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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25화 (321/729)

# 325

제325장 남주군단의 침공

꽁꽁 묶인 고천추는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위엄 넘치고 존경받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중주 사람들이 전부 미쳤는가! 대학자를 알아보는 자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

“남하국 최고의 학자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지 아느냐?”

조표와 기사들이 분노하며 외쳤다.

“중주의 백성은 천하를 적으로 만들 셈이냐?”

“조표, 그만 하게!”

고천추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답답한 모습이었다. 이번 일은 여간 억울한 게 아니었다.

“여인네가 참 독하군. 뼈가 다 부러질 뻔 했어!”

고천추가 심빙우를 쳐다봤다.

“당신이 천제현의 호위무사인 걸 알고 있소. 천제현은 어디 있소? 내 그자에게 할 말이 있다오!”

고천추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나?’

자신을 외국의 상인이라 했던 여 선생이 중주의 천제현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즉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고천추는 감히 천제현의 트집을 잡으러 중주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천추는 청주에서 천제현과 며칠 동안 함께 지냈다. 천제현의 성격이 좀 건방지기는 하지만 그는 절대로 악하거나 불길한 사람이 아니었다.

명예를 탐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왕성에서 보낸 밀서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확!

탐조등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고천추는 눈이 부셔 실눈을 떴다. 앞쪽에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의자를 놓았다.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역광 때문에 상대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귓가에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의 신분이 무엇인지, 몇 명이나 왔는지 불어!”

“우리를 모욕할 생각이라면 그냥 죽여라!”

조표가 어엿한 왕궁기사 대장을 죄인처럼 심문하는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배짱 있으면 날 죽여라!”

“그놈 꽤 기개가 있군. 난 기개가 있는 사람이 좋아.”

천제현이 오방주에게 손짓했다.

“저자를 끌어내 손을 봐주시오!”

상어해적단 사람들이 조표를 끌어내 구타하기 시작했다.

‘정말 때리다니! 중주가 정말 도적놈들에게 점령당한 것인가?’

“멈춰, 멈추게. 말로 하자고!”

고천추가 급히 나섰다.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겠소.”

“그럼 어서 말해!”

“이자들은 왕궁 그리핀기사요. 왕족의 명령만 듣지. 이번에 내가 이들을 이끌고 중주에 왔소. 인원은 총 100명이오. 나머지 인원과 그리핀은 아마 성 밖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오.”

조표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대학자, 어째서…….”

대학자의 강직한 기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째서 이렇게 쉽사리 입을 여는 건가?

천제현이 다시 질문했다.

“이게 전부인가?”

“아니오. 왕궁기사는 이번 행동만 책임지고 있소.”

고천추는 숨김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남주의 사방후가 중주로 오고 있소. 그가 직접 당신을 왕성으로 데리고 갈 것이오.”

천제현은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어떤 놈이 이런 사악한 생각을 한 거야? 내가 사방후와 원한이 있다는 걸 누가 몰라! 사방후가 날 왕성으로 데리고 간다고? 왕성 가는 길이 저승길이 되겠군!”

“이보시오, 천 회장.”

고천추가 급히 해명했다.

“이 모든 건 다 오해요. 나는 당신의 신분을 정말 몰랐소. 알았다면 이런 어리석은 계책으로 선생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오.”

이 말에 놀란 건 왕궁기사들뿐이 아니었다.

운천학과 기적상회 일원들 역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라고?’

‘대학자와 천제현이 아는 사이야?’

“지금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내 다 해명하겠소. 허나 왕궁기사의 체면이 있으니 저들은 그냥 놔 주시오.”

고천추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갑자기 운천학을 쳐다봤다.

“이보게, 어째서 아무 말이 없는가? 내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

조표와 왕궁기사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대학자께서 대체 왜 저러시지?’

남하왕 앞에서도 빳빳하게 호통을 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이 사람들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 두려워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맞다, 교지!”

고천추가 눈짓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교지가 주머니 안에 있소. 교지 외에 무안군의 밀서도 있소. 그걸 보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그저 임시로 명을 받고 왕궁기사를 인솔했을 뿐이오. 이전의 일은 전혀 모르오. 천 회장을 헤칠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심빙우가 교지와 밀서를 찾아 천제현에게 건넸다.

천제현은 먼저 교지를 펼쳐서 읽었다.

남하왕은 고천추에게 사방후와 협력하여 그를 왕성으로 압송한 후 심판하라는 명을 내린 게 확실했다.

‘무안군의 밀서라고?’

천제현은 밀서를 펼치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밀서에는 천제현의 여러 가지 죄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죄목이 교지보다 훨씬 상세한데다가 천제현과 대학자의 사적인 원한까지 언급했다.

밀서가 아니었으면 까맣게 잊을 뻔 했다.

중주에 처음 왔을 때 천제현은 운씨 가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운문에서 대대적인 소동을 벌였다. 당시 운문에는 중요한 학자 몇 명이 있었다. 천제현은 이 학자들을 제대로 농락했다. 이런 사소한 인물들은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에 천제현은 금세 이 일을 잊어버렸다.

이때 천제현은 대학자에게 결례를 범했다.

이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무안군이 이런 서신을 보냈다는 것은 대학자의 손을 빌려 천제현을 없애겠다는 뜻이 아닌가?

다행히 천제현은 중주에서 고천추와 우연히 안면을 트고 여러 가지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그리하여 고천추는 이제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이런 인연이 아니었다면 일이 안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다.

‘신풍후가 무안군 설득에 실패했나? 아니면 무안군이 나를 죽이고 마력 무기를 독차지 하려고 마음먹은 건가?’

이 편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떤 쪽으로 생각해도 천제현은 불리한 입장이었다. 남하왕이 천제현을 못마땅해 하고 삼군도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데 기적상회가 남하국에 발을 붙일 수 있을까?

천제현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고천추가 곧장 나섰다.

“천 회장, 걱정 마시오. 난 왕성에서 꽤 지위가 있는 몸이오. 이 늙은이가 나선다면 국왕께서 선생을 사면할 것이오. 설령 선생이 삼군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이 늙은이의 체면을 지켜 줄 거요.”

“이보게, 무안군이 우리 편에 서지 않는다면 대학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세.”

운천학이 낮은 소리로 천제현에게 말했다.

“저 친구는 나와 친분이 있네. 그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야.”

대학자의 실력이나 세력 모두 삼군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영향력은 삼군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최소한 제후보다는 천제현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천제현이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방주, 회장!”

상어해적단 단원 하나가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오방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사주호에 군함이 나타났습니다. 남주군단이 중주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기세가 엄청납니다. 아무래도 우릴 공격하러 온 것 같아요!”

‘뭐라고? 남주군단이라니!’

“교지에는 사방후에게 천 회장을 왕성으로 호송하라고만 적혀 있소. 남주군단을 움직이라는 명령은 없었소!”

고천추의 안색이 다소 무거워졌다.

“천 회장, 남주군단이 왔다면 중주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소. 이 늙은이를 한 번만 믿어주시오. 내가 사방후를 막아보겠소!”

천제현이 실소를 터트렸다.

“사방후는 나를 무척 증오하고 있어. 대학자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은데.”

“적어도 내겐 100명의 왕궁기사가 있소!”

이 말에 조표가 소리쳤다.

“대학자, 저희의 임무는 분명…….”

“잊지 말게. 교지에는 자네들의 지휘를 내게 일임한다고 쓰여 있네. 자네들은 내 지시에 따라야 해.”

고천추는 원래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왕궁기사를 대했다.

“왕명을 거역할 셈인가?”

“그게…….”

“천 회장은 우리의 적이 아닐세!”

고천추가 천제현에게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소!”

천제현은 깊은 한숨을 거듭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당신을 한 번만 더 믿어보지. 저들을 풀어줘요. 바로 성문을 닫고 전투를 준비하세요!”

포박에서 풀려난 조표가 품에서 이상한 모양의 피리를 꺼냈다. 하늘에 대고 피리를 힘차게 불자 날카로운 피리소리가 구름을 뚫고 울려 퍼졌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하늘에 긴 울음소리가 퍼지면서 거대한 그리핀 100여 마리가 중주성으로 천천히 날아왔다.

중주성의 백성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저게 전설의 그리핀이구나!’

그리핀은 2급 마수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한 마리에 금화 수천 만 냥이 넘었다. 그리핀기사단은 남하국에서 가장 신비롭고 강한 군대였다. 이런 그리핀기사단이 중주성에 나타났으니 백성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어서 모든 성문을 닫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백성들은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성 방위군은 긴급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주성에 다시 큰 일이 터질 것 같았다.

한없이 아득하고 잔잔한 사주호에 불어 닥친 세찬 바람이 물안개를 걷어갔다. 물안개가 걷히자 빽빽이 들어선 깃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묵직한 위압감이 중주성 상공에 퍼졌다. 중주성은 지어진 후,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별다른 위기가 없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백성들은 모두 넋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수백 척의 군함이 위풍당당하게 항구에 도착했다. 대다수가 중대형 군함으로 최소 10만 명이 넘는 대규모 군단이었다.

중주성 백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주군이야!”

“남주군이 중주성에 왜 왔지?”

남주군단은 중주 백성들이 반응을 보이거나 질문을 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았다. 군함 갑판이 열리자 병사들이 가득 탄 작은 배가 개미처럼 뭍으로 밀려왔다. 군마가 울부짖고 깃발이 나부끼며 수많은 기병들이 순식간에 뭍으로 올라왔다.

중주성 부두는 순식간에 남주군에게 점령되었다. 갑옷을 걸치고 손에 무기를 쥔 병사들이 밀물처럼 빠르게 중주성으로 밀려들었다.

이런 대군이 성으로 몰려오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전쟁이 터질 모양이야!’

중주성은 남주군단의 갑작스런 기습을 막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았다.

남주군이 중주성에 코앞까지 밀어 닥친 후에야 위험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주의 병사들은 잇달아 방어진을 펼쳤다. 수많은 궁수들이 바삐 성벽으로 올라가 반짝이는 화살촉을 서서히 다가오는 남주군을 향해 겨눴다.

“멈춰!”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화살을 쏘겠다!”

남주군단은 중주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짧은 시간 안에 진형을 구축했다. 중주군은 남주군의 거센 기세에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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