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307화 (303/729)

# 307

제307장 감옥에 갇히다

현재 동청주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서청주는 사주호를 통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가능했지만, 청령 동쪽에 있는 동청주는 그야말로 봉쇄된 형국이었다.

다른 도시와의 단절이 몇 개월째 이어지면서 도둑과 강도가 기승을 부리고, 여기저기서 폭동이 일어나는 등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풍부한 자원으로 유명했던 청주가 마수로 인해 재앙을 겪고 있다니, 새옹지마가 따로 없었다.

천제현과 심빙후는 제후부를 방문했다. 청주의 청목후는 성주직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성 중앙에 위치한 제후부가 곧 성주부였다.

“멈춰라!”

호위병 몇 명이 무기를 겨누며 말했다.

“누구냐! 이곳은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천제현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청목후를 뵈러 왔소.”

호위병이 코웃음을 쳤다.

“네까짓 게 뭐라고 마마를 뵙겠다는 거냐?”

“나는 타지에서 온 상인이오. 사갈수 때문에 우환이 생겨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들었기에 도우러 온 것이오.”

천제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청목후께 전해 주시구려. 내게 사갈수를 소탕할 비책이 있다고!”

“뭣이? 네가 뭔데? 헛소리 집어치워라!”

호위병은 여전히 비웃음을 띤 채로 천제현을 바라봤다.

“장난하지 말고 썩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러자 심빙우가 얼음장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주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는데 청목후는 현자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겠다는 건가? 제후가 되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청주가 이 꼴이 된 것도 당연하지!”

심빙우의 성격을 잘 아는 천제현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말수가 없는 성격으로, 말을 안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안 하는 타입이었다.

‘침묵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지?’

그녀의 말은 효과를 발휘했다.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제후한테 그따위 소리를 하다니!’

평상시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었다.

호위병들은 이 둘에게 정말 비책이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자들이 밖에 나가 이런 소문을 퍼뜨렸다간 나중에 자신들까지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다, 알았어. 사실대로 말하지. 지금 청목후 마마를 뵙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마마께선 벌써 동청주의 폭동을 진압하러 떠나셨거든. 그러니 여기 와서 이래 봤자 소용이 없다는 말이야.”

‘뭐라고? 청목후가 없다고?’

천제현으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청령은 5, 6천 리에 걸쳐 이어진 고개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있는 길만도 여섯 개나 되었다. 그중 가장 크고 넓은 길인 청룡경은 화물, 물자 운송과 군대 이동에 주로 사용되었다.

청룡경이 폐쇄되었다고 해도 나머지 다섯 개의 길이 있으니 좁고 위험하긴 해도 급한 대로 이용은 가능할 것이다.

동청주가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앉아서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청룡경은 짧은 시일 내에 수복이 불가능했다. 그러니 먼저 동청주의 혼란을 잠재우고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 본 후에 정말 해결이 안 될 때 왕성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천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청목후가 언제 돌아올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때 녹색 도포를 입은 한 젊은이가 다가왔다.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마른 몸에 약간 창백한 안색까지 더해져 문약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가늘게 뜬 두 눈만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의외로 엄청난 실력을 갖춘 고수인 것 같았다.

“아!”

“세자 마마!”

천제현은 살짝 놀랐다.

‘이자가 청목후의 세자라고?’

그 젊은이는 호위병에게 명령했다.

“제살초(除煞草)와 청명화(淸明花), 흑어근(黑魚根), 부시초(腐柴草)가 대량으로 필요하다. 시장에 가서 구입해 오거라. 많을수록 좋다!”

“네!”

“보아하니 곧 사갈독 치료법을 찾으실 것 같군요.”

천제현의 말에 세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예리한 눈으로 천제현을 훑어봤다.

그러나 천제현은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괘념하지 않고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독제독의 약방문이라,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세자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소?”

“부독균(腐毒菌)의 즙을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완벽한 해독약을 만들 수 있죠.”

여기까지 말한 천제현은 어조를 바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해독약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독제독은 고급 제약 기술이긴 합니다만, 그걸로 청주성의 혼란을 해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걸 개발하겠다고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건 바보 천치밖에 없겠죠!”

“감히!”

옆에 있던 호위병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망했다! 세자 마마가 화가 나셨어!’

‘이 젊은 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세자는 격노하여 소리쳤다.

“추 선생은 절세의 천재시다. 그런 분이 온힘을 다해 만든 해독약을 네까짓 게 뭐라고! 제후부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걸로도 모자라 감히 추 선생을 모욕하느냐! 여봐라, 어서 이 미친 작자를 끌고 가라!”

심빙우의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

“괜찮아요, 괜찮아.”

천제현이 팔로 그녀를 가로막으며 히죽거렸다.

“여태까지 한 번도 감옥 구경을 해본 적이 없잖아요? 이참에 한번 경험해 보죠 뭐. 어차피 얼마 못 가 알아서 꺼내 줄 테니까.”

병사 두 명이 다가와 그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따라와!”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천제현이 세자에게 말했다.

“제 말을 잘 기억하셨다가 추 선생이라는 자에게 전해 주세요!”

천제현과 심빙우는 제후부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

천제현과 한 방에 갇힌 심빙우는 언짢은 기색이 만연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이던가? 남하팔후조차도 그녀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초고수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죄인 꼴로 갇히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왜요? 화났어요?”

“왜 제후부를 부숴 버리지 않는 거지? 청목후가 없으니 여기 날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 말에 천제현은 정색하며 말했다.

“폭력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어요. 툭하면 주먹부터 날아가는 그 버릇 좀 고치세요.”

그러자 심빙우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한테 맞은 걸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거야?”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알았어요. 맞아요.”

“남자가 쩨쩨하긴.”

“이봐요, 사고방식이 너무 비정상적인 거 아니에요?”

천제현은 답답한 듯 말했다.

“우리 잘 좀 지내보면 안 되겠냐고요?”

그러나 심빙우는 그의 말은 들은 척 만 척하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 얼음장 같은 겉모습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

청주성 성주부의 한 실험실.

“추 선생, 말씀하신 재료를 구해왔소.”

청목후 세자, 목헌이 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실험실 안쪽에는 소박한 옷차림의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평범한 회색 옷에 새하얀 수염과 머리카락, 자상한 눈빛을 가진 노인이었으나 며칠 밤을 샌 듯 몹시 초췌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주시지요.”

추 선생은 떠돌이 노학자로, 청주에 큰 변고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청목후를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떠돌이 학자치고 유명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청목후도 처음에는 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노학자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청주부에 남도록 허락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노학자의 박학다식함은 청목후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청주성의 내노라 하는 학자들도 그의 지식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당시 청주성에서는 학자들 100여 명이 머리를 모아 사갈수 해독약을 연구 중이었지만, 한 달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이틀 만에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재능과 지식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청목후는 친히 중주성을 방문해 운문의 장문인 운천학을 초빙할 생각이었다. 운천학의 학식은 남하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떠돌이 학자의 학식이 결코 운천학보다 못하지 않았다. 청목후는 크게 기뻐하여 그를 청주성의 문객으로 잡아두려고 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청주에 있어 더 없는 행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노인은 청목후가 제시하는 모든 조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오직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해독약 연구에 매진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청목후도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단 눈앞에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이었다.

추 선생은 세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바로 해독약 조제를 시작했다. 복잡한 조제 과정이 끝나자 해독약 십여 병이 만들어졌다.

“이제 81번째 해독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세자 마마, 기록을 부탁드립니다.”

추 선생은 조제한 해독약을 관찰용기에 부었다. 용기 안에는 사갈독 배양액이 담겨 있었다. 배양액 위에 해독약이 들어가자 시커멓던 독액 색깔이 순식간에 옅어졌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옅어진 후로는 더 이상 변화가 없었다.

“독소 잔유율 5할, 해독 효과 낮음!”

추 선생이 새하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81번째 실험 실패, 청명화 추가 후 재실험을 진행하겠음.”

“독소 잔유율 4할, 해독 효과 낮음. 실패!”

“독소 잔유율 4할 5푼, 해독 효과 낮음. 실패!”

“…….”

십여 번의 실험이 끝나자 목헌의 기록도 여러 장에 달했다.

각각의 기록에 빨간색으로 크게 쓰여진 ‘실패’라는 글씨는 보는 이를 낙담하게 만들었다. 가장 효과가 좋았던 실험도 독소 잔유율 3할에 불과했다.

즉, 독소를 억제할 방법은 찾았지만,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추 선생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것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대체 그게 뭘까요?”

“제일 중요한 것 하나라…….”

그 말을 들은 목헌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급히 말했다.

“추 선생, 부독균 용액을 소량 넣어 보면 어떻겠소?”

“부독균이라고요? 부독균…… 부독균의 성질이라면…… 그렇군요! 신묘합니다! 신묘한 방법이에요!”

추 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왜 진즉에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서 가서 부독균을 준비해 주십시오!”

잠시 후.

추 선생은 부독균 용액을 소량 넣은 후 다시 같은 방법으로 해독약을 조제했다.

새로운 해독약이 배양 용기로 들어가자 시꺼먼 배양액이 순식간에 분해되기 시작했다. 45초쯤 지나자 물처럼 맑은 색으로 변했다.

‘성공한 건가?’

‘성공이다!’

“독소 잔유율 1푼 미만! 여태까지 중 최강의 독소 제거 효과입니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찾던 해독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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