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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312화 (308/729)

# 312

제312장 사갈수 소탕 작전(2)

이튿날은 짙은 먹구름 사이로 번개와 함께 가랑비가 오락가락했다. 어디 가서 날씨 좋다는 소리야 못 하겠지만 사갈수와 결전을 치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었다.

놈들이 뿜는 독안개도 빗줄기 앞에서는 맥을 못 추리라.

마력진은 준비 완료 상태였다.

청주 정예부대가 속속 진 주변으로 집결했다. 기병은 매복 작전에서 큰 쓸모가 없을뿐더러 그 많은 전투마에 접종할 백신 역시 없었기에 기마궁수부대 이천 명에게는 후방 지원과 뒷마무리가 맡겨졌다.

주력군은 목헌이 따로 불러들인 중갑보병 천여 명으로, 감히 청주 최강의 전력이라 자부할 수 있는 병사들이었다.

추 선생 역시 진법사 백여 명과 함께 정해진 위치에서 마력진 가동을 대기하고 있었다.

천제현이 선 곳은 진 전체를 관장하는 핵심부였다.

‘과연 통할 것인가? 겨우 이 인원으로 사갈수 떼를 상대하겠다니.’

병사들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아른거렸다.

“다 됐습니다!”

천제현이 목헌을 향해 말했다.

“백신을 주사하세요!”

“모두 주목!”

갑옷차림의 목헌이 군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백신을 주사하고 전투에 대비하라!”

중갑보병 천여 명과 진법사 백여 명 모두가 백신을 맞았다.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한 처리를 거쳤다지만 역시 인체에서 유해한 성분이 조금은 있는 탓에 약간의 부작용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투에 영향이 없을 정도의 경미한 반응이라 다행이었다.

이제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는 동시에 빗방울도 굵어지는 듯했다.

야행성인 사갈수가 움직일 시간이 온 것이다.

천제현이 소리쳤다.

“미끼용 진 가동!”

추 선생이 마력진 하나를 가동하자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이 순간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양측 준비!”

오백 명씩 두 개 부대로 나뉜 중갑보병들은 한 손에는 새카만 방패를, 다른 손에는 육중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밟고 선 은신 진법은 기습 시 사갈수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도록 천제현이 특별히 배치한 것이었다.

미끼용 진이 완전히 가동되자 사슴 떼의 울음소리를 실은 마력 파동이 협곡을 향해 분출되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협곡 전체에 날카로운 소리가 메아리치길 잠시.

쉬익! 쉬익!

어두컴컴한 협곡 안쪽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암흑 속에 수없이 박힌 새빨간 점, 굶주린 사갈수의 눈이었다. 사냥감의 기척을 감지한 사갈수들이 협곡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제길!”

“독안개다!”

짙은 독안개가 사갈수 떼를 앞질러 밀려들었다. 빗줄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병사들의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백신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다 죽은 목숨일 텐데!’

“전원 위치를 지켜라!”

목헌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경고했다.

“항명하는 자는 즉각 처결이다!”

독안개가 모두를 덮치는 순간, 극심한 메슥거림과 함께 피부가 새빨간 발진으로 뒤덮였다. 온몸의 혈관을 불로 지지는 느낌이었지만, 사지가 마비되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신의 효과였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쓰러지지 않았다.

작열감쯤이야 잘 훈련된 군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간 당한 게 얼마이던가, 여기 있는 모두 사갈수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다 제 손으로 찢어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을 이들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왔는데 이대로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좋아! 이거다! 지금이야!’

목헌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한편 함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갈수들은 저 앞쪽으로 우왕좌왕 도망치는 ‘사슴 무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사슴 수백 마리가 굶주린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천제현의 마력진은 흡사 커다란 주머니를 닮은 형태였다.

새카맣게 밀려든 사갈수가 대부분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이제 보병 제1부대는 사갈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협곡 입구를 막으세요!”

천제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진법사들은 진을 가동하세요. 단번에 씨를 말려 버려야 합니다!”

진법사들이 마력을 불어넣자 대지의 어둠 위로 수많은 빛의 줄기가 솟아올랐다. 서로 얽히고 섞인 빛의 줄기들이 곧 거대한 마력진의 모습을 이뤘다.

이제 사갈수도 낌새를 챈 듯했다.

“돌격!”

중갑보병 부대가 퇴로를 막는 동시에 사갈수들을 향해 진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 상당한 수의 사갈수가 병사들의 칼날 아래 배를 까뒤집고 쓰러졌다. 청룡경 입구가 막혀 도망칠 구멍조차 없었다.

“사방천뢰진! 발동!”

천제현이 머리 위로 깃발을 쳐들자 일순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에 이어 하늘 저편에서부터 번개 수십 줄기가 날아와 마력진 안에 내리꽂혔다.

각각의 소형 진법이 번개를 한 줄기씩 끌어들이고 있었다.

무수한 섬광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진법 안을 휘저었다. 마치 그 안에 봉인이라도 당한 것처럼 밖으로 새어 나오는 섬광은 한 줄기도 없었다.

깃발을 높이 든 천제현의 모습은 번개를 관장하는 천신을 연상케 했다.

곧이어 번개가 한데 뒤엉켜 번쩍이는 교룡의 형태로 변하더니 믿기 힘든 속도로 진 안을 누비며 몸부림쳤다. 마치 거대한 사슬이 사갈수 수백 마리를 잡아 옭아매는 듯한 광경이었다.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살점.

사방에 진동하는 매캐한 탄내.

번개의 위력에 따로 설명이 필요할까?

진 안에 갇힌 번개의 힘을 한꺼번에 푼다면 남하팔후급 고수라 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리라.

현란한 섬광의 작열은 족히 4, 5분간 더 이어졌다. 사갈수가 연달아 죽어 나가는 동안에도 인간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

차라리 일방적인 도살에 가까웠다.

‘이토록 강력한 진법이라니?’

진법사며 병사들이며 할 것 없이 모두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은 얼굴이었다.

‘대체 세자는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자를 데려왔단 말인가!’

***

사방천뢰진은 천제현이 과거에 썼던 1급 부적술 인뢰부와 같은 효과를 내는 진이었다.

진법 자체에는 이렇다 할 힘이 없지만, 막강한 위력의 번개를 끌어들여 조종함으로써 진 안에 있는 어떤 목표물이든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게 해줬다.

마석이 귀한 남하국에서 대형 마력진을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천제현은 진법 하나를 백여 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누는 기발한 시도로 저비용 고효율의 살상용 진을 창조해냈다.

1급 마수에 불과한 사갈수는 물론이요 2급 마수가 걸려든다 해도 번개의 파괴력에는 속절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삼군급 고수나 되어야 겨우 버텨낼 수 있을까. 남하팔후 정도는 확실히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게 천제현의 예상이었다.

병사들의 얼굴에 충격과 흥분이 교차했다.

‘맙소사.’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오로지 진법만으로 사갈수 수백 마리를 처치하다니.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숫자가 죽어 나자빠지고 있지 않은가!

사갈수가 청룡경에 똬리를 튼 지도 석 달.

그간 놈들에게 당한 백성들이 얼마인가! 협곡에서 생을 마감한 병사들은 또 얼마냐는 말이다!

사갈수가 퍽퍽 터져나가는 통쾌한 광경은 보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천제현은 여전히 번개의 사슬을 조종 중이었다. 수많은 가닥으로 갈라진 사슬이 연속해서 사갈수를 꿰뚫었다.

마치 솜씨 좋은 아낙의 손에 들린 바늘처럼, 사나운 번개가 천제현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며 한 마리 한 마리 사갈수의 몸통을 관통하고 있었다.

숯덩이처럼 그을린 사체가 땅바닥에 널브러지는 동시에 또 다른 놈들에게로 번개가 쏘아져 나갔다.

사갈수 절반가량을 처치하고 나서야 번개의 위력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절반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다쳤거나 도망갈 구멍을 찾기에 바쁜 놈들이라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이놈들, 이제 아무것도 아니구나.”

호탕하게 웃어젖힌 목헌이 칼을 빼 들고 사갈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를 따르라!”

“세자 만세!”

“청주 만세!”

칼과 방패로 무장한 중갑보병 천여 명이 퇴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무자비한 도륙에 돌입했다.

독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사갈수 자체의 전투력은 청주 중갑보병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방천뢰진에 당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이니 포위공격을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돌격!”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목헌의 칼에 사갈수들이 연이어 나동그라졌다. 얼마 못 가 사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 됐고, 포위망 안에 살아남은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크오오!”

놈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일 그때.

무리 사이에서 거대한 사갈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다른 녀석들의 두 배에 이르는 덩치에 몸통 전체를 뒤덮은 금빛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사갈수 왕!’

강력한 2급 마수였다.

꼬리를 높이 치켜든 사갈수 왕이 중갑보병을 향해 녹색 광선을 쏘자 방패가 맥없이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병사 여럿을 해치운 놈이 느슨해진 포위망을 뚫으려 들었다.

심빙우를 습격했던 것도 아마 이놈이리라.

천제현이 남은 번개를 뭉쳐 힘껏 내던졌지만 놈의 반응이 한발 빨랐다. 번개는 거대한 집게에 막혀 대부분 소멸하고 말았다.

천제현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족히 혼성 6성은 되는 놈이군!”

“우두머리를 처치하라!”

용감한 중갑보병 몇몇이 사갈수 왕을 에워쌌다. 그러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기만 두 동강이 났을 뿐, 놈의 껍데기에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분노한 사갈수 왕이 집게를 휘두르자 참혹한 비명과 함께 고깃덩이로 변한 병사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젠장!”

“이러다 놓치겠어!”

심빙우의 눈동자에 한 줄기 서늘한 빛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보다 한발 먼저 사갈수 왕의 앞을 막아선 인영이 있었다. 잿빛 옷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백발의 노인, 추 선생이었다.

“하찮은 미물 주제에 어딜 도망치려고!”

손바닥에 마력을 집중시킨 추 선생이 화살을 방불케 하는 기세로 사갈수 왕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죽어라!”

저항을 시도할 틈조차 없었다.

무쇠보다도 단단하던 사갈수 왕의 몸체가 맥없이 찢겨나갔다.

실로 엄청난 마력이었다.

목헌도 놀란 기색이었다. 정령조차 없이 마력만으로 사갈수 왕을 반으로 찢어놓다니, 얼마나 고강한 마력의 소유자이길래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심빙우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넘어서는 마력이었다. 운천학에 비견할 만한 학자가 마력은 또 남하팔후 수준이라니,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왕이 죽자 사갈수 무리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작전 개시 삼십 분 만에 사갈수는 거의 전멸. 운 좋게 포위망을 빠져나간 일부도 양쪽 측면에 대기하고 있던 기마궁수부대를 피해가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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