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27화 (323/729)

# 327

제327장 남주군단의 침공(3)

사방후는 제후일 뿐만 아니라 상관 가문 출신의 귀족이었다.

고천추 역시 평범한 학자는 아니었다. 작위도 없고 귀족 혈통도 아니지만, 남하국의 태사인 그는 동방 가문의 첫 번째 상경이자, 남하국 최고의 학자로 학술계의 태산북두라 할 수 있다.

실권이 없어도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기 때문에 어떤 귀족도 감히 그를 얕보지 못했다. 작위 없이도 능히 남하팔후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인물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천추가 공개적으로 칭찬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수많은 귀족 가문의 귀빈이 되며 무수한 학자들의 존경을 받곤 했다.

반대로, 고천추가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학자들에게 욕을 먹고 패가망신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바로 대학자의 힘이었다.

고천추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사방후를 꾸짖었다는 사실이 퍼지면 사방후는 영원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지식인들의 상징과 같은 대학자는 결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말과 글은 10만 대군을 이길 수 있기에 삼대가문에서조차 그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삼대가문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상관 가문은 동방 가문 다음가는 세도가 아닌가. 문성군이 이런 꼴을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어이가 없군요!”

모욕을 받은 사방후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대학자를 존경하는 마음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대학자이자 남하국 학자들의 우두머리인 당신은 공공연하게 남하왕의 왕명을 거역하고 역적을 비호했소. 대학자라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겁니까?”

“내가 언제 왕명을 거역했소?”

“교지에 천제현을 왕성으로 압송하라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지금 이게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나는 전쟁을 막고 있는 것뿐, 천제현의 왕성 압송을 저지한 적은 없소. 오히려 사방후야말로 왕명을 업신여기는 것 아니오? 왕명을 구실로 천제현을 죽일 속셈이겠지. 이 늙은이는 왕명에 따라 천제현을 안전하게 왕성으로 데려갈 것이오. 절대 천제현을 당신 손에 넘기지 않겠소.”

“이, 이런…….”

“당신은 교지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대군을 이끌고 중주에 쳐들어왔소. 이는 수백 만 백성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짓이오. 왕족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삼대 가문을 부끄럽게 만드는 짓이기도 하오. 중주성이 함락되면 백성들이 통곡하고 원성이 들끓을 것이오. 중주가 도탄에 빠지면 온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텐데 그대가 그 책임을 질 수 있소? 왕명이 아니라 남하왕이 직접 오신다 해도 난 끝까지 말릴 것이오!”

“역적을 잡는 일이 어째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오!”

“입만 열면 역적이라 하는데, 천제현이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증거가 있소?”

“왕족을 무시하고 특사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이런데도 증거가 필요합니까?”

“아무 증거도 없이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대군을 움직이다니!”

분노한 고천추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남하국 병사들의 피는 전장에서만 흘려야 하오. 남하국 병사들의 목숨은 외적에 대항할 때만 희생되어야 하고! 여기는 견융초원도 남쪽 야만족의 땅도 아니오. 전장이 아니라 중주란 말이오! 부유하고 번화한 중주, 수많은 백성들의 터전인 중주, 남하국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주! 남하국 군대가 대체 언제부터 동족에게 창을 겨눴소? 내분을 일으키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이런 짓을 하면서 제후라니!”

서슬 퍼런 말이 쏟아졌다.

한편, 천제현은 성벽에서 흥미진진하게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학자와 사방후의 입씨름이라니,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 아닌가.

공화련은 깜짝 놀랐다. 명성이 자자한 대학자가 이렇게까지 천제현을 두둔할 줄이야.

그리고 공서련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 어르신, 말싸움 정말 잘한다!”

“고천추는 남하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라네.”

운천학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말싸움은 학자의 기본일세. 타국에서 유학한 학자의 말솜씨는 더욱 뛰어나지.”

대학자는 사방후의 체면을 가차 없이 짓밟으며 죄명을 일일이 나열했다. 사방후는 화가 치밀어 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천제현이말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역적입니다!”

“나는 반대로 알고 있소. 천제현이 중주에 온 후 가난한 자에게는 일거리가 생겼고 상인에게는 이익이 생겼소.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고 중주성은 더욱 번영을 누리게 되었소. 그런데 사방후가 중주에 오니 성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으며, 피바람까지 일어날 지경이오.”

대학자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입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여러분들이 말씀해 보시오. 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지!”

사방후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을 쳤다. 그는 말싸움으로 이 대학자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대학자께서는 정말 천제현 하나를 위해 상관 가문과 적이 될 생각입니까?”

“천제현의 머리털 한 올이 유명무실한 제후보다 훨씬 귀하오!”

고천추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으며, 그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에는 천제현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었다.

고천추는 기적상회의 힘을 알아보았다. 기적상회는 왕국의 운명을 바꾸고 전 대륙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적상회는 사라지면 안 된다.

게다가 뜻밖에도 기적상회의 창립자인 천제현이 청주에서 발생한 마수 재해를 해결한 기재였다지 않는가. 천제현은 궁지에 빠진 청주를 구하고 뇌주의 문제를 해결한 구세주였다.

그의 가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천제현의 지식은 대륙을 통째로 뒤바꿀 수도 있어. 어리석은 사방후 같으니. 입만 열면 역적 운운이구나.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단 말인가?’

천제현이 정말 역모라도 일으킨다면 남하국으로서는 유사 이래 최대의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그를 죽인다고 치자. 남하국은 하늘이 내린 천재를 잃게 된다. 그렇다고 그를 살려 봤자 그가 남하국에 앙심을 품는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기적상회가 중주에서 얻은 민심으로 보았을 때, 천제현은 얼마든지 중주에 근거지를 두고 모반을 일으킬 수 있다. 모반이 실패한다고 해도 다른 곳으로 도망치면 몇 년 안에 남하국을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자와 입씨름 벌일 시간 없습니다.”

사방후 상관홍이 영패를 높이 치켜들었다.

“왕명이다! 전군, 성을 공격하고 천제현과 역당을 섬멸하라. 이를 가로막는 자는 역당과 같은 죄로 처벌할 것이다!”

상관홍은 공격을 감행했다.

‘일개 학자 주제에 상관 가문을 모욕하다니!’

이제 고천추와 상관 가문은 적이 되었다. 대학자의 영향력이 두려워 철군한다면 상관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성을 공격하라!”

“성을 공격하라!”

상관홍이 깃발을 높이 휘둘렀다.

사방에서 동시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사들이 부는 호각에서는 거대한 마수가 으르렁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남주의 중무장 보병대가 두 줄로 반듯하게 서서 거대한 방패를 들고 중주성으로 돌진했다.

“좋다!”

고천추가 높이 날아올라 그리핀의 발을 잡고 중주성으로 돌아왔다.

“그럼 한 번 붙어보자! 왕궁기사는 목숨을 걸고 왕국의 성을 수호하라!”

이호가 난색을 표했다.

“대장님, 이건…….”

다른 왕궁기사들도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한쪽은 문성군을 등에 업은 사방후고, 다른 한쪽은 남하태사 고천추이다. 어느 쪽과도 척을 질 수 없었다.

“명을 듣지 못했느냐?”

조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자. 중주성을 수호하라!”

조표가 왕궁기사단 대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단순히 힘만 쓰는 무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왕성에서 지낸 그는 대학자의 인품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자가 이토록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자가 상관 가문에 단호하게 등을 돌리는데 조표가 어쩔 수 있겠는가?

첫째, 교지에 왕궁기사는 고천추의 명을 따르라고 적혀 있다.

둘째, 고천추 뒤에는 동방 가문이 버티고 있다. 그는 남하태사일 뿐만 아니라 동방 가문 제일의 상경이다.

왕궁기사는 왕족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동방 가문은 바로 왕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표가 상관 가문을 도와 동방 가문의 상경에 맞설 수 있을까?

동방 가문에서 고천추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그가 홧김에 떠난다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동방 가문이다. 삼대가문은 원래 경쟁 관계이므로 고천추가 떠난다면 상관 가문과 남궁 가문에서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고천추를 잃게 되면 남하왕 또한 기사들을 용서할 리 없다.

‘둘 중 한쪽과 적이 될 수밖에 없다면 사방후와 적이 되자!’

철갑처럼 중무장한 병사들이 묵직한 발걸음으로 중주성 성문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야만족의 용사들이었다. 이들의 전투력은 평범한 병사들과 견줄 수도 없이 강했다. 성문은 얼마 못 가 열리게 될 것이다.

“돌격!”

그때, 그리핀기사 100명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핀의 울음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왕궁기사인가?”

사방후가 힘을 다해 깃발을 흔들었다.

“화살부대, 활을 쏘아라!”

남주군 쪽에서 활시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에서 일제히 마력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화살들은 국경을 넘는 메뚜기 떼 같이, 그리고 몰려오는 먹구름 같이 빽빽하게 쏟아졌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서 명을 전하라!”

천제현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백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지하실에 숨어 있으라고 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나오지 말라고 전해!”

이 전쟁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남주군단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대학자가 이끄는 왕궁기사단이 있지만 혈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격하라!”

“중주성을 사수하라!”

조표가 인솔하는 왕궁기사단이 그리핀을 타고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핀이 길게 울부짖자 두 날개에서 폭풍이 일면서 방어막이 생겼다.

빽빽이 날아오는 화살이 그 방어막에 맞고 튕겨나갔다.

왕궁기사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뚫고 가장 앞줄의 중무장 보병을 향해 돌진했다.

“언제까지 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지 보자!”

사방후가 코웃음을 쳤다.

“화살을 계속 쏴라! 둘째, 셋째 진영과 좌우측 병사들은 전진하라! 공성부대를 엄호해야 한다!”

북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번에 남주군은 10만 명이 넘는 주력군을 다 동원했다.

반면 중주성 주변은 안전한 지역이어서 주둔군이 많지 않았다. 남주군이 너무 갑자기 쳐들어오는 바람에 각지의 군사를 동원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번 전투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