 불멸 혼기 정도는 될 거야! 장담해!”
천제현은 그녀를 흘겨보았다.
“쓸데없는 말 좀 그만해요!”
남궁혜는 억울했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불멸 혼기는 매우 드물었다.
천제현조차 지금까지 본 불멸 혼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명검, 어혼방울 등이 불멸 혼기에 속하는데, 이것은 모두 만시고묘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만시고묘의 내력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시고묘를 세운 문파는 천마교 보다 강한 세력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년의 시간 동안 무분별한 도굴이 있었음에도 만시고묘에는 여전히 불멸 혼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우 얼굴의 강시왕과 새끼 여우.
이것들도 만시고묘에서 나온 게 아니었는가?
고대 문파가 사라진 지 만 년이 넘었고, 천마교는 수백 년 전에 멸망한 문파였다.
천마교의 불멸 혼기가 강시협곡의 문파보다 많지 않다고 해도 분파마다 최소한 불멸 혼기 하나를 성물로 삼고 있었다. 선혈성배의 위력은 유명검에 필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강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선혈성배의 품질이 유명검보다 좋다는 건 아니다.
선혈성배는 수백 년 동안 봉인되어 그 힘이 크게 쇠락해 있을 것이고, 유명검도 최소한 만 년 동안 잠들어 있었으니 이 둘은 개념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남궁혜가 성배쪽으로 뛰어갔다.
“내가 가져올게!”
선혈성배는 적혈파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다. 이제 이곳에서 챙길 것은 다 챙겼고, 마지막으로 선혈성배만 챙겨 줄행랑을 치면 그만이었다.
“잠깐만요!”
천제현이 서둘러 남궁혜를 막았다.
남궁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불멸 혼기가 눈앞에 있는데 가져가 줘야지!”
“남궁 아가씨, 또 혼나야겠군요. 머리 좀 쓰시라고요. 이러다 썩겠네!”
남궁혜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내가 언제 머릴 안 썼다고 이러는 거야?”
“보면 몰라요? 선혈성배는 주인을 식별할 수 있다고요. 선혈성배가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어요!”
대다수 불멸 혼기는 단순한 의식 체계를 가지고 있어 자신에게 맞는 주인을 선택한다. 일전에 만시고묘에서 음풍검객 만무일이 뇌령주를 훔치려고 했으나 오히려 뇌령주에 의해 화상을 입었고, 천제현도 기령이 거부하는 바람에 뇌령주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장점은 불멸 혼기가 일단 주인으로 인정하면 주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것을 사용할 방법이 없다. 불멸 혼기는 주인이 쇠약해지기 전까지 다른 주인을 절대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단점이다. 의식이 있는 불멸 혼기의 경우, 자신의 속성 혹은 무공과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럼 어떻게 하지?”
“서두르지 마세요!”
천제현이 심안을 열어 성배를 자세히 관찰했다.
“대전 내부에 거대한 진법이 펼쳐져 있어요. 성배는 진법을 억누르고 있는 핵심 부분이죠. 만약 경솔하게 이 성배를 가져갔다간 진법이 즉시 가동될 거예요. 진법이 가동되면 모종의 힘이 적혈수존을 깨울 거고요.”
“그래?”
남궁혜가 난색을 표했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선혈성배를 못 가져가는 거야?”
확실히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귀한 보물을 가져가지 못하면, 이번 여정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우르릉.
그때 적혈신전의 외부 결계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심빙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누군가 들어왔어!”
“방법도 없고, 시간도 없어!”
남궁혜가 천제현에게 말했다.
“이것도 엄청난 성과야. 이제 그만 철수하자! 저들이 들어와 상황을 보게 되면 미쳐서 팔짝 뛸 거야! 아깝긴 하지만 가져갈 수도 없으니 그냥 놔두자고!”
적혈전의 두 개 층은 이미 세 사람과 여우 한 마리가 다 쓸어 담아 거의 텅텅 비었다.
진귀한 단약과 귀한 재료는 천제현 일행이 이미 가져간 상태라 현재 남은 것은 쓸모없는 무공과 염가의 단약, 일반 재료뿐이었다.
이곳에 보물을 찾으러 온 사람들도 평범한 인물들이 아닌 이상 이 상황을 보게 된다면 이성을 잃고 날뛸지도 모른다.
“여기 은닉부를 가지고 먼저 나가세요!”
천제현이 부적 몇 장을 두 여인에게 건넸다.
“밖에서 기다려요. 이곳을 좀 수습하고 갈게요!”
“대체 뭘 하려고?”
“빨리 가요!”
남궁혜와 심빙우는 천제현을 믿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은닉부를 활성화한 후 적혈대전을 빠져나갔다. 이 은닉부는 신식을 피할 수 없지만, 상대가 신식을 펼치지 않은 상태라 은닉부로도 충분히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