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제332장 협상
무안군이 천천히 그 맹렬한 기세를 접자, 사람들은 그제야 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앞으로 나와 덤덤하지만 높은 자리에 군림한 자의 말투로 물었다.
“자네가 천제현이로군!”
무안군은 자신의 명성이나 방금 보여준 실력을 생각할 때, 천제현이 아무리 오만방자한 놈이라 해도 분명 설설 길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천제현은 무안군을 절대 이길 수 없고, 남하국에 자리를 잡으려면 무안군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얘기는 쉽게 진행될 것이다.
“무안군! 이 늙은이는 오랜 세월 그대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생각했건만, 이토록 졸렬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천제현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도리어 분노에 찬 노인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무안군과 끝장을 보기라도 할 기세로 화를 내며 나섰다.
“만약 그의 몸에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려면, 이 늙은이부터 죽이고 가야 할 게요!”
운천학도 적군을 만난 것처럼 소리쳤다.
“여봐라! 회장을 보호해라!”
심빙우를 비롯한 사람들이 바로 나섰다. 새끼 여우도 털을 곤두세우며 적대적인 눈빛을 드러냈다.
신풍후는 어리둥절해졌다. 무안군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천제현이 직접 편지를 써서 무안군을 청한 것은 무안군과 손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대학자? 저 사람은 대학자가 아닌가, 그런데 왜 저렇게 화를 내며 무안군을 질책하는가!’
무안군은 화가 났다.
“대학자, 이 몸은 지금까지 본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 어찌하여 그토록 이 몸을 비방하시는 게요!”
“그렇단 말이지요! 무안군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인물이었구려!”
“뭐라고요?”
무안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학자가 무슨 약을 잘못 먹었는가?’
만약 대학자만 아니었다면, 무안군은 벌써 단번에 그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
“직접 보시지요!”
대학자는 밀서를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 밀서를 무안군이 보낸 게 아니라고는 못하시겠지요.”
“이건 분명 이 몸이 친필로 쓴 밀서요, 그런데…….”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이 늙은이를 현혹시켜 천제현을 없애라는 뜻을 넌지시 내비치고, 능력 있는 자를 죽인 오명을 씌우려 하다니. 그토록 악랄한 마음을 가진 무안군과 절대 뜻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요!”
무안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대학자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밀서는 대학자에게 천제현을 얼마간 보호하라고 보낸 편지인데, 어째서 대학자에게 천제현을 죽이라고 암시한 편지가 되었는가.
무안군은 직접 편지를 꺼내 대학자와 맞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보는 순간, 무안군은 제 눈을 의심했다. 편지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 필적과 문풍은 동일했으나, 내용은 천양지차였다.
신풍후도 크게 놀랐다.
‘무안군은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걸까?’
무안군은 뭔가를 깨닫고 바로 해명했다.
“아니요. 이것은 내가 쓴 밀서가 아니요. 누가 고친 것이오!”
고천추는 분노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일이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 변명하는 거요! 남하국에서 감히 누가 무안군의 서신을 고친단 말이요!”
“내가 직접 중주에 온 것은 협력을 위해서인데, 어찌 천제현을 죽이려 들겠소?”
무안군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끼고는 바로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내 됨됨이는 천하가 아는 바요, 절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요!”
그때, 천제현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무안군.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늦으셨습니다.”
“무슨 뜻인가?”
“이 편지 때문에 소인이 너무나도 불안하여, 어쩔 수 없이 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제는 청주, 뇌주와 대학자님까지 함께 손을 잡고 마력 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안군께서는 이번에 헛걸음을 하신 듯합니다!”
“뭐라고?”
“무안군의 이해력이 조금 떨어지시는 듯하니, 이 늙은이가 다시 전달 드리지요!”
고천추가 고소해하며 말했다.
“회장님의 뜻은, 이 마력 무기 공장은 존귀하신 무안군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서 왕성으로 돌아가시지요!”
고천추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라 사나울 데로 사나운 상태였다.
무안군의 편지로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할 뻔했기 때문이다. 혹 무안군이 쓴 편지가 아니었다 해도,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안군은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무안군이 자신감과 기대를 가득 안고 친히 중주로 와서 천제현을 만나려 한 것은 다 자신의 신분과 실력을 빌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천제현을 자신의 손안에 넣으려고 한 것인데,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했단 말인가.
‘시작도 못한 채 쫓겨나다니!’
무안군이 오자마자 겁을 주었기 때문에 기적상회 사람들도 모두 경계와 적개심이 가득했다.
‘끝장이다. 꼼수를 피우려다 오히려 망하고 말았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제길! 이럴 줄 알았다면 으름장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대학자가 이곳에 있으니 무력도 사용하기 어렵다. 그의 실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말재간은 무안군도 두려워했다.
‘절대 이 책벌레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 편지를 고친 것인가. 이 협상이 무산된다면, 그놈의 삼족을 멸하리라!’
무안군.
삼대봉군 중 하나인 무안군.
남하국의 봉군은 영지를 하사받지 못했으므로 지역에 따라 칭호를 내리지는 않았다. ‘군’ 작위는 순수한 칭호로, 무안군이라는 이름 하나로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다.
공화련과 공서련은 무안군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거물이 기적상회 연구소에 나타나 대학자와 논쟁을 펼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두 사람은 남하국에서도 매우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다.
대학자는 학자이니 서로 논쟁을 펼치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라 치자. 하지만 무안군이 어떤 인물인가? 남하 삼군 중에서도 으뜸이요, 전군 총사령관인 거물급 인물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참으로 체통 떨어지는 일이다.
무안군은 조급해져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자들을 다 합쳐도 내게 비할 수 없네. 이번에 사방후를 포로로 잡아 상관 가문에 엄청난 모욕을 안겨주었고, 남주 군단 전체를 포로로 삼아 왕국에 큰 풍파를 일으켰으니, 이제 남하국에서 유일하게 과인만이 자네를 도와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게!”
“무안군!”
대학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감히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오?”
“대학자, 말이 지나치시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소.”
무안군은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얼굴은 무시하는 표정을 지은 채 쌀쌀맞게 말했다.
“대학자의 학문에 대한 조예가 누구보다 깊은 것은 인정하오. 이 일은 말재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솔직히 말하면 그저 명성 하나 있는 학자일 뿐이잖소!”
고천추는 분노로 수염이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았다.
“두 분, 노여움을 푸세요.”
천제현이 중재에 나섰다.
“무안군께서 오해라고는 하나 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사람이 신뢰를 져버릴 수는 없지요. 이미 협상을 한 이상 절대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무안군께서 이해해 주시지요!”
천제현은 무안군이 자신을 죽일 마음이 없음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무안군이 신풍후를 데리고 직접 중주를 방문했겠는가.
무안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 천제현은 고소한 마음이 들었다.
무안군의 강력한 세력이야 천하가 아는 일이다. 허나 아무리 안하무인의 무안군이라 해도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자는 무안군과 싸워 이길 수준도 아니었고, 권력을 손에 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하국에서 대학자의 지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무안군은 아무리 화가 나도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고천추가 전국 학자들의 성토를 일으키면,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나를 먼저 찾은 것은 자네야. 그리고 내가 긱접 이곳으로 왔네!”
무안군은 툴툴대며 말했다.
“이 밀서만 해도 그렇네. 본래 자네를 보호하려고 쓴 것인데, 알지도 못하는 놈이 서신을 바꿔 놓은 게야. 내 돌아가서 정황을 알아본 후, 그 놈을 엄벌에 처할 것이네! 단 협력안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반드시 과인이 아니면 안 돼!”
대학자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무안군, 힘을 믿고 억지를 부리는 거요? 나 고천추는 동의할 수 없소!”
“노인장, 입 좀 다물 수 없겠소! 이 일은 내가 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고천추는 학자로서의 고약한 성미가 한번 올라오면 아예 안면을 몰수했다. 과거 무안군과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지는 상관없었다. 이제는 무안군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대학자와 무안군은 체면불구하고 충돌할 태세였다.
‘이렇게 싸우다가 무안군이 정말로 공격을 하면 그땐 정말 큰일이다.’
결국 천제현이 다시 일어났다.
“협력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논의하시지요. 서로에게 다 좋은 해결방안이 없진 않을 겁니다.”
“좋네.”
무안군은 몇 분간 천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자네는 생각한 것보다 젊고, 생각한 것보다 더 건방지군. 물론, 생각보다 더 뛰어나기도 하고! 과인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겠네.”
여기까지 말한 후 잠시 멈추더니, 천제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런 무기를 연구할 때 비밀 유지만큼 중요한 것이 없어. 만약 기술이 유출되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천제현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제가 무안군을 중주성으로 청한 것은 무안군과 협력을 논하기 위해서이지,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녀석이! 정녕 과인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모른단 말인가?’
무안군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만약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면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무안군은 이를 악 물고 수긍한 후에 다시 물었다.
“나는 우선 생각해둔 협력 방법을 듣고 싶네!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길 바라네. 어쨌든 남하국에서 일을 도모하려면 내 협력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 걸세.”
무안군의 덤덤한 어조 속에는 위협이 깔려 있었다.
그 의미인즉 합리적인 협력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없다면, 일 진행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급할 게 뭐 있습니까?”
천제현은 이런 무안군의 태도를 보고 오히려 말을 아꼈다.
“무기 실험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무기를 실험해보죠!”
“또 뭘 실험한다는 건가? 이미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