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39화 (335/729)

# 339

제339장 천마교의 재림 계획

천제현 일행은 말문이 막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제발 저희를 그만 놓아주십시오!”

“그 악마들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저희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악마가 쫓아올까 걱정된 나머지 천제현 일행 앞에 무릎을 꿇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천제현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공교롭게 흘러간다니.

마을사람들의 표정을 봤을 때 그들의 말은 전부 사실임이 분명했다. 대하진에 정말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사람들이 비전투인원은 아니었지만, 마력이 있어 봤자 연체 2, 3성일 것이다. 그러니 악마가 나타났다는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천재지변이라도 어쩔 수 없고, 사고라도 방법이 없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높은 곳에 있는 귀하신 분들은 신경도 안 쓸 게 분명하다. 그러니 가족들과 함께 한시바삐 피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 시대 하층민들의 비참한 운명이기도 했다.

“그만 가보시죠!”

이 사람들 입에서 이렇다 할 단서를 얻을 수 없을 거라 판단한 천제현은 말했다.

“우리는 대하진으로 간다!”

대하진에는 상어해적단의 신규 지점이 있었고, 그곳은 창주 유일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러니 천제현이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총총걸음으로 대하진에 도착한 일행은 짙은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잔인한 살육이 있었다는 소식이 사실인 것 같았다.

모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군!’

대하진의 인구는 대략 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마을 안에는 한 구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땅바닥 가득한 핏자국뿐.

핏자국을 따라 마을 중앙으로 걸어가자 모골이 송연해지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한데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 시체들은 화물이나 쓰레기처럼 첩첩이 쌓여 거대한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점은 유골들이 하나 같이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고 미라가 되어 버린 것처럼. 그러나 사건은 어젯밤에 일어났다지 않은가.

“헉!”

상어해적단 일원 한 명이 시체 몇 구를 가리키며 외쳤다.

“우리 형제들입니다!”

그 시체들도 바짝 마른 장작처럼 딱딱해진 상태였다. 두 눈은 움푹 파이고 입은 벌린 채 쭈글쭈글한 주름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야말로 처참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마을사람 만여 명과 상어해적단 형제들 몇 백 명이 모두 죽었어요! 이런, 빌어먹을! 대체 누구 짓이야!”

어렵게 창주에 입성한 상어해적들은 먼저 대하진에 자리를 잡았다. 이 마을이 강과 가까이 있어 외부 확장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리를 잡자마자 전부 몰살되어 버릴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들은 모두 정예병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상어해적단과 기적상회는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아!”

남궁혜는 악마가 초래한 뇌주의 재앙을 목도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하진의 이 참혹한 현장에는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건 악마의 짓이 아니다. 악마의 짓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두 장면이 너무나 달랐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반 백성들이잖아. 대체 왜 이들을 죽인 거지? 정말 견융족 놈들 짓일까?”

주변을 살펴본 천제현이 말했다.

“견융족의 유목기병들이 창주와 왕역을 돌파하고 여기까지 왔을 리 없어요. 그리고 남하국으로 잠입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 작은 마을을 습격하진 않았겠죠. 얻을 게 없잖아요?”

천제현의 말에 남궁혜가 이를 갈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백성들을 약탈하고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였겠지! 넌 몰라. 견융족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놈들은 감정이라는 게 없다고. 그놈들 짓이 분명해!”

“아니.”

심빙우가 가축 울타리를 보며 말했다.

“식량이며 가축들이며 하나도 약탈당한 게 없어. 아무리 봐도 견융족 짓은 아니야.”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에요.”

천제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참혹한 현장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 작은 마을 하나 도륙해 본들 남하국은 꿈쩍도 안 할 거예요. 솔직히 왕역이나 창주의 귀족들 중 그 누가 천민들의 생사에 관심이 있나요? 이곳을 습격하느니 창주의 말 사육장을 공격하는 게 낫죠. 놈들에게는 말 사육장 하나 파괴하는 게 마을사람 백 명을 죽이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 걸요.”

맞는 말이었다.

견융족 짓이라고 해도 그놈들이 이 작은 마을을 칠 이유가 없었다.

“견융족 짓이 아니라고?”

남궁혜도 조금 의아한 듯 말했다.

“견융족 같은 약탈자가 아니라면 이 끔찍한 짓을 대체 누가 저질렀단 거지?”

천제현은 땅바닥에 말라붙은 핏자국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했다.

핏자국의 형태가 특정한 진법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핏물이 번지면서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전 마교술사들이 의심스러워요.”

“마교술사?”

“피해자들의 시체를 보세요. 정혈이 전부 빨렸잖아요. 마공을 수련하는 마교술사들 외에 이런 짓을 할 놈들은 없을 거예요.”

이렇게 순식간에, 그리고 손쉽게 한 마을 전체를 도륙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 상대가 마교술사라면 분명히 유명한 고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짓을 할 마교술사가 바로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게. 이건 상어해적단의 일일 뿐만 아니라 기적상회의 일이기도 하니까.”

천제현이 옆에 있는 상어해적단을 위로하며 말했다.

“어떤 눈 삔 놈이 감히 우리를 건드렸으니 상관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었거든!”

“당연히 상관을 해야지! 어젯밤에 벌어진 일이니 마교술사 놈도 멀리는 못 갔을 거야! 그 미친 짐승 같은 놈들! 나, 남궁혜가 용서하지 않겠다!”

남궁혜가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살인마를 잡아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말은 그렇게 했으나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현장에는 살인자들의 흔적이 별로 없었다. 피로 그려진 마력진조차 얼룩덜룩해져 분간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때, 새끼 여우가 마력진 앞으로 뛰어내려가 킁킁거리더니 뭔가 발견한 듯 고개를 돌려 천제현에게 손짓을 했다.

천제현은 깜짝 놀랐다.

“누가 그런 건지 아는 거야?”

새끼 여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곧 입안에서 장침 하나를 끄집어 내 앞발에 쥔 후 그 장침을 보며 끽끽 몇 번 소리를 냈다.

“이놈들은 전에 천마교 동굴에서 만난 놈들과 꽤 비슷한걸.”

턱을 쓰다듬는 천제현의 눈에 의심의 빛이 스쳤다.

“설마, 천마교?”

그는 조롱박 안에서 영패를 하나 꺼냈다.

이 일이 아니었더라면 잊었을 뻔했다.

이 영패는 당시 천마교의 비밀 분타에서 찾은 것으로 오랜 연구 끝에 금제의 힘이 새겨져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으나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천마교의 잔당을 만날 줄이야!’

천마교는 남하국보다도 훨씬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단이다. 크고 작은 왕국 십여 개를 통치했던 전성기에는 남하국 국토 대부분만이 아니라 견융초원에까지도 그 세력이 미쳤을 정도였다.

천하만방에 위세를 떨치던 천마전국.

왕국의 유형은 소국, 대국, 전국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대국과 전국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개념이다. 대국은 이미 주변지역과 안정적인 세력 균형을 이뤄 단기간 폭발적인 국력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국가를 칭한다.

전국은 대국 중에서도 향후 확장 가능성이 충분한 국가로, 주변국을 삼켜 더 큰 세력으로 성장할 압도적 힘을 보유했기에 싸울 전(戰) 자를 써서 전국이라 한다.

전국은 침략 국가다.

천여 년 전, 천마국은 바로 이런 종파형태의 전국이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왕위는 세습 지위로, 특정 일족의 수반이 곧 국왕이 된다. 한편, 종파국가는 하나 또는 여러 개 종파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나라다. 종문의 우두머리가 왕좌에 앉기 때문에 국왕의 성씨가 바뀌는 일도 흔했다.

양쪽 각각에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데, 일반적인 국가의 경우 체제는 안정적이나 왕위에 앉은 이가 꼭 우수한 재목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종문국가의 수반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파 최강의 인물이지만, 체제 특성상 내란이 발발하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천마교를 전국의 반열에 올려준 것은 그 방대한 세력의 규모였다. 크고 작은 계파만 해도 십여 갈래, 교주 자리를 둘러싼 파벌다툼으로 내부에는 마찰이 끊일 날이 없었다.

게다가 천마전국은 마교술사가 통치하는 땅이었다. 가혹한 박해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백성들의 마지막 선택지는 민중봉기뿐이었다.

결국 천마전국은 국력의 정점에서 붕괴를 맞이했다. 그러나 거대한 태풍은 소멸 후에도 여파를 남기는 법, 천마전국이 무너진 뒤에도 천마교는 수백 년간 명맥을 유지했다.

결국은 여러 외부 세력이 연합해 천마교 잔당을 토벌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수백 년, 천마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다.

새끼 여우가 잘못 알았을 리 없었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마교술사들은 천마교 잔당이 분명하리라.

조롱박 안에서 영패를 꺼내든 천제현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영패 표면의 진법무늬가 전부 활성화되어 있었다.

“분명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뭔가 일어났군.”

“마인을 고문하면 나오는 게 있지 않겠어?”

남궁혜가 허리를 숙여 새끼 여우를 쓰다듬었다.

“요 녀석, 놈들의 행방을 찾을 수 있겠니?”

복수를 위해서든 진상 자체를 밝히기 위해서든 그냥 넘길 수 없는 일.

“추적해!”

천제현의 명령을 받은 새끼 여우가 한 번 폴짝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앞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을 하나를 완전히 몰살시켰다는 건 흉수가 한 명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아무리 고강한 마력의 소유자라 해도 모든 출구를 동시에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

예상이 맞는다면 적게는 대여섯, 많게는 십여 명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대학살이었다.

그리고 그중 최소 한 명은 진혼급 고수이리라..

쉬운 싸움은 아니겠지만 천제현에게는 남궁혜와 심빙우, 그리고 신혈강시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