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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14화 (310/729)

# 314

제314장 천제현을 일벌백계하라

신풍후는 천제현에게서 마력권총을 전해 받은 즉시 이곳 북방 왕성으로 기수를 돌렸다.

왕성은 남하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중주 본성보다 절반은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겹겹이 치솟은 성벽 겉면에는 쇳물을 씌워 햇볕이 내리쬘 때면 강렬한 반사광이 번뜩였다.

성의 구조 자체는 중주성보다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곳곳에서 전란을 극복한 도시의 강건함이 묻어났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강철의 요새였다.

이곳 왕성에는 여덟 주를 큰 폭으로 압도하는 규모의 군대가 주둔 중이었다.

최정예 질풍기병단만 해도 십만.

마수령의 가장 강력한 천적인 이들 외에도 대다수 주력부대가 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하도록 왕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신풍후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세월 왕성은 수없는 전투를 치르면서도 단 한 번의 함락은커녕 되레 점점 더 강대해져 왔다. 전란에 이골이 났을 왕성 주민들은 그 어느 지방 백성보다도 용맹했다.

이제 남하국은 기본 인구 2~3억에 정예 병력만 해도 수백만이지만, 반대로 마수령은 장기간 이어진 내부 분열로 더 이상 남쪽 땅을 노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피의 복수를 개시할 때가 온 것이다!

신풍후의 눈길이 단단히 밀봉된 수정함에 머물렀다. 아마도 이 무기가 성공의 관건이 되리라.

“중주에서 온 풍운천이라 하오. 무안군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신풍후 어르신이십니까? 여봐라, 당장 안쪽에 기별을 전하라!”

웅장하지만 사치스럽지는 않은 저택이었다. 공간 대부분을 묵직하게 채운 검은색이 군인 집안다운 살풍경을 연출했다.

왕궁을 제외하면 왕성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건물이 바로 무안군의 저택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동방 가문은 남하국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집안으로 본래가 왕족 가문인 데다가 호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무안군을 배출하기까지 했다.

남궁 가문이나 상관 가문과는 급 자체가 달랐으니 천제현의 계산이 정확했던 것이다. 동방 가문의 지원을 얻는다면 앞날에 두려울 게 없으리라.

안쪽에서 붉은 옷의 호위병이 걸어 나왔다.

“신풍후 어르신, 군상께서는 현재 출타 중이십니다.”

‘군’은 상상 이상으로 높은 작위였다. 일부 대제국에는 ‘군국’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정도였다. 군국이란 ‘군’ 작위를 가진 자가 나라 땅의 일부를 하사받아 통치하는 제후국의 일종으로, 왕국이나 제국과는 달리 완전히 독립된 국가는 아니었다.

남하국 삼군은 땅덩이의 한계 상 영지를 하사받진 못했으나 ‘군상(君上)’이라는 극존칭으로 불렸다.

신풍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왕성에 안 계신다는 말이오?”

무안군은 최전방 총지휘관이었다. 전장에서 긴급 전갈이 날아오면 짧게는 닷새에서 열흘, 길게는 수개월까지도 왕성을 비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무안군과의 만남이 늦춰진다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었다.

신풍후도 왕을 직접 알현할 수 있는 지위 정도는 됐지만 어전에서 염양군이나 문성군과 논쟁이 붙는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사안이 중대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무안군뿐, 우선 그부터 설득해야 한다!’

붉은 옷의 호위병이 공손하게 답했다.

“급한 호출을 받고 입궁하셨습니다.”

신풍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왕성 안에 있다면 일이 수월하리라.

***

남하 왕궁.

황금색 기와가 태양 아래 찬란하게 반짝였다. 처마 양쪽 끄트머리에 얹힌 용은 금방이라도 꿈틀꿈틀 살아서 비상할 듯한 모습이었다.

장창과 보검으로 무장한 호위병 무리가 호화로운 궁궐 사이사이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드높은 층계 위.

옥좌에 앉은 왕은 반백의 수염이 예순 살쯤 되어 보였다. 자색 용포에 위엄 넘치는 왕관, 허리춤에서 숨 막히는 존재감을 발하는 장검은 대하국 왕족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보물이었다.

호위병들이 모두 물러간 대전.

그 장엄한 공간으로 범상치 않은 사내 셋이 걸어들어왔다.

가장 좌측의 인물은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우람한 체구에서는 불꽃을 연상케 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우측 가장자리에는 품위 넘치는 백의의 노인이 서 있었다. 몸에 밴 고상함과 희끗희끗한 장발에서 학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운데 인물은 그들 중 가장 젊어 보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였지만 양쪽 귀밑머리가 살짝 센 듯했다. 전신을 뒤덮는 갑옷을 입고 왼팔에는 투구를 안은 모습. 각이 뚜렷한 얼굴형에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가 위압감을 더하고 있었다.

“상의할 문제가 있어 급히 불렀소. 염양군, 말해 보시오!”

“예, 전하!”

염양군 남궁염은 마치 살아있는 화염과도 같았다. 밟고 선 바닥마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급속도로 달궈지는 중이었다.

“왕명으로 중주에 갔던 가문 장로 남궁적이 천제현에게 당해 폐인이 되어 돌아왔나이다. 땅에 떨어진 남궁 가문의 존엄을 부디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천제현이라?”

위엄 어린 왕의 음성이 대전을 묵직하게 울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로군. 안하무인에 후안무치! 중주성에 해적을 끌어들이고도 모자라 멋대로 명문가 셋을 합병하더니,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무엄한지고!”

크게 흥분한 어투는 아니었으나 듣고 있는 세 사람 모두 천제현이 왕의 역린을 건드렸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십여 년에 달하는 재위 기간.

그는 남하국의 지고지상한 지배자였다. 삼군조차도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판에 중주 구석의 애송이가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무안군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천제현은 뇌주에서 큰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학문이 대단한 자인지라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인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임을 기억해주시옵소서!”

“남하국에 그리도 재주 있는 자가 없단 말이오?”

날이 선 목소리. 문성군 상관장봉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학문인들 대학자에 비할까?”

무안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문성군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우리 남하국에는 이미 인재가 즐비하거늘. 한때는 공을 세웠을지 모르나 그만한 과오 역시 저질렀고, 재주가 남다를지는 모르나 방자하기 이를 데 없어 나라를 위해 쓰이기는 그른 자가 아닌가!”

왕의 음성에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존엄이 서려 있었다.

“짐의 특사를 폐인으로 만든 일이 나라 전체에 알려지면 왕성의 위엄이 어찌 되겠소?”

“현명하십니다. 일벌백계하시옵소서!”

왕의 심중을 읽은 문성군 상관장봉이 재빨리 아뢰었다.

“천제현을 즉각 엄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더욱 세력을 키워 나라를 분열시킬 수도 있사옵니다!”

“염양군의 의견은?”

“같은 생각이옵니다!”

염양군 남궁염은 애초에 전체현에게 이를 갈던 자였다.

“지체 높은 장로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은 남궁 가문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무안군 동방건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하, 신중하셔야 합니다!”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소!”

왕이 선포했다.

“짐을 능멸하고 하극상을 저지른 죄, 과거 세운 공으로도 그 오만방자함을 덮을 수는 없으니 당장 천제현을 왕성으로 압송하라. 이 일은 문성군이 직접 책임지도록.”

“역시 현명하십니다!”

문성군의 입가가 희미하게 당겨져 올라갔다.

“남주 군단에게 맡기면 제격일 듯하옵니다. 사방후를 중주로 보냄이 어떠하신지요.”

왕이 말했다.

“윤허하노라!”

듣고 있던 염양군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알기로 사방후는 천제현에게 원한이 있는 자이옵니다.”

무안군이 돌연 입을 열었다.

“사방후를 파견하시려거든 사적인 악감정을 개입시키지 못하도록 대학자를 함께 보내 감독하게 하시옵소서.”

문성군의 표정이 구겨졌다.

기껏 사방후에게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줬더니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그리 하도록!”

문성군이 반박하고 나서기도 전에 왕의 허가가 떨어졌다.

“대학자에게 왕궁 기사 백 명을 내어줘 사방후를 돕도록 하게!”

듣고 있던 세 명이 일순 흠칫했다.

‘왕궁기사까지 동원하다니?’

어떻게든 천제현을 잡아들이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그럼 이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지.”

중주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 왕의 시선이 무안군을 향했다.

“북방은 어떠한가?”

무안군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천제현이 도를 넘은 것도 사실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지 않은 것은 왕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이었다.

일단 올곧은 성품의 대학자가 함께 간다면 천제현을 지켜줄 최소한의 중재자는 생기는 셈이다. 그래도 목숨을 잃는다면 그 또한 천제현의 운명이리라.

“보고 올립니다. 마수령 부족은 십여 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대부분의 힘을 소모한 상태이옵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사옵니다!”

“오, 그렇단 말이지?”

이때부터 시작된 회의는 깊은 밤까지 내내 이어졌다.

잔뜩 흥분한 왕에게 천제현은 이미 관심 밖인 듯했다. 북방 마수령에 비하면 천제현이 뭐 그리 대단한 골칫거리란 말인가.

“군대 쪽은 무안군만 믿고 있겠네. 놈들을 단번에 궤멸시킬 기회를 찾게!”

천제현은 이미 버린 패나 다름없다. 왕명을 공공연히 거역한다는 건 국왕을 우습게 본다는 의미.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가 벌써부터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놨다가는 아예 반역을 저지르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일벌백계.

일벌백계만이 답이다.

국왕의 존엄을 지킬 길은 오로지 그것뿐!

왕은 남주의 상관홍에게 천제현을 잡아들이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와 함께 일 처리에 만전을 기하고자 대학자에게 왕궁기사 백 명을 붙여 추포 작전을 돕도록 했다.

왕궁기사단은 정예 중에서도 최정예 기병으로, 질풍기병단에서도 엄선된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왕궁 최고의 부대인 동시에 왕가의 충성스러운 수호자이기도 했다.

전장에 나가지 않는 왕궁기사단은 실전 투입용 부대가 아니라 강력한 억제력의 상징 그 자체였다.

남하국 최정점 고수들인 왕궁기사 백 명은 소규모 군단 하나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왕궁기사는 곧 가시적으로 구현된 국왕의 위엄이었다.

무안군은 왕의 심산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대학자를 같이 보내는 데 동의한 건 결코 무안군의 의견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왕의 목적은 오로지 작전 실패를 대비한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

대학자는 지식만이 아니라 마력 또한 엄청난 인물이었다. 그의 영향력에 왕궁기사 백 명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천제현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리라.

지략과 야심. 현임 국왕은 일국의 군주로서 필요한 덕목을 두루 갖추었으나 다만 지배욕이 지나치게 강해서 본인 뜻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자들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러니 설사 천제현이 대학자에 버금가는 학식의 소유자라 한들 그런 왕이 천제현에게 중임을 맡길 턱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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