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
제309장 대현자를 알아본 현자(2)
그자의 말투는 무척 건방졌으나 그가 말한 네 가지의 문제점은 하나 같이 일리가 있었다.
“지난 며칠간 들인 돈과 노력이 모두 헛수고였구나!”
추 선생은 하늘을 바라보며 장탄식을 했다.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었소이다!”
목헌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이오?”
“그럴 리가요. 제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천제현이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물론 공짜로 일을 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보수는 챙겨 주셔야겠습니다.”
“얼마를 원하시오?”
“원래는 2억 냥을 받으려 했습니다만.”
천제현은 여기에서 말을 끊고 다음 말을 강조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갇혀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니 그것까지 배상해 주셔야겠습니다. 금화 5억 냥쯤이면 부담은 안 되시겠지요?”
‘뭐라고? 5억? 그게 부담이 안 된다고?’
목헌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헷갈렸다. 그러나 천제현의 뻔뻔한 표정을 보고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화 5억 냥이면 성주부의 금고를 다 털어야 할 것인데! 정말 탐욕스러운 자로다!”
목헌의 목소리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같은 학자인 추 선생은 천리 길 마다 않고 청주를 도우러 왔건만, 네놈은 이 기회에 주머니를 채울 생각만 하는구나! 학자의 자존심은 어디 간 것이냐!”
“학자의 자존심, 중요하지요. 하지만 저는 학자가 아닙니다!”
천제현은 자신의 화려한 비단 도포자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십시오. 전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요. 금화 5억 냥에 청주의 재앙을 없애주는 것도 저에게는 거래일뿐입니다. 그러니 돈을 내놓을지 말지는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선생께서 청주의 재앙을 해결해 주시기만 한다면.”
추 선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돈, 청목후께서 못 내놓으신다 해도 이 늙은이가 내놓겠습니다!”
한두 푼이 아닌 5억 냥이다.
청주부에서도 엄청난 출혈을 각오하고 내놓아야 하는 액수를 이 추 선생이란 자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언급하고 있었다.
대체 그는 누구인가?
‘저 노인한테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고?’
5억 냥이라는 거액을 눈 한 번 깜빡 안 하고 내놓겠다는 그의 기백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노인은 남하팔후보다도 부자일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10억을 부르는 건데!’
천제현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금화 1억 냥이면 괜찮은 성약을 살 수 있고 금화 5억 냥이면 상품 성약을 살 수 있거늘.
‘아깝다, 아까워!’
“정말로 금화 5억 냥에 청주를 구할 수 있다면 청주부에서도 구두쇠 짓은 하지 않을 거요.”
이를 악물며 대꾸하는 목헌의 모습은 매우 필사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대가 사기꾼이 아니란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소?”
“하릴없이 여기 갇혀 있는 동안 사갈독의 해독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천제현은 목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어디에서 난 건지 모를 종이를 하나 꺼내 추 선생에게 건넸다.
“어떻소?”
‘이 감옥에서, 실험조차 없이, 이 몇 시간 동안 해독법을 찾아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청주성의 모든 학자가 목을 매리라.
추 선생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믿는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괴물이 있다고?’
사갈독은 매우 복잡한 생명체 독소로, 일종의 미생물이다. 제일 큰 문제는 그 미생물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것인데, 미생물은 적응력이 강해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변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마 전까지 효과가 있었던 해독제가 갑자기 듣지 않기도 한다.
바로 이때문에 추 선생도 극단적인 이독제독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독제독이란 다른 독으로 극독 미생물을 죽이는 개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해독제를 개발해냈는데 전혀 쓸모없다는 게 밝혀졌으니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은 그 두 사람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잘못은 아니었다. 이 시대 대학자라고 해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천제현은 1급 극독 마수뿐만 아니라 3~5급 마수들도 모두 연구하여 해독법을 알아낸 바 있었다. 그러니 사갈수 따위쯤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세상만물은 상생과 상극으로 이뤄져 있소. 사갈수도 마찬가지고.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소이까?”
천제현은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목헌을 쏘아 보며 말했다.
“즉, 사갈수도 천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놈들이 갑자기 청룡경에 출몰했다는 건 다른 마수에게 서식지를 잃어 도망쳤다는 의미지요!”
목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미물과 같은 존재. 그렇다면 그냥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여 그 힘을 빌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갈수의 천적으로부터 사갈수를 제압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겁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청주에 살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안타깝군요!”
추 선생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종이에 쓰인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표정이 의아함에서 절망, 그리고 전율과 놀라움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떨고 있었다. 창백하던 얼굴빛은 열병이라도 걸린 양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천기누설이라도 엿본 듯한 표정이었다.
이 낡고 너덜너덜한 종이가 지금 그에겐 태산보다도 무거웠다.
‘이건 그냥 종이가 아니다. 억대창생을 살릴 둘도 없는 묘책이다.’
목헌은 옆에 있는 이 박식한 노학자의 표정이 몇 초 동안 쉴새 없이 바뀌는 것을 보며 살짝 걱정이 됐다.
“추 선생…… 괜찮은 거요?”
그러나 추 선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감옥에 채워진 자물쇠가 마치 예리한 도끼에 맞은 듯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다시 두 팔을 휘두르자 감옥 문이 삼장 밖 복도 끝으로 날아갔다. 엄청난 힘에 의해 철문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목헌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 노친네가 실성한 건 아니겠지.’
“이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 놈이!”
추 선생은 노기등등한 눈으로 목헌을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대현자님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청목후만 아니었어도 내 당장 네놈을 두 토막 냈을 것이다!”
목헌은 기함할 지경이었다.
‘이 노친네가 정말 미쳤나?’
줄곧 예의 바르고 신중한 모습만 보여 줬던 추 선생이 갑자기 아비를 죽인 원수라도 만난 양 돌변한 것이다.
그러나 목헌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아버지 체면을 봐서 자신을 살려 줬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목헌은 그에게 한 번도 무례하게 군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존경과 경의로 그를 대했다. 그런 그에게 이런 반응은 너무한 것 아닌가.
“선생은 하늘이 이 세상에 내려 주신 구세주입니다!”
노학자는 감옥 안으로 들어와 천제현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허리를 세 번 굽히며 예를 올렸다.
“제 절을 받아 주십시오!”
그 모습을 본 심빙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천제현은 옷을 털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걸 알아봤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 보시구려!”
“이 해독법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인데…….”
“단순하고 조야한 백신 제작법에 불과하오.”
‘백신? 백신이 뭐지?’
목헌은 제약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백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신기술인가?’
뭔지는 몰라도 추 선생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대단한 기술임이 분명했다.
천제현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사갈수가 청령까지 가지 못했다는 말은 청령에 그놈의 천적이 있다는 얘기요. 그것도 한 종류가 아니겠지. 그 천적들은 사갈수를 먹이로 잡아먹을 테니 놈들의 독에 중독되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은 체내에 사갈독에 대한 저항체가 있다는 뜻이고. 사실 이건 아주 단순한 방법이오. 청령에 자주 보이는 생명체들의 혈청에서 그 저항체를 뽑아내 제약진으로 전환시키면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을 거요.”
“이 늙은이, 그런 방법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기원이 되겠군요.”
추 선생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대륙의 제약사들은 전부 증상에 따라 그때그때 약을 썼을 뿐, 그렇게 병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그저 오다가다 주워들은 것에 불과하오.”
천제현은 추 선생의 찬사에는 아랑곳 않고 대답했다.
“내가 듣기로 아주 오래전, 엘프족들이 백신을 개발한 적이 있다 들었소. 미생물 독을 해독하기 위해 만들었다더군.”
엘프족의 일을 누가 안단 말인가.
남하국은 대륙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이제 추 선생은 타지에서 왔다는 천제현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독특한 해독법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제약진을 이용해 마수의 혈청에서 항체를 뽑아내는 것, 그리고 병균 항체를 인체에 맞게 전환하는 제약법은 남하국은 물론이요, 대륙 전체에 사는 온 인류에게 이정표적인 발견이 될 것이다.
추 선생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핏빛 도마뱀에게서 항체를 뽑아 보겠습니다. 사갈독의 위협을 줄일 수만 있다면 아군이 일거에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방법은 핏빛 도마뱀의 항체를 잠시 동안만 잡아둘 수 있을 뿐이오. 또한, 인간과 핏빛 도마뱀의 육신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항체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오.”
“얼마나 가겠습니까?”
“사흘 정도 예상하오!”
청룡경에 자리 잡은 사갈수들을 소탕하는 데 사흘이면 충분했다.
목헌은 아직 천제현이 못마땅했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이 젊은이가 괴물 같은 천재라는 사실을.
“방법은 알려 드렸소만.”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천제현이 물은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주겠다는 돈은 언제쯤 받을 수 있겠소이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푼도 모자라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백신과 혈청 제작 방법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직 많이 있으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말한 추 선생은 옆에서 거치적거리는 목헌을 보고는 명령했다.
“가서 핏빛 도마뱀의 혈청을 만드십시오. 많을수록 좋습니다!”
목헌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천제현과 함께 감옥 밖으로 나온 추 선생은 끝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천제현도 그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하나 다 대답해 주었다. 추 선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