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
제329장 대승(大勝)
강력한 왕궁기사들이 다시 출동했다. 현혼급 이상인 그리핀 기사 수백 명의 공중 전투력은 절대 만만치 않다. 남주군이 성벽을 공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주성을 함락시킬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금전후와 천제현이 남하왕이라는 큰 벽을 어떻게 넘을 지 한번 지켜보자!’
사방후가 그제야 약간의 이성을 되찾고 퇴각을 명하기 시작했다.
“군령을 선포한다. 전방 부대와 후방 부대 자리 교체, 포위를 뚫고 퇴각한다!”
퇴각명령으로 인해 한창 남주군이 포진을 조정하고 있을 때, 금전후도 사방후가 후퇴할 생각임을 알아챘다. 어쨌든 남주군도 남하국의 군대인 이상,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쓸데없이 희생자만 늘리는 꼴이었다.
금전후도 재빨리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 남주군이 후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남주군이 서둘러 배에 오른 후, 사방후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의 외침을 내질렀다.
“강웅, 천제현, 고천추! 남하왕의 분노를 어찌 감당할 지 내 두고 보겠다!”
사방후의 외침과 함께 남주군의 배는 천천히 떠나가고 있었다.
“후퇴하겠다고? 그냥 보내줄 성 싶으냐!”
남주 함대가 중주 항구를 20리 정도 벗어났을까, 갑자기 배들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후님, 큰일 났습니다!”
“뭔가가 배 아래쪽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배에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남주군은 혼란에 빠졌고, 많은 병사들이 살기 위해 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남주 병사들은 물에 익숙하지 못한데다가 무거운 갑옷과 병기로 인해 제대로 헤엄을 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천제현이 명령했다.
“저들을 잡아라!”
상어해적단이 바다에 풀어놓은 거대한 그물을 힘껏 당겨 마치 물고기를 끌어 올리듯 물에 빠진 수많은 남주군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물에 빠져 들어간 남주군은 상어해적단의 거대한 그물에 잡혀 올려졌다. 물고기를 건지듯이 물에 떨어진 병사들을 잡아내고 나니 포로의 수가 엄청났다.
천제현은 사방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을 데려와라!”
대방주가 바로 물고기뼈 지팡이를 던져 물줄기를 만들었다. 물줄기는 사방후를 가두는 감옥으로 변했다.
상관홍은 분노에 차 물감옥을 내리쳤다.
붓 끝이 물감옥에 닿는 순간, 강한 마력이 가득 퍼져 나왔다. 투명한 물감옥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더니 산산조각 나 물방울이 되었다. 그러고는 대방주를 향해 날아갔다.
사방후의 마력은 혼성 9성 정점이었다.
대방주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수중전이라면 대방주도 만만히 당하지는 않는다.
그도 방패를 만들어내 날아오는 물방울 막아냈다.
“형님, 제가 갑니다!”
상어해적단의 오방주들의 무공은 동일한데다 다년간 손발을 맞춰온 터라, 이들이 힘을 합치면 남하팔후 정도 되는 인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수중전이라면 지리적 우세를 활용할 수 있어 더욱 유리했다.
“이 늙은이도 돕겠소!”
고천추가 그리핀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자신의 모든 힘을 방출했다. 뒤에서부터 떠오르는 황금빛 정령은 놀랍게도 거대한 황금빛 괘종시계였다.
댕!
시계가 거대한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직 상관홍의 몸만 괘종 소리에 맞춰 흔들릴 뿐이었다. 그는 미쳐 고천추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황금빛 괘종시계 소리의 파동은 일반 파동이 아닌 정신의 파동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고천추의 정령은 정신 속성으로, 매우 드문 유형의 정령이었다. 정신 공격은 제대로 된 방어수단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막아내기 힘들었다.
고천추의 기습 공격에 사방후의 호신마력이 흩어졌다. 거기에 상어해적단 다섯 형제가 한꺼번에 덤비니 사방후도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사방후를 잡았다!”
“항복하지 않으면 사방후를 죽이겠다!”
사방후가 잡힌 모습에 남주군은 새파랗게 질려 모두 항복했다.
포로가 된 남주군은 자그마치 10만 명에 달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팔주 주둔군의 내부 알력싸움은 둘째 치고, 팔주 중에서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남주군의 10만 정예 부대가 중주의 포로가 되다니.
남주의 체면 뿐 아니라 상관홍, 심지어 상관 가문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투항한 병사들의 무기와 갑옷은 모두 몰수하고, 임시 진영을 만들어 모조리 가둬 버려라!”
천제현의 명에 중주 병사들이 분주하게 포로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사방후는 다섯 방주에게 잡혀오면서도 여전히 분노의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천제현, 네놈이 이긴 것 같으냐? 이런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이상,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저런 염병할 놈!’
천제현이 불같은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나섰다.
“비켜라!”
다섯 방주들은 바로 뒤로 물러섰다.
천제현은 바로 상관홍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한방에 상관홍이 이십 척 멀리 날아갔다.
“포로가 된 주제에 아직도 이렇게 날뛰다니. 네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내가 천제현이 아니다!”
천제현은 사방후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연이어 얼굴을 갈겼다.
“상관 가문의 귀족 제후라고 해서 내가 가만 둘 거라 생각지 마라. 눈도 못 뜨게 만들어 줄 테니!”
‘이 미친 놈! 이놈은 정말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른다!’
사방후는 싸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때, 고천추가 서둘러 다가왔다.
“그만 화를 가라앉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분을 푸셨으니 우선 가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천제현은 사방후를 바닥에 던진 후 발로 밟으며 말했다.
“좋다. 대학자의 얼굴을 봐서 여기까지 하지. 이놈을 가두고 잘 지켜라. 절대 편히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가?’
남하팔후의 사방후다. 천제현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방후를 때린 것이다.
금전후도 천제현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저 녀석, 진짜 불같은 성미를 지녔군!’
중주에서 이런 분쟁이 일어난 것도 모두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저 성격 때문이었다. 사방후 뒤에 문성군이 버티고 있음을 알면서도, 체면을 세워주기는커녕 곁에서 말릴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다니.
이런 오만방자함은 보통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천제현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남하왕과 상관 가문을 넘어 이제는 남궁 가문에게까지 미움을 사게 된 이상 천제현은 두려울 것도 없었다. 적어도 중주는 아직 천제현의 구역이고, 적어도 신풍후는 그를 응원해 줄 테니 말이다.
금전후와 대학자도 같은 편으로 만들어 놨다.
천제현의 패는 충분했다.
남하왕이 아무리 화가 나도, 중주를 버릴 수는 없다. 신풍후와 금전후를 파면할 수 없음은 물론 고고한 지위의 대학자의 체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서 가!”
다섯 방주는 얻어맞아 피투성이 얼굴이 된 사방후를 끌고 갔다.
위풍당당하던 제후 한 명이 이렇게 감옥행이 되었다.
“여…… 아니, 천 선생!”
남하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학자 고천추가 긴장한 얼굴로 천제현에게 다가왔다.
“청주에서 헤어질 때는 언제 다시 보게 될까하여 걱정하였는데, 이렇게 며칠 만에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비록 서로 오해가 있으나 다 풀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 노인네 말하는 것 보게나. 온몸에 소름이 돋네!’
천제현은 무시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늙은이는 그 유명한 천제현 님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비범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군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던 제자들을 혼내준 일을 말하는 거예요? 설마 그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은 아니겠죠!”
“아니, 아닙니다!”
고천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 그러겠습니까? 가지고 계신 귀한 재능 앞에서는 이 늙은이의 제자가 아니라, 이 몸이 제자가 되어 배운다 해도 할 말이 없지요. 도리어 가르침에 감격할 것입니다.”
성 백성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대학자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천제현을 대했다.
‘저 사람이 대학자라고?’
‘사칭하는 것은 아니겠지!’
남하국의 대학자는 명실상부 최고의 학자다. 그 학문의 깊이는 운천학을 뛰어넘을 정도다.
제약학, 부적학, 제기학 등 모르는 것이 없으며, 남하국 백만 학자들이 마음으로 우러러 보는 자요, 남하국 학술계의 권위자다.
고천추는 탁월한 학문 지식뿐 아니라 남하팔후와 같은 혼성 9급 정점에 도달할 정도의 마력을 가진 최강자다.
만약 고천추가 학술 연구에 매진하지 않았다면, 혼성 경지를 돌파해 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남하국 최고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고천추에 관한 많은 미담들이 남하국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고향을 떠나 산 넘고 물 건너 저 먼 대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년이라는 긴 유학기간동안 남하국에 무수한 선진문물을 전해주어 남하국 학술계를 발전시켰다. 그 외에도 고천추는 지난 수십 년간 남하국의 수많은 우환들을 해결해왔다.
청주 사건 같은 일이 터지면 늘 고천추가 직접 나서서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냈다. 고천추가 남하국에 한 공헌을 생각하면, 제후로 봉해도 모자란다. 다만 고천추는 학자로서 학문에 매진하며 허황된 명성을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남하왕의 작위를 거절해왔다.
운천학은 서둘러 그를 도와 말했다.
“대학자님의 고귀한 인격과 성품을 생각할 때, 이번 오해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대학자님께서 앞뒤 상황을 다 아셨다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걸세.”
“그렇고 말고요!”
운천학이 도와주자 고천추가 감격하며 말했다.
“오해입니다, 오해일 뿐이지요!”
천제현은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천제현은 고천추가 대학자라는 사실을 중주에 있을 때 어느 정도 간파했다.
천제현을 미워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다, 그 기세는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큰 세력을 갖고 있다 해도 운문의 연구 수준도 올려야 하니, 고천추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만약 무안군이 천제현을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면, 대학자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나 천제현도 시비를 분간치 못하는 자는 아닙니다. 오해였다면 됐습니다.”
천제현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대학자님이 도와주신 것에 대해 이 천제현,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지요!”
고천추는 즉각 대답했다.
“이 몸도 연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맞을 줄이야!’
천제현은 망설이는 척 턱을 어루만졌다.
“그게…….”
“여기 온 것도 성심성의껏 연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