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제324장 천제현 납치 작전(2)
이호는 어리둥절했다. 어렵사리 천제현을 잡았는데 대학자는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몹시 의아했지만 대학자가 돈을 빌려달라는데 감히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곧바로 돈주머니를 꺼냈다. 고천추는 금화 수십 냥과 금화 카드 몇 장이 있는 것을 보고 구체적인 액수를 세지 않았다.
“이 반지를 가지게.”
고천추는 반지를 이호에게 던진 다음 다시 돈주머니를 젊은이에게 던졌다.
“이 정도면 되겠소?”
젊은이가 돈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금화 수십 냥에 금화 카드까지 여러 장 있었다.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중 하나는 천 냥짜리였다.
‘세상에!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이럴 필요까지 있단 말이야?’
젊은이는 돈주머니를 잽싸게 낚아채며 웃었다.
“어르신께서 이리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약속을 지켜야지요. 이 자리를 어르신께 양보하겠습니다!”
젊은이는 애인을 끌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완전히 횡재한 셈이었다.
‘이 정도 돈이면 반평생을 흥청망청 살 수 있어! 이런 거금을 지니고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서 자리를 뜨자. 어차피 중주에서 계속 살 건데 사진 찍을 기회가 없겠어?’
이렇게 고천추는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고천추가 자리를 사는데 성공하자 돈 있는 사람들이 잇달아 자리를 사겠다고 나섰다. 앞쪽 자리는 금화 수백 냥 이상에 팔렸다.
이호는 마음이 급했다.
‘대학자께서 귀신한테 홀리셨나? 이렇게 고귀하신 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끼여 계시다니!’
아침 해가 뜰 무렵 사진관 앞쪽 길은 줄을 선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사진관에서는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하룻밤을 꼬박 기다렸다고. 날이 밝았는데 어째서 문을 안 열지?”
고천추는 걱정이 되었다.
‘천제현이 납치된 일 때문에 문을 안 여는 건가?’
그는 사람들과 함께 외쳤다.
“장사를 하려면 신용을 지키라고. 오늘 문을 연다고 했으니 문을 열어!”
모두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자 굳게 닫혔던 커다란 철문이 갑자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아리따운 기적상회 점원 몇이 나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점원 하나가 말했다.
“여러분, 서두르지 마세요. 장비 성능 시험을 마쳤으니 차례로 입장하세요!”
고천추는 기뻐하며 이호에게 분부했다.
“여기서 기다리게. 사진 몇 장 찍고 출발하세!”
고천추는 말을 마치자 힘찬 걸음으로 사진관에 뛰어 들어갔다.
이호는 땅에 닿을 정도로 입을 벌렸다.
‘저분이 정말 대학자란 말인가?’
사진관으로 들어선 고천추는 내부에 걸려있는 거대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숲과 초원, 호수, 하늘 등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은 다 1척 높이에 거울로 비춘 것처럼 매우 선명했다.
“어르신, 배경을 고르세요!”
하얀 도포를 걸친 젊은이가 다가왔다. 고천추는 그 젊은이를 알아봤다.
‘어제 광장에 있던 운소라는 청년 아닌가?’
하지만 고천추는 곧바로 신경을 배경들로 돌렸다. 사진을 찍는데 배경을 고를 수 있다니 놀라운 발상이었다.
고천추는 하늘을 찍은 사진을 가리켰다.
“이걸로 하겠소.”
운소가 뒤에 있는 점원에게 손짓했다.
“시작해!”
고천추는 기적상회 점원의 지시에 따라 사진기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섰다. 은은한 빛이 몸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가자 운소는 다 되었다는 손짓을 보냈다.
‘뭐? 이렇게 빨리?’
“옆방으로 가서 사진을 인쇄하십시오.”
말을 마친 운소는 점원에게 지시했다.
“다음 손님을 들어오시라고 해.”
고천추가 뭔가를 느낄 새도 없이 사진 찍기가 끝나버렸다.
‘이거 너무 빠르지 않나?’
고천추는 옆방으로 건너갔다. 방에는 이상한 기계들이 몇 대 놓여있었다. 남자 점원 몇 명이 기계를 조작하면서 그에게 원하는 사진의 크기와 재질을 물었다.
사진의 크기와 재질은 가격과 관련이 있었다. 가장 싼 것은 은화 십여 냥밖에 안 되었다.
물론 고천추는 가장 비싼 수정석 사진을 골랐다. 점원이 빈 수정석판을 골라 인쇄기 같이 보이는 기계에 밀어 넣었다.
수정석판이 빠르게 도금되면서 표면이 거울처럼 반질반질해지더니 고천추의 모습이 나타났다.
‘완벽하다! 너무 완벽해!’
하늘을 향해 우뚝 선 고천추의 등 뒤에는 매와 비행선이 떠있었다. 고천추의 하얀 머리칼과 주름도 모두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건 만고에 전해질 기술이다!’
사진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좀 더 간단하게 만든다면 휴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용병이나 유학 가는 학자, 떠돌이 시인이 사진기를 가지고 그들이 지나온 곳과 본 사물을 찍는다면 자손들을 위해 수없이 많은 귀중한 자료를 남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손대대로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고천추는 보물을 얻은 듯이 사진을 고이 받쳐 들고 사진관에서 나왔다.
고천추는 하루 전에 화를 내며 천제현을 욕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천제현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됨됨이는 차치하더라도 천제현은 존경 받을 만한 발명가였다.
고천추는 자신의 운이 무척 좋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학식이 바다처럼 깊은 여 선생을 만났는데 이제 기발한 생각이 넘치는 천제현을 만나게 되었다. 여 선생이 전형적인 천재라면 천제현은 독특한 기재였다.
무수한 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천재와 기재였다.
고천추가 물었다.
“천제현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는가?”
“걱정 마십시오!”
이호가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조 대장이 기절시키기만 했습니다. 지금 빈틈없이 지키고 있으니 대인께서 가셔서 처분을 내리시지요.”
“알겠네, 바로 가세!”
둘은 천제현을 가둔 저택에 도착했다.
이호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하군! 호위병들이 어디 갔지?”
고천추는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택은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고, 수상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이런, 큰일 났다!’
고천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순간 땅에서 마력진이 나타났다. 고천추는 마력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거대한 힘이 순식간에 고천추를 제압했다.
“어서 잡아!”
“저놈을 잡아라!”
사방에서 난데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방주와 심빙우가 맨 앞에서 수십 명의 현혼급 고수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호는 조 대장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놈들! 앞에 계신 이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당…… 당신은.”
운천학이 앞으로 나와 고천추를 보더니 온몸을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대학자 고천추!”
운천학이 입을 열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다.
‘뭐라고! 이 늙은이가 대학자 고천추라고?’
남하국에서 가장 명망 높은 노학자를 습격한 것이다. 벌집을 제대로 쑤신 꼴이었다. 남하국 수천 만 학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들을 성토할 것이다.
왕성에서 대단한 사람을 보낸 것을 알긴 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 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호가 노여워하며 외쳤다.
“이 하찮은 놈들아, 대학자를 알아보고도 무력을 쓸 생각이냐!”
대방주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머뭇거렸다.
천제현은 덫을 제대로 놓았다. 모두 힘을 합치면 제후라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다만 앞에 있는 건 대학자 고천추였다.
‘정말 대학자를 공격해야 하는 건가?’
고천추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명망이 높은 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위엄 있는 얼굴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무기를 내려놓게.”
바로 이때였다.
“웃기고 있네! 저자를 잡아들이세요!”
저택의 대문이 열리더니 젊은 사내가 나와서 고천추를 노려보며 외쳤다.
“내가 괜한 가르침을 줬군! 못난 영감탱이, 감히 날 해치러 오다니!”
이호를 포함한 대방주, 운천학의 표정이 모두 삽시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천제현이 대학자를 못난 영감탱이라고 부른 거야?’
‘이건 전국의 학자를 모욕하는 처사잖아!’
‘천제현은 학자들의 세치 혀에 죽어나게 될 거야!’
“당…… 당신은!”
고천추가 천제현을 보더니 덫에 걸렸을 때 보다 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을 온통 붉히며 눈알이 빠져라 천제현을 쳐다봤다.
“당신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당신이야?”
천제현이 명령을 내렸다.
“저 배은망덕한 영감탱이를 잡아들이세요!”
심빙우가 가장 먼저 나서서 장풍 한 방으로 고천추를 눕혔다.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달려들어 대학자를 포박했다.
“오해일세! 오해라고!”
사람들이 고천추를 둘러멨다. 고천추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 아니 천 회장, 내게 해명할 기회를 주시게!”
조표는 밀실에 갇혔다. 왕궁기사들은 중주성 같은 곳에서 이렇게 당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왕궁기사단이라는 신분에 대학자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천제현이 아무리 간이 커도 왕궁기사를 죽이진 못할 것이다. 설령 왕궁기사를 건드린다고 해도 대학자는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
남하국에서 고천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집안의 어린이라면 남하팔후를 모를 수 있어도 대학자의 이름은 모를 수 없다.
고천추는 20여 년 동안 여러 국가에서 유학하며 남하국을 위해 대량의 고서들을 가지고 왔다.
여덟 주 학당의 교과서 중 절반은 대학자가 대국이나 제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학자의 공헌이 없었다면 남하국에 그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배출되었을까?
대학자가 남하국의 기반을 닦지 않았다면 막대한 부를 일군 거상들이 존재했을까?
고천추는 홀로 남하국의 부적학과 제약학, 기계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고천추가 왕국에 세운 공은 제후들이 세운 공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컸다. 그리하여 작위는 없어도 그는 작위를 넘어서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최고 권력자인 남하왕 역시 예를 갖추어 그에게 대학자라는 칭호를 내렸다.
오랫동안 고천추는 남하국 학자들의 우상이 되었다.
게다가 대학자의 학식은 왕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고천추는 현장으로 달려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난제에 부딪칠 때마다 고천추는 늘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고천추를 적대시하는 것은 왕국을 적대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하국의 수많은 학자와 백성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민심을 잃고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시달리게 될 게 뻔하다.
“퉤!”
조표가 입에 물린 천을 뱉어냈다.
“모두 조금만 버텨라. 저 어리석은 놈들은 대학자께서 친히 중주에 오신 걸 모르고 있다. 대학자께서 신분을 밝히시면 놈들이 이리 날뛸 수 있겠느냐? 두고 봐라. 이 빛을 반드시 갚을 테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밖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5분 도 지나지 않았는데 꽁꽁 묶인 두 사내가 밀실에 던져졌다. 하나는 왕궁기사 부대장 이호였고 다른 하나는 소박한 회색 도포 차림의 노인이었다.
조표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대학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