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
제334장 협상(3)
원하던 설계도를 받아 든 무안군은 매우 기뻤지만 동시에 조금 약이 올랐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다 생각해 준비까지 해놓고는 연기를 했구나. 영악한 놈!’
“이의가 없으시다면 세부 사항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왕성에 세우게 될 기적상회의 무기 공장은 기적상회와 남하군이 절반씩 지분을 가질 것이다. 기적상회는 장기간 기술적 지원을, 남하국 군대는 자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현재 무안군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남하국을 위해 마력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천제현이 제시한 조건들이 그의 요구사항을 그런대로 만족시켜 주었기에 그는 여러 말 않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제 무안군은 기적상회의 동업자가 된 것이다. 무안군이 누구인가? 남하왕이 가장 의지하는 최측근 아닌가? 그런 그가 보호를 해준다면 남하국에서 기적상회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천제현이 중주에서 벌인 소란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 직접 중주에서 있었던 일까지 처리해 주겠네. 자네의 중주 기반이 흔들리지 않게 말이야.”
무안군은 마력 권총의 설계도를 챙기며 말했다.
“단, 줄곧 중주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이야.”
터무니없는 조건은 아니었다.
천제현은 귀족 출신이 아니며, 제후에 봉해질 만한 공을 세우지도 않았고 그만한 명성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에 상응하는 실리를 취하고 있었다.
남하왕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지 않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남하왕은 권력욕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천제현이 중주에서 왕처럼 대접 받는 걸 그가 그냥 보아 넘길 리 없었다.
그러나 그건 천제현도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문제였고, 그 역시 중주에 너무 오래 머물러선 안 되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왕성은 남하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팔주의 자원이 모두 집결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기적상회를 확장하려면 언젠간 왕성에 들어가야만 했다.
천제현 일행은 중주를 손에 넣은 뒤 상회의 중심을 왕성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교지가 내려오는 즉시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다행이군. 나머지 일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무안군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또한, 사방후는 어쨌든 제후 아닌가. 그런 자를 이렇게 오래 가둬뒀으니 이제 풀어줄 때도 된 것 같네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
천제현은 지저분하게 질질 끌지 않고 즉시 무안군을 사방후에게로 안내했다. 사방후가 중주성에 갇힌 지도 이미 사흘이 지난 상태였다. 마력이 봉쇄된 그를 여씨 5형제가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온몸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사방후 대인, 누가 왔는지 좀 보시지요!”
제후의 몸인 사방후가 언제 이런 굴욕을 겪어 봤겠는가. 그는 즉각 고함을 질렀다.
“천제현,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놈아! 죽이려면 죽여라! 더 이상 나를 모욕하지 말고!”
패기 넘치는 목소리였다.
사방후는 천제현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잡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일이 커졌을 것이다.
‘나를 계속 잡아둔다면 상관 가문에서 중주성을 쓸어 버리겠지!’
철썩!
그때 갑자기 사방후의 뺨에서 불이 일고, 그의 온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옆에 있던 대방주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충격으로 바닥에 내팽개쳐진 사방후가 입안에서 부러진 이 몇 개를 뱉어냈다. 짙은 공포가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이 엄청난 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사방후, 자네는 날 크게 실망시켰네.”
담담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본 사방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 마…… 마마…….”
무안군은 사방후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사방후가 군사를 일으켜 중주 공장을 공격하지만 않았어도 이 귀찮은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서신에 손을 댄 건 문성군의 수하 짓이 분명했다.
방금 그가 때린 건 사방후였으나, 실은 그를 본보기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방후의 두뇌는 사고가 정지된 상태였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무안군이 여기에 나타나다니!’
무안군의 힘과 영향력은 독보적이었다. 남하왕조차 그에게 의지할 정도로. 그런 인물이 이 중주에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방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무안군 마마, 어찌하여 저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모욕?”
무안군이 다시 한 번 손을 뒤집어 사방후를 후려쳤다.
“장수는 사로잡히고 전 병력이 포로가 되었네. 이게 진짜 전장이었다면 자네가 지금 어떤 상황일지 가늠이 되는가? 패전하여 왕국을 욕되게 하고도 살아남았으니 내 직접 자네를 참하겠네!”
사방후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그는 무안군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아 솔직히 입을 열었다.
“마마의 말씀이 맞습니다만 천제현 저놈은…….”
“닥쳐라! 교지에서는 너를 중주로 가라 했지 군사를 일으켜 성을 치라 한 적은 없다. 다행히 여기에서 일이 마무리되었기에 망정이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면 전하께서 너를 용서하셨을 것 같으냐?”
무안군이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문성군의 얼굴을 봐서 더 이상 질책하지 않겠다. 가서 문성군에게 전하거라. 사람은 무릇 적당할 때 멈추는 법을 알아야 하는 거라고. 더는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선 안 될 것이야!”
말을 마친 무안군은 가볍게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그러자 무형의 칼날이 날아가 사방후 주위에 떨어진 쇠사슬을 산산조각 냈다.
힘을 잃은 사방후는 그대로 땅에 나뒹굴었다. 그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기어와 무안군에게 예를 올린 후 증오 어린 눈빛으로 천제현을 쏘아보았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지금 상황을 봐선 천제현이 무안군에게 붙은 것 같았다. 무안군이 직접 중주성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천제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것 아닌가. 거기에 대학자와 신풍후, 금전후까지.
이제 천제현의 뒷배는 너무나 강력했고, 그를 지켜주는 고수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더는 사방후 혼자 힘으로 천제현을 상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주군을 데리고 당장 중주성을 떠나시오!”
천제현은 무안군의 존재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이번에는 한 수 가르쳐 줬을 뿐이오. 앞으로 중주성을 지날 때는 빙 둘러 다니길 바라오. 그땐 이렇게 쉽게 끝내지 않을 테니까.”
사방후는 그렇게 거지꼴로 중주를 떠났다. 남주군의 일을 마무리 지은 무안군은 기적상회 본사를 떠나며 말했다.
“이제 나도 왕성으로 돌아가야겠네. 앞일은 자네가 알아서 잘할 거로 믿네. 더 이상 중주에 어떤 소란도 일어나선 안 될 것이야.”
“소인은 여태껏 어떤 소란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전부 다른 사람이 일으켰을 뿐.”
“그 말이 사실이길 비네!”
말을 마친 무안군은 지체 않고 그리핀의 등 뒤에 올라 떠났다.
이렇게 일이 마무리 되자 천제현은 전에 없던 해방감을 느끼며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안군이 떠난 후, 천제현은 방안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전념했다.
매일 엄청난 자원들이 끊이지 않고 천제현의 실험실에 공급되었다. 그 자원에 들인 비용만 금화 2억 냥에 가까웠다. 대부분이 진귀하기 이를 데 없는 자원으로, 그중에는 3급 영약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적상회는 이미 예전의 기적상회가 아니었다. 자금과 유통경로를 갖춘 기적상회는 천제현의 거의 모든 요구를 단기간 안에 충족시켜 줄 힘을 갖게 되었다. 기적상회에서 천제현의 지위는 매우 높았기에 그가 원하는 것에 딴지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일주일 후 기적상회 임원회의.
기적상회의 임원들이 새로운 소식을 들고 회의실로 모였다.
먼저 아름다운 자매 둘이 들어왔다. 언니는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생은 순수하고 청초해 보였다. 친자매라고는 해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순정남들은 지켜 주고 싶은 스타일인 공서련을 더 좋아했고, 정복욕이 있는 남자들은 도도해 보이는 공화련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자매의 뒤를 이어 또 다른 미녀들이 하나 둘씩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스타일의 남궁혜는 뭇 남성들의 애증의 대상이었고, 야생말 같은 느낌을 주는 운요는 가시 돋친 장미꽃 같았다.
또한, 눈처럼 차가운 심빙우는 고귀한 얼음여신이나 세속을 초월한 듯한 공주 같았다. 이 다양한 미녀들이 한데 모이자 회의실 전체가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들의 뒤를 이어 운천학, 운소, 신풍후, 고천추 등의 인물들이 들어왔다.
“오늘은 중요한 발표를 하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천제현이 탁자 위에 다섯 개의 옥함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 드리는 뜻에서 회장인 제가 논공행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남궁혜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대장, 선물 주려고?”
“네. 제가 조제한 현황단(玄皇丹) 다섯 개입니다. 공화련, 공서련, 남궁혜 아가씨와 운요, 채향은 하나씩 가져가세요. 선물이에요!”
“우와, 최상품 성단이네?”
단약이 들어 있는 옥함이 열리자 강력한 영력이 어느새 주변을 채웠다. 단약 다섯 개 모두 황금색이었고, 단약 표면은 천연의 상태 그대로였다. 고귀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언뜻 보아도 최고급 성단임을 알 수 있었다.
‘훌륭한 성약이다!’
그 단약은 천제현이 최근에 만든 작품이었다.
천제현은 얼마 전 무안군에게서 육엽현황지 하나를 받았다. 그러나 최상품 성약은 진혼급 술사도 제대로 소화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천제현은 아직 현혼급 술사 아닌가.
그래서 천제현은 여섯 개의 잎으로 구성된 현황지를 하나씩 따서 다른 약초와 섞어 상품 성약 6개로 바꾼 것이다. 그것을 다시 조제하여 상품 성단으로 만들었다.
천제현이 직접 만든 단약이니만큼 효과도 강력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진혼급 고수가 복용해도 마력이 급상승할 정도였으니 현혼급 술사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천제현은 일반 영약과 하품 성약으로 혼성 4성 정점에 올라 있었기에 이제 현황단으로 혼성 5성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단약을 많이 복용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남는 5알은 모두에게 나눠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천제현과 공화련, 공서련, 남궁혜 넷은 기적상회가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한 동업자들이니 한 알씩 나눠 주는 게 맞았다.
그리고 항상 천제현을 믿어 주고, 또 이번에는 직접 왕성까지 가서 천제현을 편들어준 신풍후에게도 보답을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풍채향에게 한 알을 주었다.
운천학 또한 천제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천제현이 중주성에 막 도착했을 때 운씨 가문의 강력한 지원이 없었다면 중주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기세등등한 삼대 가문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래서 감사의 의미로 운요에게도 한 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