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제316장 보호할 이유가 충분하다
신풍후가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 수정함 안에는 은색 권총과 함께 마력전지 여섯 개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무안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선물이랍시고 내밀기에는 지나치게 평범한 재질의 물건이 아닌가.
“천제현이 발명한 신식무기입니다!”
신풍후가 수정함을 무안군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마력권총이라는 물건입니다. 살펴보시지요.”
“어떤 무기인지 여기서 한번 보여주지 그러오?”
“잘 보십시오!”
무안군의 미심쩍다는 눈빛쯤은 신풍후도 읽어낸 참이었다.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마력권총의 위력을 직접 보여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리라.
은백색 마력권총을 상자에서 꺼내든 신풍후가 마력전지 탄창 하나를 집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탄창이 장전된 그때.
찬란한 빛의 줄기가 은백색 총신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날듯이 미끄러졌다.
“오오?”
무안군의 눈이 커졌다.
총신 전체에 극도로 정밀한 진법과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점은 마력 탄창 하나로 그 모든 진법과 주문이 간단히 활성화됐다는 사실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발명이었다.
마력진을 구동하려면 일단 마력을 주입해야 했기에 약제나 부적을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람 손이 필요했다. 손이 가지 않아도 자동으로 구동되는 마력진이 만들어진다면 무슨 물건이든 생산력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신풍후가 기둥 하나를 조준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무안군은 똑똑히 감지할 수 있었다. 총신에 새겨진 주문이 밝게 빛나는 동시에 모종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마력진. 마력진에 의해 탄창에서 추출되어 나온 강력한 힘은 순식간에 총구에 응집됐다.
“이건…….”
무안군이 넋을 잃은 찰나.
콰앙!
섬광이 번쩍였다.
발사된 마력 탄알은 금속제 기둥에 움푹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무슨 재질을 썼는지는 몰라도 시제품보다 위력이 한층 강해졌다. 총신이 뜨거워지는 건 여전했지만 시제품처럼 한 발 발사만으로 총이 녹아내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총을 내려놓은 신풍후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삼군 정도 되면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인물이다.
그러나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무안군의 정신을 홀딱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뿐인가, 마치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저렇게나 강력한 마력을 분출하다니?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무안군, 무안군?”
삼군급 인물이 넋을 놓은 광경은 신풍후도 처음으로, 어딘지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었다. 무안군은 신풍후가 몇 번이나 부르고 났을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금세 침착한 얼굴로 돌아온 무안군이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어질 신풍후의 설명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시대에 한 획을 그을 발명품을 앞에 두고도 침착할 수 있다니, 역시 무안군은 무안군이었다.
애초 신풍후 자신에 비하면 저 얼마나 점잖은 반응인가.
“방금 보신 대로 사용 과정에는 조금의 마력도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마력권총만 있으면 어린애라도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일격에 혼성초기 술사를 해치울 정도로!”
‘어린애가 혼성술사를 해치운다고?’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사실 무안군은 흥분으로 손까지 떨고 있었다.
“제작 원가가 만만치 않을 것 같소만.”
신풍후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를 예상하십니까?”
“섬세한 공정에 특별한 마력원, 게다가 심오한 주문까지…… 한 자루에 금화 백만 냥, 아니지…… 금화 오백만 냥 이상은 될 듯한데.”
“하하하하!”
신풍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안군께서도 잘못 짚을 때가 다 있습니다그려!”
무안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화 오백만 냥도 부족하단 말이오?”
솔직히 말해 탐나는 무기인 건 사실이었다.
삼군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혼성 수준 술사라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으리라.
금화 수백만 냥을 불러도 사겠다는 사람은 차고 넘칠 것이다. 그저 대량 보급용으로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신풍후의 말투를 듣자 하니 오백만 냥을 훌쩍 넘어서는 값인 모양이었다.
한 자루에 천만 냥 가량에 달한다면 제아무리 놀라운 발명품이라도 선뜻 쓰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화 천만 냥이면 상품 혼기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 아닌가.
신풍후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제작 원가는 이 정도 선입니다.”
“정말 천만 냥이란 말이오?”
무안군은 온몸의 기운이 다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껏 기대했던 발명품이 실상 그림의 떡이었다니, 기대치만큼이나 실망감도 컸다.
그래도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만은 사실.
자동으로 구동되는 마력진 시스템만 해도 산업계에 파란을 일으킬 발명이었다. 확실히 천제현은 키워볼 만한 인물이었다.
“금화 천만 냥이라니 그럴 리가요!”
신풍후가 큰 소리로 말했다.
“최대 금화 천 냥입니다!”
콰직!
무안군이 앉아 있던 의자가 산산이 조각났다.
숨 막히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저택 전체를 뒤덮었다.
신풍후조차도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을 정도였다. 내심 놀라웠다.
‘삼군의 힘이라는 게 이 정도란 말인가? 듣던 대로 혼성술사의 한계를 한참 뛰어넘은 수준이다!’
“천 냥이면 된다고 했소?”
무안군 눈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새끼 양을 노리는 늑대의 그것처럼 붉은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지금 누구한테 거짓말을! 말이 안 되는 액수가 아니오!”
방금 신풍후의 말을 듣는 순간 혹시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어린애 손에 쥐어줘도 혼성술사를 해치울 수 있다는 무기의 원가가 금화 천 냥이 채 안 된다니?
허혼술사 하나를 양성하는 데 드는 돈만 해도 수백만에서 천만, 현혼급 이상으로 키우려면 수천만에서 억대를 쏟아 부어야만 했다.
그런데 혼성술사 하나를 없애는 가격이 겨우 금화 천 냥이라니.
‘이걸 지금 믿으라고? 한 자루에 금화 천 냥. 열 자루면 만 냥? 백 자루면 십만? 천 자루라고 해봐야 백만 냥?’
이런 무기의 보급은 왕국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이다. 인재 양성은 무슨 놈의.
명문세가들은 무기를 사들이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지방 패권을 쥐게 되리라.
마력권총 천 자루가 동시에 발사된다면 군대 하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애 버릴 수 있었다.
남하팔후 수준의 고수라 하더라도 마력권총 수백 자루의 동시 공격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하팔후급 고수를 처치하는 데 드는 돈이 고작 금화 백만 냥. 왕성 거상이 아리따운 시녀 하나를 사들이는 데는 돈이 그정도였다.
물론.
위력이 꼭 실용성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었다. 정말 권총 수백 자루로 신풍후를 겨눈다 쳐도 신풍후라고 가만히 서서 과녁 노릇이나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애당초 총을 쏠 기회조차 안 올 수도 있는 일.
어찌 됐든 간에 가격 대비 효과 면에서 볼 때 마력권총은 기적의 발명품임이 틀림없었다.
“어디까지나 원가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무안군의 반응은 신풍후를 한껏 흡족하게 했다.
“천제현의 평소 품행이면 밖에 팔 때는 한 자루에 최소 만 냥에서 이만 냥은 부를 겁니다.”
“만 냥에서 이만 냥?”
“부담되십니까?”
“그럴 리가! 오히려 너무 싸지!”
무안군이 심기 불편한 투로 말했다.
“그렇게 싸게 팔면 지방 호족들이 너도나도 사서 쟁이려 하지 않겠소!”
처음에는 비쌀까 봐 걱정이더니 이제는 너무 싸다고 근심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신풍후가 천제현을 지키려던 이유는 확실히 알게 됐다.
천제현은 혼자서도 정예 병력 백만 몫은 해낼 인물이었다.
무안군의 눈동자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신풍후는 천제현과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닐 텐데 혹시 권총 설계도를 입수할 방법은 없겠소?”
역시나.
‘그런 물건은 자기 손안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건가?’
설계도를 내놨다가는 천제현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어떤 야심가가 시대를 뛰어넘는 무기를 남과 나누고 싶어 하겠는가.
무안군이 설계도를 국왕에게 바치는 순간, 왕은 분명 천제현을 제거하려 들 것이다.
“아직은 실험단계인지라 설계도를 얻어도 완전한 제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소?”
“하물며 마력권총은 가장 기본적인 마력무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선진적인 마력무기가 많이 개발되겠지요. 천제현은 어르고 달래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강압적으로 나갔다가는 오히려 반감만 키울 인물입니다.”
무안군도 순간 천제현이 욕심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확실히 유혹적이었다. 천제현만 손에 넣는다면 견융초원을 쓸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하지만 천제현은 강수가 통하지 않는 자였다. 억지로 굴복시키려다 원한을 사면 뒷일이 골치 아파질 수 있었다.
“천제현이 보낸 서신이 있습니다. 받으시지요!”
밀봉되어 있지 않은 편지는 수백 자의 짧은 내용이 전부였다.
천제현에게 부탁은 받았지만 신풍후도 그 안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워낙 상식 밖의 행동이 툭툭 튀어나오는 자인지라, 부디 일을 그르치지만 않길!
“하여튼 대단한 놈이야.”
무안군이 괘씸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이제 아주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 드는군. 중주로 직접 와서 군수산업 협력안을 모색해 보자고?!”
‘뭐라? 무안군을 중주로 불러들여?’
천제현이 미친 게 분명했다.
무안군은 함부로 왕성을 비울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안군은 결정을 서두르지 않았다.
“신풍후의 생각은 어떻소?”
“간이 배 밖에 나왔나 봅니다!”
일단 천제현을 책망한 신풍후가 바로 이어 덧붙였다.
“그러나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면 무안군께서 왕국을 대표해 천제현과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물론 직접 중주까지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믿을 만한 수하만 보내도 충분하지요.”
“직접 가야겠소!”
잠시 침묵했던 무안군이 다시 입을 뗐다.
“문성군이 남주 사방후와 결탁해 천제현을 노리고 있소. 전방을 이대로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는지라 바로 출발은 무리이거늘. 으음, 남주는 사주호를 통해 중주와 곧장 연결된 곳이 아니오? 일단은 대학자에게 중재를 맡기는 수밖에. 나는 이틀 안에 전방에 필요한 조치를 마치고 비밀리에 중주로 향하겠소.”
무안군이 나서기로 했으니 이번 위기는 넘겼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저나 무안군을 중주로 불러들이는 게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
양쪽 힘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상황은 협상에서 천제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