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
제323장 천제현 납치 작전
검은 그림자 수십 개가 날쌔게 흩어지며 천제현을 포위했다.
천제현은 다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앞쪽 모퉁이를 도는데 별안간 주먹이 날아들었다.
“윽!”
천제현은 당황한 척 하며 몸을 날려 후퇴했다.
“자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표가 배후를 공격했다. 조표는 마력으로 검게 변한 오른팔로 천제현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갈라졌다.
방어 마력이 깨지면서 천제현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싱겁군!”
조표는 격투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천제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놈을 잡았으니 가자!”
왕궁기사 둘이 천제현을 들어 올렸다.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가 빛처럼 빠르게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거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물론 천제현은 정말로 기절한 게 아니었다.
조표는 천제현이 성광불멸체를 수련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성광불멸체를 수련한 천제현의 몸은 아주 강하고 단단했다.
게다가 천제현은 미리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조표가 혼신의 일격을 가한다면 막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표는 단순히 천제현을 기절시켜 납치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공격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때는 이미 한밤중이라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천제현을 데리고 성을 빠져나간다면 눈에 띄기 십상이다.
조표는 곧장 평범한 집을 물색하여 천제현을 지하실에 가두고 바쁘게 움직였다.
“쇄혼수갑(殺魂手匣)이랑! 마력억제밧줄을 가져와!”
곧 천제현의 두 손에 까만 수갑이 채워졌다.
쇄혼수갑은 혼성술사에게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수갑이었다. 수갑은 엄청난 힘을 감당하고 혼성술사의 정령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래서 수갑이 채워지면 정령을 사용할 수 없으면 혼성술사의 힘은 크게 반감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표는 주문으로 가득한 밧줄로 천제현을 포박했다. 이런 밧줄은 경맥을 봉인하여 마력을 발동시킬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더욱 저항하기 힘들어진다.
수법이 전문적이었다. 천제현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호, 어서 가서 이 사실을 아뢰고 대인을 모셔오너라.”
“예!”
“나머지는 집 주변을 지켜라!”
왕궁기사들은 여우 한 마리가 몰래 천제현 등으로 가서 이빨로 밧줄을 끊고 수갑을 깨물기 시작한 것을 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갑이 동강났다. 수갑에 각인된 속박주문은 이미 효력을 잃었다. 가볍게 힘만 주면 천제현은 바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표는 천제현이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제현은 이미 자유의 몸이었다.
천제현이 납치되자 기적상회는 행동에 나섰다.
운천학과 여씨 오형제, 기적상회 소속의 고수들이 거의 다 출동하여 천제현이 갇혀 있는 거처를 찾아냈다.
“이곳이냐?”
대방주는 천제현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날카로운 쇳소리로 말했다.
“간이 부었군. 감히 중주성에서 회장을 납치하다니. 오늘 놈들을 그냥두지 않을 테다! 가자! 놈들을 쓸어버리자!”
여씨 오형제는 모두 진혼급 강자였다. 게다가 상어해적단의 현혼급 간부 6~7명까지 함께 있었다. 상어해적단의 힘만으로도 조표 무리를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심빙우와 운천학을 비롯한 기적상회와 운씨 가문의 정예병까지 대거 출동했다.
“잠깐!”
운천학이 사람들을 만류했다.
“저들은 십중팔구 왕성에서 왔을 테니 죽이지 말게. 회장만 구하면 돼.”
모두 운천학의 말에 동의했다.
사사건건 왕성과 대립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대방주가 다시 명령했다.
“놈들을 되도록 죽이지 말고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라!”
심빙우와 운천학, 여씨 5형제. 진혼급 강자 일곱이 앞장서서 순식간에 집 밖을 지키던 왕궁기사 십여 명을 제압했다. 나머지 왕궁기사가 저항하려 했지만 그들도 삽시간에 제압되었다.
왕궁기사들은 천제현을 잡아오자마자 기적상회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고수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공격을 퍼붓고 있어요. 얼마 못 버틸 것 같습니다!”
“벌써? 어떻게 이럴 수가! 버텨라.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야 해!”
조표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천제현을 데리고 빠져나가려 했다.
“가자, 포로를 옮겨야겠다. 즉각 철수한다!”
조표가 손을 뻗어 천제현을 잡으려고 하려는 찰나였다.
와락!
뜬금없이 여우 한 마리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암홍색 바늘을 뱉었다. 바늘은 순식간에 호신 마력을 뚫고 조표의 몸에 꽂혔다. 조표는 그 자리에서 경맥에 부상을 입었다.
동시에 천제현은 수갑을 부수고 순식간에 강력한 힘을 방출했다. 곧 까만 신마검의 정령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조표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놈이 일부러 잡힌 거였구나! 당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었다.
신마검의 정령이 조표를 집밖으로 날려 버렸다.
사실 조표의 마력은 천제현보다 한참 높았다. 그러나 경맥이 손상된 상태였고,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중상을 면할 수 없었다. 조표는 분노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물고기뼈 지팡이가 날아와 조표의 몸에 꽂혔다. 곧바로 물의 장벽이 조표를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마라!”
대방주가 다가와 조표를 차갑게 쏘아봤다.
천제현이 갇혔던 집은 몇 분 만에 함락되고 왕궁기사 50여 명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조표도 도망치지 못했다. 고수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전투는 매우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성 안에는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표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중주성은 일개 본성에 불과한데 고수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런 실력의 정예부대에 이런 속도라니. 이 정도라면 왕성에서도 만만히 볼 실력이 아니다!’
천제현은 옷을 툭툭 털며 다가와 붙잡힌 조표를 쳐다봤다.
“너 같은 머저리가 날 잡겠다고? 누구의 사주로 왔는지 불어라!”
조표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지 않았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어.”
천제현이 대방주에게 손짓했다.
“일단 놈들을 다 가두고 이곳을 청소해야 돼요. 이놈은 우두머리가 아니라 이번 행동대장일 뿐이에요.”
운천학이 크게 놀랐다.
“뭐라고? 이자가 우두머리가 아니라니!”
“제가 방금 들었습니다. 놈들이 진짜 우두머리에게 사람을 보냈어요. 이곳에서 매복해 있다가 일망타진합시다!”
조표가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했다.
“고 대인과 맞서려 하다니 죽음을 자초하는군!”
운천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아니라니!’
그럼 배후에 누가 있다는 건가? 그자는 얼마나 강할까? 그자는 중주성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그럼 우리 사진관은 어쩌지?”
“예정대로 열어야지요!”
천제현이 대답했다.
“이 일은 비밀리에 처리해야 돼요. 중주성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대체 왕성에서 어떤 대단한 인물이 왔는지 궁금하군요!”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다!”
“너희 같이 보잘것없는 놈들이 대인을 헤치려 들어? 그분을 뵙자마자 놀라서 오줌을 지릴 것이다! 하하하!”
조표는 끌려 나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대학자 고천추에게 대적하려는 자를 처음 보았다.
이 얼마나 웃기는 소리인가? 고천추는 남하국 제일의 학자이자 모든 지식인들의 우상이다. 그의 말 한마디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 대학자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남하의 수많은 학자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시끄럽군!”
천제현이 손짓했다.
“놈의 입을 막아!”
고천추는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하룻밤을 꼬박 헤맨 끝에 기적사진관을 찾았다.
학자인 고천추는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는 신기한 사진 기술을 직접 체험해보고자 결심했다. 천제현을 사로잡는 임무는 잠시 접어두었다.
고천추는 사진관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이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천추는 방도를 생각해냈다.
그는 제일 앞에 서있는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둘은 기념사진을 찍으러 온 것 같았다.
“이보시오, 사정이 있어서 오래 못 기다리는데 자리를 이 늙은이에게 양보해줄 수 있소?”
“저리 비켜요! 늙은 게 뭐 벼슬이야!”
젊은이들이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여기에서는 귀족이라 해도 줄을 서야 해요!”
고천추가 제안했다.
“자리를 돈으로 사겠소.”
“돈으로 산다고요?”
연인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얼마나 주실 건데요? 이 자리를 맡느라 죽을 뻔 했다고요. 푼돈으로 어찌 해 볼 생각 마세요.”
“그야 물론이오!”
고천추는 기뻐하며 손으로 돈주머니를 만지다가 갑자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주막에서 돈을 지불하면서 금화를 전부 써버린 것이다.
고천추는 학자이지 상인이 아니었다. 막대한 재산이 있지만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돈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소.”
고천추는 민망한 듯이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손에서 반지를 하나 뺐다.
“돈 대신 이걸 받아주면 안 되겠소?”
보석으로 반짝거리는 반지는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대학자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보통 물건이겠는가? 평범한 사람이 10대는 놀고먹어도 될 만한 가치를 지닌 반지였다.
그러나 젊은 연인은 보는 눈이 없었다. 둘은 고천추의 소박한 차림을 보고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영감탱이, 경고하는데 그딴 싸구려 반지로 우릴 속일 생각 마. 자리를 차지하고 싶으면 제대로 돈을 가져와서 사라고. 돈 없으면 우리 시간 빼앗지 말고 썩 꺼져. 그딴 반지는 필요 없으니까!”
고천추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는 대학자다.
남하팔후도 고천추를 보면 예의를 차리고 인사를 올린다.
‘그런데 평민 주제에 이리 무례하게 굴다니!’
화가 나긴 했지만 신분이 있는 몸으로 평민과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천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에 날아들었다. 왕궁기사 부대장 이호였다.
“대인, 놈을 잡았습니다. 어서 가보시지요.”
“이렇게 빨리 잡았단 말인가?”
고천추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그 일은 일단 접어두고 자네 돈 가진 거 있나?”
“있…… 있습니다만!”
“잘 됐군. 꺼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