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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43화 (339/729)

# 343

제343장 움직이는 천마교

한밤중, 적소진 전체에 엷은 안개가 내려앉았을 무렵. 드문드문 귀가 시간을 놓친 사람들이 하루의 수확물을 싣고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다발씩 가지런히 묶어둔 갈대와 연근 비슷하게 생긴 약재, 기이한 곤충과 식물 등 전부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자원이었다.

온몸이 피범벅인 그림자 하나가 다급하게 마을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정신없이 뛰다가 진창에 발이 빠져 구르기를 수차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그림자는 버려진 창고 앞까지 와서야 겨우 숨을 골랐다.

그림자의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본래 꽤나 수려했을 얼굴은 지금은 기다란 상처로 뒤덮여 흉악해 보이기까지 했다. 평범한 마을 청년은 아닌 게 확실했다.

창고 옆 바위에 힐긋 눈길을 준 청년이 이제 살았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바위에는 검은 먹으로 기묘한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다행이야…….”

청년이 일정한 박자로 창고 문을 두드렸다.

끼익!

무형의 힘에 의해 낡은 나무문이 열렸다.

동시에 안쪽에서 훅하고 비릿한 공기가 밀려나왔다.

잔뜩 쉰 목소리가 청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들어와라!”

버려진 창고 중앙에는 비쩍 마른 노파가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몇 가닥 남지 않았고 검붉은 손톱은 흉기처럼 뾰족했다. 툭 튀어나온 두 눈에는 핏발까지 잔뜩 서서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워 보였다. 노파의 체내에서 발산돼 주위를 칭칭 휘감고 있는 핏빛 안개에서는 강력하고도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곁에는 검은 옷을 입고 칼을 든 거한이 서 있었다. 우락부락한 생김새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둘 더 있었다. 전신에 흐르는 살기로 보아 마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이상한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한은 청년을 보고 당황한 듯했다.

“왜 혼자지?”

털썩 바닥에 엎드린 청년이 말했다.

“분타주 두 분은 중간에 살해당하셨습니다!”

노파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라고? 그 고강한 마력의 분타주님이 살해당하다니!”

거한의 말투가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그럼 네놈은 무슨 재주로 살아남은 것이냐?”

“숲에서 야영하던 날이었습니다. 분타주님 명으로 사냥감을 잡아 돌아가려는데 돌연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력이 엄청난 자들이라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고, 결국 분타주 두 분께서는 화를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이 적혈령은 제가 목숨을 걸고 빼내온 것입니다!”

청년이 품에서 영패 하나를 꺼내었다.

“이건…… 진짜 적혈령이군!”

순간 거한의 눈에 탐욕이 스쳤다. 적혈령은 총타의 출입증, 아직까진 거한의 손에도 이 출입증이 없는 참이었다. 당주는 이미 하나를 갖고 있으니 이 적혈령은 분명 여기 있는 누군가에게 하사할 것이다.

“그리 구차하게 살고 싶더냐!”

거한이 청년을 잡아 죽일 듯이 호통을 쳤다.

“분타주께서 위험에 빠졌는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너는 천마교의 수치다!”

사실 되는대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불과했다.

마교술사라는 게 본래 어떤 작자들이던가?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편까지 물불 안 가리고 없애는 게 본성인 자들이었다. 그런 주제에 수치를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추악한 생김새의 노파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부옇게 흐려진 눈동자가 청년을 향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 냉봉이라 합…….”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

나무껍질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이 청년의 목울대를 움켜쥐었다. 얼마나 힘이 센지 몸통이 다 바닥에서 들려 올라갈 지경이었다.

아무도 노파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놀란 청년이 우물거렸다.

“당주님, 이건.”

“이까짓 마력으로 거기서 살아 나왔다?”

목구멍에 모래라도 욱여넣은 듯 노파의 목소리는 듣기에 몹시 거북했다. 노파는 눈앞의 청년을 믿지 않았다. 교도로 위장한 첩자이거나 아니면 나머지 세력을 유인해내기 위해 적이 일부러 살려둔 자이리라.

“말해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청년의 기혈이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움찔 요동쳤다.

노파는 그 경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수일 뿐 아니라 잔혹하기까지 했다. 진혼술사라도 그 기세에 눌려 제정신을 붙잡고 있기 힘들 상황이었다. 한낱 현혼술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소인 창주 냉씨 집안 출신입니다. 먼 선대께서 천마교에 은혜를 입은 뒤로 집안 대대로 천마교가 부활할 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조사해 보시면 쉬이 확인될 일입니다!”

청년이 괴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분타주님이 살해당한 날은…… 소인은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못 믿으신다면 저도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창주의 냉씨 집안?’

확실히 귀에 익었다.

노파가 청년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체온, 심장박동, 안색, 심지어 동공까지 어느 것 하나 의심스러운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신뢰가 갈 수밖에.

“밖을 확인하고 오너라.”

거한이 쏜살같이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몸을 뒤져 보아라.”

나머지 두 사람이 청년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 나온 물건은 보검 한 자루, 수첩 하나, 일지 한 권이 전부.

부하들에게서 물건을 건네받은 노파가 하나하나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보검은 귀하디귀한 최상품 혼기로, 누가 봐도 적혈타와 흡사한 속성을 갖고 있었다.

일반적인 술사라면 피의 기운이 이토록 강한 무기를 쓸 리가 없었다. 주인을 잡아먹기에 충분한 물건이므로. 반면 천마교 적혈파 마교술사에게는 썩 어울리는 무기였다. 수첩 역시 천마교의 것이었고 일지에는 이 냉봉이라는 청년의 수련과정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밖에서 돌아온 거한이 보고했다.

“당주님, 수상한 낌새는 없었습니다.”

노파가 드디어 고압적인 기운을 거둬들였다.

“우리 교도가 맞는 듯하구나. 그런 위기에서 빠져나온 걸 보면 실력도 상당하겠고.”

청년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인 어려서부터 천마교의 무공을 동경해 왔으나 불완전한 일부분밖에는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컨대 부디 소인을 정식 교도로 받아주십시오!”

“영패가 하나 남는구나.”

청년의 말을 깨끗이 무시한 노파가 영패를 툭 걷어찼다. 적혈령이 데굴데굴 굴러 청년의 코앞까지 온 순간, 창고 안에 섬뜩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총타에서 수존님을 알현할 때 한 명은 데려갈 수 있을 듯한데, 그게 누가 될지는 너희끼리 정해 보거라.”

여기까지 말했을 때.

노파의 눈은 앞으로 벌어질 잔혹한 유희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돌연 거한의 눈빛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다란 칼이 마치 한 마리 혈룡처럼 미끄러져 옆에 있던 동료의 몸통을 꿰뚫었다.

상대의 가슴을 완전히 짓이겨 놓은 칼날은 폭포수 같은 선혈과 함께 뽑혀 나오자마자 곧장 다른 쪽에 있던 사내에게로 향했다.

“네놈이…….”

천마교 교도들이 어디 보통 실력자이던가. 앞선 기습이 똑같이 다음 사람한테도 먹힐 리가 없었다.

“피의 장막!”

상대가 끌어낸 혼신의 마력이 한데 뭉쳐 거대한 장막을 형성했다. 하지만 피를 뒤집어쓴 칼날에 베이는 순간 장막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상대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입에서 엄청난 양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장막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한 각혈이 아니었다. 모종의 무공으로 정혈을 역류시켜 쏟아낸 피, 대량의 마력이 섞인 핏방울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암기였다.

피의 양으로 보나 거리로 보나 위력이 대단할 것은 자명한 일. 아니나 다를까 거한이 저만치 튕겨나가 나동그라졌다.

“저주의 검!”

상대가 민첩하게 손을 놀려 인을 맺자 수많은 핏방울이 공중에 뜬 채로 멈춰 섰다. 곧이어 하나로 뭉친 핏방울들은 검신 전체가 주문으로 뒤덮인 보검으로 변했다.

“죽어라!”

한 줄기 빛으로 화한 검이 치명적인 독사를 연상케 하는 기세로 거한의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거한이 고개를 젖히고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내질렀다. 그러자 사나운 마력이 회오리처럼 주변을 휘감고 도는 동시에 검게 변한 거한의 피부 표면을 따라 엄청난 양의 주문이 새겨졌다. 거한이 발산하는 기운이 순식간에 몇 배는 강해졌다.

지켜보던 상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천도마공?”

전투력을 대폭 끌어올려주지만 부작용도 그만큼 무서운 마공이었다. 단기간 안에는 표시가 나지 않더라도 내재된 힘을 서서히 갉아먹어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부작용. 그렇기에 정말 생사의 갈림길에 처하지 않는 이상 천마교에서도 쉽사리 쓰지 않는 비술이었다.

마공으로 폭발적인 힘을 얻은 거한이 저주의 검을 단칼에 쳐냈다.

곧이어 거한의 암홍색 칼날이 무서운 기세로 상대를 향했다.

“잠깐, 적혈령은 포기하겠다!”

거한은 귓등으로도 못 들었다는 듯이 칼을 휘둘렀다.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면서 상대방은 한순간에 다져놓은 고깃덩이로 변해 버렸다.

“킥킥킥.”

노파의 웃음소리는 기묘했다. 부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데도 꾸짖기는커녕, 한다는 소리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비가 없구나. 참으로 전도가 유망해!”

“황송합니다!”

전신이 짙은 마기에 휩싸여 흡사 마신을 방불케 하던 거한이 당주의 칭찬 한마디에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곧 뒤로 돌아선 그가 청년을 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적혈령을 가져다준 것도 모자라 이런 기회까지 만들어주다니, 고맙구나. 고통 없이 끝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쉽게 얻은 기회가 아니니.”

그 누가 예상했을까. 기력이라고는 한 점도 없을 것 같던 청년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검을 집어든 그의 두 눈이 강렬한 전의를 발하고 있었다.

“이대로 양보는 못 함을 용서하십시오!”

“하하하, 양보라고 했나?”

거한이 미친 사람처럼 웃어젖혔다.

“그 하잘것없는 목숨이나 걱정하거라!”

청년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긴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거한이 일순 흠칫했다. 노파 역시 조금은 놀란 기색이었다.

청년은 혼성 5성에 불과한 반면 거한은 혼성 6성이었다. 게다가 높은 경지의 천도마공을 수련한 덕에 거한의 전투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동급 마교술사 두 명이 덤벼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마교술사는 일반적인 술사들과 달랐다.

그들은 대다수가 극단적이고 잔인한 무공을 수련하기에 일반 술사들에 비해 전투력이 크게 앞섰다. 고작 혼성 5성에 부상까지 당한 애송이가 한창 기세가 오른 혼성 6성 마교술사에게 덤비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거한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 우둔한 패기를 후회하도록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청년은 대답 없이 검집을 가슴 앞까지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그가 한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다른 손으로 서서히 칼날을 빼내자 강렬한 핏빛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죽어라!”

거한이 선홍색 검광을 끌며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딜!”

짧은 외침과 함께 청년의 마력이 용솟음치더니 검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과 함께 사방을 압도하는 위엄이 느껴졌다.

‘신급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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