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제346장 고수들의 충돌
견융초원에 터전을 둔 마수령은 주로 견족과 늑대족이 주를 이루었고, 이 가운데 늑대족의 지위가 보통 더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중상층 세력은 대부분 늑대족이 차지했고, 눈앞에 있는 저 마수령 강자는 모두 늑대족의 고수였다.
특히 양손에 각각 장도를 들고 있는 저 늑대족 고수는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남하국의 강자는 견융족보다 그 수가 많지 않다. 다만, 혼성 9성 정점의 실력자는 견융초원에서도 최상위에 속했다.
“난, 열아부족(裂牙部族), 대용사(大勇士) 낙라!”
견융족 고수의 말투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넌 누구냐!”
마수령족 언어는 인간과 완전히 달랐다. 마수령족은 방대한 군집을 이루고 있는 종족으로 인간처럼 개체군이 통일된 종족이 아니었다.
늑대족은 이 다양한 군집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서 마수령 문화는 서로 간에 마찰과 충돌이 빈번하게 나타났고, 언어 역시 다양했다.
마수령은 인간보다 지능이 낮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도 않았기에 대부분 다른 종족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몰랐다.
이 늑대족은 가공할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족 언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히 출중한 마수령임에 틀림이 없었다.
서심노자는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선홍색 이무기 정령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이무기가 순식간에 핏빛 안개로 바뀌더니 돌연 폭포수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크아!”
견융족 강자인 낙라가 포효했다.
견융족 두 명과 용석수와 대치 중인 실력자 한 명이 곧바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거대한 핏빛 안개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자 깜짝 놀란 세 사람이 곧장 몸을 피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다행히 공격을 피했으나 다른 한 사람은 핏빛 안개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 견융족의 털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더니 강력한 혈독이 그의 체내로 침투했다.
견융족 고수는 심오한 마력의 소유자였던 터라 서심노자의 혈독에도 불구하고 바로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력을 끌어 모아 혈독의 침투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용석수가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녹색 빛이 그의 몸을 내리쳤다.
“악!”
견융족 강자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온몸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겼다. 서심노자는 한 명을 의외로 쉽게 제거한 것이 흡족한 듯 차가운 미소를 날렸다.
천제현도 옆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싸워라, 싸워라! 둘이 다쳐도 좋고 셋 다 다치면 더 좋고!’
이들의 마력 소모가 클수록 상황은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용석수는 지능은 낮았지만, 영토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누구든지 영지를 침입하면 그게 사람이든 마수든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용석수는 이 인간들이 어째서 서로를 죽이는 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쨌든 견융족의 세 고수가 용석수 영지를 먼저 침범했고, 용석수를 먼저 공격했으니, 단순 무식한 용석수에게 그들은 공격 대상 1순위였다.
서심노자의 혈독대법은 궁극의 맹독 무공이다. 그는 이 무공으로 견융족 고수를 기습했고, 맹독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견융족 고수의 체내에 침투했다. 그러나 마력이 강한 견융족 고수는 종족의 비술과 전신의 마력을 사용하여 혈독을 몸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용석수가 기습 공격을 퍼부을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가 움직일 수 없는 틈에 용석수가 공격을 가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낙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심복이자 가장 총애하는 장군을 이토록 허망하게 잃어버리다니.
이번 여정에서 수확을 얻기도 전에 이토록 막대한 손해를 입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왜? 화가 나셨나?”
서심노자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이것이 적혈 보물을 탐낸 자의 말로다!”
이번에 적혈 보물을 노린 고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상대하다가 수존의 힘이 약해질 수도 있다. 적혈파가 재기하려면 수존의 부활이 관건이다.
서심노자 혼자서는 남하국과 같은 소국조차도 전복시킬 수 없는데, 하물며 천마전국 시기의 영광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겠는가.
“빌어먹을 인간!”
분노한 낙라가 모든 힘을 방출했다. 튼튼하고 우람한 몸집이 팽창하더니 도포가 찢겨져 나갔고, 돌덩이처럼 솟아 오른 근육이 마치 견고한 성처럼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다.
서심노자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마수령족 무공은 인간의 무공과 크게 달랐다.
‘전력을 다하려는 건가!’
낙라는 혼성 9성 정점의 마력을 지닌 견융초원의 일류 고수였다. 남하팔후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가장 강한 한 두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남하삼군이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낙라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서심노자가 낙라보다 더 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낙라가 의아한 것은 견융초원에서 서심노자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 무공과 전투적 특징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고 자료조차 없었다.
서심노자의 힘은 삼군에 가까운 수준일 것이다. 어떤 원인에 의해 실력이 크게 꺾였다면, 단시간 내에 회복할 수 없을 터.
‘이런 고수가 어째서 느닷없이 나타난 것인가?’
그러나 낙라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마수령은 지능이 낮아 무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절대 머리를 쓰지 않는다.
낙라가 변신한 후 양손을 합장하자 마력이 분출되면서 그의 등 뒤에 고대 토템과 같은 정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특이한 정령을 바라본 천제현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저 정령은 속성이 대체 뭐야?’
천제현조차 바로 분간할 수 없었다.
“선조영령(先祖英領)! 가라!”
토템이 번쩍이더니 사방으로 네댓 개 마력을 방출했다. 마력들이 공중에서 모여들더니 견고한 갑옷을 입고 양손에는 삼첨양인도를 든 마수령 전사로 바뀌었다.
소환된 늑대 병사는 총 다섯. 모두 실체가 없었고, 낙라의 토템 정령에서는 마력이 방출되고 있었다.
‘만만치 않겠군! 저 토템 정령의 특수한 능력이 영체 전사들을 소환하는 것인가?’
다섯 영체 전사는 견융족 최강자인 낙라의 실력보다는 못했지만 혼성 7성에 가까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진혼급 강자 다섯을 거느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진혼 강자 다섯이 늘었다고 서심노자가 눈 깜짝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그 늑대 병사들이 죽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체 상태의 생물체는 그 자체로 소멸시키기 어려운데, 이 다섯 병사 모두 정령에 의해 소환되었으니, 설사 소멸시킨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시 말해, 원천적으로 소멸시키거나 낙라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기 전까지 견융의 병사 다섯은 그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이 병사들은 낙라가 의식으로 지배하고 있어 이 둘이 함께 싸울 때 더욱 완전무결해진다.
견육족 강자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악!”
낙라가 강력한 충격파를 서심노자에게 날렸고, 서심노자는 이를 피하지 않고 바로 맞받아쳤다.
낙라는 그 순간 빠르게 이동해 서심노자 앞으로 단숨에 달려들었다. 그가 장도를 휘두르는 순간 병사 다섯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중앙에 있는 서심노자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서심노자는 순식간에 여섯 개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 때, 선홍색 이무기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여 병사의 공격을 모두 튕겨냈다. 또한 적홍색으로 변한 서심노자의 양손이 낙라의 검광을 잡으니 낙라의 얼굴색이 크게 바뀌었다.
서심노자의 적홍색 손은 그 자체가 전염균인 것처럼 낙라가 내리친 검광까지 빠른 속도로 붉게 물들였다.
깡마른 손으로 검광을 잡자 검광이 유리처럼 깨지기 시작했고, 조각난 검기는 미친 듯이 튕겨나갔다. 이는 낙라의 검기에 서심노자의 혈독까지 더해진 터라 이에 직격탄으로 맞으면 치명타를 입을 게 분명했다.
낙라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번 격돌에서 서심노자는 근소한 우위를 보였다.
전성기 때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무공의 경지는 여전했기에 혼성 9성 정점의 강자를 상대해도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낙라는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견융족 고수는 여전히 용석수를 상대하고 있어 상황이 견융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갔다.
서심노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수령 실력이 고작 이정도인가?”
순간 창공을 뒤흔드는 포효성이 들려왔다.
교전 중인 낙라와 서심노자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 위로 거대한 검 모양의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이건 쌍익독룡이 아닌가!’
게다가 옆에는 가마 하나가 상공에 떠 있었고, 그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또 인간족 고수인가?”
견융족 강자 두 명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이 인간의 실력은 자신들이 고전할 정도로 막강했고, 주변에는 미쳐 날뛰는 용석수까지 있었다. 이 상황에서 고수 한 명이 더 끼어든다면, 상황은 자신들에게 불리해질 것이다.
“하하하, 이런 기막힌 우연이!”
왕도가 쌍익독룡 위에 선 채 말했다.
“여기서 그 대단하신 견융족 병사의 대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거기다 명성이 자자한 서심노자까지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군!”
왕도의 말을 듣고서야 낙라는 서심노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상대가 이토록 강한 이유를 알겠군. 천마교 당주 자리에 있는 잔당 세력이었다니!’
남하든 견융이든 이들에게 천마교는 공공의 적이었다. 물론 지금은 삼자 모두 서로 간 적대 관계에 있지만, 적혈신전에서 잠자고 있는 수존이 깨어나 당주와 손을 잡게 되면 견융족과 남하국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저놈들은 괜히 거치적거리기만 하니 여기서 없애는 것이 낫겠습니다.”
좌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야 안심하고 보물을 가져가지요. 왕도 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내 뜻도 그러합니다!”
왕도, 좌연은 의기투합한 후 즉시 급강하하여 양측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 둘의 수준으로만 보면, 서심노자와 낙라보다 높지 않지만, 한 사람은 도검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유화교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쌍익비룡이 있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한다면, 이들이 질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서심노자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비술을 사용하여 옆에 있는 천제현에게 몰래 말을 전했다.
“내가 저놈들을 잡고 있을 테니 넌 수존을 깨우러 가거라!”
“네!”
천제현은 흔쾌히 대답하고 바로 뛰어갔다.
‘이 무슨 재미난 상황이래?’
절정 마수 두 마리와 진혼 강자 다섯이 펼치는 전투에서 천제현이 어떻게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천제현이 발을 막 내딛기도 전에 늑대족 용사 낙라가 옆에 있는 동료에게 몇 마디 지령을 내렸다. 그 동료들은 마랑으로 변신하여 천제현이 떠난 방향으로 빠르게 뒤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