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18화 (314/729)

# 318

제318장 악행의 증거를 찾아라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자가 땅으로 내려온 후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저는 왕궁기사단 소속 제3부대 대장 조표라고 합니다. 대학자와 청목후를 뵈옵니다!”

청목후가 물었다.

“궁전기사까지 출동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저는 왕명으로 청주에 왔습니다. 대학자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러 중주에 가야 합니다.”

조표가 양손으로 밀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왕성에서 대학자께 보낸 긴급 서한입니다. 대학자께서 직접 살펴보십시오!”

이를 본 고천추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흥! 이런 미친놈이 다 있다니!”

고천추가 분노하며 밀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하국은 어찌 이 같은 미치광이가 날뛰도록 내버려 두는 건가!”

청목후는 깜짝 놀라 물었다.

“어찌 그리 화를 내시는 겁니까?”

“중주성에 천지 분간을 못하는 놈 하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놈이 제 기명 제자와 제 명성까지 모욕한 것도 모자라 제 이름까지 언급하면서 싸움을 걸어왔다고 하는군요! 무엇보다도 악질인 것은 중주를 혼란에 빠뜨려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합니다.”

“어찌 그런 일이!”

청목후가 깜짝 놀라 서신을 읽어보았다.

이 시대에는 정보전달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청주는 지난 수개월 간 다른 곳의 사정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특히 청목후는 다른 주와 군의 사정을 알 수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두루마리에는 ‘천제현’이라는 소년의 죄상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그를 악질 중의 악질로 묘사하고 있엇다.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라면 천제현은 대학자의 제자는 물론이고 대학자까지 능멸했다. 이 일이 퍼지기라도 하는 날엔 남하국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중주성을 혼란에 빠뜨려 삼대 가문을 차례로 몰락시킨 후 중주 최고의 세력으로 우뚝 섰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온갖 중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성에서 즉각 죄를 다스리지 않았다. 본래 특사를 파견해 조사하려고 했으나, 결과는 어떠한가. 먼 길을 거쳐 중주에 도착하자마자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제거되지 않았는가.

이토록 안하무인에 난폭한 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신풍후가 중주에 있는데 어찌 이런 참상이 생긴 겁니까?”

“신풍후?”

고천추는 신풍후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은퇴한 사람처럼 중주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불경스러운 자가 활개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침 잘 됐습니다. 이런 악질을 더는 묵과할 수 없어요. 내가 직접 중주성에 가봐야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지요.”

“남하국에서 누가 감히 절 건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삼군도 내 체면을 봐주는 상황인데, 중주성이 뭐라고? 더욱이 남하국 사방후도 명령을 받아 곧 중주에 당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늙은이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황을 좀 살펴봐야겠어요.”

청주는 현재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고천추는 청주성에서 더는 시간 끌지 않고 조표의 그리핀을 타고 중주성으로 날아갔다.

청주의 광활한 녹음의 땅과 멀어지자 고천추는 여장가라는 소년이 생각났다.

‘그 불세출의 천재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다시 그에게 가르침을 청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고천추는 더 뻔뻔스럽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때 더 매달렸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가 어디로 떠났는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번에 중주 사건을 알아보면서 좀 수소문을 해봐야겠군.’

그리핀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 워낙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대놓고 중주성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왕성에서 군대를 파견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걸 보고 천제현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중주성 사람들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다.

지금은 괜한 소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천제현을 붙잡는 게 중요했다.

“경거망동 하지 말거라. 너희는 이 그리핀을 잘 숨겨 두고 중주 본성에 침투해야 한다. 천제현의 행방을 알아낸 후 기회를 엿보다가 단숨에 붙잡도록!”

고천추가 조표 등에게 임무를 하달했다.

“남주의 사방후가 도착하면 천제현을 그에게 넘겨라. 왕성으로 압송하여 재판에 넘겨 처리할 것이다!”

“그럼, 대학자님께서는…….”

“너희는 천제현 체포에만 신경 쓰도록! 난 천제현의 죄상을 조사하고 그 증거를 수집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천제현은 안하무인에다 난폭하기 그지없는 자다. 필시 주변에 고수들을 숨겨 놓았을 게야. 남궁 가문의 진혼급 특사도 제거할 정도니, 너희는 행동거지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안심하십시오!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가 보거라!”

궁전기사는 까다로운 선발시험을 통해 발탁된다. 이들은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으로 각종 전투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담력을 모두 겸비했다. 이들은 정예병으로 구성된 질풍기사단의 대대장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남하국의 특수부대인 만큼 사람 하나 붙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조표가 휘하의 기사를 데리고 위장한 채 중주성에 침투했다.

고천추는 중구 항구를 통해 유학자의 신분으로 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천추는 중주성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남하 8대 지역 중 고천추가 가보지 않은 곳이 있을까..

청주 항구는 왕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청주는 전국의 자원 산지로서 자원 운송업이 대단히 발달했다. 청주의 나루터와 항구에는 해마다 200척 이상의 선박이 정박해 있어 장관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본 중주성의 항구는 그 규모가 예전보다 2배 이상 커진 것 같았다. 게다가 최소 300~400척에 달하는 선박이 정박해 있고, 하역 인부 1~2만 명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부두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6개월 정도만 지나면 항구의 규모는 다시 2배가 될 것이다.

운수업과 무역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다.

‘중주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발전했지?’

중주성 부근에 즐비해 있는 공장들은 더욱 정신이 없었다. 재료를 가득 실은 마수차들 분주하게 들락날락거렸고 창고로 운반되는 제품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참으로 이상하군.’

중주의 난이 일어난 후 반년이 지난 지금, 중주성은 쇠락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던 고천추는 문득 하늘이 좀 어둡다고 느껴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또 뭔가?’

하늘에 거대한 알처럼 생긴 타원형 물체가 떠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한쪽 방향으로 상당히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고천추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열기구 같지만 그러기에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특별한 동력 시스템을 갖춘 것이 분명했다.

타원형의 거대 알마다 큰 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고천추는 ‘거대 알’이 중주성 외곽으로 날아가 대형 창고에서 천천히 멈추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거대 알이 아래로 내려오더니 바닥과 1장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큰 바구니가 열리자 두 사람이 나와 광석이 담긴 무거운 포대자루를 창고 앞에 전부 떨어뜨렸다.

거대 알 세 대가 실어 나른 화물량은 놀라웠다. 조그만 산 하나를 쌓아둔 규모였다.

화물을 다 내리자 거대 알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또다시 한 방향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고천추는 놀란 마음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 신문물은 학자인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창고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부를 보고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이보시오! 저기 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게 무엇이오?”

“중주성에 이제 막 오셨나 보군요!”

한 인부가 입에 궐련을 물고는 으스대며 말했다.

“저건 기적 비행선이라고 중주성에서만 볼 수 있는 겁니다. 적재량이 소형 화물 선박에 버금간다니까요!”

“맞아요! 이 광석들은 천남성에서 운반된 겁니다. 그 뭐라더라…….”

“장영석!”

“맞습니다! 맞아요! 바로 그거입죠.”

“이 기적 비행선은 광산까지 날아가 화물을 실은 다음 중주성까지 운반합니다.”

“그 광산이라는 게 깊은 숲 속에 있는 바람에 마수차로는 아예 진입할 수 없는 곳이에요. 광석을 그곳에서 천남성으로 운반하기도 힘든데 천남성에서 천리나 떨어진 중주성까지 어떻게 운반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열흘 밤낮을 꼬박 운반해도 다 못할 거요. 그런데 이 기적 비행선 덕분에 광산 채굴과 운송 효율이 무려 열 배나 향상되었습죠!”

‘정말 놀랍군! 이것은 혁신적인 비행 운송수단이 틀림없다!’

이 시대에는 자원이 대단히 풍부했지만, 대부분은 지리적, 환경적 이유로 채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에 한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사실상 많지는 않았다.

청주 청령도 마찬가지였다. 남하국 최대의 자원지역으로 꼽히지만, 탐측한 자원의 수백 분의 일도 개발되지 못했다.

이는 청령의 지형이 대단히 험준하여 진입과 운송 모두 어렵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 비행선이 있는데 어찌 선박 운송을 대체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게는 안 됩니다요. 비행선의 적재량이 많기는 하지만 대형 선박과 비교하면 어림도 없죠. 거기다 비행선의 운행거리도 제한적이라 군과 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운송에만 적합합니다. 대륙 간 운송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요.”

다른 인부가 끼어들었다.

“급할 거 뭐있나? 우리 기적상회가 비행선을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세계에서 이 세 대 밖에 없기는 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 안 그런가?”

“그러게 말이야!”

“기적상회가 못하는 게 뭐가 있겠어?”

인부들은 하나같이 침이 마르도록 기적상회를 칭찬했다.

하지만 고천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비행선의 출현은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기적상회와 천제현은 악행을 일삼기는 했어도 능력은 좀 있는가 보군.’

고천추는 재차 질문했다.

“최근 중주성에 큰 소동이 났었다던데, 그건 어찌 된 일이오?”

“중주의 난? 빌어먹을!”

인부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예전에 아주 정신없었죠. 귀족들의 압제가 어찌나 심하던지,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니까요! 기적상회가 삼대 가문을 몰아낸 후에 중주의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지요! 이젠 다른 귀족들도 훨씬 온화해졌어요. 6개월도 채 안 돼서 우리 임금도 3배나 올랐고요!”

“맞아요! 우리 아들이 중주학당에 입학할 수 있는 것도 기적상회 자선기금이 지원한 장학금 덕분이라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