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40화 (336/729)

# 340

제340장 천마교의 재림 계획(2)

해질 무렵.

숲 앞까지 와서 멈춘 새끼 여우가 앞발로 안쪽을 가리켰다. 목표물이 숲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가!”

천제현이 새끼 여우에게 눈짓을 했다.

“가서 몇 명이고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와.”

곧장 수풀을 헤치고 사라진 새끼 여우는 5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새끼 여우가 발짓으로 하는 설명은 오로지 천제현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궁혜와 심빙우는 옆에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숲에 있는 천마교 잔당은 십여 명, 진혼급은 둘이라고 해요. 문제는 둘 다 진혼급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라 혼성 9성에 가까운 실력을 가졌다는 점이에요.”

“그렇게나 강하다고?”

마교술사들이 그 정도 고수일 줄이야, 남궁혜로서는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혼성 9성 고수라면 남하국 삼대가문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 존귀하기로 따지면 상경급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실 마교술사들은 아직 제 실력을 완벽히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힘이 다 돌아온다면 남하팔후가 와도 두 고수를 당해내기 쉽지 않으리라.

일단 지금으로서는 심빙우나 대방주가 한 수 위.

하지만 2:1로 붙을 경우에는 심빙우가 패배할 게 확실했다.

마교술사는 극히 악랄한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1:1로 싸운다고 해도 심빙우가 부상 없이 전투를 끝내리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진혼급 둘을 제외한 나머지 십여 명도 대부분 혼성 5성에서 6성에 달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조무래기들이 그런 마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어요.”

천제현이 말했다.

“대부분 지위가 있는 자들이겠죠. 천마교 분타주라든지.”

앞서 맞닥뜨렸던 분타주와 같은 경우이리라.

전멸 직전, 천마교 일당은 비밀 장소에 모여 휴면에 들어갔다. 가사 상태로 있던 그들이 깨어난 건 최근의 일이었다. 분타주들은 심한 부상에 긴 세월 이어진 휴면기까지 더해져 극히 쇠약해진 상태로 눈을 떴다. 사람들을 학살하는 건 정혈을 흡수해 힘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남궁혜가 물었다.

“어떻게 하지?”

“별거 아닌 놈들이니까 걱정 말아요.”

천제현이 조롱박을 꺼내들었다.

“놈들이 시원하게 목을 축이도록 뭘 좀 만들어야겠어요!”

***

어느덧 깊어진 밤.

어두침침한 숲 한가운데 모닥불 주위로 인영 십여 개가 둘러앉아 있었다. 검은 옷으로 온몸을 둘러맨 그들이 굽고 있는 건 껍질을 벗겨낸 사슴이었다.

콰득!

채 익지도 않은 사슴 뒷다리가 뜯겨져 나갔다.

게걸스럽게 고기를 씹는 입가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분타주 어르신들의 마력이 이미 7~8할은 회복되었으니 이제 마을 몇 개만 더 돌면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오실 듯합니다. 그러면 당주님과 합류해 총타로 가야겠지요. 적혈수존(赤血首尊)께서 부활만 하시면 우리 천마교의 천하가 다시 열릴 것입니다!”

“수존께서 부활하시면 우리 적혈총타도 함께 부활하는 겁니다!”

마교술사들 사이에 흥분이 번졌다.

“방심하기에는 이르다!”

검은 옷의 인물 하나가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본래 우리 적혈파에서 휴면에 들었던 분타주는 열 명, 하지만 지금 남은 건 여기 있는 둘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또 다른 분타주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인체를 가사 상태로 만드는 황천일몽(黃泉一夢)은 원래부터 시전자의 절반가량은 체력 고갈로 깨어나지 못하는 주술이니. 우리가 살아 있는 건 운이 좋았던 덕이야. 주술의 부작용 탓에 마력 손실이 막대하긴 했지만.”

“그간 정혈 수집을 위해 벌였던 살육으로 남하국 고수들이 벌써 우리 뒤를 캐고 있는지도 몰라.”

“뭐가 걱정이지? 당주님과 합류하고 나면 남하국 놈들이 우릴 당해낼 수 있으려고? 수존님만 깨어나시면 그 날고 긴다는 남하삼군도 무서울 게 없다고!”

“그래, 최대한 빨리 당주님과 접촉해서 총타로 가야겠어. 수존께서 부활하실 날을 위해!”

“거기 너.”

분타주 하나가 옆에 있던 젊은 마교술사에게 명령했다.

“가서 마실 물을 구해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마교술사가 개울을 찾아 물을 길어왔다.

사슴 고기에 시원한 개울물까지 원 없이 들이키고 나자 다들 기운이 좀 나는 듯했다.

“이미 총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다. 내일은 반드시 약속된 장소에 당도해 당주님과 합류해야 한다.”

순간, 말을 마친 분타주가 움찔 경련하더니 괴로운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뭐지? 온몸의 기혈이 통제를 벗어나 들끓고 있어!”

“으헉!”

“저도!”

“독입니다!”

“제길, 매복이 있었다니!”

천마교 일당이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힌 한기와 함께 모닥불이 흔적도 없이 꺼졌다. 땅에는 어느새 하얀 서리가 한 겹 덮여 있었다.

두 분타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시무시한 마력!”

“고수다!”

“철수하라!”

천마교 일당이 철수를 준비하던 그때, 공중에서 한 여인이 날아 내려왔다. 풍만한 몸매의 여인 주위로 셀 수 없이 많은 눈꽃이 나부꼈다. 언뜻 무해해 보이는 눈꽃은 사실 강력한 힘을 싣고 있었다.

“혈오신공(血汚神功)!”

분타주 한 명이 강제로 기혈을 운용해 피를 뿜어냈다. 핏방울이 눈송이 하나하나를 목표물로 날아가 심빙우의 마력을 중화시켰다.

1차 공격이 실패했음을 확인한 심빙우가 피를 뱉은 분타주를 향해 일장을 날렸지만, 또 다른 분타주가 재빨리 달려들어 심빙우의 공격을 막아냈다.

장력의 충돌.

천마교 분타주는 줄 끊어진 연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붕 떠올랐다가 수풀에 처박히고 말았다.

“커헉!”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핏물에는 차디찬 얼음조각이 섞여 있었다. 심빙우의 극냉한 마력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것이었다.

애초에 심빙우의 상대로는 한참 부족한 자였다. 거기에 천제현이 특별히 조제한 맹독과 심빙우가 착용한 구사구호완갑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구사구호완갑은 힘을 몇 배로 증폭시켜주는 물건, 상대를 일장에 날려 버린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웬 계집이냐!”

아직 서 있을 힘이 남은 다른 분타주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러나 심빙우는 숨 가다듬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곧장 다음 공격에 나섰다.

심빙우의 일장에 맞아 저만치 튕겨 나가는 분타주의 뒤로 눈꽃 대여섯 송이가 따라붙었다.

“혼자서 우릴 제거하겠다고?”

“적혈파의 무서움을 알려주마!”

분타주가 마공을 시전하려는 찰나, 새하얀 여우 한 마리가 폴짝 뛰어 끼어들더니 갓 응집된 마력을 단번에 주둥이 안으로 빨아들였다.

‘저 여우는 대체 뭐지!’

마공의 힘이 흩어지는 빈틈을 노려 눈꽃 대여섯 송이가 잇달아 분타주에게 적중했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중상이었다.

당황한 천마교 일당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지만, 우거진 숲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십여 개의 거대한 그림자들이었다.

날카로운 방울 소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일당의 앞을 막아섰다.

“죽어!”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망치가 날아와 마교술사 한 명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엄청난 열기를 이기지 못한 마교술사의 몸은 그대로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전신에 불꽃을 휘감은 남궁혜가 예의 그 거대한 망치를 들고 다음 목표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치광이 놈들, 죽어라!”

남궁혜의 마력은 이미 혼성 5성, 정령의 힘까지 더해지면 진혼급 아래로는 적수가 없었다. 그뿐이랴, 혼성 7성의 하급 진혼술사에게 역시 먹히는 공격력의 소유자가 바로 남궁혜였다.

하물며 성광불멸체마저 수련했으니. 천성하와도 맞붙을만하리라.

천마교 일당이 제아무리 혼성 6성이라고 쳐도 무슨 수로 남궁혜를 당해내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불현듯 타오르는 검광이 공중을 수놓았다.

뒤쪽에서 남궁혜를 노리던 천마교 일당 둘이 유명검의 칼날 아래 명을 달리했다.

신혈강시 열여덟에 천제현과 남궁혜의 협공까지, 살아서 도망칠 방도란 애초에 없었다. 게다가 맹독에 당해 실력을 백분 발휘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감히 우리 천마교를 노리다니!”

“진즉 망한 종파 주제에 설치길 어디서 설쳐? 네놈 같은 졸개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천제현이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타주 놈 하나도 벌써 내 손에 끝장났으니까! 뭐, 오늘 밤을 기점으로 둘이 더해지겠지만!”

“뭐?”

천마교 일당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천제현에게는 놈들을 상대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남궁혜 아가씨, 당장 처치해요!”

남궁혜의 몸 주위로 화염이 꿈틀대며 용솟음쳤다. 섬뜩한 웃음소리와 함께 망치를 거머쥔 그녀가 불꽃에 휩싸인 유성과도 같은 기세로 마교술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파열음이 울려 퍼지길 몇 차례.

숲은 곧 밤의 고요를 되찾았다.

천마교 조무래기들이 남궁혜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대한 망치를 휘둘러대는 남궁혜의 모습은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커다란 손바닥에 때려 잡힌 파리처럼 천마교 교도들이 연이어 나가떨어졌다. 두 분타주 역시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심빙우에게 감히 반격조차 못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빚은 나중에 갚아주마!”

분타주 한 명이 심빙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천제현을 향해 돌진했다.

“네놈부터 없애주마!”

분타주는 진즉 알아봤다. 저 젊은 놈이 실력은 대단치 않아도 셋 중 지위는 가장 높다는 걸.

놈을 인질로 잡으면 저 흉포한 계집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고, 어떻게든 도망칠 기회가 생기리라.

순간 천제현의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천마교 분타주가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휘두르며 외쳤다.

“겨우 그까짓 무공으로 나를 막겠다고? 소용없다!”

어쨌든 진혼급 고수의 일격. 성광불멸체의 광채가 일순 약화되며 천제현이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놀란 건 분타주도 마찬가지였다.

독에 당한 상태에서 다급하게 시전한 공격이었기에 제 실력의 2할 밖에 발휘하지 못한 건 사실이나 그 정도면 현혼술사를 만신창이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그런 일격을 저 젊은 놈이 정면으로 막아내다니?

“말도 안 돼, 어디 다시 한 번 막아보시지!”

천마교 분타주가 힘의 4할을 끌어올려 일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기필코 놈의 방어막을 산산이 조각내고 뼈와 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장풍이 근접한 순간, 상대방이 재빨리 뭔가 은빛이 도는 물건을 꺼내든 것이었다.

곧 고막이 째질 듯한 굉음과 함께 수를 셀 수 없는 빛의 탄알이 터져 나왔다.

근거리, 게다가 갑작스러운 공격.

천마교 분타주는 애초에 반격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탓에 호신마력에도 큰 힘을 싣지 않았다. 그 상태로 쾌속 집중 공격에 맞닥뜨렸으니. 호신마력이 완전히 무력화되면서 무시무시한 힘에 전신이 찢겨나갔다. 중상을 입은 분타주는 연거푸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이…… 이건 대체?’

천마교 분타주가 경악하고 있던 때였다.

불꽃으로 일렁이는 검기가 공기를 갈랐다. 머리통이 몸에서 떨어져나간 분타주는 그 자리에서 숨이 끊겼다.

전성기였다면 삼군한테는 안 돼도 남하팔후 정도는 근소한 차로 넘어섰을 실력. 그런 고수가 무슨 무기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한낱 현혼급 인물의 손에 끝장난 것이다. 억울해서 눈도 안 감길 노릇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