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
320장 새로운 발명품
“통조림입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고천추는 통조림을 먹으며 방송을 들었다. 이 통조림은 마수고기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래도 기적상회가 마수고기 조리법을 개발한 모양이군. 특히 술사와 용병들이 아주 좋아하겠어!’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수정통신기에서 나오는 소리에는 잡음이 섞이거나 중간에 끊김도 없이 끝까지 매끄러웠다. 방송 내용은 강연을 비롯하여 신문, 음악, 사연, 정보 등이 있었고, 가끔 광고도 나왔다.
‘참으로 신기하군! 기적상회는 어떻게 이토록 많은 것을 발명할 수 있단 말인가?’
고천추는 천제현과 기적상회에 대한 생각이 점차 바뀌고 있었다.
“기적 방송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때 풍채향의 목소리가 마치 청량한 물소리 마냥 퍼져나왔다.
“제가 방금 깜짝 놀랄 정보를 입수했어요. 기적상회의 운문연구소가 중대한 발명을 했답니다. 최첨단 기술이 지금 이 순간 탄생한 거예요. 한 시대의 획을 그을 위대한 발명이겠죠?”
“물론 지금은 기술적으로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라서 아직은 시험 단계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궁금하시죠?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잠시 뒤 8시에 중주성 광장에서 공개 시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앞서 감상해 보는 재미를 맛보세요. 시험 시작까지 1시간 남짓 남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풍채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점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또 새로운 제품이 나와?”
“여기서 기다릴 게 아니지. 계산! 빨리! 가서 봐야겠어!”
“빌어먹을! 종업원들이 보이지 않는 데 먼저 간 거 아니야? 우리도 빨리 가보세! 늦으면 못 들어가!”
고천추는 금화 하나를 탁자 위에 놓고는 창문으로 바로 빠져 나갔다. 삐쩍 마른 몸이 마치 원숭이처럼 몇 번을 하늘 위로 도약하더니 금세 중주성 광장에 도착했다.
겨우 몇 분 만에 중주성 광장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고천추는 다시금 방송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감했다. 이 정보 전달 속도는 기존의 신문 등 전통 매체와 비교하면 대단히 빨랐다.
광장 중앙에 낮은 탑 하나가 나타났다.
탑은 대략 1장 정도 높이에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고천추처럼 박학다식한 인물도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나 사람들은 기적상회가 또 어떤 신기한 물건을 내놓을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기적상회 진법사는 거의 딱 맞게 도착하여 정식으로 시험을 시작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운소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흰색 장포를 입은 청년이 앞으로 나왔다.
“제 소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중주성 분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저를 알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중주성에서 운소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운소는 줄곧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었다. 예전에는 오로지 주색잡기에만 몰두했던 그가 겨우 1~2개월 사이에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180도로 변했다.
“여러분 조용히 해주십시오!”
운소가 한 손을 번쩍 들더니 확성기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기적상회의 위대한 발명품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적상회는 이미 수차례 사람들 앞에서 신규 발명품을 공개했었다.
오늘 이렇게 특별하게 발표를 한다는 것은 이번 발명품이 엄청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러분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운소가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더니 말했다.
“이 세상은 클까요, 작을까요?”
“큽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세상은 크죠. 재미있는 것도 무궁무진하고요!”
운소가 갑자기 깊게 탄식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는 일생동안 남하국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평생토록 세계의 억만 분의 일만이라도 직접 눈으로 보기가 어디 그리 쉽습니까?”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세상은 넓고 남하국은 좁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인류가 건설한 문명국가에 수천억 인구가 살고 있지만 남하국에는 겨우 2억 명밖에 없지요. 그러니 협소하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고천추는 이 말이 더 깊이 와 닿았다. 과거 20여 년간 세상을 떠돌며 유학하던 그로서도 세상이라는 빙산에서 겨우 일각을 본 것에 불과했다. 이 세상은 너무도 크고 넓었다.
“인구 수백억에 달하는 거대 제국, 수만 리나 떨어진 위대한 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운소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불공평한 운명을 계속 한탄했다.
“우리는 그저 상상력을 쥐어짜 꿈만 꿀 수밖에 없을까요?”
“엘프, 마수령, 용족 등 전설 속에 전해지는 종족은 인류에 버금가는 문명과 지혜를 지녔다고 합니다. 그들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의 문화는 또 어떠할까요? 여러분 모두 직접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고대의 신수, 태곳적 생명체, 대륙의 수많은 금지구역, 기이하고 다채롭고 현묘한 것들이 이렇게 많은 데 어째서 우리는 직접 보러가지 못하는 걸까요?”
운소의 연기와 대사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하늘 밖, 심연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요? 여러분들은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천만 년이 흘러 천지강산이 변하면 고수든 일반 사람이든 역사라는 기나긴 강줄기에 휩쓸려 소멸하겠지요. 설마 우리 시대도 잊히게 될까요?”
운소는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어가자 사람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싫습니다!”
운소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말했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거룡의 위력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속세의 사람이지만 엘프족 절세 미녀와 그들이 사는 곳의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비천한 사람이지만 심연의 세계의 심오함을 알고 싶습니다. 저는 무능한 사람이지만 대대손손이 저를 기억하고 그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맞습니다. 기적상회가 없었다면, 저 역시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고천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저놈 참 허풍도 심하군.’
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은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았는지 다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기적상회에서 이번에 어떤 걸 선보일지 몹시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빠르겠죠?”
운소가 이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옆으로 비켜선 후 양손을 흔들었다.
“기적상회의 새 발명품을 소개합니다!”
운소는 다소 과장스럽기는 해도 언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운소의 흥미로운 일장연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기적상회의 발명품이 정식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기적상회의 두 직원이 직사각형의 물건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검은 천으로 덮여 있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운소가 검은 천을 걷어냈다.
사람들이 저마다 목을 길게 뺀 채 앞을 응시했다.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한 거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거울은 한 사람 키 정도 되는 높이에 한쪽 면에 거대한 마력진이 있어 마력 파동이 잔잔하게 느껴졌다.
“저게 뭐야?”
“거울 아니야?”
다들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고는 결과가 이게 뭐야?’
‘고작 거울 하나? 사람 놀리는 것도 유분수지!’
고천추는 몇 초간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심안!”
보다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고천추는 심안을 열었다. 그저 눈으로만 관찰하면 이 물건은 일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심안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니 그 거울은 보통 거울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광택이 나는 금속판 위에 두께가 1mm도 되지 않는 어떤 물질이 펴져 있었다. 고천추는 그 물질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물질이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평범한 거울은 아니었다.
“조용! 조용히 해주세요!”
운소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말을 멈추고 진정하기 시작했다.
“모두 의아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말 이라고 해!”
“서두르지 마십시오. 사실 이 특별한 발표회는 제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운소가 크게 외쳤다.
“다음은 기적상회 부회장 공화련 아가씨를 소개합니다!”
‘공화련이 직접 왔어?’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리가!’
공화련이 직접 나왔다면 어찌 알아채지 못했겠는가?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공화련은 어디에 있든 자석처럼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따라서 공화련이 왔다면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운소는 사람들이 경악에 차 조용해지자 재빨리 외쳤다.
“여러분, 보십시오! 거울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그러자 가만히 놓여 있던 거울 표면에 흐릿하게 빛이 들어오더니 수증기 같은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저 거울에 뭔가가 있구나!’
거울에서 방출되는 힘이 갈수록 강력해져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더니 무형의 힘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를 즈음 거울 표면이 사라지고 거울 속에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아!”
“보십시오!”
사람들이 경악한 가운데 거울 속에서 모호했던 사람 형체 하나가 금방 또렷하게 나타났다. 완벽한 몸매, 고귀한 품격, 중후하고 단정한 모습의 절세 미녀가 흰 장포를 걸친 채 있었다.
“맙소사!”
“공화련 회장이 거울 안에 들어갔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어떻게 거울에 들어간 거야?”
빛을 내뿜던 거울이 점차 또렷해졌고, 공화련이 기적상회 본부 대청에 있는 화려한 홍목(紅木)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공화련의 단아한 분위기, 칠흑같이 검은 머릿결, 백옥처럼 하얀 피부는 그야말로 선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아름다운 눈을 찡긋하더니 살며시 미소를 짓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우아함이 풍겨 나왔다.
“신기하군!”
기적상회 본부에 있는 공화련이 광장에 있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련이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는 우아한 몸짓으로 동그란 마이크 모양의 물건을 들더니 입을 뗐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양측에 놓여 있는 확성기에서 흘러 나왔다.
고천추는 이 경악할 광경에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그가 생각한 모든 상식은 이미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기적상회는 음성과 화면을 따로 송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음성과 화면을 동시에 전송하지는 못했다.
이는 비교적 복잡한 기술로 덧셈, 뺄셈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제현도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화련이 사용한 것은 기적상회의 최신 통신 기술로,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점을 한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과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적상회는 지난한 연구 과정을 거쳐 최근 장영석의 사용방법을 정확하게 알아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이 물건은 자영탑과 전영경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